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화 황금광시대
문제는 그 선거 자금의 상당수가 민주당 쪽으로 몰려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미 지난 선거에서부터 큰손들은 트럼프에게 보내는 지지를 접었다. 그들의 목표가 분노한 서민층과 같을 수 없으니 당연한 일이리라.
한편 지금까지 공화당 최대의 지지자였던 코크 형제는 처음부터 트럼프와 사이가 좋지 않더니, 지난 선거에서는 아예 바이든 쪽으로 돌아서 버렸다.
이제 트럼프의 손을 들어 줄 만한 큰 손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러니 도널드의 선거팀이 기댈 곳은 큰손들이 아니라 남부의 레드넥들이나 북부의 망가져 버린 공업지대 노동자들이 십시일반으로 보내 오는 몇 푼 되지 않는 후원금뿐이었다.
그나마 유진이 적지 않은 자금을 대 주고 있어 미디어에 광고를 내보낼 수는 있지만, 한 사람이 도울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슈퍼팩 정도이다.
그러니 정작 유세 비용 따위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도널드는 눈물을 머금고 자신의 주머닛돈을 털어야 했다.
“물론 도널드는 국가로부터 충분한 경의를 받을 만한 위인입니다. 그리고 좋은 친구의 어려움을 외면한다면 그건 친구라고 할 수 없겠지요.”
유진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내가 받을 대가가 무언가?”
“아마 당분간은 세계 경제에 큰 이벤트는 일어나지 않을 걸로 보입니다. 경기 침체의 여파가 아직 1년은 남은 듯하더군요. 그리고 그 뒤부터는 다시 날아오르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유진은 손을 쭉 펴서 위로 솟구치는 손짓을 한다.
“특히 중국과의 무역 분쟁이 마무리되면 중국 경제에서 시작되는 성장 기류가 세계 경제에 훈풍을 불러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도널드의 비어 버린 주머니도 다시 두둑해질 테고요.”
유진은 도널드가 원하던 것을 내어주겠다는 심사를 드러냈다.
잠시 두 사람은 유진의 F0 펀드에 트럼프 일가의 추가 투자를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해 치열하게 논의했다.
유진이 가진 가장 큰 무기는 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투자 수익률을 자랑하는 펀드에 얼마큼의 투자를 받아 줄 것인지 결정하는 것이다.
1억 달러를 넣으면 매년 적어도 30% 이상, 많으면 100%에 가까운 수익을 올리고 있는 F0 펀드에는 도널드 일가를 비롯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자금이 들어와 있다.
그리고 그들은 매년 자신의 자산이 안전하게, 그리고 충분히 만족스러울 정도로 늘어나는 것을 지켜볼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영향력 있는 사람이라 해도 한 사람당 투자 한도는 정해져 있다.
유진의 부탁을 들어준다면 그들의 한도는 늘어날 것이고, 유진이 불편해한다면 그 한도는 줄어들 것이다.
명백하게 정치와 경제의 유착으로 볼 수 있지만, 그 어떤 나라의 법률로도 처벌할 수 없는 사적인 투자 거래에 불과하다.
영향력 면에서 여전히 세계 최상위권인 트럼프 일가는 당연히 가장 높은 한도를 꽉꽉 채워 넣은 상태였다.
그리고 이날 유진은 선거가 끝나면 도널드 일가의 투자 한도를 지금의 두 배까지 늘려 주겠다는 당근을 던졌다. 물론 선거의 패배에 대한 위로금 명목이다.
“역시 자네는 좋은 친구로군.”
“도널드도 좋은 친구라 믿고 있습니다.”
“물론이지. 나만큼 믿을 만한 사람이 또 어디 있겠나?”
유진의 약속이 있고서야 도널드는 사명을 완수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도널드가 진심으로 이번 선거를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음 한편으로는 16년도에 있던 것처럼 멋진 역전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선거판이라는 것이 늘 여론조사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트럼프 그 자신이 증명했던 것처럼, 이번 선거에서도 여론조사와는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충분하다 보고 있었다.
만일 트럼프가 진정으로 패배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면, 아무리 대가가 보장되었다 해도 지금처럼 열정적으로 선거에 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도널드는 2016년이나 2020년 이상으로 열심히 유세장을 돌아다니고, 공격적인 발언을 내뱉고 있었다.
