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화 더티밤
“중국의 점령 지대에서 터진 폭탄은 더티밤의 일종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날은 군사 관련 사항인 때문인지 나탈리가 아닌 존 브래넌이 브리핑을 했다.
“더티밤이요?”
낯선 단어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요안나가 반문했다.
“핵무기의 일종인데, 폭발 자체보다는 방사성 물질을 폭발 지역에 퍼트려 항구적인, 혹은 장기간에 걸친 피해를 유발시키는 목적의 폭탄입니다.”
“핵폭탄이라면 방사능 피해가 당연한 게 아닌가요?”
“일반적으로는 그렇지만, 대체로 핵무기의 목적은 그 폭발력 자체입니다. 해당 지역을 초토화시킨 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사람의 거주도 가능합니다. 최초로 핵 공격을 받은 일본의 나가사키나 히로시마의 경우도 지금은 아무런 문제 없이 시민들이 거주하고 있지요.”
“그렇다면……?”
요안나가 불길한 표정으로 말을 흐렸다.
“하지만 더티밤의 경우, 치명적인 방사선을 방출하는 물질을 터트리는 것으로 해당 지역을 최소 수십 년 동안, 길게는 수십만 년 동안 방사능 오염시킬 수 있습니다.”
“맙소사!”
옆에서 듣고 있던 모니카가 어이없다는 듯 탄성을 내뱉었다.
“빈자의 핵무기라 불리는 더티밤은 굳이 핵반응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재래식 폭탄으로 방사능 물질을 터트리는 것으로 핵무기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지요. 그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기존의 핵무기보다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제작이 훨씬 쉽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실제로 사용도 쉽겠군요.”
“물론 이번 폭발의 경우는 그 규모로 보아 폭발 자체도 핵을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경비가 삼엄한 지역에 반입하기 위해 작을 필요가 있고, 그러면서 방사능 물질을 널리 퍼트리려면 폭발력도 충분해야 했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유전 개발은 물 건너간 건가요?”
이번엔 유진이 물었다. 두 번째 삶을 살게 되고 몇 년이 지나서는 자신이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도 처음 듣는 이야기인 듯 천연덕스럽게 되묻는 것에 익숙해졌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폭발이 일어난 반경 10km가 심각하게 오염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곳에서 시작된 방사능 물질이 바람을 타고 확산하는 중이고요.”
“그런 짓을…….”
요안나가 연신 고개를 내저었다.
“명백하게 중국 점령 지역 내의 유전 개발을 저지하려는 목적으로 보입니다. 특히 이번에 폭발한 지역은 중국 측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 개발하는 유전이 위치한 곳입니다.”
“그렇겠군요. 중국도 난감하겠네요. 방사능 제거 작업을 한다 해도, 작업하는 사람들로서는 꺼려질 수밖에 없겠군요.”
“물론입니다. 그 때문에 중국 정부에서는 폭탄의 정체를 밝히지 않으려 하고 있답니다.”
“어리석은 일이군요.”
피해자 쪽에서 더러운 폭탄이 터졌다는 사실을 은폐하려 할 정도라는 말에 요안나도 모니카도 얼굴을 찌푸렸다.
“중국 정부의 처지에서는 당연한 선택일 겁니다. 그들은 지금 극동 시베리아 유전을 차지한 것을 정권 유지의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 열렬한 선전 작업에 한창입니다. 중국 국민들도 1,000억 배럴에 달하는 유전의 절반을 차지한 것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고요. 그런 시점에 유전 지대가 적어도 수십 년 동안 방사능에 오염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국민들의 호의는 바로 돌아설 겁니다.”
“그렇다고 그걸 숨길 수 있나요? 이미 핵폭탄이 터졌다는 사실이 전 세계에 알려졌는데?”
“그런 이유로 중국 언론에서는 매일 핵폭탄의 피해는 대단치 않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거주하는 데에도 문제가 없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예를 들어서 말이지요.”
“흐음…….”
모니카도 요안나도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다.
“그렇다면 이 사실이 계속 감추어질 수 있을까요?”
