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4화 중국의 야심
“백악관과 G7 정상들은 러시아에 아무런 추가 요구 없이 우크라이나에서 철수하는 조건으로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풀어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침공에 대한 대가는 요구하지 않았다는 거로군요?”
“미국이나 유럽이나 중국이 시베리아를 집어삼키는 것은 원하지 않으니까요.”
사실상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나라는 이제 러시아가 아니라 중국이다.
중국은 명백하게 미국과 패권을 겨루어 볼 만한 위치에 다다르고 있었기에, 중국이 거대한 유전을 집어삼키는 걸 그대로 놓아둘 수는 없었다.
아무래도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는 이것으로 끝날 듯했다.
협상이 이루어지는 사이, 미국과 G7 그리고 다른 많은 국가는 중국과 러시아를 향해 세계를 위험으로 몰아넣는 전쟁에 돌입하지 말 것을 호소하는 성명을 내놓았다.
- 러시아 군경은 지금도 무고한 중국 인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중국의 모든 인민은 동포의 위험을 절대 경시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 전쟁의 순간만을 노리고 있는 중국 정부는 당연히 그런 세계의 여론을 무시했다.
- 러시아는 오랜 우방인 중국과의 전쟁을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 군인이 러시아 국토 내에서 무자비한 행위를 지속하도록 방관할 생각도 없다. 러시아는 그 어떠한 전쟁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러시아도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양보 없는 발표를 내놓았고, 그러는 사이에도 연해주에서 벌어지는 살육극은 계속되고 있었다.
러시아 신문들은 매일같이 자국 내에서 중국 군인들이 벌이는 살육의 모습을 보도하면서 중국제 무기를 들고 있는 중국인의 시체를 증거로 내놓았다.
물론 중국은 그 사진이 명백한 조작이며, 러시아가 무고한 중국인을 사냥한 뒤 가짜 증거물을 손에 쥐여 준 것이라 주장했다.
극동 시베리아는 중국인에 대한 혐오로 가득했고, 일반 시민들까지도 중국인에 대해서는 공격적인 태도를 나타내고 있었다.
“러시아, 특히 시베리아 지역 사람들은 예전부터 중국에 대해 양가감정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중국인의 투자는 원하지만, 너무 많은 중국인이 들어오는 것은 두려워합니다.”
중국 전문가인 나탈리가 시베리아와 중국 사이의 관계에 대해 짧게 설명했다.
“시베리아 전역의 러시아인은 겨우 수백만 명밖에 되지 않습니다. 가장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연해주의 경우에도 겨우 200만이 되지 않지요. 하지만 시베리아에 접한 중국의 만주 지역에는 거의 1억 명에 달하는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1억이라……. 두려울 만하네요.”
“이들이 투자를 핑계로 국경을 넘어오기 시작하면, 시베리아가 중국인들 천지가 되어 버릴 테니까요. 그 때문에 중국인들의 계속되는 투자 요청에도 불구하고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지요.”
유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나탈리가 이야기를 이어 갔다.
“아마도 중국인을 가장 경계하는 곳이 바로 시베리아일 것입니다. 중국인, 특히 한족이 진출한 곳은 결국 중국인이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게 되는 것을 곁에서 지켜봐 왔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상황까지 벌어지니, 지금까지의 두려움이 공격으로 표출될 수밖에 없지요.”
더군다나 러시아에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잔뜩 있었다. 그들의 조부와 부친이 나치의 피해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나치를 추앙하는 스킨헤드들이 오지인 시베리아에까지 널려 있었다.
중국인들이 무장을 갖추고 시베리아를 돌아다닌다는 소리를 들은 러시아인들은 각기 자경대를 만들어 도시를 돌아다니고 있었고, 동양인이 눈에 띄면 무조건 폭력부터 행사하고 봤다.
