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3화 정치인의 숙명
강남 아파트 평균 시세는 평당 1억, 그리고 서울 비강남권은 평당 7,000만 원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을 정도로 부동산 시세가 치솟아 올랐다.
평균이 그 정도이고, 더 비싼 곳도 얼마든지 있다.
“통화가 너무 많이 공급되면 주가고 부동산이고 오르기 마련이지요.”
“코로나가 남긴 상처가 컸습니다.”
코로나가 전 세계를 위협하는 2년 동안 대한민국 정부도 미국이나 유럽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돈을 풀었다.
생존의 위기에 몰린 자영업자들과 취약 계층을 구제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렇게 풀린 돈은 다시 돌고 돌아 부동산과 주식 시장으로 유입되었다.
하필이면 유진이 이미 5,000억 달러를 공급해 흘러넘치던 자금이 이미 주식과 부동산을 충분히 올려놓은 뒤에 말이다.
그로 인해 대한민국의 주가와 부동산은 마치 오늘이 제일 싼 날이라는 듯 하루가 다르게 상승했다.
2020년 주가가 피크에 오르고 있을 때, 한국 주식 시장의 시가총액 합계는 3조 5,000억 달러에 달하고 있어 영국을 바짝 뒤쫓고, 스페인과 이탈리아 두 나라의 시총을 합한 것보다 오히려 큰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불과 2년도 안 되는 시간 사이에 2조 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으로 떨어져 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저와 전혀 상관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유진이 자신의 책임을 거론했다.
“글쎄요. 이미 전문가들은 아파트와 주가에 끼어있는 버블을 3년 전부터 경고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부동산은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을 거라고 경고를 해 왔어요.”
“탐욕이라는 게 그런 거지요. 지금 안 사면 나만 손해 볼 것 같다는 생각이 늘 가장 무서운 법이니까요.”
비트코인이 꼭대기에서 터지기 직전에 뛰어든 사람들의 심정이 그랬을 것이다.
오늘 안 사면 내일은 더 비싸. 나만 뒤처지면 손해야.
그런 생각은 어떤 자산 시장에라도 만연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사람들 대부분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바로 버블이 충분히 팽창한 순간이라는 것이다.
그때부터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거대한 풍선에 둘러앉아 서로 바람을 집어넣으며 터지기를 기다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미국에서 시작된 경기 하락은 한국에도 영향을 미쳤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중국과의 전쟁 등으로 인해 유발된 불황은 한국이라고 피해 갈 도리가 없었다.
주식 시장은 1년 사이 30%가 떨어졌고, 부동산은 벌써 절반 이하로 하락한 곳도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 하락의 시기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누구도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니. 단 한 사람, 유진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이미 유진의 한국 투자는 투자한 돈을 전부 수거하고도 남을 정도의 수익을 올렸다.
SS파트너스와 SS벤처스, 그리고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몇 개의 투자 회사와 외국계 대형 은행 등을 통해 꾸준히 부동산과 주식에 해 오던 투자는 이미 버블의 정점에서 대부분 청산했고, 지금은 이제 떨어질 만큼 떨어진 주식을 여유 있게 거두어들이고 있었다.
경기의 상승과 하강은 늘 주기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다. 그리고 그 흐름을 꿰뚫고 있다면 저점에서 매수해 고점에서 매도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 와중에 미래에 시장을 선도할 기업들의 지분을 꾸준하게 늘려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유진이 한국에 5,000억 달러의 거액을 투자하기로 한 시점은 세상 그 누구도 코로나를 생각지 못할 때였다.
코로나로 인한 거대한 경제 상승의 이익은 사실상 유진이 홀로 따먹었다 해도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대중들이 상승기에 따라 들어갔다가 하락기에 눈물을 머금고 처분을 하느라 손해를 보거나, 추가 하락을 예상하면서도 그저 버티고 있을 때의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진이 자신의 책임을 거론한 것은 단순하게 의례적인 말이 아니라, 솔직한 표현이었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금리 인상 때문에 부동산 시장의 급랭이 시작되었습니다. 주가 시장도 그렇고요. 요즈음엔 정치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에 분노가 서린 것이 느껴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정치인으로서 윤 의원은 사람들의 시선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부동산의 거품이나 주식 시장의 거품은 단순히 통화정책의 결과이고, 그 이전에 한국의 경제가 세계 경제의 일부분으로서 작동하기 때문이니 크게 보아서는 정치인 개개인과는 큰 상관이 없는 일이지요. 하지만 부동산 시장과 주식 시장에서 돈을 잃은 사람들은 언제나 정치인을 욕하기 마련입니다. 여기도 마찬가지이고요.”
“어쩔 수 있나요. 그게 정치인의 숙명인 것을.”
윤 의원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렇죠. 그게 정치인의 숙명이라면 숙명이겠지요. 그렇다고 정치인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정권만 차지하고 이권만 누리려 한다면 그야말로 무책임한 일일 겁니다.”
“흠. 무언가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는 모양입니다.”
“네. 사실 제가 하는 일이 일인 만큼, 세계의 정세라거나 경기의 흐름,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위기 같은 것에 대해서는 아마 누구보다도 많은 정보를 접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윤 의원이 물론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겠지요. 세계적인 투자자로서 작은 변동만으로도 큰 수익이 나거나 반대로 엄청난 손실이 발생하는 게 당연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10년 동안은 세계적인 혼돈의 시기가 예상되더군요. 하기는 지난 90년대 이래 세계가 혼란스럽지 않은 적은 없지만 말입니다.”
“세상이 서로 얽히고, 복잡해지면서 한순간도 평범하게 흘러가는 일은 없더군요. 한데 지금까지보다 더욱 혼란스럽다고 말씀하시니 두렵기까지 하네요.”