“그건 저 역시 의문입니다. 사실 현시점으로서는 극히 소수만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폭발 지역에 있던 병사 중 생존자는 전부 비밀리에 특정한 지역으로 격리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보라는 것이 원래 누수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특히나 이번처럼 관련 실무자들의 생존에 위협이 가해지는 경우라면 말이지요. 아무리 중국이라 해도 계속 숨기고 있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해당 지역에 방문하는 사람마다 방사능에 의한 피폭을 입게 된다면, 아무리 감추려 해도 결국은 드러날 수밖에 없어 보인다는 것이 존의 의견이었다.
“그런데 방사능이 러시아 쪽으로 넘어갈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요?”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이 이 사실이 널리 알려질 것을 알고 있는 유진이 계속 질문을 던졌다.
“러시아 쪽과는 적어도 100km 이상 떨어져 있습니다. 더군다나 북서풍이 불고 있어 주요 피해는 중국이 점령한 유전 지대와 남쪽인 블라디보스토크에 한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러시아 측에는 피해가 있다 해도 상당히 제한적일 것으로 보입니다.”
“바람까지 고려한 게로군요.”
중국에 의해 점령당한 블라디보스토크로 방사능이 퍼져 간다면 군항으로 사용하려던 계획에 상당한 차질이 있을 것이다.
한 방의 폭탄으로 중국이 이번 전쟁에서 차지한 성과 대부분을 무효화시켜 버린 셈이다.
“적어도 블라디보스토크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는 알려야 할 텐데요? 대체 중국 정부는 어쩔 생각인 거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피폭자가 나오기 시작하면 사태가 더욱 악화될 게 뻔한데요?”
모니카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지금 러시아 쪽 원주민들은 이미 대부분 러시아로 추방되었습니다. 지금 남아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국군 관련 인사들입니다. 당분간은 충분히 감출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그동안 제염작업과 격리를 통해 오염을 제거하고 다시 유전 건설을 시작할 생각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석유를 퍼 올리기 시작하면 민심이 돌아오리라 믿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동해까지 방사능 물질이 흘러가지 않겠습니까?”
유진은 한국에 가장 중요한 사항을 물어보았다. 사실 동해가 오염되면 한국뿐 아니라 러시아에게도 좋을 것은 없다.
“그럴 가능성은 있지만, 역시 폭발 지점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어, 유의미한 피해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사실 블라디보스토크도 심각할 정도는 아닌 수준으로 알고 있습니다.”
“요모조모로 많은 것을 고려하고 터트린 것이 분명하군요.”
“맞습니다. 중국 측에는 치명적인 피해를 주면서, 러시아에는 최소한도의 영향만 있는 수준의 폭탄을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심지어 연해주에서 가장 중요한 수원인 항카 호수에도 영향이 가지 않도록 폭발 지점을 선택하는 세심함이 엿보였다.
“그렇다면 중국 정부에서 이 사실을 아무리 꽁꽁 감추려 해도 곧 러시아가 밝히겠군요.”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지요.”
그리고 다음 날 새벽부터 존 브래넌은 새로운 소식을 들고 찾아왔다.
“EMIC이라는 단체에서 이번 시베리아 핵폭발 사건은 자신들이 주도했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용된 폭탄이 더티밤이라는 사실도 공표했고요.”
“에믹이요? 그건 또 뭔가요?”
새벽부터 불려온 요안나가 질문한다.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이번 핵폭발에 대한 정보는 사소한 것이라도 요안나와 공유하고 있다.
“Ethnic Minority Independence council(소수민족 독립 협의체)이라는 것 같습니다. 각국의 소수민족이 독립할 수 있게 혁명을 주장한다고 합니다.”
“그런 게 있었던가요?”
유진도 낯설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사실 그 이름이 낯설 만도 했다. 그에게는 수십 년 전에 벌어진 일이고, 이 사건 말고는 딱히 뉴스에 등장하지도 않았기에, 명칭까지 기억하고 있지는 못했다.
“알아 보니 꽤 유서가 깊은 단체입니다. 벌써 수십 년이 넘게 활동을 해 오는 모양이더군요. 스페인 내 바스크인들의 독립을 지지하며 탄생된 곳이니까요. 하지만 테러라든지 폭력을 행사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요. 사실 제대로 된 단체라기보다는 이상주의에 경도된 아마추어 모임에 가깝습니다.”
