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화 몬산토, 카길, 그리고 애플
“참! 옐리자베타는 어떤가요? 생각보다 먹을 만하지 않아요?”
유진이 물었다. 옐리자베타를 식사 자리에 초대한 것은 좀 더 친목을 돈독히 하려는 의미와 더불어 고급스러운 입맛의 소유자인 그녀의 평을 들어 보려는 것도 있었다.
“배양육이라고 해서 조금은 겁이 났는데, 솔직히 진짜 고기와 차이점을 느끼지 못하겠어요.”
유진처럼 터프하게 버거를 크게 베어 물고 한 입 한 입 신중하게 씹던 옐리자베타가 입안의 음식을 전부 삼키고 대답했다.
“진짜 고기는 맞아요. 단지 살아 있는 소를 도축해서 나온 게 아닐 뿐이지.”
“아, 그렇지요? 음. 이 고기의 기원이 된 소는 무슨 소였던 걸까요? 꽤 고급 고기 같군요. 러시아에서 흔하게 접하기 힘들 정도의 고기로 보여요. 지방 함량이 높은 것으로 보아 그래스피드는 아니고. 아! 배양육이면 먹이와는 상관이 없는 거죠?”
“맞아요. 그리고 지방도 추가로 넣은 거죠.”
“흠…… 감칠맛이 뛰어난 것으로 봐서는 미국에서 흔히 먹는 소고기와 꽤 차이점이 있네요. 가끔 먹어본 고베규? 그것과 비슷한 느낌인데 그 감칠맛의 구조가 조금 다른 것도 같아요.”
러시아에서도 순위권에 드는 재벌가의 영애인 옐리자베타는 어려서부터 다양한 음식을 접해 와 미식에 일가견이 있다더니, 정말인 모양이다.
“이건 한우…… 코리안 카우를 배양한 고기에요. 고베산 와규만큼의 인지도는 없지만, 한우도 제법 괜찮은 육질과 감칠맛이 있답니다.”
기름지기로는 고베규나 한우나 우열을 가리기 힘들 것이고, 사실 배양육에서까지 그 차이를 느끼는 것은 무리이다.
그런 면에서 고베규를 떠올린 것을 보면 옐리자베타의 미각은 칭찬할 만했다.
솔직히 유진은 고베규와 한우의 블라인드 테스트를 통과할 자신은 없다.
지난 몇 년 동안 세계 각국의 최상류층 사람들과의 만남을 가지는 동안 다양한 고급스러운 음식을 즐겨 왔지만, 유진은 자신의 미각이 그다지 뛰어나지는 않다는 사실을 수긍하고 있었다.
유진은 여전히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의 기묘한 음식보다 햄버거나 샌드위치, 그리고 삼겹살과 로스구이를 선호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미식의 감각은 아주 어려서부터의 훈련으로 길러지는 모양이다.
“한우도 상당히 비쌀 것 같군요.”
“물론이죠. 1kg에 90달러 정도니까 고베산 와규보다 조금 저렴한 수준이지요.”
“서민이 접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가격이로군요.”
재벌가의 영애치고는 서민 생활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지는 않았다.
“대체육에 대한 투자는 지금 수준에서 유지하고, 배양육에는 좀 더 베팅하기로 하지.”
유진보다 나은 미적 감각을 지닌 옐리자베타와 요안나 모두 호평을 할 정도라면, 이건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그렇게 하는 편이 낫겠어요.”
요안나가 식탁 위의 자료에 몇 가지 표시를 하며 대답했다.
요 며칠 간의 식사는 사실 투자 전략을 결정하는 시식의 자리였다. 그리고 유진은 배양육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결정했다.
물론 그 결과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의 식탁은 이 배양육이 지배하게 될 것이다.
배양육 스테이크, 배양육 소시지, 배양육 스팸…… 이루 열거하기 힘들 만큼 다양한 배양육 상품이 서로 다른 이름으로 시장에 출시되어 소비자들의 선택을 강요하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
이러한 변화는 물론 인간의 식탁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 희생되는 수십억에 달하는 짐승의 생명을 보호하겠다는 윤리적인 목적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훨씬 더 중요한 목적이 있었다.
목축업에서 발생되는 온실가스의 양이 생각보다도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통계와 근거에 따라 달라지지만, 가장 비관적인 관점에서는 목축업으로 인해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이 전 세계 모든 운송 수단이 배출하는 그것보다도 많다고 한다.
