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화 더 중요한 것
- 중국군은 당장 러시아 국경에서 물러나고, 그동안의 피해에 대해 보상할 것을 요구한다. 만약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중국은 마땅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러시아는 소중한 국토를 단 한 치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 정부의 선언과 함께 핵탄두를 탑재한 탄도 미사일이 행군하는 모습이 나오고 있는 것은 명백하게 특별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저러다가 정말 핵폭탄 쓰는 거 아니야?”
유성이 불편한 얼굴로 한마디 했다. 뉴스를 보고 있던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 러시아의 의도는 충분히 성공적이었다.
멀리 태평양 건너편에서까지 걱정하고 있는데, 당사자인 중국에서야 오죽하랴?
중국인들, 특히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지역의 주민들 사이에서는 핵전쟁에 대한 공포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었다.
더군다나 북쪽으로 상당히 치우쳐 있는 베이징에서도 핵전쟁에 대한 공포로 인해 돈 있는 사람들은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핵은 사용하지 못할 거야. 중국도 만만치 않은 핵전력을 보유하고 있으니까. 어느 쪽이든 핵무기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상대방도 그걸 쓰지 않을 도리가 없지. 결국은 핵이 다시 핵을 부르고, 러시아와 중국 모두가 파멸적인 피해를 보게 될 것을 모르지 않을 테니까.”
“그렇다곤 해도, 지금처럼 러시아가 밀리고 있으면 그대로 있을 수만은 없잖아?”
전쟁 발발 보름 만에 중국군은 프리모리예 지역의 1/3가량을 점령했다.
이해 발견된 유전의 상당 부분과 블라디보스토크를 포함하는 지역으로, 이것으로 중국의 목표는 전부 달성한 것이나 다름없다.
러시아의 반응이 너무 늦었기에 이제야 서부전선에 있던 병력이 동부로 이동해 가까스로 전선을 만든 탓이다.
만일 이대로 전선이 고착화되어 버리면, 러시아로서는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지역을 손 놓고 빼앗기고 마는 뼈아픈 실패로 남게 될 것이다.
중국이 러시아 국경을 넘어서는 순간, 러시아 인민들은 크게 분노했다. 덕분에 잠시 대통령과 군부에 대한 지지도가 크게 치솟았다.
하지만 중국군이 너무나도 빠르게 유전 지대를 점령하면서 국민들의 분노는 중국뿐 아니라 무능력한 군부, 그리고 대통령에게까지 미치고 있었다.
“당연히 러시아로서도 이대로 전쟁을 끝내지는 못하겠지. 러시아가 가진 저력도 이 정도가 아니고. 나치와의 전쟁에서 천만에 달하는 희생자를 내면서도 끝끝내 버틴 나라이니까.”
“그렇지만 그때와 지금 상황은 많이 다르잖아?”
“딱히 다를 것도 없어. 러시아가 가진 힘은 곤경에 처했을 때 드러나는 법이거든.”
러시아가 가진 가장 큰 힘은 다름 아닌 곤궁한 삶에 버티는 능력일 것이다.
20세기 초 러시아는 거대한 내전에 들어갔고, 적군과 백군 양측을 합해 거의 6, 7백만 명에 달하는 무지막지한 병력을 동원해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천만에 달하는 아사자를 만들며 치열하게 싸웠다.
그리고 그 전쟁으로부터 2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나치 독일을 상대로 최저 천만, 최대 2천만의 사상자를 내면서 끝끝내 버텨 낸 끝에 마지막에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그러한 양상은 이번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일 모양이다. 러시아 정부는 마침내 러시아 전역에 부분 동원령을 내렸다.
이번 동원령은 러시아 연방군 예비역 100만 명을 소집해 중국과의 전선에 투입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놀라운 건 러시아가 동원할 수 있는 예비군이 총 천만에 달한다는 사실을 미루어 볼 때 100만 명의 병사 소집은 아직 진짜 전쟁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라는 것이다.
최악의 경우 러시아는 정말 천만 명에 달하는 군사를 중국과의 전쟁으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충분했다.