“그런 단체에서 어째서 핵이라는 끔찍한 수단을 사용했다는 거죠? 더군다나 핵이라는 게 그렇게 구하기 쉬운 것도 아니고요.”
모니카가 묻는다. 그녀도 가능한 많은 정보를 알아 두어야 하기에 자리에서 빠질 수 없다.
“어쩌면……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쪽 단체의 수장이 과격파로 바뀌었다거나, 혹은 강제로 바뀌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워낙 소수의 인원이 가담한 조그마한 단체이고, 활동도 그다지 없어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없습니다.”
“러시아의 사주일 가능성은 어떤가요?”
유진은 누구나 할 만한 질문을 던졌다.
“충분히 있습니다. 아마추어들 몇 명의 모임이니, 그들을 처리하곤 이름만 빌려 쓰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입니다.”
“역시 배후에는 러시아가 있는 거겠군요?”
“아마 그렇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이렇게 EMIC라는 단체를 앞세웠으니, 러시아의 모른 체가 계속 이어지겠지요.”
“중국은 납득하지 않을 텐데요?”
요안나가 지끈거려 오는 머리를 쓸어올리며 물었다.
“그래도 상관은 없지. 어차피 범죄 당사자로 지목되는 것보단 배후로 지목되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니까.”
유진이 존을 대신해 대답했다.
눈 가리고 아웅이지만, EMIC의 선언으로 적어도 최소한의 정당성은 확보했다는 식이다.
“러시아 측은 더티밤은 핵무기 중에서 가장 제조가 쉬운 것으로 물리학 석사 학위자라면 충분히 만들 수 있다며, 자국과 관계가 없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테러리스트들이 우크라이나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는 주장까지 하면서 말이지요.”
“상당히 뻔뻔스러운 주장이로군요. 전혀 상관도 없는 우크라이나까지 끌어들이다니요.”
모니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사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더티밤에 연관시킨 것은 처음이 아닙니다. 1년 전 우크라이나와 전쟁 도중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더티밤을 사용할 것이라는 주장을 몇 번이나 해 왔었죠.”
“들어 본 적 있는 것 같아요.”
“정말로 우크라이나가 그런 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지만, 러시아는 그런 주장을 통해 자국의 핵무기 사용을 정당화하려 했다고 여겨집니다. 우크라이나가 먼저 핵무기를 사용했으니, 우리도 사용하겠다면서요. 심지어 해외의 정보기관에서는 러시아가 더티밤을 직접 자국 점령지에 터트리고 그걸 빌미로 우크라이나에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았습니다.”
“지독하군요.”
요안나와 모니카 모두 치를 떨었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주장하던 더티밤이 정말 사용되었으니, 다시 우크라이나를 끌어들이는 것이야 그리 놀라울 것도 없지요.”
존 브래넌은 당연하다는 듯 설명을 마쳤다.
물론 중국 내부는 당장 발칵 뒤집혔다. 세계 각국은 중국 정부에 극동 시베리아에서 발생한 폭발이 정말 더티밤에 의한 것인지 물었고, 중국 정부는 당일 내내 무응답으로 대응했다.
그러한 태도에 이미 세계 각국의 언론은 더티밤이 틀림없다는 확신 보도를 내놓았고, 그 소식은 중국 내에도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언론에 대한 통제를 더욱 강화했다고는 해도, 북한처럼 완벽하게 폐쇄된 사회도 아니었기 때문에 중국 국민들은 곧 해외 발 소식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고, 중국 정부에 대한 불신이 다시 커져 가기 시작했다.
다음날이 되어서야 중국 정부는 핵폭발이 더티밤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그리고 테러의 주범을 반드시 밝혀 내 마땅한 응징을 가할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러시아에 대한 비난도 빼놓지 않았다.
“중국 동북부에서 소요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당장 폭탄이 터진 곳이 헤이룽장성에서 겨우 10km 떨어진 곳이니 그곳 사람들에게는 방사능 피해가 우려되고 있지요.”
“바람이 북서풍이라면 크게 문제는 없을 텐데요?”
“물론입니다. 중국 언론들도 그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자국 정부와 언론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은 중국 국민들이 쉽게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과도한 정보의 통제가 오히려 불신을 부르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중국 정부의 뒤늦은 인정이 그런 불신에 더욱 불을 붙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