윤 의원이 살짝 인상을 쓰며 대답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유진이 하는 경고를 쉽게 넘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러시아의 정치 혼란은 물론이고, 미국으로부터 시작된 세계화의 종말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칠 겁니다. 80년대부터 지금까지가 세계화의 시대였다면, 지금부터 수십 년 동안은 세계가 해체되는 시간이 될 겁니다. 앞으로 10년 동안 벌어질 일들이 어쩌면 한국의 다음 한 세기를 결정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위기가 끝나면 항상 새로운 위기가 오는군요.”
“네. 그리고 그 새로운 위기의 국면에서 누가 국가를 이끌고 있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그렇다면 강 회장님께서는 새로운 위기가 닥쳐올 때, 우리 정치인들이 힘을 합쳐 슬기롭게 극복하시길 바라시는 건가요?”
아직 윤 의원은 유진이 자신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물며 겨우 2선 의원에 불과한 자신에게 다음번 대권을 논의하자는 말을 할 거라고는 더더욱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정치인들이 힘을 합치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하하.”
“하하, 맞습니다. 힘을 합칠 만한 사람들이라면 정치권에 발을 들이지도 않았겠지요.”
유진이 웃으며 말했고, 윤 의원도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나 정치인들이 힘을 합치는 것이 미덕이지요. 민주주의 사회에서라면 정치인들이 힘을 합치는 것이 결코 선은 아닐 겁니다.”
“맞습니다. 정치인들은 자신을 지지해 준 사람들의 의견을 대변하는 사람이지, 리더가 시키는 것을 따르는 사람은 아니지요. 개개의 사안에 대해 합의할 수도 있고, 저항할 수도 있는 것이 정치인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의원들을 만나 힘을 합쳐달라는 말을 할 생각은 없습니다. 오늘 윤 의원님을 뵙자고 한 것은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을 논의하기 위해서입니다.”
유진의 분위기와 말투가 진중해지자, 윤 의원이 조금 긴장하기 시작했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라니. 조금 무섭군요.”
“윤 의원님께서 다음 세대에 한국의 리더를 맡아 주신다면, 한국이 그 위기를 극복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리라 개인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네, 네?!”
윤 의원의 얼굴이 묘한 표정으로 굳어 버렸다.
자신을 미국으로 부르고, 워싱턴의 주요한 인사들과 만남의 자리를 주선해 준 것으로 보아, 유진이 그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정도는 생각하고 있었다.
윤 의원이 생각해 낸 최대치는 야당 내에서 유진을 위해 활동하는 계파를 만드는 정도였다.
현 여당이 몇 번이나 대선에서 승리한 것은 유진의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한국 경제는 뚜렷한 성장을 계속해 왔고, 유권자들은 굳이 정권을 바꾸어야 할 만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 때문에 야당으로서는 무척 힘겨운 시기를 보내야 했다.
그런 야당에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이 유진의 다양한 지원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꽤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렇듯 지금의 한국 정치권에서 유진이 가진 위상을 생각해 본다면, 나쁘지 않은 제안이라 생각하며 윤 의원은 워싱턴을 거쳐 뉴욕까지 찾아왔다.
하지만 이 순간 윤 의원의 예상은 완전히 어긋나고 있었다.
“한국의 리더라면…… 그냥 단순하게 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는 자리를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겠지요?”
“맞습니다. 다음 대선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저를요? 왜죠? 앗!”
말을 꺼내놓고 보니 어딘가 경망스럽게 느껴졌지만, 그건 그가 너무나도 당황한 탓이다.
“언제까지고 지금의 여당이 계속 여당일 수는 없으니까요. 고인 물은 썩고야 맙니다. 일본처럼 말이지요.”
유진은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다. 계속해서 지금의 여당을 지원해 주다 보면, 결국 여당은 자신들이 잘해서라 생각할 뿐이다.
그러니 여당을 몇 년 밀어주면, 다음은 야당을 밀어주고, 그렇게 번갈아 가며 집권하게 만드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기 위해서 한국의 5년 단임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려는 헌법 개정도 추진 중이다.
집권 여당으로서야 4년 중임으로 바뀌면 한 번 집권으로 어지간하면 8년 동안 집권할 수 있다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사실 유진의 의도는 4년마다 그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만들려는 것이다.
유진의 눈에 차지 않는다면 4년 만으로 끝나고, 유진의 마음에 들면 8년이 보장되는 체제를 만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여당이 다음번 선거에서 패배할 거로는 생각되지 않는데요? 솔직히 야당이 다음 대선에서 이길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지금 한국 정치계에 유진의 영향력이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유진이 절대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벌써 10년이 넘게 집권하고 있는 여당으로서는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유진과 싸울 만한 여력은 충분히 갖추고 있다.
“최근의 경기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국민들이 어떤 심판을 내릴 때도 되지 않았나 싶더군요.”
“흐음…… 확실히 요 1년 넘게 힘겨워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 3년도 넘게 남았고, 그때까지도 경기가 회복되지 않을 거라고는…… 아! 물론 강 회장님의 고견을 무시하려는 게 아니라…….”
“맞습니다. 3년 뒤라면 경기도 그럭저럭 회복되었을 겁니다. 그때 가서 대선을 치르게 된다면 야당이 승리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유진은 현 대통령의 수명이 그리 오래 남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 전 대통령을 압박해서 지금의 대통령을 후임자로 올린 것도 사실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미국과 달리 한국은 대통령이 유고할 시 60일 이내에 후임자를 선출하도록 헌법에 명시되어있다.
그리고 그때의 한국 경제는 최악의 상황에 빠져 있을 것이다. 다름 아닌 유진의 손에 의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