특히 소고기의 경우는 1kg의 소고기를 생산하는데 무려 60kg의 온실가스가 배출될 정도이다.
반면 배양육의 경우 같은 양의 고기를 생산하는데 겨우 10%도 안 되는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토지는 1%, 물은 2%가 필요할 뿐이다.
윤리적으로도, 그리고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도 축산업을 줄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커져 가면서, 대안이라 할 수 있는 식물성 고기, 배양육 등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특히 환경에 관심이 높은 미국의 도시인들과 서유럽 시민들 사이에서 이런 요구가 늘어나고 있다.
그 때문에 미국의 투자자들은 재빠르게 이런 대체육에 대한 투자를 시작해 벌써 10여 년 동안 이어 오고 있다.
MS의 빌 게이츠는 이런 대체육 시장에 지금까지 무려 10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고 알려져 있을 정도이다.
지금까지 몇몇 유력한 대체육 벤처 기업에 투자를 해 오던 유진은 이날을 기점으로 대대적인 투자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배양육이라면 아직은 생산 단가가 비싸다고 하던 것 같던데요?”
유진과 요안나의 의사가 정리된 것을 보고 옐리자베타가 물었다.
“지금은 생산 단가가 1kg당 120달러 가까이 나온다고 하네요.”
“그 정도면 아직은 시장성에는 꽤 무리가 있네요.”
“물론이지요. 하지만 대량생산에 들어가면 훨씬 저렴한 수준까지 낮출 수 있을 겁니다. 돼지고기 가격 수준으로 최고급 한우 햄버거를 먹을 수 있지요.”
“그건 꽤 매력 있네요.”
미래의 유진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소호의 단골 버거 가게에서 고베규 배양육으로 만든 버거를 즐기고는 했었다.
배양육이 아닌 천연 소고기로 만든 버거는 배양육 버거보다 대략 다섯 배에서 열 배까지 비싸던 시절이다.
단순히 배양육의 생산 단가가 저렴해졌기 때문은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규제는 커져 갔고, 마침내 축산업에 대해서도 상당한 온실가스 세금을 부과했기 때문이다.
대략 고기 가격의 40% 정도를 세금으로 내야 했고, 배양육의 성장에 따라 축산업 자체도 사양길에 올랐기에, 천연 고기의 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가파르게 올랐다.
그때 가서는 소고기뿐 아니라 돼지고기든 닭고기든 배양육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한 모습이 되었다.
천연 고기라면 돼지고기 1kg에 무려 500달러 정도를 내야 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맛있는 삼겹살을 편히 먹지 못하는 게 아쉬웠지.’
배양육은 근본적으로 동물의 근육이나 지방의 생성 과정과 다르기에 생산품의 모습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배양육 대부분은 지금처럼 분쇄육이나 가공육의 형태로 시장에 공급되었고, 진짜 고기처럼 만들어진 상품은 훨씬 가격이 비싸면서도 진짜 고기와는 여전히 거리가 있었다.
특히 배양육 삼겹살의 경우는 미국인의 경우 그다지 찾는 사람도 없었고, 맛도 실제와 꽤 차이가 나기에 마트에서 구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때때로 한국에 방문할 때에나 지인들과 식당에서 구워 먹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다지 배부르게 먹지 않아도 1인당 50만 원 정도를 지불해야 했으니, 인플레이션을 감안해도 그때의 삼겹살은 지금의 투 플러스 한우 이상의 위상이었다.
물론 두세 명이서 천연 소고기를 배불리 먹으려면 그야말로 한 달 월급에 가까운 비용이 들 정도였으니 그보다는 나았지만.
“그런데 배양육이라니, 유진의 이미지랑은 조금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역시 윤리적인 이유에서인가요?”
옐리자베타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10조 달러의 사나이가 배양육에 투자하겠다니 어색한 모양이다.
“천만에요. 당연히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그런 겁니다. 배양육 시장의 미래는 스마트폰이나 휴대폰 시장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블루오션이지요.”
“정말인가요?”
옐리자베타가 놀랍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세계 육류 시장 규모는 이미 지난해에 1조 달러를 넘었어요. 그리고 성장 속도를 미루어 볼 때, 2030년까지는 약 2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이고요. 지난해 세계 휴대폰 시장 매출액이 대략 4,800억 달러니까, 지금도 그 두 배 이상의 규모이죠. 2030년이면 그중 대체육, 그러니까 비건 미트나 배양육이 약 30%를 차지하게 될 것으로 보여요. 그것만으로도 휴대폰 시장 정도의 규모가 되지요.”
