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9화 거래의 기술
“아무래도 중국 정부가 희생양을 찾아낸 모양이로군요.”
모니카가 뻔한 이야기라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글쎄요. 단순히 희생양이라 볼 수는 없습니다. 정말로 돼지 열병을 퍼트리는 조직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인 모양입니다.”
하나 나탈리의 대답은 생각 외의 것이었다.
“정말 일부러 바이러스를 퍼트린다고요? 자국민의 식생활을 무너트리고 이익을 얻으려고요?”
“사실 그런 예는 과거 역사를 보아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돈이 걸린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하는 사람은 어느 사회에서건 찾을 수 있으니까요. 많은 국가에서 여전히 메탄올을 사용한 유독한 술을 만들어 판매해서 적지 않은 사망자가 나오고는 하지요.”
“하기는……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는 마약을 유통하는 범죄 조직을 생각하면, 미국이라고 딱히 다르지는 않겠군요.”
모니카도 어느 사회에나 이익을 위해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이라면 마약성 진통제를 남용하는 의사나 약사들이 더 무섭지 않나요?”
나탈리가 웃으며 물었다.
“맞아요. 솔직히 미국이 나을 게 하나도 없군요.”
“그런데 아무래도 그런 조직 중에 러시아의 사주를 받은 일당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나탈리의 말은 더욱 놀라운 것이었다.
“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해당 조직이 체포되거나 했나요?”
“그보다는 이번 열병이 번져 가는 속도에 대한 문제입니다. 아주 광범위하게,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전국 각지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질병의 확산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에요.”
“그러니까 의도적인 확산이라는 말이로군요.”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분석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돼지고기가 중국 정권의 안위에 상당한 문제가 될 것을 알고 있던 거군요.”
유진은 이번에도 알고 있던 사실을 모르는 척 물어본다.
“맙소사! 그건…… 더티밤보다 훨씬 더 무섭네요.”
“맞아요. 국민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이쪽이 훨씬 더 파급력이 높지요. 지금 당장은 그런 조직을 엄중하게 처벌하는 것으로 국민들의 분노를 달래고 있지만, 조기 진화에 실패한다면 무척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올 겁니다.”
나탈리의 분석처럼 중국 정부는 얼마 뒤 러시아의 스파이들이 중국 내 양돈장에 돼지 열병 바이러스를 퍼트리고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관련 학자들이 대거 등장해 이번 열병의 확산 상황이 절대 자연스럽지 않다는 사실을 설명해 주며, 국민들의 분노를 러시아에 대한 적개심으로 몰아가려 노력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국민들은 이미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러시아에 대해 분노를 표시하는 사람 만큼이나 정부의 발표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방역을 위해 살처분되는 돼지는 점점 늘어 갔고, 돼지고기 가격은 예년의 두 배를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돼지 열병의 확산 추세로 미루어 보면 앞으로도 계속 가격이 오르는 것은 틀림없을 듯했다.
상황이 이러하니 기어이 다시 시위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미국의 언론사들이 중국 내에서 벌어지는 대규모 시위에 대해 보도를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겨우 며칠 만의 일이었다.
기존의 시위대와 달리 이번 시위에서는 시민들이 정권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지도부의 퇴진까지 요구했다.
물론 정권 측은 언제나처럼 강경 대응에 나섰고, 또다시 희생자가 발생하고 있었다.
만일 나탈리의 분석대로 이번 돼지 열병이 러시아의 공작에 의한 것이 사실이라면, 500억 배럴의 유전과 동해의 부동항인 블라디보스토크를 잃어버린 원한에 대해 제대로 보복을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백악관에서 어떤 결단을 내려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유진도 아시다시피 이대로라면 중국의 경제난은 더 이상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겁니다.”
중국 정권 최고 책임자의 비밀 재산을 관리하는 장시웨이가 오랜만에 방문해서는 기존에는 없던 요구를 해 왔다.
유진이 미 정계에서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잘 알고 있는 중국 정권이 장시웨이를 통해 로비를 부탁하려는 것이었다.
정권의 핵심부에서는 현 상황을 타결하기 위해 어떻게든 경제 상황을 호전시킬 필요가 있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우선이라 판단했다.
그리고 유진이 그를 위해서 나서 준다면 가능할 것으로 믿고 있었다.
백악관과 유진 사이에 모종의 커넥션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비밀도 아니다.
당장 백악관의 중추 역할을 하는 비서나 위원장 중 유진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받지 않은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
“큰일이로군요. 이래서야 나도 타격이 작지 않습니다. 지난해부터 주가가 하락하며 적지 않은 손해를 보고 있는데, 중국까지 그러면 곤란하지요.”
“물론입니다. 이제 중국의 경제는 세계 경제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중국의 경제가 다시 살아나야, 이곳 뉴욕의 금융가도 웃을 수 있을 겁니다.”
“물론 그렇지요.”
유진은 장시웨이의 말에 동의를 표하면서도, 미국의 정치권을 움직이는 데 어떤 도움을 주겠다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물론 저희 쪽에서도 유진이 도움을 주신다면 결코 잊지 않을 겁니다.”
“하하. 지금까지 중국과는 아주 좋은 관계로 지내 왔었지요.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원하시는 것을 말씀하신다면 최선을 다해 성의를 표시하겠습니다.”
“흠. 원하는 거라…… 솔직히 원하는 거야 많지만, 과연 중국에서 들어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요.”