한편으론 지난 선거에서의 뼈아픈 패배를 잊지 못한 트럼프의 열렬한 신자들이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교주의 말을 세상에 퍼트리고 있기도 했다.
역대 그 어떤 정치인보다 열렬한 지지자를 가지고 있는 도널드는 여전히 미국 정치계에 거대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음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반대로 패배했을 때에도 이익을 볼 방법을 찾고 있었다.
트럼프는 결코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다. 유진이 민주당 정권을 원한다는 사실을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유진뿐 아니라 월스트리트 금융가들 대부분이 민주당의 손을 들어 주고 있다.
민주당에서 내놓는 정책들이 그들의 주머니를 더욱 두둑하게 만들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혹시 모를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일으킬 수도 있는 새로운 얼굴에게 자리를 넘기지 않고 자신이 공화당 후보로 나서는 것에 대해 대가를 원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시 중국이라는 말이지?”
트럼프는 유진이 잠시 흘린 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계 최고의 투자 전문가로부터 한마디라도 들을 수 있다면, 그 대가가 얼마이든 지불하겠다는 사람이 뉴욕시를 가득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투자 분야에서 지금까지 유진이 이룩한 업적은 역사상 그 누구도 비견되기 어려울 정도이다.
투자에 있어 유진의 말 한마디는 곧 성서와도 같다고 생각될 정도이다.
물론 유진과 독대하고 그의 충고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소수에 불과하고, 트럼프는 그 극소수에 포함되는 사람이었다.
“이번 합의로 중국도 미국도 아주 많은 것을 얻어 낼 수 있을 겁니다.”
“그래. 맞는 말이야. 중국 시장에 투자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어.”
얻어 낼 것을 얻어 낸 도널드는 다시 새로운 이익을 가져다줄 정보에 눈을 돌렸다.
유진을 통한 안전한 투자 말고도 자기 스스로 투자를 해 볼 모양인 듯했다.
“사실 이번 합의에서 가장 큰 의미가 있는 것은 금융시장의 개방이지요. 도널드도 알다시피 중국의 금융시장이 이제 거의 미국에 비견될 만큼 커지지 않았습니까?”
“그렇다고 하더군.”
“그 거대한 시장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말하자면 새로운 골드러시의 시작이라 보아도 될 겁니다.”
“골드러시라! 좋은 어감이로군.”
“월스트리트에서는 현재의 중국 금융시장 규모를 적어도 50조 달러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흐음…….”
유진의 입에서 나온 단위가 상상을 초월하는지, 도널드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
“하지만 지금까지 중국의 금융시장은 그 난해한 구조와 정부의 비시장적인 규제로 위험성이 높았습니다. 이번 합의로 그런 장애물들이 사라진다면 중국을 향한 투자는 물밀 듯이 몰릴 겁니다. 월스트리트의 자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그 50조 달러가 언제 두 배로 늘어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요.”
두 배라는 말에 도널드의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간다. 거기에서 얼마나 커다란 수익을 볼 수 있을지 단순한 계산만으로도 흥이 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어느 쪽에 투자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겠는가?”
이미 물꼬를 튼 이상, 트럼프는 거침없이 유진의 사업 기밀을 물어 온다.
“역시 개인적인 투자라면 사모펀드 쪽이겠지요. 중국의 사모펀드 시장 규모는 지난해에 이미 3조 달러에 달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규모입니다. 사모펀드 운용사만 2만 5,000개를 넘어서고 있지요. 중국의 경제 규모를 생각하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앞으로의 시장성을 생각한다면 가장 빠르게 성장할 분야라는 의미니까요.”
유진은 선선히 비밀을 알려 준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까지 중국 정부가 다른 금융기관과 마찬가지로 이런 사모펀드 분야까지도 강력한 규제 일변도의 정책을 해 오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21년도에는 사모펀드의 부동산 사업를 막는 조치를 시행했고, 다른 분야에서도 다양한 규제 방안을 통해 사모펀드의 성장을 막아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합의를 통해 그런 규제를 막아섰다는 말이로군.”
여든 살을 눈앞에 두고 있었지만, 여전히 트럼프는 계산에 밝은 사람이다.
