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화 돈과 권력
중국 경제 성장 과정에서 가장 주목을 받아 오던 알리바바의 창업주 마윈이 중국 정부와의 갈등 끝에 대표 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중국 거대 기업들의 창업자들이 뒤를 이어 대표직에서 물러서는 일이 계속되어 왔다.
중국 정부는 커져 가는 이런 새로운 기업가들에 대해 다양한 압력을 행사해 왔고, 정부와의 갈등에서 위기를 느낀 최고 경영자들은 사업 현장을 떠나는 것으로 안전을 도모하고 있었다.
이들은 단순히 대표직을 물러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주식 의결권까지 반납하며 자신이 창업한 기업에 더는 영향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백히 했다.
그렇게 그들이 떠난 자리는 대개 창업주와 함께 일을 하던 동료가 대표를 물려받았지만, 사실상 중국 정부의 입김이 전보다 훨씬 강해지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렇게 쉬게 되니 차라리 편하네요.”
그렇게 말을 하고 있으면서도, 어딘가 아쉬움이 가득해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새롭게 다른 일을 해 볼 생각은 없습니까?”
리쑹신은 유진이 인정하는 몇 안 되는 능력 있는 경영인이다. 그가 원한다면 새로운 사업에 도움을 줄 생각이었다.
물론 이제 리쑹신도 내로라하는 부자이지만, 중국이 아닌 미국에서 새롭게 일을 시작하려면 이런저런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아니면 유진이 생각하는 아이템을 나누어 주어도 좋고.
여러모로 쓸모 있는 사람이니, 유진이 투자 중인 몇몇 기업에 합류하는 편도 나쁘지만은 않다.
어쩌면 유진이 기억하던 것보다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글쎄요? 아직 거기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한번 정리하고 나니, 어쩐지 욕심이 없어졌네요. 인간이 얼마나 오래 살지는 모르지만, 남은 삶은 유유자적하게 보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합니다.”
리쑹신은 어쩐지 해탈을 한 것처럼 보이기까지 하는 말을 내뱉는다.
물론 유진으로서야 그가 정말로 해탈을 한 것인지, 아니면 좌절한 것인지는 판단할 도리가 없다.
유진은 더 이상 사업에 대해서도, 중국의 현실에 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고 평범한 화제로 주제를 돌려 한동안 사담을 나누었다.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였습니다. 아마 세상에 남아 있는 마지막 공산주의 국가일 겁니다. 그런 나라에서 가장 자본주의적인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었던 거죠.”
떠나기 전에 리쑹신은 그런 말을 남겼다.
“꽤 상심한 것 같네.”
자리를 함께했던 유성이 왠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마도 자기 지분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받아 내지는 못했을 거야.”
“그래?”
“거의 틀림없어. 중국에서 사업하는 건 미국과는 다른 일이거든. 챙겨 주어야 할 사람도 많고, 탐을 내는 사람도 많지.”
“하…… 어렵네. 중국이란 나라는.”
유성의 한숨 섞인 대답에 유진이 말을 이었다.
“꼭 중국에서만 벌어지는 일은 아니니까.”
“그런가?”
“어디든 폐쇄적인 나라에서는 흔한 일이야. 제일 그룹도 카자흐스탄에서 구리 광산 업체를 경영하다가 느닷없이 지분을 헐값에 매각하고 철수해 버린 일이 있어. 실제 가치의 1/10도 못 되는 돈만 받았다고 하지.”
“그런 일이 있었어?”
“어. 그리고 그 와중에 중간에 끼어 있던 한 사람은 완전히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고 말이야. 한때 재산이 1조 원이 넘어가면서 세계적 부호 명단에 올렸던 사람인데 말이지.”
“무시무시하네…….”
유성이 혀를 내둘렀다.
“한국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지. 30년쯤 전에는 말이야.”
“하기야 그땐 우리나라에서도 권력자 말 한마디에 재벌이 망하는 일이 있었다고 했었지?”
“뭐, 미국이라고 다르지는 않지.”
“응? 미국이?”
