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5화 전설의 벤처 투자자
하지만 그때야말로 최적의 순간이라 판단한 지미 탕은 메이퇀뎬핑의 지분을 쪼개서 몇몇 유력한 투자회사에 넘기고 시장에서 팔아 치워 버렸다.
그 뒤로 미국과의 분쟁이 길어지며, 코로나로 중국 경제가 흔들거리는 와중에 막상 메이퇀의 창업자가 정권의 눈 밖에 나며 주가는 주르르 미끄러져 버렸다.
미래의 기억을 가진 유진으로서도 수십 년 동안 벌어질 모든 기업의 세세한 정보까지는 알고 있지는 못하다.
시장의 주요한 흐름이라든지 몇몇 중요한 기업들을 제외한다면 대략적으로 크게 될 기업이 어떤 기업들인지 알고 있는 정도이다.
그 때문에 유진으로서도 개별 기업들의 피크 타이밍을 정확히 꼬집어 낼 수는 없다.
메이퇀의 경우는 온전히 지미 탕과 그의 팀의 수완이라 보아도 좋았다.
언제고 엑시트할 생각은 있었지만, 하필 21년이 피크가 될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유진은 지미 탕과 같은 능력 있는 사람들을 우대하고, 더 많은 인재를 끌어오기 위해 돈을 뿌리는 것에 아끼지 않고 있다.
지미 탕의 수완이 증명된 것은 메이퇀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미국의 기업들에 비해서는 그다지 확실한 기억이 없는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의 기업들에 대한 투자는 지미의 선택을 존중해 왔었고, 그 신뢰는 결과로서 보답받았다.
중국의 우버인 디디추싱은 홍콩에서 상장해서 한때 주가가 1600억 달러까지 올라갔었다. 여기서도 수백억 달러의 수익을 냈다.
틱톡을 운영하는 바이트댄스에서도 상당한 수익을 올렸다.
아직도 상장하지 않고 있지만, 이미 몇 년 동안 SNS계의 폭풍의 눈으로 자리 잡은 틱톡은 월 이용자 수가 18억 명에 달하며 페이스북을 넘는 세계 최고의 SNS 기업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그러니 운영사인 바이트댄스에 투자를 원하는 사람은 많았고, 한때 회사의 가치는 최하 4,000억 달러까지 평가받았으며, 중국이 전쟁에 돌입한 지금도 여전히 최하 3,000억 달러 상당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지미 탕은 26%에 달하는 바이트댄스의 지분을 1,000억 달러를 상회하는 금액으로 몇몇 투자회사에 넘겨 버렸다.
확실히 센스가 있는 사람이다. 단순히 유진이 이제 처분할 시기가 왔다는 시그널을 주면, 지미는 최선의 가격으로 팔아넘길 곳을 찾아냈다.
이 외에도 시가총액이 2,800억 달러에 달하는 세계 최대의 배터리 제조사인 CATL에서도 700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으며, 세계 제일의 드론 브랜드인 DJI, 틱톡에 이은 중국 내 숏폼 SNS 콰이쇼우 등 수십여 개의 주요 스타트업에서 지난 6년 동안 모두 5,000억 달러에 달하는 수익을 올렸다.
중국 최대의 주류 기업인 구이저우 마오타이(贵州茅台酒)와 우량예(五粮液) 등의 기업에서도 수천억 달러의 수익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중국에서의 투자는 온전히 지미탕의 힘이라고 볼 수는 없다.
서구 국가들과 달리 중국에서의 투자는 온갖 규제와 보이지 않는 무형의 규제가 공존하고 있어, 돈만 있다고 원하는 기업의 지분을 손에 넣을 수는 없다.
특히 미래가 유망한 기업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 때문에 유진이 지닌 중국 정권 내부의 네트워크를 통해 얻어지는 정보도 그런 수익에 적지 않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같은 정보로 최선의 수익을 내는 데에는 역시 지미 같은 뛰어난 통찰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지난 몇 년 동안, 그러니까 미국과 중국 사이의 무역 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유진은 중국 시장에서만 엄청난 액수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수익의 상당 부분은 중국 권력층의 지분이었으니, 실질적으로 유진이 올린 수익은 세금을 제외하면 대략 절반 정도에 달할 것이다.
