251화 시베리아의 들쥐들
‘러시아인이 중국인을 죽였다!’라는 구호는 굉장히 효과적으로 중국 국민들의 민심을 모으고 있었다.
“점점 시위의 규모가 커지고 있습니다. 어제 오후에는 베이징의 러시아 대사관에 화염병이 던져졌습니다. 발표에 따르면 지금까지 전국 100여 도시에서 모두 2,000만 명에 달하는 시민들이 시위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나탈리의 정세 분석이 계속 이어졌다. 물론 이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은 나탈리 한 사람뿐이지만, 중국 내 정보를 규합하고, 분석하는 팀은 어느덧 수십 명 규모로 늘어나 있다고 한다.
중국뿐 아니라 러시아나 영국, 일본 독일 등 주요 강대국의 정세를 파악하기 위해 지역별 팀이 구성되어 어지간한 정보기관 수준의 리포트를 매일 제공하고 있다.
“나라가 커서인지, 시위의 규모 또한 남다르군요.”
2천만이라는 말에 요안나가 조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정부의 발표를 그대로 믿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200만 이상이 동원된 것은 사실로 보입니다.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절대로 자발적인 시위라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나탈리가 말을 이었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많은 비민주주의 국가가 그러하듯, 중국에서도 국민들의 시위는 엄격하게 규제된다.
표현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 그러니까 언론, 출판, 집회, 시위에 대한 정부의 규제 여부가 사실상 민주주의를 가늠하는 지표로 여겨질 정도였다.
“사실 시위야말로 중국 정부에서 가장 우려하는 문제이지요. 관제 시위가 아닌 다음에야 그렇게 많은 숫자의 시위대가 모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한 지역에서 겨우 수천 명만 모여도 바로 무장 경찰이 출동해 강경하게 진압하는 것이 표준입니다.”
“그랬죠.”
“그런데 이번엔 대부분의 도시에서 적어도 수만에서 많게는 10만에 이르는 군중이 모였습니다. 이는 정부의 묵인 내지는 적극적인 유도가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사실 시위를 위해 모이자는 연락조차 쉽지 않은 것이 중국의 현실입니다. SNS건 기본 메시지이건 불온한 내용은 전부 검열되니까요.”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아주 오래전부터 국민 사이의 표현과 의사소통에 대해 엄격한 규제를 이어 오다가 2000년대로 들어서며 개방적인 정책으로 잠시 풀어두었던 규제를 다시 강화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상용화의 초기인 1990년대 후반, 이미 중국 정부는 인터넷을 통한 여론의 형성에 위기를 느끼고 당시로는 엄청난 액수인 10억 달러에 가까운 자금을 투입해 인터넷 통제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국민 개개인의 인터넷 사용은 물론이고 SNS를 통해 오가는 대화까지 검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 민중의 집결이 집권층의 파멸로 이어지는 모습을 학습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언론 통제도 상당한 수준으로,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에서는 인터넷에 기사를 전재할 수 있는 매체의 명단을 발표해 해당하는 언론사의 기사만 전파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언론 기사 서비스를 하는 뉴스 포털 사이트는 이 명단에 있는 언론의 글 이외의 기사를 올릴 경우 처벌받게 됩니다.”
“음…….”
“물론 해당 명단의 언론사들은 전부 관영언론이나 유사한 논조를 지닌 언론사들이지요. 국가 정책에 관해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기사를 싣는 언론사는 전부 제외되었습니다.”
“사실상의 관제 시위에 200만 명이라니, 그것도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니군요.”
“중국의 인구를 생각하면 그리 놀라울 정도는 아닙니다. 현재 등록된 공산당 당원 수만 9,600만 명을 넘어서니까요. 사실 마음만 먹는다면 정말로 2,000만 명의 시위대를 동원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나탈리의 입에서 나오는 숫자의 규모에 모두가 혀를 내두른다. 공산당원의 숫자만으로 인구 순위 15위 정도의 나라를 세울 정도이다.
“확실히 중국의 가장 커다란 무기는 인구로군요.”
그리고 유진은 이 자리의 누구보다도 중국 인구의 무서움을 여실히 알고 있다.
“관제 시위와 관영언론의 흥분된 논조 덕분인지, 실제로 국민들의 러시아에 대한 분노는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동시에 중국 정부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줄어들고 있고요.”
“중국 정부로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성공적이라 할 수 있겠군요.”
“그렇습니다. 당장 전쟁에 돌입하지 않더라도, 불거져 나오는 불만을 어느 정도 잠재운 것만으로도 정권에는 아주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어째서죠?”
“국민들의 분노가 러시아를 향한 것은 틀림없지만, 경제 상황이 호전되지 않는다면 다시 불만이 머리를 들 것이 분명하니까요.”
“어쨌든 전쟁은 피할 수 없다는 말이로군요?”
“네. 피할 수 없습니다. 단지 시기의 문제일 뿐입니다.”
나탈리가 확고한 표정으로 단언했다.
“연해주에서 벌어진 중국 노동자 학살 사건에 대해 러시아 정부가 납득할 만한 조치를 해야 한다는 중국 정부의 요구에 대해, 러시아 정부는 오히려 농장을 빠져나가 연해주 각지로 흩어진 중국인 노동자의 색출에 나서고, 적발된 노동자에게는 도가 지나칠 정도의 폭력을 행사하며 체포, 구금하는 것으로 대답하고 있습니다.”
“이미 서쪽에서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러시아로서는 더 이상의 문젯거리는 만들지 않는 쪽이 나을 텐데요?”
요안나는 러시아 정부가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한다는 가정을 하며 물었다.
하지만 상식이나 합리성 따위는 시기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문제이다.
