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화 블랙옵스
[러시아 당국은 오늘 중국인 병사들이 극동 시베리아 곳곳에서 러시아 국민을 상대로 한 잔혹한 학살극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러시아 경찰에 따르면 지금까지 적어도 10개의 마을에서 천여 명에 달하는 무고한 시민들이 중국인 병사들에 의해 참혹하게 살해당했다고 밝혔습니다. 러시아 당국은 중국 정부에게 이 끔찍한 범죄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습니다.]
[한편 중국 정부는 어떤 중국 병사도 국경을 넘어간 적이 없으며, 오히려 정보에 따르면 러시아 군경이 무고한 중국 노동자들을 인간사냥하고 있다며 비난의 수위를 높였습니다. 중국 당국에 따르면 지금까지 적어도 천 명 이상의 중국인 노동자들이 마치 짐승처럼 쫓겨 다니며 한 명 한 명 살해당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중국은 이는 분명한 비인도적 전쟁범죄이며, 더 이상 좌시하지 않을 것을 천명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죠? 정말로 중국 병사들이 러시아 마을을 습격하고, 러시아 경찰이 중국인을 인간사냥이라도 하고 있다는 건가요?”
TV를 통해 나오는 충격적인 보도 내용에 요안나가 치를 떨며 말했다.
“적어도 각기 증거를 갖고 있기는 하네.”
유진도 모니터에 나오는 불타 버린 한 러시아 마을의 모습을 보며 대답했다.
시체의 모습은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었지만, 곳곳에 뿌려진 핏자국만으로도 어떤 참혹한 일이 벌어졌었는지 알기 충분했다.
“정말 끔찍하네요. 그런데 누구 말이 맞는 건가요?”
“아마 둘 다 맞고, 둘 다 틀릴 겁니다.”
마침 들어오던 존 브래넌이 대답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요?”
“학살 내지는 살인이 벌어진 것은 틀림없을 겁니다. 하지만 행위의 주체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행위의 주체요?”
“농장을 탈출한 중국인 노동자를 사냥한 것이 정말 러시아 경찰이나 군인인지, 그리고 러시아 마을을 불태운 것이 진정 중국인인지 알 수 없다는 의미이지요.”
존 브래넌의 말에 숨겨진 의미를 알아차린 요안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설마 각각의 일이 자국의 손에 의해 벌어졌다는 말인가요?”
“그럴 가능성도 있다는 말입니다. 중국이든 러시아든 전쟁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혈안인 모양이니까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요안나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말을 흐렸지만, 존 브래넌은 확고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의 명분으로 돈바스 전쟁에서 일어난 무고한 민간인 학살을 들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요.”
“네오나치라는 아조우 연대 말이지요? 네오나치는 틀림없지만, 학살에 관해선 아무런 증거도 없지 않나요?”
“물론이지요. 하지만 그렇게 주장하는 것에 반박할 증거를 내놓기도 어렵지요. 이번처럼 러시아의 국경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 더욱 그렇지 않을까요?”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유진은 존 브래넌의 말에서 묘한 뉘앙스를 읽을 수 있었다.
“사실 어제 스파스크달니 근처에서 탈주한 중국인 노동자 한 명이 총상을 입고 쓰러진 것을 발견하고 확보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존 브래넌의 대답에는 중요한 것이 두 가지나 빠져 있었다.
“누가 발견했다는 것인지와 누가 보고를 했다는 것인지 궁금하군요.”
“극동 시베리아에 나가 있던 정보원의 연락입니다. 그리고 발견한 것은 그 정보원의 지인이고요. 지금은 비정규적인 루트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비정규적 루트라면?”
이번엔 요안나가 물었다.
“러시아 경찰에게 알리면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도 전에 취조를 당할 가능성이 크다는군요. 그쪽 분위기가 장난이 아닌 모양입니다. 중국인들에 대한 혐오가 너무 강해, 전혀 상관없는 중국인들도 집에서 나오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런…….”
“잘못하면 자경단에게 린치를 당할 수도 있다더군요. 어쩔 수 없이 일반 병원이 아닌 곳에서 치료해야 했던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러시아 정부에게는 알리지 않고 있다는 말인가요?”
요안나는 투자 전문가일 뿐이다. 이런 특수한 상황에 대해서는 평범한 일반인에 지나지 않는다.
“일단은 그렇게 판단한 모양입니다. 우선 환자를 살려야 하니까요. 그리고 러시아 정부로 넘어가면, 증언의 신빙성을 의심받을 겁니다.”
“증언이라면?”
“왕샤오쥔이라는 그 노동자는 자신에게 총을 쏜 상대가 함께 농장을 도망쳐 나온 같은 중국인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일반 노동자가 아니라 아마도 특별한 종류의 사람 같다고 했지요.”
상황을 파악한 요안나의 얼굴이 심각해진다.
“그렇다면…… 중국으로 넘길 수도 없군요?”
“네. 당연하지요. 중국으로 넘기면 그야말로 목숨을 부지할 가능성이 희박합니다. 적어도 그쪽에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지요? 아주 중요한 증인인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존 브래넌이 유진에게 물었다.
“그 정보원이 우리 소속인가요?”
“프리랜서이기는 하지만, 거의 우리 일을 도맡아 해 주고 있지요. 정부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보수를 지불하고 있거든요.”
“존과 함께 일하던 사람이겠군요?”
“그렇습니다.”
존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CIA가 처리하는 편이 낫겠군요.”
유진은 존 브래넌이 가진 정보망이나, 다른 네트워크가 어떻게 되는지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리고 알고 싶은 생각도 그다지 없다. 그런 모호한 분야는 유진의 전문 분야도 아니고, 깊게 파고들어 좋을 것도 없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그쪽에 연락해 처리하겠습니다.”
