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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257화 (257/363)

257화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

러시아 정부는 동원령을 통해 거의 100만에 달하는 예비군들을 모집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와 달리, 이번에는 분노한 러시아 남자들이 앞을 다투어 전쟁에 참여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러시아의 국토를 침략한 중국에 마땅한 징벌을 내리겠다며 어디에선가 꺼낸 총을 들고 징병장으로 달려가는 스킨헤드의 사진이 인터넷을 한동안 떠돌기도 했다.

물론 러시아 정부의 선전전이라는 의견도 많았지만, 대체로 이번 전쟁에 러시아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는 것만은 사실인 듯 보였다.

연해주의 전선에 60만 명에 달하는 러시아 육군이 보충되며 중국과의 전투는 하루하루가 치열해지고 있었다.

매일같이 양측에서 날리는 미사일이 하늘을 날았고, 200KM에 달하는 전선에서 매일 수천 명의 사상자가 나오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그러나 태평양 건너편의 미국인들은 그 치열한 전투를 그저 남의 이야기로만 받아들이고 있었다.

미 국무부의 노력 덕분인지 러시아 정부와 중국 정부는 이제 핵무기의 사용을 거론하지 않았다.

물론 그 배경에는 미국 측이 러시아가 발행한 거액의 국채를 비밀리에 구입하도록 승인해 준 사실이 숨겨져 있었다.

당장에 국채를 통한 수혈이 없다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를 전쟁을 수행할 능력이 없는 러시아로서는 그걸 거부할 수 없었다.

한편 중국은 미국이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을 막겠다는 말로 충분히 만족한 모양이다.

중국으로서는 허약하기 짝이 없는 러시아군은 자신들의 전력으로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사실 핵무기를 가장 겁낸 것은 중국이었으니,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을 막아 준 것만으로 미국은 생색을 내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러시아와 중국 두 나라는 미래를 기약하기 어려운 참혹한 전쟁으로 한 발 한 발 더욱 빠져들고 있었다.

두 나라 정권의 노림수가 사실 국익과는 조금 다른 곳에 있던 것은 지금에 와서는 비밀도 아니다.

전쟁을 기회 삼아 정권을 강화하는 것은 인류 역사에서 어디에서나 일어나는 흔한 일이고, 중국도 러시아도 기회를 놓치지 않고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며 정적 제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 봉쇄 정책을 이어가던 중국 정부는 러시아와의 전쟁을 핑계로 시민들의 반발을 더욱 강하게 억눌렀다.

언론에서는 중국의 미래가 오직 러시아와의 전쟁에 달렸다는 주장을 펼치며, 한편으론 국가의 위기 상황에서 국가의 정책에 비난하는 자들은 배신자이자 반역자로 규정하고 나섰다.

“중국 대도시 몇 곳에서 산발적인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중국 경제가 앞으로 더 곤란한 상황으로 치달을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사실 적지 않기 때문이지요.”

중국 현지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나탈리를 통해 듣는 것은 이제 정해진 일과가 되어 갈 정도였다. 그만큼 지금의 상황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경제제재로 무역수지가 악화되고, 실업자가 늘어날 것이 명백한 상황입니다. 지금은 중국에도 세계 각국에서 교육을 받은 유학생 출신 엘리트들의 숫자가 적지 않고, 다양한 경로로 글로벌한 뉴스를 접하는 사람들이 수천만 명을 넘어가고 있으니 우려가 터져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에요. 과거처럼 소수만이 국제적 시야를 갖춘 은둔의 시대가 아니지요.”

“그렇다고 해도 중국 정부가 손을 놓고 있지는 않을 텐데요?”

윌리엄이 물었다. 나탈리가 전해 주는 중국과 러시아 관련 브리핑은 투자에 있어 상당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제 요안나와 윌리엄은 물론이고, 뉴욕을 비롯한 각국 투자법인의 주요 인사들도 화상 회의로 참여하거나 직접 뉴욕까지 날아와 듣고 있었다.