“100년쯤 전이잖아. 반독점법으로 스탠더드 오일과 노던 시큐리티스 등이 찢어져 버린 게.”
“아! 반독점법…….”
“결과적으로 법률에 따른 것이라고는 해도, 권력자의 의지에 의해 기업이 산산이 찢겨 버린 사건이라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비슷한 일이지.”
“그런 거야?”
그동안 많은 공부를 해 온 유성이지만 그런 시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미국이 자본주의 국가의 최첨단에 있는 나라임은 틀림없어. 하지만 여전히 기업인들은 국가 권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지. 최근에도 마이크로소프트나 아마존 같은 거대 기업이 국가 권력에 의해 그렇게 조각날 뻔했으니까 현재진행형으로 봐야 하고.”
“현재진행형이라…….”
“어. 사실 19세기 후반기나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미국에선 기업인들이 정치인을 돈을 주고 산다며 거들먹거렸었지. 하지만 그런 착각은 얼마 가지 않아 깨지고 말았어. 시어도어 루즈벨트가 강력한 리더십으로 반독점법을 시행하면서, 기업가들은 결과적으로 영원히 정치인들의 눈치를 보게 되고 만 거지.”
“그렇구나……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그게 진정한 권력으로 이어지지는 못하는 거네.”
유진이 고민하는 지점이 거기에 있었다.
어느 순간에서부터인가 돈을 벌어들이는 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미 자산이 1조 달러를 넘어선 이후부터는 미래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쉴 새 없이 부가 늘어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살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유진은 거기서 멈출 생각은 없었다. 그러기에는 그가 지닌 힘이 너무 아깝다.
유진은 자신이 벌어들인 부로 의미 있는 결실을 맺기를 원했고, 그걸 위해서는 단순히 돈이 많다는 수준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여전히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부자가 세상을 바꾸려면 생각보다도 훨씬 더 많이 필요한 법이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구글 등 대형 IT 기업 주식의 30%, 그리고 엑손모바일과 쉐브론 등을 포함한 정유업계는 33%, 버크셔헤셔웨이, 비자, JP모건, 마스터카드 등의 대형 금융업은 35%, 그 외에 월마트나 코스트코 등 전통적인 유통 업체와 존슨앤존슨, P&G 등의 제조업과 헬스 분야는 각기 20%에서 최대 30%를 목표로 매수 중에 있습니다.”
유진은 이제 암울하기만 하던 불황의 터널이 끝나가는 것을 느끼고 요안나를 비롯한 투자법인들에 다시 양전환을 지시했다.
주가가 내렸으면 다시 오르는 것은 마치 세상에 사계절이 오고 가는 것과 같다.
단지 다른 게 있다면 그 누구도 주기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유진 정도의 부를 손에 넣는다면 주기를 예측할 필요도 없는 경우가 있다. 그가 지닌 무지막지한 자산을 사용하면 경기를 억지로라도 부양할 수 있을 테니까.
물론 무작정 그렇게 하기보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법을 사용하는 게 우선이다.
유진은 지금이 그 적절한 시기라 생각했다.
“현시점에서 글로벌 100대 기업의 시가총액은 대략 20조 달러를 조금 상회하고 있습니다.”
한때 40조 달러 근처까지 올라갔던 100대 기업의 시가총액은 코로나 버블이 터지고, 러시아와 중국이 일으킨 전쟁으로 국제 경기가 불황에 들어가며 절반 가까이 떨어져 버렸다.
시장은 사실상 패닉 상태로, 이대로 가다가는 지난 2008년의 금융 위기가 다시 오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에 휩싸여 있었다.
더군다나 지난 20여 년 동안 세계 경제를 뒷받침하던 중국 경제가 명백하게 마이너스로 돌아서며 그런 위기감을 더욱 부추기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미국 정부가 인플레이션 억제 정책의 수준을 완화하겠다는 소식에 조금은 기대감이 솟고 있었기에, 결국 현 상태에서는 주가가 대체 어디로 향할지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하고, 소강상태가 지속되고 있었다.