물론 그들이 공격하는 것은 대부분 진짜 중국의 군인이 아니라 대개는 장사를 위해 건너온 민간인, 혹은 오랜 시간 시베리아 땅에서 살아온 원주민이었고, 결과적으로 희생자가 더욱 늘어나고 있었다.
한편, 막상 농장을 탈주한 중국인 노동자들은 더 이상 러시아 경찰에 잡히지도 않고, 조용하게 어디에서인가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즈음 인터넷에 러시아 스킨헤드들이 동양인 남자를 무참하게 폭행하고 발가벗겨 나무에 묶어 놓고 웃고 있는 사진이 올라왔다.
그 한 장의 사진이 지니는 파급력은 너무나도 컸다.
너무나도 해맑게 웃고 있는 러시아 스킨헤드의 얼굴이 온 세상 SNS에 떠돌아다니며 가뜩이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악화된 러시아의 이미지를 더욱 망가트렸다.
상황은 점점 러시아에 불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러시아 국방부 장관이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시찰을 나갔다가 사라졌다는 말이 돌고 있다던데, 그게 무슨 말인가요?”
“아직 사실 확인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망명설이 나오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 상황에서 국방부 장관이 망명을 했단 말인가요?”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세르게이 그로코프는 2012년부터 러시아의 국방부 장관으로 재임하며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 강제 병합, 돈바스 전쟁, 그리고 최근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주도해 온 군부의 핵심 인물입니다.”
유진의 질문에 존 브래넌이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의 세르게이는 침체된 러시아군을 개혁하고, 군수 비리 등을 일소시키는 행보로 참신하고 믿을 수 있는 군인이라는 이미지를 쌓아 왔습니다. 만약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면 아마도 가장 강력한 차세대 지도자로 꼽혔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했군.”
“예.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러시아군은 참혹할 정도로 무능력함을 증명하며 세르게이의 이미지 또한 진창에 빠졌습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전쟁 실패에 대한 희생양으로 숙청되는 것뿐으로, 숙청을 피해 서유럽 어느 나라에 망명 신청을 했다는 말이 있습니다.”
존 브래넌이 러시아 내부의 상황을 알려 주었다.
“그렇다면 중국과의 전쟁에는 누가 나서는 거죠?”
“러시아군 총참모장 니콜라이 골리코프가 맡게 될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대통령의 최측근이며, 군부의 실세이기 때문에 가장 적임자라 할 수 있습니다.”
“흠…….”
유진은 시베리아 전선에서도 러시아가 쉽사리 승기를 잡기는 어려울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 누가 책임자가 되건 숙청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군부의 두 실력자가 각기 책임을 지고 권력에서 멀어지게 될 것이다.
유력한 차기 지도자 후보군에서 둘이나 떨어져 나간다면, 새로운 후보가 부상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 둘이 모두 실각했을 때의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를 추려 보았으면 좋겠군요.”
“알겠습니다.”
존 브래넌이 빙긋 웃었다.
* * *
2022년 초겨울, 드디어 중국인민군이 중소 국경을 넘어 시베리아에 전격 침공을 개시했다. 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대략 9개월 만의 일이다.
“전쟁의 개시와 함께 중국군은 파죽지세로 국경을 넘어 러시아로 밀고 들어가고 있습니다. 북쪽에서는 헤이룽장성 지시시에 주둔 중이던 북부전구육군 제328 국경경비여단이, 그리고 남쪽에서는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에 주둔하는 북부전구육군 제329 국경경비여단이 국경을 넘어갔습니다.”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자 나탈리는 시시각각으로 보고를 해 왔다.
“아직 제대로 된 전선을 확립하지 못한 러시아군은 소극적인 저항만 하며 하루 만에 20km 이상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중국군의 전략은 명백하게 항카호 동쪽에서부터 남진하여 블라디보스톡을 포함한 프리모리예의 1/3 가량을 점령하려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걸로 만족할 수 있을까요?”
