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4화 숨겨진 폭탄
“최근 대통령의 건강이 급격하게 안 좋아지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저도 대통령이 쉽게 피로하고는 한다는 소리는 들었습니다만…… 혹시?”
유진의 말에 윤 의원이 퍼뜩 무언가를 알아차린다.
“아무래도 조만간 좋지 않은 소식이 들려올 것 같습니다. 물론 청와대와 여당측에서는 함구하고 있는 일이지요.”
“설마…… 건강상의 이유로 하야하게 될 수도 있다는 건가요?”
“그럴 가능성이 작지 않아 보입니다.”
지금의 대통령은 지병을 앓고 있다. 아마도 이해가 지나기 전에 한국인들은 초유의 현직 대통령 유고 소식을 듣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명확하게 말해 줄 수는 없다.
“문제가 크군요. 몇 달씩이나 대통령 자리를 대행이 대신하고, 급하게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꽤 곤란해지겠어요.”
“그보다 여당은 미리 준비하고, 야당은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 더 큰 문제가 되겠지요.”
“흐음…….”
윤 의원이 깊은 신음을 내뱉었다.
“야당에서 이번에는 정권을 탈환하고 싶다면, 지금부터라도 준비를 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전 개인적으로 윤 의원님께서 그 자리에 오르시길 바라고 있습니다.”
도덕적으로 본다면 이미 외국인이 되어 버린 유진이 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상당한 문제가 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그 누구도 유진과 대한민국을 별개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
유진이 다양한 투자처를 통해 한국 대기업의 지분을 다수 보유하고 있고, 지속적인 투자로 한국 경제를 부양하고 있으며, 한편으로 한국 출신 인재들의 미국과 세계 진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상황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어떤 의미에서 유진이야말로 한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누가 되는지에 따라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사람이라는 것은 명백했다.
“어째서 저입니까?”
다시 한번 윤 의원이 물었다. 아직도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젊고, 깨끗하고, 그리고 비전이 명확한 정치인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진은 사실 윤 의원의 가장 큰 장점은 그의 젊고 잘생긴 이미지에 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미국을 포함한 대다수 민주주의 사회에서 잘생기고 키가 큰 남성이 선거에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은 이미 비밀스러운 사실도 아니다.
당장 미국부터 대부분의 선거에서 키가 큰 쪽이 승리해 왔다.
도널드 트럼프는 한창 때 190cm를 넘었고, 그전 버락 오바마도 185cm, 빌 클린턴은 188cm이다. 19세기의 에이브러햄 링컨도 190cm를 훌쩍 넘는 장신이었다.
고도로 복잡해진 현대 사회에서 대중들은 사실 정치에 나선 사람들의 배경이나 사상 등에 대해 이해하기보다는, 그들의 외모에서부터 시작되는 이미지를 따르는 경향이 종종 있다.
단지 외모가 그럴듯하다는 이유로 투표를 하는 이들이 대다수인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표가 결과를 가르는 경우는 충분히 있는 것이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에서 가장 무능력했다고 일컬어지는 워런 G. 하딩은 놀랍게도 잘생겼다는 이유로 당시 처음으로 선거권을 부여받은 미국 여성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아 60%라는 지지율로 대통령에 당선되기도 했었다.
윤 의원도 신장이 180대 후반에 배우를 해도 될 만큼 잘생겼고, 더군다나 서울대를 나와 판사 시절을 거쳐 변호사를 지낸 엘리트이다.
거기에 전형적인 흙수저 출신이라는 사실도 플러스가 된다. 대중으로서는 그에게 호의적인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을 정도로 완벽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물론 유진이 윤 의원을 하딩처럼 무능력한 사람이라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캐네디나 클린턴처럼 매력 있고, 유능한 정치가라 생각하고 있다.
더군다나 정치 초임 시절부터 여자들과의 염문이 있었다는 사실 또한 클린턴과 캐네디와 몹시 흡사한 면이 있다 할 것이다.
