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화 열병과 세금
“중국에서 ASF가 다시 유행 중이라고 합니다.”
언제나처럼 중국 내부의 상황을 브리핑하던 나탈리가 아주 중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ASF라면?”
모니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높은 수준의 상식을 지닌 모니카이지만 세상 모든 단어를 다 알고 있지는 않았다.
특히 지금처럼 이니셜 같은 경우라면 때에 따라 여러 다른 의미를 가지기도 하기에 더욱 그러하다.
“African Swine Fever(아프리카 돼지 열병)을 말합니다.”
“돼지에게는 치명적인 바이러스성 질병입니다. 치사율이 100%에 달하고, 전염률도 상당히 높아서 일정 지역에서 한 마리라도 발생하면 해당 지역의 돼지를 전부 폐사시키는 방법을 사용해야 하지요.”
“아! 그렇군요.”
“정부가 꽤 곤란해지겠군요.”
요안나가 물었다. 돼지 열병이 중국에 미치는 영향을 그녀는 아주 잘 알고 있다.
“네. 돼지고기 가격은 늘 중국 민심의 향방을 가르는 뇌관과도 같은 존재이니까요.”
중국인들의 돼지고기에 대한 사랑은 아주 각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루 세끼 중에 돼지고기가 오르지 않는 일이 드물고, 가난한 가정에서도 적어도 한 번은 돼지고기를 올려야 하는 것이 중국의 식문화였다.
그 때문에 중국 정부는 언제나 돼지고기의 수급에 굉장한 심혈을 기울였다.
세계에서 사육되는 돼지 10억 마리 중 절반에 가까운 4억 마리를 기르고 있으며, 거기에 다시 매년 1억 마리 상당의 돼지고기를 수입하고 있는 중국은 돼지고기 가격을 일정 수준 이하로 유지하기 위해 공권력을 동원할 정도이다.
“원래 아프리카의 토속 질병이었던 아프리카 돼지 열병은 유럽을 거쳐 세계로 퍼져 나갔고, 지금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돼지들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습니다. 이번 사태로 그렇지 않아도 민심 달래기로 힘들어하던 중국 정부가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놓일 것은 틀림없습니다.”
“중국 정부가 해 볼 만한 시도가 있을까요?”
“ASF가 발생한 지역의 돼지를 전부 소각 처분하면서 부족해진 돼지고기를 수입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가장 큰 수출국인 미국과는 여전히 무역 분쟁 중이라 쉽게 들여올 수 없는 상황입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은 이제 완전히 장기화되어 있었다.
“지난 2019년에 발생한 돼지 열병 사태 때는 모자라는 돼지고기를 러시아로부터 수입했는데, 지금 러시아와의 분쟁 상황을 고려하면 그것도 꽤 어려운 일이지요. 정부는 지금 돼지고기를 수급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찾고 있다고 하지만, 딱히 방법이 없습니다. 하필 동남아시아도 비슷한 상황이라서 말이지요.”
“그 정도로 돼지고기가 중요한 모양이군요?”
“미국으로 치면 밀가루 정도의 위상이라고 할까요? 아니, 마땅한 대체제가 없다는 점에서는 그 이상입니다. 대략 밀과 설탕, 거기에 우유와 커피를 합친 정도겠군요.”
늘 커피를 들고 사는 모니카는 드디어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탈리는 계속해서 이 돼지 열병이 정권에 얼마나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설명해 주었다.
더군다나 경제난에서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는 지금의 상황에서라면 더욱 그러하다는 게 요지였다.
중국 내부의 상황은 그렇게 더욱 위태로운 상황으로 몰려 가고 있었다.
“중국 내부의 상황이 점점 더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국가경제위원회의 브라이언 디즈 위원장이 뉴욕을 방문해 유진의 펜트하우스에 찾아왔다.
이번에도 중국에 관련된 문제를 논의하려는 것이다.
“러시아와의 전쟁이 끝나고 다시 회복세를 찾나 싶더니 전보다 오히려 힘겨운 상황에 들어간 모양새입니다.”