“말씀만 하십시오.”
장시웨이는 유진의 말에서 어떤 가능성을 엿보았는지, 반색을 하며 말했다.
“사실 다른 월스트리트의 투자자들과 딱히 다르지는 않습니다. 중국 금융과 산업에 대한 좀 더 폭넓은 개방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유진이 꺼낸 말은 장시웨이기 기대하던 종류는 전혀 아니었던 모양이다. 얼굴을 굳히고 유진을 바라보던 장시웨이가 입을 열었다.
“중국은 지금도 다양한 개방 정책을 통해 서구 사회에 아국의 경제를 개방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생각은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글로벌 스탠다드와는 거리가 멀지요. 사실 미국뿐 아니라 세계의 기업인들이 중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불만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유진이 다시 운을 띄우자 장시웨이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체제적으로 봤을 때 명백하게 중국의 시장 개방은 여전히 미흡한 수준이다.
그 때문에 해외의 기업들은 중국에 대한 투자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물론 그런 면이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중국의 거대한 내수 시장은 여전히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습니까?”
장시웨이는 늘 그렇듯 시장의 규모로 말을 돌렸다.
“물론 중국의 내수 시장이 크다는 점은 누구라도 인정하지요. 요는 정부의 공정성 문제입니다. 중국 기업은 미국에서 어떤 경제 활동을 하더라도 내국 기업에 크게 차별을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차별은 심각한 수준이지요.”
“그건…….”
“일례로 몇 년 전 JP모건과 노무라는 중국에서 50% 이상 지분을 소유한 증권사를 확보하기 위해 10개월을 기다려야 했었던 일도 있지요.”
중국에 사업장을 내기 위해서는 외국인 투자자의 지분 소유 비율이 49%까지만 허용되기 때문에 반드시 중국 현지에 있는 법인의 51% 투자를 받아 51:49 합작 투자를 해야만 했다.
2020년 들어 중국 정부는 자국의 금융 시스템을 개방하기로 결정하면서 외국인 소유 선물 및 보험회사의 영업을 허용하고, 100% 외국인 지분의 자산운용사 설립을 허용했다.
하지만 말로만 개방일 뿐, 중국 당국의 금융 통제 시스템이 워낙 불투명하고 임의적인 데다 규제 부담이 크기 때문에 여전히 많은 기업이 중국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모건스탠리는 신청서를 내고서도 당국이 허가해 주기까지 1년도 넘게 기다려야 했었고요.”
세계적인 거대 금융기업조차도 중국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하염없는 세월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여전히 중국이 글로벌 스탠다드와 거리가 있다는 것은 반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거기다 해외의 기업들이 중국에서 얻은 성과를 자국으로 이전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요.”
그렇게 어렵게 설립을 한 회사에서도 다시 수익을 본국으로 보내려면 복잡한 절차를 거치며 높은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반드시 중국 국영 은행의 지점망을 통해서만 해외 반출이 가능하며, 이때 최고 10%에 달하는 수수료가 발생한다.
힘겹게 돈을 벌어서 정당한 세금을 납부하고도 다시 그렇게 많은 수수료를 부담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런 문제들은 사실 중국에서의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과정에서 봉착하는 문제에 비하면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지요.”
이런 장벽들은 막상 사업을 운영하며 부딪치는 보이지 않는 장벽들에 비한다면 약과이다.
내수 기업들과 비교해 차별적인 임금을 강요하거나, 다양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소방 점검이나 세무조사, 세관 검열, 경찰의 잦은 방문과 직원에 대한 감찰 같은 다양한 방법으로 영업을 힘들게 하고, 그마저 모자라면 언론이나 다양한 관변 단체 등을 이용해 불매운동을 유발한다.
중국에 진출했던 외국계 기업들이 그런 장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철수를 결정하면, 다시 기업 폐쇄에 따른 다양한 부담금을 부과한다.
중국 내 현실이 이렇다 보니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은 철저한 불공평을 감수하며, 선진 기술을 중국 내 새로운 기업들에 전수하고도 철수 와중에 그동안 얻은 수익의 상당 부분을 내뱉는 것으로 마감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유진은 그동안 중국에 진출했던 많은 한국 기업들이 그렇게 투자한 돈에 비해 얻어 낸 것도 없이 퇴출되는 모습을 보아 왔다.
문화 상품 시장에서도 이런 장벽은 어김없이 존재한다.
지적재산권이 쉽게 무시되거나, 게임 산업의 경우 당국의 검열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판호 제도를 통해 다른 상품보다 훨씬 더 엄격한 규제를 이어 가고 있다.
모든 방면에서 중국 경제는 자국 시장의 문호를 확실하게 닫아걸어 놓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에게 너무 과도한 요구를 하신다면 받아들이기 어려울 겁니다.”
장시웨이는 물론 중국 정권의 경제 담당자도 아니지만, 아주 큰 영향력을 지닌 사람의 대리인으로 이 자리에 와 있으니 어느 정도는 판단할 능력은 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외부의 입장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중국으로서는 시장을 완전히 개방해서 해외 기업들에게 자유로운 진퇴를 허용하면, 거대한 시장을 공유하면서도 충분한 기술 이전은 얻어 내지 못하고 경제적 식민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요.”
유진은 이번에는 태도를 바꿔 중국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말했다.
거래에 있어서 이쪽도 상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은 상당히 유효한 수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