유진이 보관하고 있는 비밀 파일 중에는 윤 의원이 몇 년 전 한참 인기를 얻던 한 유명 연예인과 침실에서 야릇한 모습으로 있는 파일이 꽁꽁 감추어져 있다.
원래였다면 윤 의원이 한참 정치계의 신성으로 돌풍을 일으킬 시점에 터져 나오며 윤 의원의 정치 생명을 끝장낼 위험한 물건이지만, 존 브래넌을 통해 유진의 손에 무사히 들어와 있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앞으로 10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지을 아주 중요한 시간이 될 겁니다. 그 중요한 시점에 윤 의원님처럼 강단 있고, 기존의 정치권처럼 시세에 영합하지 않는 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까지 높게 보아 주시니 감사합니다.”
윤 의원은 여전히 얼떨떨한 심정이었지만, 찬사를 받고 있다 보니 고맙다는 표현을 할 수밖에는 없었다.
“강 회장님의 말씀대로 만일 올해 그런 일이 일어나고, 조만간 선거가 치러진다면…… 야당으로서는 지금부터 준비 작업에 들어가야 하겠군요.”
현 대통령이 당선되고 아직 2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야당은 그저 사안에 따라 이리저리 이익을 따르고 있을 뿐, 새로운 대선주자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윤 의원이 발 빠르게 움직인다면 확실한 어드벤티지를 선점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도 제가 그 자리에 합당한 인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젊은 정치인의 패기와 함께 적당한 신중성도 가지고 있는 윤 의원은 유진의 제안에 바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틀림없이 달콤한 유혹이기는 하지만, 이제 겨우 마흔 줄에 들어선 그이기에 너무 성급한 선택이 자신의 미래를 망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드는 것이 당연했다.
“물론이지요. 귀국하시면서 한 번 고려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유진은 그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잘 알고 있다. 한국 경제가 무척 어려운 상황에 들어선 지금으로서도 여전히 유진은 정·재계에 폭넓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런 유진의 뒷받침이라면 겨우 2선 의원이라 해도 충분히 대권을 노려 볼 수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그 뒤로 유진은 더 이상 그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해야 할 말은 전부 전했고, 이제 윤 의원이 대답할 차례였다.
윤 의원이 돌아가고 난 이후, 한국의 경제는 더욱 커다란 격랑에 휩싸이고 있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마무리에 들어서며 그동안의 불안 요소는 많이 해소되었지만, 여전히 넘어야 할 골이 많았다.
미국이 대통령 후보 선출로 전국이 선거 열풍에 빠져 있는 동안, 한국은 부동산의 기록적인 추락으로 전국이 난리에 빠져 있었다.
한국인의 자산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절대적이다.
2022년도 대한민국의 총자산 21조 달러 중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율은 무려 78%에 달하고, GDP 평균 대비 토지 자산의 비율은 8배 가까이나 된다. 어느 쪽이건 사상 최고치에 달하고 있다.
이는 최근 몇 년 동안 부동산 가격의 폭등이 도를 넘어섰다는 반증이었다.
그리고 모두가 알고 있듯이 그런 부동산 가격 폭등에는 다양한 세력들의 농간이 한몫했다.
사실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한 개 아파트 단지에서 일 년 동안 거래되는 아파트의 숫자는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1,000세대의 아파트에서 겨우 한두 건만 거래가 되면 그 단지 전체의 가격이 해당 거래 가격에 수렴되기 때문에 주식 시장 같은 유가증권, 혹은 현물 시장보다 시장의 왜곡이 발생하기 쉬운 편이다.
거기에 몇 년 동안 지속된 통화량의 공급이 그런 부동산 가격의 상승을 부채질해 왔고, 정부도 이렇다 할 부동산 대책을 내놓지 않은 상태였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부동산, 특히 수도권과 서울의 부동산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버블은 언제고 터지기 마련이다. 달리 버블이라고 부르겠는가?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부터 시작된 세계 부동산 시장의 붕괴가 마침내 한국에도 밀어닥쳤다.
