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화 또 다른 난민
물론 이러한 뉴스가 계속 나오고 있는 것은 백악관은 물론이고, 유진의 의지와 어느 정도는 관련이 있었다.
2010년대 후반으로 들어서며 미국인들은 중국의 경제 성장에 대해 커다란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고, 여전히 공산국가를 자처하는 중국이 언젠가는 과거의 소련 이상으로 미국의 적대적 경쟁자가 될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지난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면에는 이런 두려움도 일정 부분 작용하고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 코로나 사태까지 이어지자 중국에 대한 미국인들의 껄끄러움은 더욱 커졌다.
이번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도 도널드 트럼프에 이어 중국에 대해 강경한 스탠스를 보이고, 최근 들어서는 오히려 트럼프보다 더욱 강한 무역 제재에 나선 것은 미국 시민들에게 안도감을 주고 있었다.
중국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크게 다르지 않았고, 언론도 비슷했다.
폭스를 위시로 하는 보수적 언론이든, 대다수를 차지하는 리버럴 성향의 언론이든 중국에 관해서라면 상당히 과격한 논조를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중국이 시베리아를 침공하며 이런 비판적인 논조는 더욱 심화되어, 이제는 과거의 소련이나 더 나아가 나치에까지 비유하는 기사도 종종 보일 정도였다.
그러한 와중에 중국 경제가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심지어 앞으로도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뉴스는 미국 시민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물론 중국이 극동 시베리아의 대규모 유전을 차지한다면 상황이 달라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지금까진 중국 경제의 발전을 위해 엄청난 양의 에너지 자원을 중동에서 수입해 와야 했지만, 극동 시베리아의 유전을 차지하면 자국 내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비슷한 정도의 원유를 채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중국의 경제는 다시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겁니다.”
나탈리가 상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중국이 이번 전쟁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이제 모두가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중국에서 원하는 최선의 결과가 나왔을 때의 일입니다. 러시아로서도 극동 시베리아의 유전을 빼앗기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러시아는 지하자원을 서구 국가에 공급하는 것으로 경제를 지탱해 오고 있습니다. 이 대규모 유전을 중국에 고스란히 빼앗긴다는 것은 러시아의 미래를 빼앗기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지요.”
고국의 현실을 떠올리며 옐리자베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결국 러시아는 국력을 전부 소진하는 한이 있어도 극동 시베리아의 유전을 손에서 놓으려 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양 대국이 유전을 차지하기 위해 계속 전쟁을 지속한다면, 결과적으로 두 나라 모두에 있어 엄청난 손해로 돌아오겠죠.”
자고로 남의 불구경은 즐거운 법이다. 더군다나 불이 난 두 집이 우리의 경쟁자라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 국가의 국민들은 내심으로라도 이참에 러시아든 중국이든 회복이 불가할 정도의 타격을 입길 바라고 있었다.
유진이 원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미국의 언론사들은 독자와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기사를 열심히 올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두 강대국의 전쟁은 두 나라만의 일로 끝이 나지는 않는다.
1990년대 이후로 중국은 전 세계에 저렴한 공산품을 공급하며 세계 경기에 아주 커다란 이바지를 한 것도 사실이었다.
중국의 10억 노동자들이 만들어 공급하는 상품 덕분에 미국을 비롯한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인플레이션을 누를 수 있는 경제적인 이득을 보아 왔다.
더불어 중국 내수 시장의 확대로 인해 글로벌 기업들의 시장이 확대되어 온 것도 부정할 수 없었다.
80년대 이후로 세계 경제가 급격하게 발전하게 된 배경에는 중국의 개방과 발전이 가장 큰 몫을 한 것을 누구도 반박할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중국의 경제 발전이 아니었다면 미국의 경제 또한 지금보다 아주 많이 빈약할 것이고, 지난 30여 년 동안 눈부시게 발전해 온 동아시아 여러 나라 또한 지금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힘든 상황일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세계의 경제는 유기적으로, 그리고 아주 복잡하게 얽혀 있다.
미국이나 중국 정도 되는 나라의 경제 성장이나 위기는 고스란히 세계 경제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고 그런 영향은 각 기업의 주가에서 가장 명확하게 찾아볼 수 있었다.
“글로벌 기업들의 주가는 지난해 초와 비교해 대략 40%가량 빠졌어요.”
무척이나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만, 요안나의 얼굴은 평안하기만 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돈을 굴리는 투자자이지만, 유진은 이미 이런 사태가 오기 전에 상당수의 주식을 처분해 버린 뒤이다.
“이제 슬슬 다시 들어가도 될 것 같은데.”
“애널리스트들의 의견은 반반입니다. 아직은 기다려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고, 지금이 충분히 바닥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역시 중국과 러시아 사이의 전쟁이 가장 큰 문제겠죠.”
전쟁의 향방에 따라 주가가 출렁이게 될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하지만 만일 전쟁이 이대로 지지부진한 상태로 이어진다면 주가에 미치는 영향은 점점 줄어들 것이고, 다른 지표나 경제 사정 등이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렇다면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할까?”
유진은 러시아와 중국 사이의 전쟁이 당분간 계속될 것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불확실성이 크다.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으니, 조금은 신중해야 할 것 같았다.
그로부터 다시 석 달이 지나고 나서도, 러시아와 중국의 전쟁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이다.
중국도 러시아도 포기할 수 없는 전쟁이다. 1,000억 배럴의 상징성은 너무나도 컸다.
그동안 두 국가는 양측 모두 엄청난 사상자를 내며 고통에 허덕이고 있었다.
