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286화 (286/363)

286화 레거시 미디어

“전 같으면 내가 한 말 찾으려면 구석구석 뒤져 봐야 했는데. 요즘은 뭐라 말만 하면 메인이로군.”

“그러니까요. 지금 여론 조사에서 차세대 지도자 1위가 의원님입니다. 하! 아쉽네요. 이럴 때 선거가 다가왔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지요.”

“그러게 말이야. 언론이 밀어준다는 게 이렇게 무서울 줄은 몰랐네.”

“아무리 커뮤니티니 SNS니 해도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는 여전히 레거시 미디어이니까요.”

모두가 언론의 힘을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윤 의원의 인지도가 늘어난 것은 거의 매일같이 포탈 메인을 도배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방송 출연도 부쩍 늘었다. 시사 문제를 다루는 프로그램에서는 여지없이 윤 의원을 가장 먼저 섭외하고는 한다.

한국 사회에서 언론이 지닌 힘이 어느 정도인지 다시 한번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정치계에 입문한 지 10년이 조금 안 됐지만, 이렇게까지 주목을 받아 본 적은 없다.

“그건 그렇고, 참 뻔뻔스러운 인간들이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큰 덕을 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언론이 지닌 무서운 힘에 대해서도 새삼스레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언론은 늘 누구를 주목해야 할지, 그리고 누구를 무시해야 하는지 지목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론에서 강조하는 주제나 인물에 관심을 쏟고, 거둔다. 그 관심은 결국 인지도로, 그리고 지지율로 직결된다.

하지만 윤 의원이 분개하는 것은 그것 때문만이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금 부동산을 구매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말하던 놈들이, 이제 와서 내 말이 맞다고 하네. 뻔뻔스럽기는.”

언론이 무책임한 행태를 이어 온 것이 하루이틀의 일은 아니지만, 부동산 폭등의 원인의 상당 부분을 짊어진 언론사들이 과거의 발언에 대해서는 입을 싹 씻은 채 정부를 비난하고 있는 모습에 적지 않은 비난이 쏟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언론에 대한 비판도 그저 커뮤니티에서나 불거지고 있을 뿐, 대부분의 언론은 비판에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언제고 이런 언론들을 정상화해야 해.”

윤 의원은 자신이 대권을 잡는다면 언론을 개혁해 꼭 본연의 일을 다하도록 만들겠다는 결심을 했다.

“하여튼 강 회장의 입김인 건 분명하겠지.”

“이번 방미의 성과가 굉장합니다. 강 회장님의 지지를 받으셨으니, 정말 다음 선거에서 대권을 잡으시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흐음…….”

자신이 정계의 태풍의 핵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은 만족스러웠지만, 그 뒤에 유진의 영향력이 너무 크게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차근차근 해 나가야지.”

윤 의원은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네? 무슨 말씀이신가요?”

“응? 아니, 아니야. 차근차근 해 나가다 보면 언제고 원하는 걸 이룰 수 있겠다는 말이지.”

“당연하지요! 의원님은 언제고 기필코 대권을 차지하실 겁니다.”

아부 반, 그리고 희망 반을 섞어 말하며 유쾌하게 웃는 보좌관을 바라보며 윤 의원은 마음속을 내리 누르는 무거운 주제를 마음 한편으로 밀어 놓았다. 언제고 유진의 영향력을 거두어야 된다고는 생각하지만, 우선 당장은 그의 영향력을 이용해 줄 생각이다.

“언론사들 통제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SS파트너스를 지휘하는 김환이 세종 기획의 임철우에게 물었다.

처음 유진 개인의 홍보를 담당하던 세종 홍보는 SS파트너스와 SS벤처스, 그리고 그 외에도 무수히 많은 관련 기업들의 홍보를 맡으며 이제는 한국 제일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그룹으로 확장했다. 연 매출만 7조 원대, 수천 명에 달하는 직원까지 거느린 세종 기획은 한국 언론사들에게 가장 큰손이 되어 버렸다.