“프리모리예 지역의 넓이는 대략 16만 제곱킬로미터 정도로, 전부를 차지하기에는 너무 넓고, 전략적 가치도 떨어지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한편으로는 침략 전쟁이라는 오명을 걱정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중국이 내건 전쟁의 명분은 어디까지나 연해주의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니, 연해주 동북부까지 점령하기에는 명분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물론 중국이 전쟁을 시작한 이유가 유전 때문이라는 사실은 전 세계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명분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이번 전쟁의 성과로는 넘칠 정도일 겁니다. 1,000억 배럴의 유전지대 전부와 항카 호수, 그리고 숙원이던 동해로 진출할 항구까지 얻어 낼 수 있을 테니까요.”
중국에 있어 동해 진출은 상당히 중요한 문제이다. 지금까지 중국은 서해와 남중국해를 통해서만 바다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런 상태로는 한반도는 물론이고 바다를 길게 늘어선 일본과 대만, 그리고 필리핀에 의해 태평양으로 나가는 길이 완전히 봉쇄되어 있다 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태평양의 패권을 놓고 미국과 겨룰 생각인 중국에 있어서는 분한 일일 수밖에 없다.
한편으로 동해에서 일본 본토를 노릴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매우 중요한 전략적 이점이다.
더군다나 동해를 통해 해운의 길이 열리면 길림성, 흑룡강성의 경제적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 또한 놓칠 수 없는 장점이다.
풍부한 지하자원과 비옥하고 드넓은 평야 지대에 1억에 달하는 인구가 살고 있는 만주 지역의 개발은 중국 경제에 또 다른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1,000억 배럴에 달하는 유전이 아니더라도, 이번 전쟁은 중국으로서는 도박을 걸어 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무엇보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형편없는 실력을 보였으니, 중국군으로서는 한번 해 볼만 하다는 생각을 가질 법했다.
“연해주의 전략적 가치는 잘 알겠어요. 그렇지만 러시아가 이대로 패퇴하리라곤 생각되지 않는데요?”
“물론입니다. 러시아군도 지금 최선을 다해 극동 시베리아로 전력을 집결시키고 있습니다. 조만간 제대로 된 전선이 형성될 겁니다.”
중국이 침략 전쟁을 시작하자, 다시 미국을 비롯한 G7 국가들은 물론이고 거의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중국에 대한 비난과 함께 경제 제재 절차에 들어갔다.
이미 우크라이나 전쟁만으로도 원자재 상승과 불안 심리 탓에 적지 않은 피해를 겪고 있던 나라들은 중국의 침략이 세계적인 경기 침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에 두려워하고 있었다.
물론 중국은 그런 상황에 대해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1,000억 배럴의 유전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15억 인민의 단단한 지지를 얻어 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가득한 중국 정부는 더욱더 군을 독려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미 시베리아 각지로 숨어든 중국 특수부대들이 각지에서 사보타주를 벌이기 시작했다.
연해주 각 도시에 중무장한 중국 병사들이 떼를 지어 나타나 주요 시설에 대한 습격을 시작했다.
주로 경찰서나 관공서를 공격해 큰 피해를 주고 현지의 군병력과 대치하며 희생자를 늘리고 있었다.
이 때문에 하루빨리 전선으로 투입되어야 할 국가군위대가 도시 내에서의 느닷없는 전투로 인해 혼선을 빚었고, 러시아 각지에서 특수부대들이 급파되어 이들 중국 특수부대와 대치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동부 시베리아는 어디라고 할 것 없이 모두 전쟁 상황이 되어 버렸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보급에 심각한 문제점을 노출해 온 러시아 연방군은 다시 이번 시베리아 전쟁에서도 비슷한 문제에 봉착해 있었다.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힘겹게 전투를 벌이던 병사들을 시베리아까지 보내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치는 모습에다, 병력에 있어서도 형편없는 열세를 보였다.
어쩌면 러시아가 생각보다도 힘없이 연해주를 내어주게 될 것 같다는 보도가 연일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