“우선은 그렇게 보입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총론이고, 각론으로 들어간다면 매우 복잡해지겠지요. 어떤 분야의 사모펀드가 유망한지는 또 보는 면에 따라 달라질 겁니다. 하지만 우선은 에너지와 환경 분야가 가장 눈에 들어오더군요.”
“에너지와 환경이라…….”
도널드는 열심히 유진이 하는 말을 머릿속에 쑤셔 넣고 있었다.
유진을 통해서 하는 투자는 한도가 정해져 있으니, 남은 돈을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해야 했다.
도널드와의 만남은 그러고도 한 시간가량 더 이어졌다.
유진은 성심껏 도널드에게 중국의 미래에 관해 설명해 주었고, 유망한 분야를 소개했다.
물론 어느 기업이나 어느 펀드가 유망한지는 말하지 않는다.
사실 정말로 유망한 기업이나 펀드는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으니 해 줄 말도 없다.
하나 그것만으로도 도널드는 꽤 만족한 모양이다.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자들이 월스트리트의 금융가를 증오하고 그 반대에 서 있는 인물이라 생각해 도널드를 선택한 것과 달리, 정작 도널드 자신은 월스트리트의 금융가들과 꽤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 도널드의 사업 성공은 그런 월가의 투자자들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도 트럼트의 지지자들에게는 그런 것은 큰 문제도 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우습고 아이러니한 일이다.
도널드는 이제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 유진에게 들은 정보를 기반으로 중국의 사모펀드에 투자할 생각인 듯 보였다.
그리고 그건 유진이 귀한 시간을 써 가면서 도널드에게 그러한 정보를 친절하게 강의한 이유이기도 하다.
중국의 사모펀드는 틀림없이 앞으로 몇 년 동안 엄청나게 성장할 것이다. 새로운 황금광이라는 표현이 오히려 모자랄 정도이다.
그러나 그런 사모펀드 중 얼마나 많은 펀드가 성공하게 될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오직 한 명, 유진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유진의 개입으로 많은 것들이 바뀌었지만, 유진은 여전히 어떤 창업자가 놀라운 비전을 지니고 있고, 어떤 기업이 효과적으로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지 기억하고 있다.
여전히 유진이 지닌 가장 큰 장점은 유효하다.
이를 활용해 중국 시장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더 많은 투자자가 시장에 들어오는 것이 필요하다.
마치 20세기 후반 IT 버블이 생겨날 때처럼 더 많은 이들이 중국 시장에 뛰어들수록 유진이 거둬들일 이익도 늘어날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유진은 그들을 유혹할 만큼 향기로운 꿀이 발라진 사과를 꺼내 들었다.
어쩌면 그 사과에는 치명적인 독이 섞여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저 그걸 소개만 해 준 유진으로서야 무슨 책임 따위를 질 이유는 없는 일이다.
“중국 채권 시장도 아주 유망합니다. 무려 20조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시장이지요. 하지만 그중 외국계 자본은 겨우 4% 수준에 불과합니다. 전 이 시장도 몇 년 이내에 두 배 이상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유진은 그 외에도 서로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꺼내 놓았다.
사실 유진을 만나는 사람 중 투자에 대한 정보를 원하는 사람은 도널드 한 사람뿐인 것은 아니다.
그리고 유진은 자신의 로드맵에 따라 각각 적절한 정보를 누설하고 있다.
물론 개별적인 종목을 말하는 일은 없다. 투자의 대가인 유진에게 들은 이런 지엽적인 정보들을 들은 이들은 그를 토대로 각기 판단해 투자에 뛰어들게 된다.
물론 그들이 그런 정보로 유진만큼의 수익을 올리지는 못한다. 아니, 오히려 손실을 보는 경우도 종종 있다.
투자라는 것이 대개 그렇다. 경기의 성향을 안다고 모두가 성공을 거두지는 못한다. 진짜 중요한 것은 각론이다.
IT 버블이 터질 때도, 그리고 금융위기가 왔을 때도 사실 아주 많은 이들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그 사태에서 돈을 번 사람은 아주 소수에 불과하다.
중국에 대한 투자로 제대로 수익을 낼 사람도 생각처럼 많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