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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274화 (274/363)

274화 협상의 뒤편

기후 문제로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될 나라들 순위에는 늘 서유럽 국가들과 미국 등지가 손에 꼽힌다.

이미 유럽과 미국은 겨울마다 혹한으로 많은 사망자를 내고 있고, 여름이면 가뭄으로 고통받고 있다.

기후 문제에 대해 전 세계적인 대책이 필요한 것은 틀림없는 일이지만, 지금까지 기후 문제를 심각하게 만든 당사자가 다름 아닌 서유럽과 미국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심각하게 불공정한 일일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에서 중국은 나름의 기후 대책을 마련하면서도, 서구 국가에서 원하는 수준의 대책에는 동참하지 않고 있었다.

다른 나라들이 늦어도 2050년까지는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고 목표를 밝힌 데 비해, 중국은 2060년으로 늦춰 잡고 있으며, 그마저도 사실 난망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번 협상을 통해 중국은 미국 수준으로 탄소세를 빠르게 도입하는 등 적극적으로 탄소배출 저감에 노력하겠다는 내용을 강제하는 데 성공했다.

사실 화력 발전 대부분을 아직도 석탄에 의존하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였지만, 브라이언 디즈를 비롯한 협상팀은 기어이 요구를 수용시키고 말았다.

“이번 합의로 중국 경제에 상당한 부담이 갈 겁니다.”

사실 경제 논리로도 중국에 전격적인 탄소 정책을 강요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중국의 경제와 금융을 개방시키고 미국의 자본이 지금까지보다 쉽게 들어가게 한다면 유진을 비롯한 월스트리트의 금융자본가들에 있어서는 틀림없이 커다란 이익이 보장되겠지만, 한편으로는 오히려 중국 경제에 날개를 달아 줄 수도 있다는 경계 섞인 시각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유진이 옐리자베타에게 말했듯이, 어떤 정책이 반드시 한쪽에게만 유리하게 흘러가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중국이 70년대에 경제를 개방한 이후로 엄청난 발전을 해 온 것처럼, 언뜻 굴욕적으로 보이는 이번 합의의 결과로 수십 년 뒤의 중국 경제는 오히려 지금보다 훨씬 선진적이고 긍정적인 상태로 바뀔 가능성도 충분하다.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개방된 경제 체제가 중국의 경제에 커다란 활력을 불어넣을 수도 있다는 것은 미국 측 당사자들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경제의 개방과 함께 기후 문제에 대한 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앞으로가 상당히 기대되고 있습니다. 중국의 경제나 미국의 경제나 이번 합의를 통해 격변하게 될 것은 틀림없으니까요.”

“그렇지요. 중국인들은 상당히 유연한 사고를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 상인들은 수천 년 동안 수많은 고난을 극복해 온 경험이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습니다. 이제 중국은 정상국가로 한 발을 내디딜 것이고, 그들과의 경쟁은 우리 기업들의 몫이겠지요.”

두 사람과의 대화는 시종일관 밝기만 했다.

하지만 이걸로 미국이 완벽한 승리를 거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고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잘 인지하고 있었다.

월리와 브라이언 디즈가 찾아온 날 오후에는 존 브래넌이 보고할 게 있다며 찾아왔다.

그는 평상시와 다름없이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알려 준 뒤에 말을 이었다.

“참! 그리고 CIA 수뇌부로부터 감사의 말을 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CIA라니요?”

유진이 생뚱맞은 소리에 살짝 놀라며 되물었다.

“이번 회담에 도움이 되었다고, 백악관으로부터 좋은 소리를 들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걸 왜 나한테?”

“왕샤오쥔의 증언이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존 브래넌이 웃으며 말했다.

“왕샤오쥔이라면…… 아! 그 중국인 노동자 말씀이로군요?”

연해주에서 정보 수집 활동을 하던 프리랜서가 구해 냈다던 중국인 노동자가 기억났다.

CIA에 연락해서 처리하라 했던 것까지가 유진이 알고 있는 전부이다.