러시아 측 발표로는 20만 명, 그리고 중국 측에서는 7만 명의 자국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방에서는 양쪽 모두 적어도 발표한 숫자의 두 배에서 많게는 다섯 배까지의 사상자가 나왔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었다.
특히 중국의 사상자가 생각보다 클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지난 코로나 사태에서도 그랬지만, 중국 정부는 점점 더 많은 것을 감추려 하고 있었다.
중국 측에서 발표하는 통계는 아무것도 신뢰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 지도 오래였다.
“중국 내부에서 전쟁에 대한 회의가 늘어나는 모양입니다.”
나탈리는 이날도 언론에서 보도되지 않고 있는 중국의 내부 사정을 브리핑하고 있었다.
지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그랬던 것처럼, 중국 내부에서도 전쟁이 길어지며 고통받는 시민들이 점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중국 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언론 통제로 이러한 불만이 수면 위로 올라오지 못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하나 아무리 인터넷을 막고 개인 통화까지 감청한다 해도, 사람들의 입을 전부 틀어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군다나 길어지고 있는 경제제재로 인해 수출에 차질이 생기고, 문 닫는 공장이 늘어나면서 일자리를 잃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으니, 불만이 나오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특히 지금까지 정부에 대해 높은 지지를 보내 오던 젊은 층이 점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역시 일자리 문제가 가장 큽니다. 과거 20년 전과 달리, 지금 중국 젊은 층들의 학력은 상당히 높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고임금의 일자리는커녕 생산직 자리도 구하기 힘든 현실이 그들을 정권에 비판적으로 돌아서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천안문 사태 같은 거국적 시위가 일어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요?”
“그건 사실입니다. 중국 정부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그런 문제이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불만을 가진 국민들이 언제까지 참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도 어렵습니다. 사실 중국 국민들은 서구의 국민들에 비해 오히려 집단 행위를 더욱 빈번하게 일으키는 편입니다.”
“그런가요? 그건 의외로군요?”
요안나가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듯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역사적으로 중국의 서민층은 한계에 이르면 반드시 봉기하고 일어섰습니다. 수많은 왕조가 서민들의 봉기 때문에 멸망했었지요.”
“하기는 삼국지도 시작은 서민들의 봉기에서 시작되었지.”
동양인인 유진에게야 그리 낯설지 않은 이야기이다.
장각이 일으킨 황건적의 난은 결국 궁핍한 생활을 참지 못한 민초들의 항쟁이었고, 그것이 한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만드는 원인이 되고 만다.
무려 2,000년 전의 이야기이다.
“삼국지요? 음…… 들어 본 적은 있는데…….”
서양인에게야 굳이 동양사에 관심이 있지 않은 이상 너무나 먼 이야기일 뿐이다.
“고대 중국, 그러니까 2,000년 전부터 중국 서민들은 중앙 정부에 저항해 시민 혁명을 일으켜 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정부에서는 도적들이라는 이름을 붙여 왔지요. 하지만 본질적으로 밑에서부터 시작되는 혁명으로 보아야 합니다. 사실 서양은 그런 적이 무척 드물다고 할 수 있지요.”
나탈리가 서양과 동양의 시민 혁명에 대해 짧게 설명했다.
“500여 년 전의 밍 다이너스티 또한 그런 시민 혁명에서 비롯된 왕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19세기에도 그랬고, 20세기에도 봉기는 계속 이어져 왔습니다. 마르크스에서 시작된 공산주의도 이미 2,000년도 더 전의 제자백가 시대에서 찾아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중앙 정부의 실패에 대해 봉기로 맞서는 태도는 중국 인민들의 문화적 유전자에 남아 있는지도 모릅니다. 1980년대 후반의 천안문 시위 또한 그 연장선 위에 있고요.”
“굉장히 재미있는 이야기로군요.”
요안나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들은 표정이다.
서구인들이 보기에 중국의 국민들은 그저 공산당의 통제에 순응하기만 하는 것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중국의 역대 정부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것이 바로 백성들, 그러니까 일반 국민이 모여 의견을 모으고 봉기하는 것을 막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의 중국 정부에서 그렇게까지 언론의 통제에 많은 비용과 노력을 할애하는 것 또한 그러한 맥락이지요.”
“하지만 터질 것은 언젠가는 터지기 마련이지.”
“맞습니다. 혁명이든, 시위든 영원히 막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중국 정권에서도 대책 마련에 절치부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언론을 통해 시베리아 전쟁의 끝이 멀지 않았음을 선전하고 경제가 호전되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한편, 정부 시책에 대한 비판은 혹독하게 처벌하고 있습니다.”
“그다지 쓸만한 대책으로 보이지는 않는데요? 터지려는 풍선을 더욱 누르면 더 쉽게 터지지 않을까요?”
“저 역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쪽 분석으로는 조만간 커다란 사태가 일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고통받는 사람들은 서민들만이 아니었다.
“오랜만이네요. 리 총징리.”
“하하! 이제는 총징리도 뭐도 아닙니다.”
중국에서 막 날아왔다는 리쑹신이 인사나 하겠다며 찾아와, 반가이 맞아 주었다.
리쑹신은 중국의 인터넷 기업을 창업해 서른의 나이에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재산을 모은 유망한 청년 경영인이다. 아니, 청년 경영인이었다.
얼마 전 리쑹신은 자신이 창업한 기업의 대표 자리에서 물러섰고, 이제 한동안 세상을 돌아다녀 보겠다며 선전을 떠나왔다고 했다.
그동안 너무 일에만 몰두해 좁아진 견문을 넓힌다는 핑계이지만, 기실 그 뒤에는 여러 사정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