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263화 (263/363)

263화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만다

[오늘 극동 시베리아의 중국군 점령 지역에서 핵폭발로 여겨지는 거대한 폭발이 발생했습니다. 해당 지역은 러시아 점령 지역에서는 100km 떨어져 있고, 기존 중국과 러시아 사이의 국경에서 겨우 10km 거리에 있는 유전 지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해당 지역은 유전 개발을 위해 민간인 기술자들 수백여 명이 모여 있던 것으로 알려져, 인명피해가 상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대체 누가 저걸…… 아니, 중국군 점령 지역이라면 역시 러시아의 소행이겠네요.”

모니카가 충격받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녀뿐 아니라 그 뉴스를 접한 사람이라면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떠올렸을 것이다.

물론 러시아가 부정하리라는 것 또한 들어 볼 필요도 없었다.

[전문가에 따르면 대략 15톤급의 핵폭탄이 터진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리틀보이가 약 1만 5,000톤급의 위력을 지니고 있던 것과 비교해 보면, 핵무기로서는 상당히 저위력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전술핵, 그중에서도 상당한 소형의 무기였지 않나 생각됩니다.]

뉴스는 현장의 사진이나 영상 대신 참고 자료만을 내보내고 있었다.

중국의 중요한 작전 지역에서 발생한 사고인 만큼, 현지의 자료를 확보하지는 못한 모양이다.

대신 B-29가 하늘에서 폭탄을 떨구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히로시마 때보다 1000분의 1의 위력이면 상당히 작은 규모로군요. 대체 그걸로 무슨 효과를 볼 수 있는 걸까요? 기껏 평화 협정에 사인해 놓고, 다시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것밖에 안 되지 않나요?”

“글쎄? 반드시 러시아의 소행이라는 증거도 없을 거고. 폭발의 규모가 아니라, 핵이 가지는 상징성 때문에라도 충분히 의미 있는 도발이겠지.”

“그렇기는 하겠군요. 그나저나 당장 주가가 박살이 나고 있네요.”

뉴스가 나오기 무섭게 스마트폰으로 주식시장을 모니터링하던 요안나가 말했다.

“그러겠지. 초유의 사태이니까.”

“거의 80년 만이로군요. 정말로 핵폭탄이 사용될 줄이야.”

모니카는 여전히 경악하는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이미 전 세계에 수만 개에 달하는 핵무기가 존재하는데, 그게 언제까지고 사용되지 않을 거라 믿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게 아닐까?”

“그런가요?”

1945년 두 발의 폭탄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인류는 핵무기를 인명 살상의 목적으로 사용한 적이 없다.

물론 핵무기의 개발을 위해 지금까지 여러 나라에서 수천 차례에 달하는 실험을 해 왔지만, 실제로 적대적인 상대에 사용하지는 못했었다.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어서일까?

이제 사람들 대부분은 핵무기가 정말로 사용될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대중문화에서조차 핵무기는 이미 유행에 뒤처진 소재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정말로 핵폭탄이 터졌다.

그 위력이 얼마나 적은 것이었던, 사람들에게 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인류가 핵무기 개발과 관리를 위해 매년 사용하는 비용이, 전 세계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는 기아를 위해 투자하는 비용에 비해 수십 배나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아! 맞아요. DF재단에서 얼마 전에 발행한 자료에 나와 있었죠.”

유진의 홍보 담당자로서 모니카는 유진의 자선 재단인 DF재단의 활동과 밀접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유진은 자신의 자선 활동이 대중들에게 충분히 알려질 것을 원했기 때문에, DF재단의 모든 활동은 모니카를 통해 미국은 물론이고 각국의 언론을 통해 무척 상세하게 보도되고 있다.

최근 DF재단에서는 서구 세계의 비개발 국가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좀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는 요지의 선언을 발표했다.

첨부된 자료에 따르면 미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를 비롯한 강대국들은 핵무기 개발, 관리에 매년 적어도 800억 달러에 달하는 거액을 사용하고 있다. 각국의 국방비의 3%에서 5%에 달하는 금액이다.

미국에서만 1년에 400억 달러에 달하는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 한국의 1년 국방 예산에 조금 못 미치는 액수이다.

매년 겨우 수십 개 수준의 핵무기를 새로 추가하는 것을 생각하면, 대부분이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이라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그렇기는 하네요. 엄청난 비용을 들여 개발하고 관리해 두었으니, 언젠가는 쓰이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군요.”

모니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엄청난 비용을 사용하며 개발과 유지하고 있는 핵무기가 영원토록 단순히 전쟁 억제를 위해서만 보유되고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사실 너무나도 순진한 생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끄응, 이건…… 정말 무섭게 떨어지네요.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예요.”

뉴스를 확인한 순간부터 스마트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요안나가 신음하며 말했다.

“대체…… 왜 이런 미친 짓을 한 거죠?”

아마도 유진과 함께 일을 하기 시작하고 처음으로 겪는 패닉이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들의 투자는 늘 시장을 앞서가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시장이 투자와 반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도 무려 10조 달러라는 무서운 거액이 걸린 상태이다.

“어쩌면 지금보다 절반 정도까지 떨어지는 것도 각오해야겠어요.”

“그렇겠군.”

전 세계 주요 기업들에 10조 달러의 투자를 하고,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며 어느덧 20%가량의 환산 수익을 올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 사태로 시장이 진정되지 않는다면 최악의 경우 폭락을 넘어 대공황의 끔찍한 사태까지 전망할 수 있었다.

한데도 유진은 태평하기만 하다.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를 보며, 접시 위의 비건 스테이크를 유유히 썰어 먹고 있을 뿐이다.