한편 중국군은 일정 구역을 점령한 이후로는 더 이상 전선을 늘이려 하지 않고 있었다. 전선이 확대되면 그만큼 많은 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약 400만 명이 조금 못 되는 상비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번 러시아 전선에 60만 명 정도를 투입한 상태이다.
만일 전선이 확대된다면 다른 지역에서 병사들을 빼 와야 하는데, 이미 인도와도 군사적 충돌을 빚고 있고, 대만과도 대립해야 하는 중국으로서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이런 면에서 중국이 러시아보다 불리한 면이 있다.
중국은 이미 국경을 접한 여러 나라와 갈등을 빚어 왔기 때문에 한쪽으로만 너무 많은 병력을 집중시키면 다른 쪽에 약점이 노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전쟁의 당사자인 러시아와도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국경을 접하고 있다 보니, 현재의 연해주 방면뿐 아니라 다른 쪽에서도 러시아군이 국경을 넘기 시작하면 곤란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례로 내몽골 동쪽의 국경을 넘어 북경으로 곧장 진격해 오기라도 한다면 중국 정부로서는 혼비백산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전쟁을 치르는 데 있어 러시아나 중국이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은 국토가 너무 크다는 점일 것이다.
사방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지역을 겨우(?) 수백만의 병사로 지켜야 한다.
겨우 200㎞도 되지 않는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양측이 200만 명에 가까운 병사를 동원해 대립하고 있는 한반도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중국군은 러시아 측이 병력을 모아 반격해 올 것을 뻔히 알면서도 연해주 전선을 더 확장할 수 없었고, 예정대로 대반격의 시간이 차츰 다가오고 있었다.
이 순간에도 미국의 국무부 직원들은 매우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핵무기의 사용은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의 소중한 국토를 10만 제곱킬로미터나 빼앗겼소. 전투로 사망한 수만 명의 러시아 병사들에 대해서도 대가를 받아 내야 하오.”
“핵전쟁은 러시아 정부에도 치명적인 피해로 돌아올 겁니다.”
“치명적인 피해는 이미 시작되었소. 러시아 국민들은 중국의 무도한 행동에 대해 응분의 대가를 치르길 원하고 있소.”
“핵무기가 사용되면 다시 국제적인 경제제재가 시작될 겁니다. 경제제재 속에서 중국과의 전쟁을 이어 가기는 힘들 겁니다.”
“러시아 국민들은 궁핍에 강하지요.”
워싱턴 러시아 대사관에서, 그리고 크렘린에서 미국 국무부 부장관을 비롯한 고위 관료들은 최악의 사태를 막아 보기 위해 협박과 당근 두 가지 수단을 모두 쓰고 있었다.
“중국과의 전쟁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국채 발행에는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단, 핵무기의 사용을 절대 하지 않는다는 약속이 필요합니다.”
미국은 러시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지난 20여 년 동안 부패할 대로 부패한 러시아 군부는 온갖 다양한 비리로 러시아 국방을 좀먹어 왔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그렇게까지 약한 모습을 보였던 것은 무엇보다도 러시아군의 보급망이 형편없기 때문이었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전선까지의 보급에도 실패한 탓에 러시아 병사들은 우월한 장비와 병사를 지니고도 번번이 전선 유지에 실패해 왔었다.
아직 우크라이나 전쟁도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러시아군의 보급망이 제대로 회복되리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많았다.
더군다나 연해주에서의 전쟁에는 드넓은 시베리아 벌판을 넘어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보급망을 유지해야 한다는 엄청난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거의 시베리아 철도에 의지해 백만에 달하는 병사와 군수품을 보내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그 와중에 낭비되고 버려지고, 또 착복으로 사라지는 비용이 얼마나 될지 미국 정부조차도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러시아 정부로서는 결국 전쟁에 필요한 자금의 마련을 위해 국채를 발행해야만 했다.
하나 이미 이해 초부터 미국과 서방 여러 나라는 러시아 국채의 거래를 막아 놓았다.
“돈이 아주 많이 필요할 겁니다.”
“미국이 책임질 수 있습니까?”
“핵무기의 사용은 불가하다는 것만 지켜 준다면 가능합니다.”