요안나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대체육은 기존의 목축업과 달리 다양한 특허가 따르는 공산품으로 보아야 해요. 가장 뛰어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 특허와 노하우를 무기로 세계 육류 시장을 석권할 가능성이 커요.”
“말하자면 몬산토와 카길, 그리고 애플을 결합한 것과 비슷하다고 하겠군요?”
세계 종묘 업계를 주름잡는 몬산토와 초대형 곡물 메이저인 카길, 그리고 첨단 산업인 스마트폰 시장의 애플을 예로 든 것은 그녀가 산업에 대한 상당한 수준의 이해가 있음을 의미한다.
단순하게 소비에 몰두하는 부잣집 영애로 자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주 비슷할 것 같아요. 특허를 토대로 특정한 맛의 신선한 고기를 도시의 배양육 공장에서 생산해 마트에 공급하는 거대한 메이저 업체가 탄생한다면, 아마 지금 말씀하신 애플과 몬산토, 그리고 카길 세 기업을 합친 수준의 기업이 되고도 남을 거예요.”
이날 유진은 일곱 곳의 배양육 벤처, 그리고 다섯 곳의 식물성 고기 벤처에 투자를 결정했다.
모두 앞으로 10년 내로 각기 시장을 주도할 만한 성과를 거둘 곳들이다.
그러니까 유진이 앞으로 20년쯤 뒤에 마트에서 고기를 고를 때 흔하게 접하고는 하던 상표들이라는 의미이다.
동양 사람의 시선에선 식물성 고기는 딱히 메리트가 없어 보이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양에서는 채식주의자들이 점점 세를 늘려 가고 있기에 배양육보다 맛은 떨어져도 비건 미트의 시장 규모 또한 무시하지 못할 정도에 달할 것이다.
겨우 5, 6년 뒤에는 6,000억 달러의 시장 규모로 발전하고, 2030년에는 1조 달러를 가볍게 넘어서는 거대한 대체 육류 시장의 최강자들을 쇼핑 카트에 쓸어 담고 유진이 지출하게 될 비용은 겨우 10억 달러에 불과했다.
물론 시장의 성장 과정에서, 그리고 산업화 과정에서 필요한 자금 등을 전부 유진이 부담하려면 아마도 적어도 앞으로 수백억 달러 이상이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10년 뒤 지금의 거대 IT 기업들에 비해서도 작다고 하기 어려울 몇 개의 거대한 기업들을 손에 넣었다고 생각하면 앞으로 한두 끼를 거른다 해도 배가 부를 정도였다.
세계의 육류 시장을 손에 넣는 것은 휴대폰이나 PC 시장을 점령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일이었다.
단순히 시장 가치로서뿐 아니라, 식량이 인간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면 그 대단한 회사를 먼저 발굴해 내는 것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겠군요.”
“물론 장밋빛 전망이 그렇다는 거고, 사실 미래는 누구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그런 가능성에 베팅하는 게 투자이지요.”
“멋지네요. 그렇다면 나도 그쪽 분야에 관심이 생기네요. 제가 가진 자금을 투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론 투자 조언에 대한 비용은 지불하겠어요.”
제법 머리가 돌아가면서 한편으로는 계산이 명확한 여자이다.
거래에 앞서 자신이 충분한 대가를 지불할 것을 말하는 태도는 나무랄 데가 없다. 아마도 부친에게 제대로 배운 모양이다.
“우선 우리 회사의 특별한 투자 계좌를 열어드릴 수 있어요.”
요안나가 기다렸다는 듯 제안했다.
“그 세계적인 지도자들만 가입할 수 있다는 펀드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제가요?”
옐리자베타가 놀랍다는 듯 물었다.
“물론이지요. 아니면 직접 투자 회사를 차리는 쪽도 나쁘지 않고요. 물론 어느 정도 업계에서 일해 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겠지만요.”
“그것도 멋지네요.”
“만약 원하신다면 우리 계열사 중 한 곳을 연결해 드리지요.”
“그렇게까지 신경을 써 주시면…….”
옐리자베타가 무척이나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어려울 것 없어요. 하지만 우선은 인턴직이에요. 능력을 입증하지 못하면 가차 없이 잘린답니다.”
“저 해 볼게요!”
옐리자베타가 힘차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여러 방면에서 그녀의 마음을 끄는 데에는 성공한 모양이다. 그것도 큰 투자라고 할 것도 없이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배양육 기업 하나를 인수하는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