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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276화 (276/363)

276화 므두셀라 초파리와 장수연구소

“백 살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앞으로 의학 발전을 보면 딱 백 살에 은퇴하시고, 여가를 즐기시면 될 것 같더군요.”

유진은 아무렇지도 않게 진심이라는 듯 말했다.

사실 미국 투자계의 거물들은 장수하면서 아주 오랫동안 정력적으로 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90살이 넘어서도 의욕적으로 버크셔 해서웨이를 이끌고 있는 워런 버핏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나이인 소지 소로스 또한 사실상 현역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퀀트 펀드인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스를 창업한 짐 사이먼스도 펀드 매니저는 은퇴했지만, 80대 중반의 나이로 여전히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심지어 워런 버핏의 오른팔로 유명한 찰스 멍거는 올해 무려 99살로 여전히 매스컴에 등장해 의욕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물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투자자들도 있겠지만, 희한하게도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 오고, 거액의 자산을 쌓아 둔 대형 투자자들 가운데에는 그렇게 장수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어쩌면 그들이 지닌 부 때문일 수도 있고, 나이가 들어서도 끊임없는 자기 관리를 멈추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의학의 발전이라. 참 좋은 말이지요. 한데 과연 그 발전 속도가 충분해 내 세대에서 혜택을 볼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음.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의학의 발전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으니, 최대한 버티면 어쩌면 우리는 150살이나 200살까지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요.”

“누군가가 그랬죠? 앞으로 30년만 더 버티면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했었나요?”

의학 발전이 인간의 수명을 늘리는 것에 대해서는 장밋빛 전망과 부정적인 시각이 혼재하고 있다.

그리고 유진은 적어도 암이나 치매 같이 인간의 건강과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은 충분한 돈으로 치유되는 세상을 직접 눈으로 겪어 왔다.

1998년 캘리포니아공대의 연구자들은 초파리의 게놈(유전체)에서 수명을 늘릴 수 있는 돌연변이 므두셀라 유전자를 발견했다.

초파리에 한정해서지만, 정상 유전자를 지닌 파리보다 평균 35% 더 오래 살 방법을 찾아낸 것은 수명 연구에 큰 획을 긋는 일이었다.

그 뒤로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전 세계 수많은 연구 기관에서는 인간의 수명을 늘리기 위한 다양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물론 아직은 직접적으로 인간의 수명을 늘릴 방법을 찾아내지는 못하고 있다.

한 세대가 겨우 보름에 불과한 초파리를 대상으로 하는 것과 80년 이상을 사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직 노화를 막을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은 발견되지 않고 있지만, 점점 더 많은 연구팀이 수명 연장의 비밀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미 캘리포니아 대학 연구팀은 그동안 발전된 미세유체공학과 컴퓨터 모델링을 비롯한 여러 기술을 사용해 노화 과정을 조절하고 궁극적으로 이를 최적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는 데까지 이르렀다.

노화의 효과적인 지연과 건강수명 연장을 위한 약물 개발이 성큼 다가왔다는 평가이다.

거기에 세계 유수의 제약 기업들은 암이나 치매, 당뇨, 고혈압 등에 기존보다 효과적인 약품을 계속해서 발명해 내고 있다.

벤처 캐피탈 업계에서 수십 년을 종사해 온 경험 덕분에 그런 기술의 발전을 누구보다도 직접적으로 접해 온 지미 탕이기에, 이제 환갑의 나이에 다다른 자신도 어쩌면 이런 과학 기술의 발전 덕을 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하. 그 정도는 모르지만, 30년쯤 뒤면 적어도 지금보다 평균 수명이 20년은 늘지 않을까요?”

앞으로 수십 년 내로 수십만 년 동안 인류를 괴롭혀 온 이런 질병들은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다 해도, 지금보다 훨씬 덜 고통스럽게 될 것을 유진은 알고 있다.

아마도 지미 탕의 여생은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는 더 길게 갈 것이다.

세계적 부자들은 그런 새로운 노화 지연 기술의 혜택을 보기 위해 아무리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해도 그리 부담 없이 내놓을 수 있다.

슬프게도 앞으로 30년이 지난 뒤에도 최첨단 의료 기술의 혜택은 늘 주머니가 풍족한 사람들에게 먼저 돌아가기 마련이다.

“중국의 생명과학 분야 발전 속도도 상당한 수준이더군요.”

“그렇다고 하더군요. 마침 상하이 쪽에서 유망한 세포 치료제나 유전자 치료제 개발 업체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어느덧 다시 투자로 돌아가고 있었다. 유진이나 지미 탕이나 뼛속까지 투자자로서의 정체성을 내려놓지 못하는 이들이었다.

“몇 년 내로 중국의 바이오 의약품 매출액이 10조 위안, 그러니까 1조 5,000억 달러에 달할 거라고 합니다. 적당한 기업을 찾아낸다면 그 방면으로만 지금까지의 수익 이상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은퇴 이야기를 하던 지미 탕은 투자 이야기가 나오기 무섭게, 그동안 축적해 두었던 유망한 기업들에 대해 거침없이 꺼내 놓는다.

“참 좋은 기회입니다. 사실 중국에는 아직도 유망한 기업들이 잔뜩 있는데, 지금까지는 단순히 기업의 장래성만으로 투자하기에는 문제가 많았단 말이지요.”

“역시 그게 가장 큰 문제이지요.”

중국에서는 아무리 대단한 기업이 있어도, 정권과의 친밀도와 정권에서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기업의 미래가 하루아침에 바뀌고는 한다.

중국만이 아니라 권위주의 정권이 서 있는 나라라면 사실 대개 비슷하다.