매년 세종 기획과 자회사를 통해 집행하는 광고비 규모가 한국 광고비의 40%에 달하는 상황이다. 사실상 광고비로 운영되는 거나 다름없는 언론사로서는 세종 기획이야말로 그 어떤 이보다 무서운 하늘 같은 위치에 있다 할 수 있다.

세종 기획의 눈치를 보지 않는 언론사는 없고, 세종 기획 눈 밖에 난 언론은 살아남기 힘들다는 말은 그저 시중에 떠도는 말이 아니었다. 한국 언론의 실상에 가깝다는 것이 정론이었다.

언론들이 재빠르게 반정부 논조로 돌아선 것에는 물론 유진의 지시가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국민들의 반정부 정서가 점점 심화되고 있던 참이라, 논조를 유지하는 데에 큰 문제는 없슬 듯하더군요. 부동산 경기의 침체가 제일 큰 원인이겠지요.”

한국인들에게 가장 큰 자산은 역시 부동산이다. 지난 몇 년간의 호황기에, 자고 일어나면 불어나는 재산을 보고 흐뭇해하던 사람들은 이제 반대로 자고 일어날 때마다 재산이 줄어드는 현실에 경악하고 있었다.

아직 부동산을 구매하지 않은 사람들 또한 미처 올라타지 못한 부동산 드라이브가 무너지는 것을 반기지는 않았다.

“언제고 한번은 벌어졌을 사태인데, 역시 재산이 줄어드는 것은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일이지요.”

유럽의 많은 나라들은 부동산 시장의 과열이 붕괴되며 자산이 감소하는 일을 여러 번 겪고 난 뒤로, 부동산에 과도한 투자를 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 경제 성장이 시작된 이래로 부동산 불패의 신화를 아직까지 굳게 믿고 있었다. IMF와 금융 위기 사태로 두 번이나 부동산 침체기를 겪고서도, 잠시 시기를 넘기면 언제고 부동산은 다시 오를 거라는 신념을 지닌 사람이 많았다.

때문에 가히 부동산 시장의 붕괴라 할 수 있을, 고가의 1/3까지 떨어져 버린 이번 사태에 대한 충격은 더욱 컸다.

이는 이번 정부나 전 정부의 정책 때문이라기보다는 세계 금융 시장의 흐름, 특히 금리의 하락과 상승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남보다 뒤처질까 두려워하며 허겁지겁 달려들어 부동산 상승 랠리를 더욱 가속화한 투자자들, 그리고 그런 투자자들을 부추기며 이익을 얻어 온 소위 부동산 전문가들과 언론의 책임이 훨씬 더 크겠지만, 결국 책임은 정부가 지게 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 부동산 하락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군요.”

“적어도 몇 년은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진의 해외 법인들이 작금의 부동산 붕괴에 아주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자리에 있는 두 측근조차 알지 못한다. 사실 유진이 행하는 많은 일들이 그렇다.

“부동산 경기가 이렇게 안 좋으면 결과적으로 경제 전반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데 말이에요.”

“미 연준에서 이제 금리를 낮추기 시작했으니, 추가 하락은 멈출 것 같습니다.”

한국 경제계와 언론계를 꽉 쥐고 있는 SS파트너스와 세종 기획을 지휘하는 두 사람도 지금의 사태에 대해서 우려할 정도로, 한국의 부동산 붕괴는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오고 있었다.

“이번 부동산 하락은 쉽게 회복되기 어렵다는 것이 전반적인 예측입니다.”

정부에 대한 공세를 높여 가던 와중, 윤 의원은 현 대통령의 건강 문제를 거론하기에 이르렀다.

“만일 현 대통령의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정부가 감추고 있다면, 이는 국민을 속이는 행위입니다.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의 건강 상태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들을 권리가 있습니다.”

윤 의원이 제기한 대통령의 건강 문제는 바로 한국을 또 다른 정쟁의 회오리로 몰아넣었다.