“네.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행이로군요. 그런데 왕샤오쥔의 증언을 중국 측에서 받아들였다는 말인가요?”

회담에 도움이 되었다는 말은, 왕샤오쥔의 증언으로 회담 전에 중국 측을 압박했다는 의미라는 걸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증언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가 든다. 중국 정부에서 얼마든지 부정할 수 있는 사안이니까.

단지 중국이라서가 아니다. 미국이라도 마찬가지이다. 증언이 지니는 의미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왕샤오쥔 한 명이 아닙니다. 다섯 명 정도의 중국인 노동자들로부터의 증언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같은 중국인에게 공격을 당했다는 증언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자신을 공격한 중국인이 중국 인민해방군 소속이라는 사실까지도 확정하고 있었습니다. 전부터 알던 사이였다고 합니다.”

“그건 몰랐던 일이네요.”

“여하튼 그런 증거들로 국제 전범 재판까지 가게 되면, 그렇지 않아도 난처한 중국 수뇌부로서는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되겠지요. 자국민들을 살해해서 전쟁의 빌미로 삼았다는 증거가 나오는 것은 아무래도 지금까지 강조해 온 정당성을 무너트릴 수밖에 없으니까요.”

존 브래넌의 말을 듣고 있으니, 아무래도 미 정부에서 그 일을 계속 숨기고 있다가 중요한 시점에 터트린 모양이다. 그리고 이걸 국제 문제로 삼겠다고 협박이라도 한 모양이지.

사실 정당한 처리방법은 아니다. 정말 정의를 구현하겠다면 공개하고, 중국 정부의 책임을 묻는 쪽이 맞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곳이지, 결코 정의 구현에 목메는 곳은 아니다.

아마 그 협박이라는 것도 정상적인 채널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았으리라는 것은 넉넉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 사람들은 잘 지내고 있습니까?”

“지금은 안전한 제3국에 머무르고 있다고 하더군요. 가슴에 맞은 총상도 어느 정도 회복되었고요.”

“우리 쪽에 고마워하기보다는 직접 그 사람을 구해 낸 사람에게 하는 편이 맞지 않겠어요?”

그 중국인 노동자를 구해 낸 사람은 존 브래넌이 부리고 있는 어떤 프리랜서라 알고 있다.

그러니까 실질적으로 공을 세운 사람은 아직 한 번도 본 적 없는 프리랜서이고, 감사를 받아도 그가 받아야 할 것이다.

“물론 그렇지요. 그저 인사라도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알았습니다. 인사 잘 받았다고 전해 줘요.”

유진도 그 ‘인사’에 담긴 의미를 바로 알아차렸다.

존 브래넌 이후로 CIA 출신 인사들의 리쿠르트는 계속 이어지는 중이다.

대개는 ABC(아메리카 비즈니스 센터)를 통해서, 그리고 일부는 SF재단이나 DF재단을 통해 좋은 일자리를 계속 제공하고 있다.

물론 근무 당시의 정부가 어떤 쪽이었는지와는 관계없이 CIA를 비롯해 미국의 다양한 정부 기관에서 인정받을 만한 경력을 쌓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특채하고 있다.

당연히 급여는 정부 기관에서 종사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고, 업무는 훨씬 더 편한 일들이다.

존 브래넌를 통해 인사를 전했다는 수뇌부의 누군가도 언젠가는 CIA에서 나와 유진이 운영하는 기업이나 재단에서 편안한 노후를 보낼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좀 더 큰 꿈을 그리고 있을지도 모르고.

“그러고 보니 윌리엄이 정치에 관심이 많았었죠?”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CIA 국장들이 모두 존 브래넌처럼 현장 출신인 것은 아니다. 사실 오히려 존의 경력이 튄다 볼 수 있다.

대개는 법무 쪽이나 행정기관에서 커리어를 쌓다가, 대통령의 눈에 들어 중요한 정보기관인 CIA를 통솔하러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당연히 국장들은 대개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정치인에 가깝다 해야 할지도 모른다.