“물론입니다. 아직 서방에 보도가 되고 있지는 않지만, 중국 정부는 전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는 그렇지 않다지만, 적어도 중국 내부에서는 시베리아 침공의 정당성이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중국 국민들은 자국 언론을 통해 접한 중국인 노동자들이 러시아 군인들에게 학살되었다는 보도를 진실로 믿고 있습니다.”

보고를 듣는 이들이 살짝 표정을 굳히며 고개를 끄덕였고, 나탈리는 다음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 때문에 러시아와의 전쟁을 시작한 것은 중국인으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편입니다. 덕분에 중국 정부에서는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국가 반역자로 몰아 강력한 처벌을 내리는 중입니다. 시위 가담자들은 전부 체포하고, 심한 경우 총기를 사용하는 경우도 나오는 모양입니다. 화기를 든 경찰들이 도심지에 서성이는 모습은 일상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사실상 중국 전역이 계엄 상태라 보아도 될 겁니다.”

“그렇다면 중국의 반정부 시위는 그다지 힘을 쓰지 못하겠군요?”

“적어도 현 지도부에 반대하는 세력은 근시일 내에 일소될 가능성이 큽니다.”

나탈리의 말대로 중국 내부 시위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힘을 잃어 갔다.

중국인들은 점점 러시아와의 전쟁에 몰입하고 있었고, 국가 경제 침체의 원인을 러시아와 서방세계에 돌리고 있었다.

“올 한 해 동안 중국의 경제 성장률은 마이너스 5%까지 하락할 것으로 보입니다. 코로나 사태에서도 성장을 이루어 왔던 중국 경제가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음 전환할 것으로 보입니다.”

나탈리가 보고하는 중국 내부의 상황은 날이 갈수록 암울해 보였다. 경제난은 심화되고, 시위는 오히려 줄어든다.

베이징의 부유층은 러시아의 핵 투하를 우려해 남쪽으로 내려가거나 아예 해외로 나가기 위해 비행기에 오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중국 정부는 매일 같이 정권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인사들을 색출해 체포하고 있었다.

“이래서야 다시 60년대로 돌아가는 모습 아닌가요?”

이제 어느 정도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유성도 나탈리의 브리핑에 참여해 지금처럼 종종 질문을 던지고는 했다.

“물론 그런 경향도 나타납니다. 특히 10대와 20대 젊은 층 사이에서 중국에 대한 과도한 자긍심과 함께 외국에 대한 혐오를 표출하는 경향을 보이는 사례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마치 문화대혁명 때처럼 말이지요.”

“그렇다면 지금까지 중국이 이루어 온 많은 성과가 무너지는 것 아닙니까?”

“물론 그때와는 상황이 다릅니다. 당시의 젊은 층은 굶주림과 고통에 익숙한 세대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는 오히려 정반대이지요. 지금은 정권의 정책을 적극 지지하고 있지만, 고통이 길어지면 오히려 반대로 정권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는 것이 지금의 젊은 세대들입니다.”

사실 젊은 세대가 우익, 국수주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단순히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과 미국도, 그리고 한국이나 일본도 젊은 세대가 지난 세대에 비해 훨씬 더 국수주의적이고, 이기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2차대전 이후 처음으로 파시즘을 입에 올리는 사람을 총리로 뽑아 준 것도 20대 젊은 층이고, 유럽 여러 나라에서 극우주의 정치단체를 적극 지지하는 것도 젊은 층이다.

한국이나 일본이라고 크게 다르지도 않다.

80년대 이후 한동안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전 세계적 연대를 이상으로 삼았던 세대의 자식 세대들은 언제나 그랬듯이 부친의 생각에 정면으로 반기를 드는 길을 선택했다.

“20대 젊은 층이 어떻게 나올지가 현 정권의 미래를 결정짓게 될 겁니다. 당분간은 정부에 대한 지지 기조가 계속되겠지만, 경제난이 심화되고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현 정권은 오히려 더 심각한 상황에 부닥칠 수도 있습니다. 20대의 젊은 층들과 학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오기 시작하면 아주 많은 일이 벌어질 겁니다.”