정권 최고위층이나 지방정권 지도부의 마음대로 지원을 결정하고, 또 살생부를 만들어 기업가들을 사법 처리하는 나라에서 기업의 가치는 단순히 그 기업이 지닌 내재적인 면으로 판단할 수 없다.

바로 이런 면 때문에 이번 합의는 서구의 투자자들에게 중국 시장을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매력 있는 투자처로 만들어 줄 것으로 보였다.

물론 이제 겨우 합의문에 서명한 단계인지라, 월스트리트의 투자자들은 아직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한 상태이다.

“하지만 이번 합의가 제대로 이행된다면, 서구의 기업들처럼 순수하게 미래가치와 수익성만으로 투자를 결정할 수 있게 됩니다.”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중국의 산업 기술은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빠르게 발전할 수 있을 겁니다.”

경직된 관료제로 인해 급변하는 기술과 경영에 브레이크를 거는 일이 없다면, 중국의 벤처기업들이 지금보다 빠르고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은 명확했다.

“그런 의미에서 몇 곳을 골라 보았습니다.”

유진은 세계 각지의 VC 팀에서 매주 작성에 올리는 보고서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숙독하고 있다.

그야말로 미래의 금맥이라 할 스타트업들을 모아 놓은 귀한 서류인데 조금이라도 소홀할 수는 없다.

“전부 의약 관련 기업들이로군요?”

유진이 내민 서류를 훑어보고 난 지미가 말했다.

“꽤 비전이 있어 보이는 기업들이로군요. 본사를 상하이로 이전하는 기념으로 삼기에 좋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오랜만에 의욕이 솟는군요.”

미래에 중국 15억 인민들의 의약품을 책임지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글로벌한 의약 기업으로 발전할 다섯 곳의 명단을 내려보며 지미도 좋아한다.

유진은 그렇게 차근차근 중국의 미래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 있었다.

* * *

며칠 뒤, 유진은 존 브래넌을 불러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지난번에 부탁드렸던 게 있었지요?”

“권력에 맞서는 이들 중에 부당한 박해를 받는 사람들을 평화적, 재정적, 합법적인 수단으로 지원하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하셨죠.”

존 브래넌 아래에서 일하는 프리랜서가 옐리자베타의 러시아 탈출을 부탁해 온 일이 있었을 때, 유진은 존에게 그녀처럼 국가나 사회의 박해를 받는 사람들을 지원할 방법을 마련해 보라는 지시를 내렸었다.

“그렇지 않아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방법론의 문제이지, 당장이라도 일을 시작할 수는 있습니다. 재정적 지원이라면 언제라도 가능하고, 물리적 방법을 동원한다면 역시 미국이나 제3국으로 이주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거지요.”

옐리자베타의 경우처럼 약간의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야 하기에 최소한도의 위험은 감수해야 하는 모양이지만, 존 브래넌의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회사에서 책임을 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혹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 건가요?”

“정확하게 말하자면 특정한 사람은 아닙니다.”

“특정한 사람이 아니란 말은? 어떤 집단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비슷합니다. 어떤 연구 기관에 종사하는 사람들 가운데 일부를 원합니다.”

존은 어떤 연구 기관인지 묻는 대신 유진의 말을 기다렸다.

“노스 코리아에 Longevity Research Institute(장수연구소)라는 연구 기관이 있습니다.”

“장수연구소요?”

CIA국장으로 있는 동안 수많은 정보를 접해 왔고, 지금도 세계 제일의 민간 정보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존 브래넌이라 해도 세계 곳곳의 모든 일을 전부 머리에 넣고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네. 평양에 있는 의약학 분야의 연구 기관입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그곳은 글자 그대로 장수에 관한 연구를 하는 곳인가요?”

“맞습니다. 그것도 한 사람만을 위한 연구소이지요. 2,000여 명에 달하는 연구원들이 말이에요.”

북한, 그것도 평양에 있는 기관이니 그 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호오…….”

존 브래넌이 흥미를 보인다.

“공산당의 최고위층 간부들만 이용할 수 있는 봉화산 병원과 연결되어 수명 연장을 위한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런 기관의 연구자라? 그쪽에서 연구하고 있는 내용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이겠군요?”

존은 조금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북한의 기술력이라면 핵이나 생화학분야에 관련되지 않는 이상 유진이 필요로 한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북한의 의학은 물론 기초적인 면에서 서구의 의학 연구 기관과 비교해 무척 낙후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지요. 하지만 몇몇 분야에서만큼은 서구의 의학 연구 기관에 비해 월등한 성과를 올리는 것도 있다더군요.”

“설마?”

브래넌은 유진의 말 속에 숨겨진 섬뜩한 의미를 알아차렸다.

“민주 세계의 연구 기관들은 연구 윤리를 따라야 하기에 결코 손을 대지 못할 연구들이 종종 있지요. 하지만 그곳에서는 아닌 모양입니다.”

“하기는…… 북한에서 인권이란 것은 존재할 수 없으니까요.”

“요즈음은 웬만한 학술 자료는 인터넷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러시아와 중국은 여전히 북한에 여러 가지 편의를 봐 주고 있고요.”

“그렇죠.”

“장수연구소에는 이미 70년대부터 서구의 유력 연구소 못지않은 장비를 갖추고, 북한 최고의 인재들을 모아 러시아와 중국에서의 유학 등으로 얻은 학술 자료들을 토대로 인간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연구에 어마어마한 자금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심지어 서구에서처럼 인권에 대한 개념도 없으니 그 어떤 실험이라도 마음껏 자행하면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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