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화 거인의 추락
“매도에 나서지 않는다면 증거금 준비를 해야겠군요.”
이번 주식 매수를 위해 사용된 10조 달러 중 절반가량은 세계 각국의 금융기관으로부터 차입한 자금이었다. 약 두 배의 레버리지를 사용한 셈이다.
그리고 레버리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증거금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만일 증거금이 모자라게 되면 자금을 공여한 기관에서 임의로 주식을 매도하게 된다.
지금처럼 두 배의 레버리지라면 대략 40% 정도 하락했을 때 매도가 시작될 것이다.
물론 그렇게까지 떨어지리라 생각하고 있지는 않지만, 만일을 위한 대비는 해야 한다.
유지를 위한 증거금의 액수가 워낙 막대하기에 막상 사태에 닥쳐 증거금을 마련하려 한다면 끔찍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
증거금이 꼭 현금일 필요는 없지만, 현금성 자산이어야 하는 것은 틀림없다. 요안나의 말처럼 준비가 필요한 시간이다.
“그래야겠군.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서 레버리지를 전부 현금으로 전환하는 것까지 고려하도록 하지.”
“당분간 다시 바빠지겠네요.”
요안나는 유례없이 힘없는 모습을 보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몇 년 동안 단 한 번의 실패도 없던 유진이 핵폭탄 하나로 끔찍한 재앙을 맞이한 것이니까.
“언론에는 어떻게 발표할까요?”
투자 지시를 지켜보던 모니카가 물었다. 지금도 그녀의 전화기에는 수많은 언론사로부터의 메시지가 계속해서 날아오고 있었다.
“이번 사태로 큰 손해를 본 것이 사실인지 알고 싶어 하고 있어요.”
이제 유진이 세계에서 제일가는 투자자라는 사실은 그다지 놀라울 것도 없다.
더군다나 최근 1년 동안 유진이 글로벌 200대 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린 것은 오히려 유진 측에서 열심히 홍보를 해 왔다.
사람들이 많이 알수록 그의 영향력이 늘어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그 때문에 미디어에서는 핵폭발과 함께 시작된 주식시장의 폭락 사태가 유진의 투자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사실대로 밝혀야지.”
“사실대로요?”
“그래. 나도 때로는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걸 말이야.”
이번 핵폭발로 인해 유진이 커다란 손실을 보았다는 것을 밝히는 것에는 또 다른 목적이 있었다.
그동안 유진의 투자 불패 신화의 뒤편에는 그가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은밀한 배후이기 때문이라는 음모론이 서성이고 있었다.
마치 유진이 엄청난 흑막이라도 된 것 마냥, 세계에 이런저런 사건·사고를 유발하고, 그 와중에 투자 수익을 챙긴다는 것이다.
과거에 프리메이슨이니 일루미나티니, 혹은 유대인이 금융계를 지배한다느니 하는 수많은 음모론이 떠돌던 것처럼 지금은 유진이 그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런 유진에 대한 음모론은 꽤 호응을 얻고 있는 모양이다.
원래 가진 것이 많으면 그만큼 적을 만들기 마련이거니와, 사실 그런 음모론의 내용 중 절반 정도는 사실인 것도 틀림없다.
유진 자신이 사건이나 사고를 유발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사태들을 통해 부를 불려 온 것은 사실이고, 세계 각국의 권력자와 금전적인 소통을 통해 경제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핵폭발의 경우는 조금 차원이 다르다.
만일 유진이 핵폭발로 인해 어떠한 경제적 이득을 얻게 되었다면, 이런 타블로이드에나 실릴 음모론에 꽤 큰 힘을 불어넣었을 것이다.
그리고 유진은 그러한 음모론이 지닌 힘을 절대 무시하지 않는다. 생각 외로 음모론은 굉장한 힘을 지니고 있다.
당장 나치가 유대인들을 학살한 배경에는 이런 유대인에 대한 음모론이 당시 유럽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것이 큰 몫을 했다.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배경, 인종을 지닌 상대에 대해 적의를 갖기 쉽다.