“글로벌 200대 기업까지로 넓히면 약 30조 달러 선이 될 겁니다.”
목표로 한 주식을 전부 매수하고 나면 대략 10조 달러 정도의 자금을 주식으로 보유하게 된다.
물론 이는 어느 정도의 레버리지를 사용한 것으로, 실질적으로 투자되는 자산은 그 절반 정도에 머무를 것이다.
지금까지 주식 시장에서 적어도 세 배에서 많게는 대여섯 배의 레버리지를 사용해 온 것에 비하면 차입 비율을 확 낮춘 것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각국의 이자율이 지난해에 비해 터무니없이 올라 버렸으니, 차입을 사용한 투자의 위험성이 훨씬 더 높아졌기 때문이다.
전이라면 3, 4%에 빌릴 수 있던 자금을 이제는 7, 8%, 상품에 따라서는 10%가 훌쩍 넘어가는 이자를 부담해야 하니 그만한 수익을 기대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꺼릴 수밖에 없었다.
이번 유진의 경우라면 5조 달러에 대해 1년 동안 무려 3,000억 달러 이상의 이자 비용을 고려해야 했다.
만일 평소처럼 10조 달러를 빌렸다면 이자 비용만 7,000억을 예상해야 한다.
아무리 돈이 남아나는 유진이라 해도, 꽤 섬뜩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FED의 이자율 인상은 유진뿐 아니라 월스트리트 전체에서 고위험 투자에 투입되는 자산을 줄이는 결과로 이어졌고, 금융계에 전반적인 침체를 불러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침체가 끝날 때가 되었다.
이제부터 유진이 쏟아부을 돈이면 주가에 분명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번에는 꽤 단시간에 적지 않은 양의 주식을 매수할 예정이다.
매도 대기 중인 주식을 전부 주워 담고도 모자라서 주가를 끌어올릴 만한 수준이다.
이쯤 되면 유진 혼자서 경기 부양을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그걸로 전 세계 경기가 호전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그럴 만한 기색은 충분히 나타나고 있다.
세계는 중국과 러시아의 전쟁에 익숙해졌고, 미국의 펀더멘탈도 회복하는 중이다.
지난 1년여 동안 고금리 정책을 유지하며 시중에 풀린 자금을 적지 않게 빨아들였고, 일자리를 찾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말하자면 지금은 어떤 계기를 필요로 하고 있는 단계이다.
이 시점에서 10조 달러의 자금이 주식시장에 풀리면, 시장은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이번에는 아주 복잡하면서도,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했다.
노벨 경제학상을 서너 번은 타고 남을 석학들과 애널리스트, 그리고 실무진이 머리를 맞대고 최대한의 자금으로 최대한의 주식을 매수하면서, 경기에 최대한의 자극을 줄 만한 청사진을 마련했다.
그 계획에 따라 세계 각지의 투자법인에서 정해진 스케줄을 따라 매수세를 이어갈 것이다.
그리고 유진이 생각하는 대로 다시 경기가 회복을 시작하면, 바닥이던 주가는 다시 유진에게 엄청난 수익을 돌려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전 세계 50여 개의 투자법인과 수십 개의 투자은행을 통해 확보한 지분은, 실질적으로 유진이 이 글로벌 기업들에 직접적인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의미한다.
명백힌 최대 주주로서 각 기업의 경영진을 교체하거나, 혹은 유진이 원하는 경영 방침을 강제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유진은 그렇게 개별 기업의 경영에까지 관여할 생각 따위는 없다.
무릇 그 회사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경영진 자신들일 것이다. 특별하게 손해가 예상되지 않는 이상에야, 굳이 간섭할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유의미한 것은 유진에게 그런 권한이 있다는 그 사실 자체다.
한 글로벌 기업의 경영진은 기껏해야 그 회사, 그리고 관련 업계에서의 영향력을 지닐 뿐이지만, 글로벌 100대 기업 전체의 경영진에 대한 영향력은 단순히 산업계뿐 아니라 세계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