어쩌면 존의 역량으로 그 증인을 미국까지 숨겨 들여올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 감수해야 할 위험을 생각하면 그리 좋은 생각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런 중요한 증인이라면 미국 정부가 처리하는 쪽이 낫기도 하다.
“그런데…… 아까 말하기론 러시아도 그런 식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다는 뉘앙스였는데요?”
요안나가 다시 한번 물었다.
“러시아 측 발표로는 지금까지 모두 10여 곳의 마을이 습격당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대부분은 러시아인이 아닌 소수민족의 집단 거주지였습니다. 그중 일부는 어쩌면 정말로 중국인 특수부대의 소행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러시아 측 네오나치의 소행일 수도 있습니다. 혹은 러시아 연방군이나 국가근위대일 수도 있고요.”
“거기에 대한 증거도 있나요?”
“아직은 없습니다.”
존의 대답에서 유진은 프리랜서 정보원이 그곳까지 가 있는 이유가 어쩌면 그에 관련된 증거 수집 때문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했다.
물론 그걸 입 밖으로 꺼내 묻지는 않았다. 어떠한 경우라도 유진은 국내에서건 국외에서건 불법적이거나 비 합법적인 행위에 연관되어서는 안 된다. 적어도 아직은 그랬다.
그런 이유에서 존 브래넌에게는 오직 정보 수집만을 맡기고 있을 뿐이고, 그를 넘어서는 부분에는 폭넓은 권한을 주었다.
그러니까 만일 어떤 프리랜서 정보원이 러시아에서 러시아 법률에 위반되는 행위를 하고 있다면, 그 책임은 아메리카 비즈니스 센터의 CEO인 존 브래넌으로 한정될 것이다.
“만일 존의 말이 사실이고, 충분한 증거를 확보한다면…….”
“사실 그런 증거가 있다고 해도, 대세에 영향을 미칠 수는 없습니다. 두 나라 모두 모든 증거를 부정할 테니까요. 오히려 그런 증거가 나올 경우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군요.”
요안나도 금세 이해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전쟁은 막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중국이든 러시아든 선전전에는 상당히 뛰어납니다. 각자 서로의 입장을 증명하는 수많은 증거를 만들어 내 다양한 루트로 세계에 알리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중국은 모두 승리를 위해서라면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우크라이나 침공 전 러시아는 세계 각국의 언어로 자신들의 주장을 선전하는 수많은 뉴스를 만들어 다양한 루트로 퍼트렸다.
그런 선전물은 대개 유명한 언론사들, BBC라거나 CNN 같은 서방의 권위 있는 언론사의 이름을 도용해 SNS나 메일, 그리고 해킹 등의 방식으로 퍼져 나갔다.
중국 또한 그런 방법에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서방의 서비스를 정작 자국 내에는 허용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이 퍼트리기 원하는 정보를 검색 순위 상단으로 올리기 위해 봇을 사용하고, 해킹 등의 수단을 마음껏 활용한다.
더군다나 수십만 명, 일설에 따르면 천만 명에 달하는 관제 댓글 부대를 운용하고 있어 원하는 정보를 퍼트리는 데에는 오히려 한술 더 뜨는 수준이다.
심지어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이나 다른 민주주의 국가의 선거에도 자신들에게 유리한 후보가 당선될 수 있도록 인터넷 여론 조작을 일삼아 오고 있다는 혐의까지 받고 있다.
그러니까 여론 전쟁이라는 분야에서만큼은 이 두 나라에 견줄 곳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라면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수도 있지요. 아니면 전쟁이 어느 정도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을 때도요.”
“그렇겠군요. 역시 타이밍이 중요하겠네요. 음…….”
요안나는 벌써 그걸로 얻어 낼 수 있는 수익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본분과 역할에 충실한 사람이다.
유진과 달리 요안나는 세계의 정세나, 국내외 정치인들의 정치적 입장 따위는 고려할 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고, 또 그래야 할 이유도 없었다.
단지 주어진 정보로 최대한의 수익을 올리는 것이 그녀의 업무였다.
아직 전쟁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수많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더욱 비극적인 일은 그런 희생이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조국을 위해서라는 미명 아래 저질러지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인민해방군이 러시아와의 국경 지대로 집결하고 있습니다. 러시아군도 마찬가지입니다. 연해주의 유전을 둘러싸고 양국이 200km에 달하는 기다란 전선을 형성해 총성 한 번이면 당장이라도 전투에 돌입할 태세를 마치고 있습니다.”
존 브래넌이 방문한 이유는 그것 때문이다. 이제 전쟁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군은 철수를 시작했습니다. 러시아의 형편은 지금 대륙의 양쪽 끝에서 동시에 두 개의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되지 않습니다.”
동과 서로 거의 7,000km가 떨어진 두 지역에서 전쟁을 벌이는 것은 지구상에서 오직 하나의 패권 국가만이 가능한 일이다. 그것도 국가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서야 가능할 것이다.
당연히 러시아로서는 하나의 전선을 선택해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러시아의 영향력을 과시하고, 유럽에 압박을 가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는 우크라이나보다, 1,000억 배럴의 유전과 영토까지 빼앗길 가능성이 있는 극동 시베리아를 선택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우크라이나 측과 평화 협상에 들어간 모양입니다. 그리고 유럽과 백악관에 경제 제재를 풀어 달라고 요청해 왔습니다.”
전쟁은 결국 돈 싸움이다. 그리고 저 먼 연해주까지의 보급을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아도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지지부진한 원인이 보급 문제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러시아로서는 거대한 경제 대국인 중국과의 전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자금을 조달하는 문제라는 사실을 직시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