“아니…… 긴장의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50%까지는 안 갈 것 같아요. 지난 9·11 때 나스닥은 15%가량 하락했었어요. 그때는 뉴욕이 당한 것이고, 이번에는 사람도 거의 없는 시베리아, 그것도 미국이 아니니까…….”

대체로 해외에서 발생하는 전쟁은 미국 증시에는 오히려 호재로 간주되고는 한다.

그러나 러시아나 중국 사이의 긴장같이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전쟁이라면 반대이다.

이번 경우는 섣불리 예측하기 어려웠다. 변수가 너무 많다.

“아마 최대 20%가량 하락할 것 같아요. 어떻게 할까요? 다들 지시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녀의 투자법인은 물론이고, 세계 각국의 투자법인에서 대응 방안을 물어오고 있다.

이 시점에서 같이 던질지, 아니면 기다릴지 제시해 주어야 했다.

“당장은 기다리기로 하지. 우리까지 투매 대열에 끼어들면 정말 재앙이 벌어질 테니까.”

“그렇기는 하네요. 하지만 최악의 사태에는 손실이 무시무시할 거예요.”

“우리가 지금 던지는 것보다는 낫겠지.”

“알겠습니다.”

이 시점에서 유진이 보유한 지분을 던지기 시작하면 시장은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할 것이 분명했다.

무엇보다 지금은 유진이 보유한 주식의 숫자가 너무 컸다.

그 정도로 많은 종목에, 그 정도로 많은 지분을 보유하면 운신의 폭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의 유진은 고위험 고수익을 노리는 헤지펀드에 가까운 운용을 해 왔지만, 이번에 200대 기업의 지분을 대거 매수하면서 운용 방식에 커다란 변화가 왔다.

물론 앞으로도 하이 리스크 투자는 계속 이어 가겠지만, 200대 기업의 지분을 보유하는 것 또한 변치 않을 것이다.

요안나는 바로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고, 유진은 다시 여유 있게 식사를 이어 갔다.

“그런데 이건 꽤 먹을 만하네?”

“네? 아! 저도 괜찮더라고요. 비건치고는 스테이크 느낌을 꽤 잘 살렸어요. 그런데 지금 그게 맛이 느껴지기는 하세요?”

요안나가 자신의 식탁을 내려다보다가 조금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방금 적어도 수조 달러에 달하는 결정을 내린 사람으로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결정 하나로 지난 1년 동안 벌어들인 수익 이상의 손해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유진은 정말 눈곱만큼의 동요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야 어쩔 수 없으니까. 때론 나도 손해를 볼 수도 있는 일이지.”

더군다나 이미 그 손해를 감수할 것을 예상했다면 동요할 이유는 더욱 없었다.

유진은 이번 주식 매입을 핵폭발 이후로 미루어 둘 수도 있었다. 아마 핵폭발이 일어난 뒤에 매수를 시작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적은 비용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유진이 참여하지 않았을 때의 주식시장은 일반 개인 주주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양이 많아 공포에 떠밀려 엄청난 수의 주식이 한꺼번에 밀려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유진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 때문에라도, 하락의 수준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유진이 핵폭발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생각처럼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도 알고 있다.

그러니 그때 가서 매수에 들어갔다면 원하는 만큼의 주식을 손에 넣기 위해서 오히려 지금보다 더 큰 비용이 들어가게 될 것이다.

이번에는 거의 1년에 조금 미치지 못하는 기간 동안 차분하게 매수를 이어 왔다.

핵폭발이 일어나고 난 뒤부터 주가가 회복하기 시작할 때까지의 시간을 고려하면 당장은 손해를 앞두고 있더라도 그때 매수하는 것이 맞았다.

“그냥 손해라고 하기에는 예상되는 규모가 너무 크지 않아요?”

요안나는 더욱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10%만 떨어져도 1조 달러, 20%라면 2조 달러라는 무시무시한 액수이다. 최악의 사태로 50%가 떨어지면 자그마치 5조 달러를 날리게 된다.

유진이 아니라면 그 어떤 기관이라도 분해되고도 남을 끔찍한 손해를 앞두고서도 유진은 유유자적해 보였다.

“정말이지 알 수 없는 분이네요.”

요안나가 고개를 내저었다.

“설마 핵폭발의 영향력이 그리 대단치 않을 것으로 예상하시는 건가요?”

그렇다면 다행이겠다는 생각으로 물었다.

“음…… 그럴지도 모르지. 딱히 예상은 되지 않지만 말이야.”

“역시 그렇죠? 확실히 이런 돌발적인 사태에서는 아무리 보스라도 예측이 불가능한 거로군요?”

“누구라도 마찬가지 아니겠어? 이런 건 그야말로 사고인데 말이야.”

돌발적인 사건은 틀림없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사태는 아니다. 유진은 이미 미래에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을 직접 겪어 보았던 사람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의 일이었다.

물론 이번에도 그 일이 다시 일어나게 될지 확신은 하지 못했지만,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생각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두 번째 삶을 살게 되며 유진이 느낀 것이 있다.

과거의 삶에서 한 번 벌어진 일은, 그 과정이 바뀔지언정 유사하게라도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번처럼 누군가의 악의가 유발하는 사건이라면 말이다.

교통사고나 낙상같이 우연이 겹쳐 벌어지는 일이라면 단순히 한 가지 요소를 바꾸는 것으로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단수, 혹은 복수의 의지가 개입된다면 그 원인을 제거하는 것은 거의 어렵다.

상황이 바뀌어도 사람들의 마음은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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