“적어도 10조 루블의 채권을 발행할 필요가 있소이다.”
우습게도 러시아는 중국에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대가로 1,500억 달러가 넘는 엄청난 비용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리고 식량과 다른 소모품도 필요하오.”
“공식적으로 미국 정부는 러시아와 중국의 전쟁에 중립을 지킬 겁니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국제 시장에서 사야 할 겁니다.”
미국 정부는 이번 전쟁에서 중국과 러시아 모두가 국력을 소모하길 원했다. 특히 중국의 국력을 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지금 상황에서 러시아를 지원하는 것은 곤란했다. 중국을 너무 궁지에 몰아넣는 것도 그만큼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극동 시베리아에서 중국군이 당장 아무 조건 없이 철수하기를 요구합니다.”
미국은 러시아뿐 아니라 중국을 상대로도 외교적인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했다. 국무부 장관이 베이징까지 날아가 전쟁의 수습을 위한 협상에 나섰다.
“러시아는 무도하게 중국 인민 수만 명을 살해했습니다. 이에 대한 책임자 처벌과 배상이 있기 전에는 중국은 결코 물러날 수 없습니다. 또한, 중국의 정당한 자위권 행사에 경제제재로 대응하는 미국과 서방 국가들에게도 사과와 함께 합당한 배상을 요구하는 바입니다.”
“외교적으로 해결할 문제에 전쟁으로 대응한 중국의 잘못이 더 크다는 것이 국제 사회의 의견입니다. 중국은 언제까지나 국제 규범을 벗어나 독자적인 행위로 국제 평화를 위협하는 행동을 멈추어야 합니다.”
“글로벌 스탠다드니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당신들이 정한 논리가 아니오?”
당연한 일이지만, 협상은 늘 평행선을 달리기 마련이다. 중국은 어떤 이유에서이건 연해주를 손에서 놓을 생각이 없었다.
“러시아를 너무 궁지에 몰아넣는다면 정말로 핵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중국은 지금 선을 넘고 있어요.”
“핵전쟁은 조금도 두렵지 않습니다. 해볼 테면 해보라지요.”
물론 사실이 아니다. 러시아의 핵전력은 중국 전역의 대도시는 물론이고 중소도시까지 초토화할 수준이지만, 중국의 핵무장은 그 정도까지는 되지 못한다.
정말 핵전쟁이 시작되어 핵 투발이 본격화되면 중국의 전 국토가 끔찍한 파멸을 맞이하게 될 가능성이 컸다.
물론 러시아라고 무탈하지는 않겠지만.
국무부 장관까지 날아가 벌인 회담은 끝내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러시아의 경우는 천억 달러에 달하는 국채 발행을 도와주겠다는 당근으로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낼 수 있었지만, 중국의 경우는 당장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미국이 중국에 대한 경제제재를 풀어 줄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결국 미국은 중국에 핵무기의 사용만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수준의 경고만을 남겼을 뿐이다.
“아마도 전쟁이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브라이언 디즈가 웃으며 말했다.
미국 정부는 끊임없는 외교에 나서며 중국과 러시아를 협상 테이블로 끌고 나오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사실 백악관에서는 러시아와 중국의 전쟁이 지속되기를 원하고 있었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중국과 러시아의 경제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것이고, 중국의 부흥은 커다란 장애를 맞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과 러시아의 지도자들 또한 그 사실을 모르고 있지는 않았다. 미국이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도 잘 알고 있다.
특히 중국의 경우는 궁극적으로 시베리아의 유전을 차지한다고 해도,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득보다 실이 훨씬 더 많은 전쟁이다.
한번 전쟁을 시작한 것으로 중국은 명백하게 세계에 위협이 되는 나라라는 사실을 천명했고, 다시는 미국과 좋은 파트너의 관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이를 알면서도 전쟁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코로나 사태로 국민들의 지지를 잃어버린 지도층은 국민의 결속을 강화할 강력한 수단이 필요했고, 전쟁과 유전에서 그 방법을 찾아냈다.
한번 전쟁에 돌입한 이상, 국민들의 반발은 쉽게 누를 수 있었다. 지도층의 권력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쟁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정권은 더욱 공고하게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