“맞습니다. 특히 극동 시베리아의 유전에서 원하던 경제 효과를 얻어 내지 못한 게 가장 컸지요.”
“계속해서 성장의 동력을 찾지 못하면 더욱 난처해질 겁니다.”
“그러게요. 당분간 경제 성장은 힘들 걸로 보이네요.”
두 사람의 의견은 거의 대동소이했다.
“그나저나 전쟁 동안 많이 고생하셨습니다.”
유진이 그간의 노력에 대해 덕담을 할 만큼 브라이언 디즈를 비롯한 백악관과 행정부의 노력은 대단했다.
러시아와 중국 사이의 전쟁에서 미국은 미국 나름대로 보이지 않게 전쟁이 필요 이상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충실하게 노력해 왔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러시아 정권의 지도자들과 무슨 일이 있어도 시베리아를 차지하려는 중국의 야욕이 자칫 세계적인 재앙을 부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당근과 채찍을 양손에 들고 부던히 노력해 왔기에 전쟁은 극히 일부 지역에서의 분쟁으로 끝날 수 있었다.
더군다나 가장 큰 걱정이던 핵전쟁을 막아 낸 것 또한 큰 성과였다.
물론 전쟁이 끝난 뒤에 핵무기가 사용될 것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참사이기는 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고 이후로 더 이상의 핵 사용은 없을 것으로 예상되니 차후의 예방에 힘을 쏟는 것에 주력하고 있었다.
유진의 기억으로도 더 이상의 핵 투발은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러시아도 중국도 자국 내 사정으로 이 이상 외부에 힘을 투사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중국 경제가 되살아나려면 역시 미국과의 통상이 정상화되는 것이 우선일 겁니다.”
“그렇죠. 대미 수출만 뚫려도, 상황은 훨씬 호전될 겁니다.”
러시아를 침공하며 시작된 경제제재는 평화협정 이후 어느 정도 풀렸지만, 미중간의 무역 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 중이다.
“요구치를 낮출 생각은 있습니까?”
“지금으로서는 전혀 없습니다.”
미국은 중국에 대해 서방 국가 수준의 경제 개방을 요구하는 중이다.
다양한 교역 장벽을 쌓아 둔 중국 경제의 관행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불공정 무역으로 간주하겠다는 백악관의 의지는 변화의 조짐이 없었다.
“중국 쪽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보이나요?”
“내부에서 상당한 격론이 일어나는 듯합니다. 미국의 조건을 수용하자는 의견이 권력 상층부에서도 상당 부분 힘을 얻어 가고 있는 모양입니다. 다시 세계 경제의 변방으로 물러설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냉큼 받아들일 수도 없으니 고민이 깊겠군요.”
“고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고통은 커질 겁니다.”
브라이언 디즈가 말하는 고통은 사실 중국만의 고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중국에 대한 압박은 미국 국민에게도 적지 않은 고통을 안겨 주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중국산 물품에 대한 과도한 관세로 상품 가격이 인상되면서, 미국의 서민들 생활비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낮추려는 정부의 노력에도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하나 그럼에도 백악관은 이 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았다.
“그때 말씀드렸던 법안을 이제 제출할 생각입니다.”
중국에 관한 이야기는 사실 곁가지이고, 브라이언이 방문한 가장 큰 목적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역시 39%로 가는 건가요?”
“맞습니다. 사실 그 정도의 세율이 정말 국회를 통과할지 아직도 자신은 없습니다.”
“최대한 노력해 보는 수밖에요.”
“법안이 통과되면 유진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겁니다.”
“글쎄요? 꼭 피해자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돈을 벌었다면, 그에 상응하는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백악관에서는 브라이언 디즈가 이끄는 국가경제위원회(NEC)를 통해 부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투자소득세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주식 등을 포함한 연간 투자소득이 100만 달러를 초과하는 부유층에 대한 투자소득세를 현행인 20%에서 최대 39%까지 높이겠다는 것이다.
법안이 통과된다면 미국 최대의 부자인 유진이 부담해야 하는 세금이 가장 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유진이 그렇게 말씀을 해 주시면, 다른 부자들이 엄한 소리를 하기 어렵겠군요. 하하!”