심지어 11대 CIA 국장인 조지 부시는 경력을 잘 살려 마침내 대통령 자리에까지 오르지 않았던가?

“언제고 한 번 인사나 나누었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문제가 되겠지요? 자리에서 물러서면 그때나 인연을 맺을 수 있겠군요.”

“그렇지요. 아무래도.”

유진이 워싱턴의 정계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지니고 있고, 또 아주 많은 친구를 가진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적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아무래도 사적으로 현 CIA 국장과 사교의 자리를 만드는 것은 그다지 좋은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존 브래넌의 전언을 받는 정도라면 상관없다.

유진은 그렇게 미래의 새로운 협력자가 될 사람의 인사를 기분 좋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새로운 플라자 합의 이후로 바쁜 시간이 이어졌다. 새로운 거대한 시장이 활짝 개방되었으니 남보다 빠르게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우선 싱가포르 벤처캐피탈의 수장인 지미 탕을 뉴욕으로 불러들였다.

“오랜만이에요.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보내 주신 전용기 덕분에 편하게 왔습니다. 겨우 스무 명이 오는데, 그 거대한 비행기를 통째로 사용하니 호사가 따로 없더군요.”

최종적으로 무려 10억 달러가 들어간 747 전용기는 일 년에 두어 번 캘리포니아와 뉴욕 사이를 오갈 때 말고는 사용할 일이 드물어, 대개는 자회사 임원들을 부르거나 하는 용도로 주로 쓰이고 있다.

그래도 타 본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니, 10억 달러가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모두 잘 쉬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싱가포르 VC팀을 부른 것은 대표인 지미 탕과 할 이야기가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주요 임원들에게 잠시나마 뉴욕에서의 휴가를 주고, 그간의 공로를 치하하려는 의미도 있었다.

“다들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보너스 덕분에 마음껏 쇼핑할 생각으로 들떠 있지요. 하하.”

“쇼핑하기에는 싱가포르가 오히려 낫지 않나요?”

“그래도 뉴욕에서는 뉴욕만의 맛이 있으니까요. 역시 문화의 중심지는 아직은 뉴욕이 맞습니다. 싱가포르도 상당한 대도시가 맞기는 하지만, 어딘지 갑갑한 면이 있어요. 아무래도 센트럴파크 때문이려나요?”

지미 탕은 유진의 펜트하우스에서 훤하게 내려다보이는 센트럴파크로 눈을 돌렸다.

“그렇지 않아도 220 센트럴파크 사우스의 펜트하우스 한 채 마련해 놓았습니다. 뉴욕 방문 기념의 보너스라 생각해 주세요.”

“그곳이라면…… 1억 달러가 넘을 텐데요? 보너스치고는 너무 과하군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지미 탕의 얼굴에는 미소가 걸리기 시작한다.

“지미가 해 온 일에 비하면 솔직히 사소할 정도입니다. 그러니 편하게 받아들여 주세요.”

유진의 칭찬은 그저 인사치레 정도가 아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지미 탕이 이끄는 VC는 중국 시장에서 놀라울 만큼 커다란 수익을 올려 왔다.

물론 유진의 전폭적인 지원과 그의 미래 지식이 바탕에 있기도 했지만, 지미 탕의 수완 때문에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던 것은 틀림없다.

중국 최대의 딜리버리 어플리케이션 메이퇀을 운영하는 메이퇀뎬핑(美团点评)에서 본 수익은 벤처 업계에서는 아직도 전설적인 투자로 회자될 정도이다.

지미 탕은 15억의 인구를 자랑하는 중국의 배달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메이퇀의 시가총액이 3000억 달러까지 올라갔던 21년에 700억 달러로 엑시트했다.

코로나의 와중에 전 세계 배달 업계가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었을 때이다.

모두들 지금 메이퇀을 포기하는 것은 아깝다고 생각하던 참이었고, 심지어 중국 최대의 석유 기업 페트로차이나의 시가 총액까지 넘어서고 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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