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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271화 (271/363)

271화 50조 달러의 금융시장

중국의 눈부신 경제 성장 뒤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빈부격차라는 암담한 현실 또한 존재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모든 인민으로부터 빈곤을 추방하겠다 외치고 있지만, 중국이 개방을 시작한 이후 30여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그 목표는 아주 한없이 멀기만 했다.

지난 20년 중국 정부는 드디어 중국의 절대빈곤 인구가 500만 명 이하로 줄어들었다며 자랑스럽게 발표했다.

하지만 그 기준이 겨우 월 300위안, 그러니까 한국 돈 5만 5천 원 수준으로 형편없이 낮다는 사실은 숨긴 채였다.

세계적인 부호가 즐비한 중국이지만, 여전히 인구의 40%에 해당하는 6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월 1,000위안, 그러니까 대략 18만 원 수준의 소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자인한 바 있다.

소득분배의 불평등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최근 들어 무려 0.7에서 0.8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을 정도이다.

통상 0.4를 넘어서면 그 사회의 불평등 정도가 매우 심각한 것으로 여겨지고, 전 세계에서 9번째로 불평등이 높다는 브라질이 0.5를 조금 넘는 수준인 것을 생각한다면 중국의 소득분배 체제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알 수 있다.

현재 중국 각지에서 이어지고 있는 시위 또한 이러한 소득분배의 실패와 무관하다 할 수는 없다.

중국 뉴스에서 베이징 부호 집안의 어린 소녀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장난감이 아닌 진짜 보잉 비행기를 받고 싶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는 순간, 서북 미개발 지역의 비슷한 또래의 소녀는 운동화를 신어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 중국의 현실이다.

“모든 국민을 빈곤에서 구제하는 것은 미국이라 해도 불가능한 일이지요.”

“맞습니다. 세계 최강국이라는 미국도 자국민들 전부를 빈곤에서 벗어나게는 못하고 있지요.”

“그리고 그런 목표는 단순히 국가 경제를 더욱 키운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요.”

사실 중국의 서민들이 부유해지기 어려운 데에는 아주 복합적이고 다양한 원인들이 존재한다.

그걸 해결하는 것은 현 중국의 지도부가 아니라 세계 제일의 통치자가 나타난다 해도 불가능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역사상 가장 지니계수가 낮았던 나라 중 하나는 바로 50여 년 전의 중국이었다.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못사는 사회에서는 지니계수의 의미가 없을 정도로 소득 격차가 없었다.

중국이 경제를 개방하는 순간부터 불평등한 소득분배는 예정된 일이었다.

그걸 고친다는 것은 미래를 알고 있는 유진에게도 불가능한 일이다.

“흐음…….”

장시웨이가 마땅히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 것은 그가 딱히 유진의 말에 설득되었기 때문은 아니다. 그저 이미 잘 알고 있던 사실이기 때문이다.

경제 성장은 모든 국민의 삶을 개선시키지는 못한다. 오히려 경제가 커갈수록 부자와 빈자 사이의 격차는 커져만 갈 뿐이다.

무엇보다 빈부격차의 해결이 장시웨이의 목적은 아니다.

“그렇다고 미국 정부는 딱히 공산주의를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중국 내에서의 기업 활동이 조금 더 공정하기를 원하는 것뿐이지요.”

유진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정권의 교체나, 중국의 국시를 바꾸는 것 따위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요컨대 중국이 수출을 통해 이익을 얻듯이, 다른 나라의 기업가들도 중국 내에서 정당한 이익을 얻을 기회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그 다른 나라의 기업이란 것이 유진이 절대적인 지분을 지닌 기업이 되리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중국 경제의 개방을 통해 중국이 얻는 이익 또한 적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난 여러분의 편이니까요.”

유진은 비로소 장시웨이에게 당근을 제시했다.

중국 경제에 수조 달러를 투자하고, 새로운 기업들이 자유로운 영업을 시작하면 틀림없이 수많은 새로운 대기업들이 탄생할 것이다.

유진은 지금까지처럼 중국의 정권 최상부와 그 결실을 나누겠다는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라는 말씀이시지요.”

장시웨이가 납득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유진이 말했듯 모두가 부자가 될 수도 없고, 누구도 그걸 원하지 않는다.

결국은 이권에 관한 이야기이다. 충분한 이권을 보장해 준다면 경제 개방이 전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특히 금융 분야의 개방으로 더 많은 자본이 몰린다면, 언젠가 정말로 중국이 세계 금융의 중심이 되는 것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미국의 대기업들은 이미 정점에 서 있습니다. 중국은 여전히 무한한 여지를 지니고 있고요. 새로운 중국의 대기업들이 더 큰 성장을 이루어 낸다면, 세계 각국에서 훨씬 더 많은 돈이 몰려들 겁니다. 어쩌면 알리바바와 텐센트 이상의 새로운 신화가 쓰이겠지요.”

당근이 제시된 이후이기 때문인지, 장시웨이는 조금 더 긍정적인 얼굴로 유진의 말을 듣고 있었다.

“솔직히 마오타이의 시가총액이 중국 제일인 것은 어떤 면에서는 넌센스입니다. 중국의 기업 중에는 그 이상의 잠재력을 지닌 기업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건 맞는 말씀 같습니다.”

현시점에서 중국 술 제조업체인 마오타이는 한때 세계 최고의 금융기관이던 공상은행마저 제치고 중국 최대의 기업이라는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금융과 시장의 개방은 그런 기업들에게 있어 새로운 기회를 줄 겁니다. 제대로 된 지원과 투자가 이어진다면 중국에서 한국의 제일전자나 대만의 TSMC 이상의 반도체 기업이 나오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지요.”