그리고 그런 적의를 이용해 자신의 이권을 채우려는 집단은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아직까지 유진은 미국 사회에서는 명백하게 마이너리티에 속한다.
흑인이나 라틴계와 비교해 아시아인은 여전히 차별받고 냉대받는 인종이다. 그중에서도 한국인은 더욱 소수인 편이고.
그런 유진이 세계 제일의 부자라는 사실 때문에, 지금껏 미국 사회에 이어 온 유진의 공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근거 없는 적개심을 지닌 사람이 적지 않다.
자신과 다른 피부에, 다른 머리 색에, 다른 눈동자를 지닌 유진을 깎아내리고 비난하려는 사람들은 끊이지 않는다.
특히 미국의 대안 우파들은 음모론의 골수 신봉자들로 유명하다.
큐어넌(QAnon)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들 대안 우파의 신봉자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뒷받침하기 위해 다양한 음모론을 생성해 내고, 그를 통해 자신의 비이성적 행동을 합리화한다.
최근 그런 QAnon들 사이에 가장 인기 있는 주제는 역시 유진에 관련된 음모론이다.
비백인으로서 미국에서 가장 부자가 되었으며, 가장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있는 유진이야말로 그들이 미워하기 충분한 모든 것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단순히 투표로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 총이나 폭탄 따위를 사용해 스스로의 의지를 내보이려는 과격한 인물들도 적지 않다.
지금도 그런 요주의 인물들이 위험한 행동에 나설 것이라는 첩보가 존 브래넌을 통해 들어오고 있을 정도이다.
그렇기에 만일 유진이 이번 핵폭발의 사태에서도 큰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심각한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태로 1조 달러 정도 손해를 보는 것은 어쩌면 싸게 먹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단기적인 하락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유진은 여러 면에서 한 번쯤은 실패로 보이는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스토리에서든 주인공이 역경을 극복하는 부분이 있어야 하지 않던가?
“그렇다면 손실을 숨길 필요는 없겠군요?”
“그렇지? 오히려 최대한의 손실을 강조해야겠지.”
유진이 요안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기왕 역경을 겪는다면 그 크기가 클수록, 극복했을 때의 반전 또한 큰 법이다.
그러니 어느 정도 기대 손실을 과장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음. 최하 1조 달러에서 최대 4조 달러까지겠군요.”
“4조 달러의 손해라니, 무시무시하네요. 뭐, 미디어에서는 굉장히 좋아하겠네요.”
물론 유진의 손실을 반긴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저 굉장한 화젯거리가 생겼으니, 클릭 장사를 하기에 좋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보유하고 있는 지분을 매도할 생각은 없다는 사실을 꼭 밝혀야 해요.”
요안나가 덧붙였다. 유진이 이번 사태로 큰 손실을 보았다는 사실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중요 기업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유진이 폭락에도 불구하고 매도에 나서지 않겠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보내는 것은, 폭락의 수준을 한정 짓는다는 의미가 있다.
“시장의 패닉이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거라고 본다는 언급이 필요해요.”
요안나로서는 손실의 규모를 줄이기 위한 수단이 필요했다.
그리고 명실상부한 현시대 최고의 투자자라는 명성을 지닌 유진의 말 한마디는 그걸 위한 최적의 방법이었다.
“만일 지금보다 더 떨어진다면 추가 매수에 나설 의향도 있다고 하지. 이미 시장은 바닥을 넘어섰고, 각국의 경제 펀더멘탈도 충분히 견고하니 지금이야말로 매수에 나설 적기라고 말이지.”
유진이 추가적인 방향을 제시해 준다.
단순히 유튜브에서 조금 인지도 있는 애널리스트의 의견도 때로는 개별 종목의 주가를 움직일 만큼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만큼 주식시장은 명성 있는 투자자의 언급에 좌우되는 면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대단한 골드만삭스 회장의 말도 틀리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시장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 유진의 말은 시장에서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영향력을 지닌 것은 틀림없다.
“알았어요. 메시지와 손실 규모…….”
유진의 의사를 확인한 모니카는 바로 필요한 내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부터 모든 미디어의 꼭지 뉴스는 유진이 이번 사태로 인해 엄청난 손실을 보았다는 기사가 차지하고 있었다.