1년 사이 30% 하락은 기본이고, 50% 가까이 빠진 곳이 속출했다.
수도권 부동산에 거품이 끼며 덩달아 치솟던 지방 부동산의 폭락은 더욱 드라마틱했다.
그런데 여기엔 한 가지 함정이 있다. 너무나도 급격하게 하락을 하니 아파트 매매가 좀처럼 성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승기와 비교해 아파트 매매 숫자는 1/10, 더 나아가서는 1/20까지 줄어들었다.
사고파는 사람은 없는데, 가격만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실 상승장과 마찬가지로 하락장에서도 장부상의 가치 변화만 있을 뿐, 실질적으로 거래되는 양은 극히 미약했다.
상승기에 물린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보다 훨씬 전에 구입해 아직 충분히 여력이 있는 사람들도 부동산을 헐값에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이 시기가 지나면 부동산 가격은 다시 정상을 되찾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유진은 감추어 두었던 폭탄을 터트렸다.
외국인 명의로 되어 있던 아파트들이 시중가보다도 훨씬 더 낮은 가격으로 시장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30억까지 올라갔던 강남의 30평대 아파트가 20억까지 떨어지며, 서로 눈치를 보던 상황이었다.
거기서 느닷없이 15억에 매물이 나오며 거래가 되었고, 다시 14억짜리가 나온다.
헐값이라 생각한 사람이 재빠르게 채가면 다시 13억짜리가 나온다. 그리고 다시 12억짜리가…….
그렇게 서울 강남을 비롯한 여기저기에서 마치 작정이라도 한 듯 아파트를 내놓았다.
30%가 떨어졌을 때까지만 해도 버틸 만하던 보유자들은 뭔가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상승장에서 지금 사지 않으면 내일은 1억이 오른다는 생각으로 앞을 다투어 샀던 사람들은, 이번에는 반대로 오늘 팔지 못하면 내일은 1억이 떨어질 거라는 두려움에 떨기 시작한다.
자본 시장은 늘 그렇다. 재화의 가치는 시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심리에 의존한다.
아파트의 물량은 거의 한정되어 있고, 사고팔려는 수요 또한 크게 바뀌지 않는다.
거래 물량의 상당 부분은 아파트를 사고파는 것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에 관련이 되어 있기 마련이다.
강남 아파트 가격의 상승과 하락은 서울, 수도권, 그리고 더 나아가 전국 아파트 가격을 주도했고, 부동산을 보유한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이 일을 위해 유진은 대략 수십억 달러 정도를 사용했다.
중국과 미국, 그리고 다른 여러 나라의 법인들에서 강남의 아파트에 투자해 적당한 이윤을 얻고 일시에 빠져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만일 유진이 단순히 이익을 얻으려 했다면 아마 훨씬 더 큰 이익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진이 원하는 것은 부동산으로부터 얻어지는 수십억 달러의 이익이 아니었다.
일시적으로 대한민국 부동산에, 그리고 경제에 커다란 충격을 주길 원했고, 그를 위해 미국의 금리 인상을 기다려 왔던 것이다.
미국 금리 인상의 여파는 한국의 금리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고, 더불어 부동산에 미치는 영향은 말할 것도 없음을 잘 알고 있기에 여유 있게 기다릴 수 있었다.
금리 인상이 시작되며 재정부에 약간의 압력을 행사해 한국은행 금리를 FED에 맞추도록 유도한 것도 유진이다.
유진이 겪었던 과거에 비해 금리 상승률이 더욱 높아졌고, 과도하게 오른 부동산의 거품이 터져 나간 것은 당연했다.
윤 의원이 돌아간 뒤로 부동산은 더욱 가파르게 떨어져 갔다.
중국처럼 계획경제를 표방하지도, 그렇다고 미국처럼 완전히 시장에 맡겨 놓지도 못하는 한국의 경우 그런 부동산 문제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이 정치권에게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