그렇다 쳐도 지금까지 적지 않은, 그러니까 미국을 제외한 국가에서 올린 수익으로는 단연 선두의 자리를 거둔 것이 사실이다.
덕분에 싱가폴에 근거지를 둔 지미 탕의 벤처캐피탈 직원들은 지난 몇 년 동안 돈벼락을 맞았다.
지미탕만 해도 월가에서도 손꼽힐 정도의 성과급을 매년 챙길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지금의 VC에는 적어도 열 명이 넘는 억만장자와 수십 명의 천만장자가 근무하고 있는 희대의 부자 회사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다행히도 싱가폴의 소득세는 최고 22%에 불과해 VC의 직원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한 실질 소득을 누릴 수 있는 중이다.
하지만 중국과 미국의 무역 분쟁이 시작되면서 중국의 투자를 정리하고 나서는 일거리가 절반 이상으로 줄었다.
정확히는 1/3까지 쪼그라든 셈이다. 아시아의 벤처캐피탈 업계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지분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도 다양한 신흥 기업들이 출현하고 있지만, 그 규모 면에서나 장래성 면에서 역시 중국만큼의 성장 가능성은 기대하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코로나 이후로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벤처기업에 몰리던 돈도 썰물처럼 사라져 버려, 미래가치가 충분한 기업들조차도 제대로 된 주목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 때문인지, 아니면 그동안 충분히 돈을 벌었다고 생각했는지 초기 직원 중 1/3가량이 회사를 떠났다.
“사실 저도 이제 슬슬 은퇴를 준비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지미가 은퇴하면 난 큰일이게요.”
“하지만 대단한 수익도 내지 못하면서 거액의 연봉을 받아 챙기는 게 미안해서요. 하하!”
사실 벤처 업계는 이 시점에서 최악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각국 정부가 금리를 인상하며 유휴 자금이 싹 사라져 버린 탓이 크다.
가장 많은 벤처 자금이 몰리는 미국이 그럴진대, 아시아는 말할 필요도 없다.
심지어 기존에 벤처기업에 투자했던 곳 중에서 약간이라도 평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면 지분을 처분하겠다는 엔젤 투자자나 기업들이 한둘이 아니다.
덕분에 그나마 유진이 소유하고 있던 벤처캐피탈들이 그런 지분을 거두어들이느라 나름 바쁘게 협상장에 나서며, 알찬 쇼핑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제 쉬는 시간은 끝났습니다.”
“역시 중국인가요?”
역시 지미 탕쯤 되면 척하면 착하고 알아듣는다.
“이번 협상이 이루어지는 동안 아주 큰 기대를 갖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미 탕이 씩 웃으며 말했다.
“미국 측이 제법 쓸 만한 결과를 이루어 냈더군요.”
“잘된 일이지요.”
“그렇죠. 중국의 기업 규제가 줄어들어 기업 활동의 위험성이 줄어든다는 것만으로도 증시가 들썩이고 있으니까요.”
중국 기업들이 가진 가장 큰 문제는 늘 기업 자체가 아닌 외부에 있었다.
정권의 심기를 거스르면 아무리 큰 기업이라도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으니, 투자자로서는 늘 불안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세계적인 기업가가 하루아침에 자신이 세운 기업에서 쫓겨나고 정권의 입맛에 맞는 경영인이 기업을 운영하게 되니, 투자자로서는 그만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앞으로는 많은 것들이 달라질 겁니다.”
“그렇죠. 사실 우리도 그동안 제법 장래가 유망한 기업들을 꽤 물색해 놓았습니다.”
한동안 쉬었다고는 해도, 정말로 놀고 있던 것은 아니다.
싱가폴에서 홍콩과 심천, 상하이, 북경을 오가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한 다양한 스타트업들을 찾아온 것이 지미 탕의 직원들이다.
거기에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말레이시아와 태국, 인도네시아 등지의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도 동시에 진행했다.