“러시아로서도 중국의 요구를 들어줄 만한 형편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길어지며 대통령의 인기가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자국 경찰들을 체포한다는 일이 발생한다면 정치적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동쪽과 서쪽 양쪽에서 전쟁이 벌어지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을까요?”
“러시아의 현 대통령이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하고 처음 정권을 잡은 정치인들이 실패한 것은 그들이 정치적으로 유약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라 여기며, 그걸 반면교사로 삼아 항상 거칠고 힘 있는 이미지를 고수해 왔기에 장기 집권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
이어지는 나탈리의 설명에도 요안나는 여전히 의문이 남았다.
“그렇게 해서 전쟁이 일어나고, 시베리아를 빼앗긴다면 단순히 치명적인 타격 이상의 대가를 치러야 할 텐데요?”
“러시아의 누구도 전쟁에서 패해 시베리아를 빼앗긴다는 가정은 하지 않을 겁니다. 그들에게는 최후의 수단이 있으니까요.”
“……핵무기로군요.”
표정을 굳히는 요안나의 말에 나탈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도 러시아는 몇 번이나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감추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겠지요. 더군다나 러시아는 모두 10,000개 이상의 탄두를 보유하고 있을 것으로 여겨져, 최소 300개에서 최대 1,000개 수준으로 추정되는 중국에 비해 압도적인 핵전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 핵전쟁이라도 발발한다면…… 끔찍한 재앙이 되겠군요.”
“물론 그렇게까지 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최악의 경우 그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보장 또한 없습니다.”
“아마도 사용된다면 전술핵 수준이 되겠군요.”
“그럴 가능성이 크지만, 사실 핵무기의 위력을 생각하면 실질적인 의미에서 전술핵이라는 카테고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핵은 늘 전략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막을 방법은 없을까요?”
핵에 대한 두려움은 현대인이라면 마음 한구석 어디엔가 반드시 갖고 있을 근원적인 공포이다. 그리고 지금, 수십 년 동안 묵혀 두었던 공포가 또다시 머리를 들고 있었다.
“최악의 사태가 오지 않기만을 바라는 수밖에는 솔직히…….”
나탈리는 처음으로 말을 흐렸다. 자리에 모인 모두가 심각한 표정으로 나탈리가 켜 놓은 모니터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러시아 국채는 최대한 빨리 매각하고, 루블화 포지션은 다시 숏으로 바꿔야겠군요.”
한참 만에 요안나가 입을 열었다. 세계의 운명이 어떻게 되건, ABC(아메리카 비즈니스 센터)의 리서치 목적은 투자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남보다 빠르게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요안나는 그 누구보다도 돈의 냄새를 빠르게 맡는 여자였다.
* * *
나탈리의 말처럼 러시아는 중국의 요구에 대해 강경 대응만을 이어 갔다.
러시아 경찰 당국은 농장 건설 현장을 탈주한 중국인 노동자들을 색출하기 위해 시베리아 들쥐 박멸 작전을 펼치고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노골적으로 중국인들을 들쥐라고 칭하며 비하적 표현을 사용한 것은 물론 러시아 자국민들의 민의를 모으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만여 명에 달하는 들쥐가 시베리아를 활보하면서 러시아 국민을 위협하고 있다는 선전전의 시작이었다.
“극동 시베리아 중국인 노동자들의 행보는 명백하게 새로 발견된 유전을 노리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중국 노동자들의 안전을 핑계로 군사작전을 펼칠 가능성이 큽니다.”
그때 즈음엔 모스크바에서도 사태의 심각성에 대해 여실히 깨닫고 있었다.
“중국 정부가 그 정도로 과감한 행동을 취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건가?”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중국 정부는 이미 궁지에 몰려 있는 상태입니다. 미국의 수입 규제로 중국 경제는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코로나 방역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벌써 3년 동안 이어지는 강력한 방역으로 중국인들은 지쳐 가고 있습니다. 정권이 흔들릴 경우 힘을 외부로 투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사실 러시아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기에 크렘린의 중심부에 모여 있던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런데 이 보고서의 날짜를 보면 이미 두 주일이나 전에 작성되었는데, 대체 어째서 이제야 올라오게 된 건가?”
대통령이 날카로운 눈으로 쏘아보며 물었다.
“첫 보고가 올라온 것은 그때가 맞습니다. 하지만 좀 더 정확한 사실을 확보하기 위해 추가적인 정보를 수집하느라…….”
SVR 국장이 눈치를 살피며 대답했다. 사실은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시베리아에서 벌어진 중국 노동자의 문제 따위에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여유도 없었기 때문이지만, 예상대로 책임은 SVR이 뒤집어쓰게 생겼다.
“여하튼 탈주 노동자의 색출 과정에서 너무 과격한 폭력은 지양하도록 하지.”
중국과의 전쟁이 예상되는 중에 이 이상의 명분을 주는 것은 좋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문제가 조금 있습니다.”
“무슨 문제?”
“현재까지 농장을 탈주한 노동자의 숫자는 대략 6,000여 명에 달합니다. 그중 1,000여 명을 체포했는데, 주목할 점은 이들 중 상당수가 단순 노동자 이상의 훈련을 받은 것으로 유추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국가근위대 국장이 재빠르게 보고했다.
“단순 노동자 이상이라니?”
“아마도 군사훈련을 받은 느낌입니다.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개개인의 육체 능력도 남다르다고 합니다.”
“뭐라고?”
대통령이 차오르는 노기를 감추지 않으며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다수의 특수훈련을 받은 중국군이 극동 시베리아에 침투해 있다고 생각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죽여 버려! 그놈들! 하나도 남김없이!”
대통령의 분노한 목소리가 크렘린을 뒤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