유진은 단순히 중국의 장밋빛 미래를 거론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과의 굴욕적일 수도 있는 협상을 통해 중국을 개방하고 나면, 그 자신의 투자로 이어질 결과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장시웨이도 결코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다. 최고 권력자의 비밀스러운 재산을 관리하는 것이 어디 평범한 인재가 할 수 있는 일이랴?

“TSMC와 제일전자라는 말씀이시지요?”

장시웨이가 확인하듯 물었다. 중국은 그 두 회사의 주요 주주가 유진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반도체 설비를 공급하는 네덜란드의 ASML이나 미국의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의 최대 주주가 유진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중국이 원하는 반도체 굴기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기술과 장비를 공급할 수 있는 키를 모두 유진이 쥐고 있다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물론입니다. 단,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경영의 투명성과 군부로부터의 독립을 말씀하시는 거겠지요?”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사업에 대해 브레이크를 거는 가장 큰 원인이 무엇인지는 사실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군부나 공산당이 경영진으로 참여하고, 지금까지처럼 정부의 관여가 도를 지나친다면 내가 아무리 투자를 하고 싶다 해도 정치권에서 반대할 겁니다.”

아무리 유진이 정치권에 커다란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고는 해도, 본질적인 문제에서는 여전히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 또한 자명하다.

“공상은행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골드만삭스나 JP모건 이상의 금융 기관이 탄생하기도 할 것이고, 그때가 되면 위안화는 제대로 비상할 수 있을 겁니다.”

유진은 다시 다른 예를 들었다. 어떤 의미에서 반도체 이상으로 중국 정부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안, 바로 위안화가 기축 통화로서의 위치를 정립하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 십여 년 동안 위안화를 달러에 버금가는 기축 통화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하지만 아직은 국제 거래에서 사용되는 통화 중 달러, 유로, 파운드, 엔화에 뒤지는 5위권 통화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그럴 수 있다면야 더 바랄 것도 없지요.”

자국 통화가 세계 시장에서 미국 달러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지니게 된다면, 통화를 발행하는 측에서 갖는 이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문제는 중국의 위안화는 중국의 금융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중국의 금융계는 당국의 입김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지요.”

“으음…….”

유진은 다시 중국의 약점을 짚었고, 장시웨이는 신음을 흘렸다.

“사실 중국의 교역 규모로 본다면, 위안화의 위치는 달러와 유로화 다음 자리는 차지해야 할 겁니다. 지금처럼 엔화나 파운드에 밀려야 할 이유가 없지요. 적어도 공정하고 행정부로부터 독립적인 통화정책이 보장되고 있다면 말이지요.”

그런 이유로 유진의 말처럼 금융시장을 개방하고, 중국 정부의 과도한 규제로부터 자유성을 준다면 위안화가 지금보다 훨씬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은 자명했다.

“그렇지만 중국의 금융시장을 완전하게 개방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겁니다.”

장시웨이는 중국 경제 당국이 가지고 있는 우려를 드러냈다.

유진이 말하는 것이 단순하게 금융의 개방 이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당국의 입김으로부터 독립적인 통화정책을 위해서는 본질적인 의미에서의 중앙은행이 필요하다.

서구 선진국 정부들은 모두 금융기관에 대한 사령탑으로서 중앙은행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중앙은행에 대해 행정부로부터의 독립성을 최대한으로 부여해서, 중앙은행이 스스로 통화정책을 펼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의 연방준비제도는 아예 민간은행으로 구성된 조직이다.

만일 행정부가 통화정책을 결정하게 된다면, 집권당의 의지에 따라 경기 부양을 위해 과도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중앙은행이 독립적이지 못한 나라의 경우, 그 나라 통화에 대한 신뢰성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그런 면에서는 낙제점에 가까울 것이다.

한국이야 기축 통화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쳐도, 굉장한 야심을 가진 중국의 경우라면 중앙은행의 독립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경우 공산당과 정권의 통제력이 상실된다는 점 때문에 당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장시웨이가 섣불리 대답할 수 없는 문제인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물론 유진은 중국에 그런 정도로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요구할 생각은 없다.

어차피 위안화가 기축 통화 비슷하게 되는 것이 유진에게 필요한 일도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는 중국 당국으로부터 독립된 사설 은행의 설립과 운영이면 충분하다.

중국의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중국 금융시장의 규모는 어느덧 50조 달러로 추산되고 있다.

채권 시장만 20조 달러 규모인데, 이중 외국계 자본은 겨우 3.5%에 불과한 수준이다.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을 생각한다면, 월스트리트로서는 놓치기 아쉬운 시장이다.

물론 유진 자신에게 있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가 말해 온 것처럼 장시웨이의 위쪽에 있는 누군가 또한 적당한 배분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지금까지처럼 비자금이라는 불법적인 수단이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도 합법적인 투자라는 명목으로 말이다.

그렇게 잠시 후, 고심하던 장시웨이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중국을 돕는 대신, 차라리 순응하고 개방으로부터 얻어지는 이익을 공유하자 말하고 있었다.

어쩌면 궁지에 몰린 자신의 주군으로서는 납득할 만한 조건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전에 먼저 계산할 게 하나 있더군요.”

그렇게 잘 마무리가 되나 싶던 순간, 유진이 느닷없이 문제를 제시해 왔다.

“네. 말씀하십시오.”

“시베리아 침공이 중국으로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유전을 발견하고, 정당한 채굴권을 지닌 사람에게는 황당할 따름이겠지요?”

중국에게 최선의 방법이 자신임을 설명하고 난 뒤, 유진은 계산서를 디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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