코로나 이후로 가장 많은 투자를 거행한 곳이 아마도 지미 탕의 VC일 것이다.
“중국의 상황이 바뀌었으니, 아시아의 헤드쿼터 또한 위치를 바꿀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흠. 역시 상하이겠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중국 정부가 태도를 바꾼다면 역시 상하이가 맞다고 생각합니다.”
지미 탕이 흔쾌히 동의했다. 상하이는 지역적으로 중국의 북부인 북경과 남부인 심천, 광저우, 홍콩 경제권의 중심에 위치해서 전국적인 사업을 하기 적당하다.
한편으로는 대한민국의 서울까지도 비행기로 겨우 두 시간 거리이고, 동경까지도 세 시간 반이면 갈 수 있다. 동북아에서 사업을 하기에는 가장 알맞은 곳이다.
“싱가포르는 브랜치가 되겠군요.”
“적당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사람이야 충분히 많지요. 그동안 좋은 실적을 올린 바수키나 왕 둘 중 한 명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동양인을 후임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시아에서 일하기에는 역시 아시아 사람인 쪽이 나은 것은 분명하다.
“알겠습니다. 후임 인선은 지미가 알아서 해 주시고, 우선은 상하이에 사무실을 내는 문제에 집중해 주셨으면 좋겠군요.”
“미국과 중국의 협상이 마무리되면서 새롭게 수십조 달러의 시장이 열렸으니, 이번에도 누구보다 빠르게 선점하려면 당장 사무실부터 열어야 하겠죠.”
지미 탕은 당장이라도 상하이로 날아갈 생각으로 몸을 움찔거렸다.
“서두르시라는 건 아닙니다. 우선 그쪽으로 체계를 바꾸는 작업부터 하자는 거죠.”
“하기는 협상이 끝났다고 해서 당장 하루아침에 중국 내 기업 운영의 관행이 바뀌는 것은 아니니까요.”
“한 국가의 체제가 바뀌는 데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중국의 금융 시장과 기업 시장에 탐을 내는 월스트리트의 다른 기관들도 처음부터 뛰어들지는 못할 겁니다. 아무리 빠르게 움직여도 우리보다는 늦을 겁니다.”
“뭐. 사실 중국 정부가 협상의 내용을 얼마나 충실하게 따라줄지 확신하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요. 더군다나 중앙 정부의 정책이 그렇다 해도, 각 지방 정부가 그 시책에 따르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기도 하니까요.”
지미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짚어 나갔다.
“맞습니다. 사실 중국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 중 하나는 나라가 너무 크다는 사실 아니겠습니까?”
유진도 지미의 의견에 동의했다.
중국은 베이징과 상하이를 비롯한 4개의 직할시와 22개의 성, 그리고 5개 자치구와 홍콩과 마카오 두 개의 특별행정구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런 지방 행정구역들은 각기 어지간한 국가 수준의 영토와 주민이 살아가고 있다.
“그 거대함이 지금의 중국의 경제 성장을 이루는 원동력이 되어 왔지만, 한편으로는 아찔할 정도의 약점을 숨기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요.”
지난 몇 년 동안 수많은 중국의 스타트업과 중견 기업들에 투자를 이어 오며 중국의 지방 행정조직이 내재하고 있는 수많은 문제점을 직접 느껴 왔기에 할 수 있는 말일 것이다.
“여하튼 덕분에 다시 활력이 솟는군요.”
어느덧 환갑을 바라보는 지미 탕의 눈은 새로운 장난감을 마주한 10대 소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조금 전에 은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역시 흰소리에 불과했다.
“얼마나 오래 살지는 모르지만, 죽을 때까지 중국의 모든 유망한 신생 기업들을 싹 쓸어 보스한테 드리지요.”
“하하! 아무래도 적어도 40년은 더 일하셔야겠어요.”
“어이쿠! 백 살까지 일하라는 말씀이신가요? 참으로 무서운 분이네요. 하하.”
유진과 지미 탕이 서로를 보며 기대감 섞인 웃음을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