“복잡하고 쉽지 않은 문제로군요.”

“물론입니다. 사실 앞으로 벌어질 일은 그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일들뿐입니다. 당사자인 중국 정부이든, 외부에서의 관측이든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습니다.”

나탈리의 말에 요안나를 비롯한 모두의 시선이 유진에게로 모였다. 지금까지 아주 많은 일에 있어 유진의 선견지명은 항상 누구보다도 뛰어난 통찰력을 증명해 왔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복잡한 문제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어. 나라고 무슨 방법이 있겠어?”

유진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솔직하게 그렇게밖에는 말할 길이 없었다.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 벌어진 전쟁은 그가 의도한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가 이 전쟁을 통해 국력을 상당 부분 훼손할 것은 명백한 일이다.

하나 그렇다고 중국 국민이 결과적으로 어떠한 선택을 하게 될 것인지까지 예상하는 것은 무리였다.

유진이 알고 있던 미래에서 전쟁은 지금보다 몇 년이나 뒤에 일어난 일이다.

그때의 중국 내부 상황은 지금보다 훨씬 더 안정적이었고, 러시아와의 전쟁을 버틸 만한 충분한 경제적 여력이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미국의 통상압력으로 인해 경제적 고통을 받는 상태에서 전쟁을 시작해 버렸으니 앞으로 얼마나 커다란 위기를 겪게 될 것인지는 알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건 여기 모인 사람들에게 그렇게 중요한 문제도 아니었고 말이다.

“적어도 두 달가량은 경제의 하락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요안나가 각국에서 투자기관을 운영하는 대표들 앞에서 당분간의 기조를 발표했다.

물론 이 경우는 지시사항은 아니다. 각국의 투자기관은 전부 독립법인으로 유진의 대략적인 가이드라인을 참고해서 각기 독립적인 투자를 시행한다.

투자에 관련된 아주 오래된 격언이 하나 있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라는 말은 단순히 투자에 대한 조언이나 격언 이상의 중요한 원칙을 담고 있다.

누구라도 자신이 가진 모든 자산을 한 가지 종목에 넣어 둔다면, 그 한 종목의 실패로 전 재산을 날려 버릴 위험에 처하기 마련이다.

그 때문에 가능한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투자를 분산시킬 필요성이 있다.

유진처럼 이미 국가 경제 이상의 자산을 운용하는 경우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지금까지 유진은 틀림없이 거의 모든 투자를 성공시켜 왔지만,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도 매번 모든 투자가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때로는 그도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가능하다면 다양한 종목에, 그리고 유진과 다른 안목의 투자를 병행할 필요가 있다.

그를 위해 유진은 시간이 갈수록 투자기관의 대표들과 직접적으로 투자에 임하는 매니저들에게 점점 더 많은 권한을 넘겨주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유진의 가이드라인 없이도 투자법인들이 각자의 몫을 해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그렇게 권한을 위임하는 것에는 다른 투자자들에 비해 월등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우선되었다.

지금도 존 브래넌의 아메리카 비즈니스 센터를 통해 수집하는 고급 정보들을 최고의 애널리스트, 경제학자, 그리고 수학자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들이 매 순간 분석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이 태스크포스는 적어도 두 달가량 경기 하락이 계속될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당연히 그때의 전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유진은 전쟁의 판도가 어느 한쪽으로 크게 쏠리지 않을 것이라 예측하고 있었다.

미국은 러시아와 중국의 전쟁이 소모전으로 한동안 지속되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런 의도는 충분히 먹혀들 것이다.

태스크포스는 그런 상황에서라면 두 달쯤 뒤부터는 지금의 경기 하락에 어느 정도 브레이크가 걸릴 것을 예측했다. 그러니 하방에 베팅한 금액은 그때까지 청산해야 할 것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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