대략 80년 만에 처음으로 핵무기가 사용되었다는 사실보다, 유진이 하룻밤 사이에 무려 1조 달러라는 엄청난 손해를 보았다는 사실이 더욱 자극적이었던 때문이다.
10위권 국가의 1년 GDP에 근접하는 무시무시한 규모의 손실에 세상은 깜짝 놀랐다.
더군다나 주가 하락의 여부에 따라 손실 규모는 더욱 커질 것이 확실해 보인다.
금융계 일각에서는 실질적인 손실 규모는 조만간 2조 달러를 넘어설 것이고, 심하게는 5조 달러의 손해도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거인의 침몰이니,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느니 하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 * *
“와! 강 회장도 손해를 보네.”
“미친! 1조 달러라니! 한국 돈으로 천조가 넘어.”
“천조국이 아니라 천조인이네.”
“손실이 천조면 가진 돈이 얼마야?”
“주식에 투자한 돈만 10조 달러라고 하더라. 한국 돈으로 경이야.”
“경이라니…… 듣도 보도 못한 숫자구나.”
그리고 유진의 고국인 한국에서 그 뉴스가 가장 크게 화제에 오른 것은 당연했다.
“10조 중 1조 손실이면 그리 대단치도 않네.”
“그게 전부 자기 돈인지 알아? 다 은행에서 빌린 돈이야. 자기 돈은 10%도 안 될걸?”
“무슨 10%. 누가 1조 달러를 담보로 9조 달러를 빌려 주냐?”
“투기 금융은 100배 레버리지도 사용 가능하니까 불가능하지는 않음.”
“아무리 레버리지라도 그 정도 규모라면 몇 배의 레버리지는 불가능함. 많아야 두 배임.”
자칭 금융 전문가들끼리의 싸움이 붙기도 했으며.
“근데 러시아는 이제 큰일 났네. 강 회장이 1조 달러의 손해를 보았으면 가만히 있겠어? 핵폭탄을 쓴 러시아에 뭔가 보복을 할 거 아니야?”
“러시아는 핵폭탄을 사용한 적 없다는데?”
“그걸 누가 믿음? 중국에서 터졌는데, 그럼 미국이 했겠냐? 일본이 했겠냐? 당연 러시아지.”
“증거가 없음.”
“증거가 뭔 필요? 강 회장이 무슨 국가야? 자기가 맘대로 투자하고 그러는 사람인데. 그렇지 않아도 지난번 연해주 유전 채굴 권한을 러시아한테 빼앗기지 않았어? 그때 원한까지 생각하면 엄청 괘씸할걸?”
“그러네. 연해주 유전 때문에라도 러시아에는 더 이상 투자할 생각이 싹 사라졌겠다.”
주식 투자와는 거리가 멀었던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곳이 드물었다.
“큰일이네, 러시아도. 그렇지 않아도 경제난이 심각하다면서.”
“지금 러시아 걱정할 때야? 강 회장이 투자 손실이 그렇게 크면 한국은 어쩌라고?”
“그러게. 큰일이네. 강 회장님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지분이 얼마나 큰데.”
“손실 입었다고 한국에서 돈 빼는 거 아니겠지?”
“주가가 더 떨어지면 큰일인데…….”
“그러니까 말이야. 강 회장 재산에 손실이 생기면 한국 경제가 흔들리는 건 필연적이니까.”
“강 회장은 지금이 오히려 매수의 적기라고 하던데, 나도 미국 주식이나 사 볼까?”
“그럴까 봐. 주식을 매수해서 올라가면 서로 좋은 거잖아. 강 회장도 기쁘고 나도 기쁘고.”
그리고 어쩐 일인지 한국의 개미들 사이에서 주가를 부양해야 나라가 산다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정말로 한국인들의 해외주식 매수 열기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사고가 일어나고 며칠 사이에 10%가 넘게 떨어져 버린 주식들 중에서도 낙폭이 큰 종목이 주로 타깃이 되어 한국 개미들의 매수가 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