“대통령의 건강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국가와 사회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무의미한 논쟁을 제기하는 행위를 당장 멈추어야 합니다.”

바로 청와대의 반박 성명이 나왔다.

하지만 거의 비슷한 시기에 여당에서 나온 말은 또 달랐다.

“대통령의 건강 문제는 국가의 비밀에 해당합니다. 윤 의원은 지금 국익에 무척 해가 되는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얼핏 듣기에도 청와대와 여당의 입장이 다르다. 여당 측은 대통령의 건강에 대해 무언가 알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했다.

그날부터 모든 언론들이 대통령의 건강에 대한 집중 취재에 들어갔다. 청와대와 여당이 어떤 논리를 들고 나오건 간에 만일 대통령의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있고 정부가 그걸 감추고 있는 것이라면, 지금 한국은 지도자 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건 국기 문란입니다. 쓸데없는 정쟁으로 그렇지 않아도 위기에 빠진 국가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지시를 내리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다면, 빨리 새로운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길입니다.”

그때서야 뭔가 심상치 않다는 분위기를 느낀 야당의 공세가 시작되었다. 만일 대통령이 하야한다면 새로운 선거가 열리게 될 것은 분명하다. 지금 정부와 여당의 지지도를 생각하면 야당에게 승산이 높다는 것 또한 분명한 일이었다.

야당의 중진 의원들이 소리 높여 대통령의 건강에 대한 진실을 묻고, 청와대와 여당의 책임을 요구했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모두 유권자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언론은 가장 먼저 목소리를 내고, 가장 많은 발언을 쏟아 내었던 윤 의원의 말을 주로 다루고 있었다. 아직 대통령이 하야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유권자들은 윤 의원을 차기 대선에서 가장 유력한 야권 후보로 여기고 있었다.

“하! 참. 어떻게 해도 언론이 실어 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으니, 원.”

“서로 짜기라도 한 거야? 대체 어떻게 하나같이 윤 의원 이름만 올리고 있어?”

언론의 행보에 대한 야당 지도부의 서운함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물론 야당 전체로 본다면 윤 의원을 띄워 주는 언론에 고마워해야 할 일이었다.

“아무래도 이슈를 먼저 선점한 게 가장 크겠죠. 역시 윤 의원이 타이밍 하나는 기가 막혀.”

“그러니까 말이에요. 윤 의원이 먼저 목소리를 냈으니, 힘이 실리는 건 당연한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제일신문 쪽 이야기를 들어 보니. 위에서 지시가 내려왔다는 모양입니다.”

언론인 출신 국회의원이 자기가 들은 이야기를 꺼냈다.

“위라니? 청와대에서요?”

“아니, 거기가 무슨 위입니까? 사주 말입니다, 사주.”

“세상에, 무슨 지령이기에?”

“윤 의원을 띄워 주는 방향의 논조를 유지하라는 거죠.”

“뭐? 그게 말이 돼? 제일신문은 친여당이잖아. 거기 사주가 여당 대표랑 사돈 아니야?”

“윤 의원이 나오는 것이 이기기 쉽다 생각한 거 아닐까요?”

“말 되네! 아무리 지금 윤이 인기라도, 이제 겨우 마흔아냐? 나이 많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젊은 사람한테 자리를 맡기고 싶지 않을 테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야.”

나름대로 분석한 사람들이 하나둘 입을 열었다.

“그렇기는 한데, 이번에는 진짜인 모양입니다. 제일신문뿐 아니라 경부일보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아니, 다들 왜? 윤 의원이 봉투라도 뿌렸대?”

“아무래도 영향력을 높이려는 게 아닐까요? 계속 여당이 집권한다면 언론사들 입장에서는 을의 위치가 될 뿐이잖습니까. 이번 기회에 여론을 몰아 야당을 밀어주고, 자신들이 얼마나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과시하는 거지요.”

“그것도 말이 되네.”

언론이 윤 의원을 밀어주고 있는 것에 대해, 야당 내부에서도, 그리고 여당에서도 커다란 논란이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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