“뭐, 다들 나름 사정이 있을 테니까요.”
“투자소득세의 인상으로 매년 최대 1,000억 달러에 달하는 추가 세금을 납부하셔야 하는데, 정말 눈 한번 깜빡하지 않으시는군요.”
유진의 재산 대부분은 세계 각지에 설립한 투자법인들의 지분이다.
이러한 지분에 대해서는 시장에 매각하지 않는 이상 별도의 세금을 납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지분과 별개로 투자 중인 자산도 이제는 적지 않은 탓에, 매년 벌어들이는 수익의 39%를 납부하는 것만으로도 천문학적인 세금이 될 것이다.
“사회가 제대로 유지되어야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지 않겠습니까? 모쪼록 이번 법안이 순조롭게 통과되면 좋겠군요.”
“우리도 최선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브라이언 디즈는 해당 법안으로 추가적인 세금을 납부하게 되는 사람은 최고 상위 소득자의 겨우 0.3%에도 이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는 발표를 했다.
이렇게 소수의 부자에게 거두어들인 세금을 국가 보육, 유급 가족 휴가, 무료 지역 사회 대학 교육 등을 제공하는 데에 사용하겠다는 것이 백악관의 계획이었다.
이미 오랫동안 바이든 대통령은 부유한 개인들이 자신의 우선순위 정책들을 위한 재원 마련에서 공정한 몫을 치러야 할 것이라고 말해 왔다.
부의 쏠림이 국가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는 생각은 자본주의의 첨단인 미국에도 늘 존재해 오는 것이다.
물론 세금 부과의 대상이 될 부자들과 자유지상주의자들, 그리고 공화당의 반발은 눈에 보듯 뻔한 상황이다.
사실 이 법안의 통과는 이제 1년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에서 기선을 잡을 방편이기도 하다.
0.3%에 불과한 부자들에 대한 증세로 서민들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은 꽤 먹힐 가능성이 크다.
지금도 지난 몇 년 동안 경제적으로 고통을 받아 온 중산층 이하 계급에서는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였다.
“저도 열심히 도와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진은 스스로의 세금을 두 배로 늘릴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공화당 일부 의원들에 대한 설득에 나서 있었다.
당연하게도 결과적으로 유진 자신을 위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겨우 1년에 1,000억 달러의 추가 지출로 백악관과 미국 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더욱 키울 수 있는데 아낄 것은 없다.
더군다나 미국 사회의 경제 펀더멘탈이 굳건해야 더 큰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유진 이외에도 미국의 최상위 부유층의 경우는 그렇게 부자에 대한 증세에 찬성표를 던지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유진처럼 어느 정도 사회분배망이 제대로 작용해야 더 큰 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럼 이번에도 유진을 믿고 열심히 뛰어 보겠습니다.”
브라이언 디즈는 뉴욕 방문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다. 이제는 내년 선거의 승리를 위해 달려갈 시간이다.
유진이 앞장서서 투자소득세 증세에 대해 긍정적인 메시지를 보낸다면 여론이 백악관에 우호적으로 돌아갈 것이고, 선거의 승리도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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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유통되는 돼지고기의 가격이 지난해보다 두 배 이상 올랐습니다. 시민들의 불만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습니다.]
돼지고기 가격의 폭등은 중국 국민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중국 정부는 이에 일부 세력이 돼지고기 가격의 폭등을 유발해 이익을 챙기기 위해 고의적으로 돼지열병을 유발하고 있다면서, 해당 범죄를 일으킨 일당의 체포를 발표했다.
분노한 시민들이 던지는 계란과 돌멩이를 맞으며 법원으로 끌려가는 일당의 모습이 연일 뉴스에 등장하고 있었다.
관영 언론은 이들이 드론을 비롯한 다양한 첨단 장비를 사용해 돼지열병 바이러스를 광범위하게 퍼트렸다며 이들을 엄벌에 처할 것을 요구했고, 법원은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생각 이상으로 강한 판결을 빠르게 선고하며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