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290화 (290/363)

290화 Art of war

“지난 2016년과 2020년에 러시아가 미국의 선거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은 모두가 알고 계실 겁니다.”

트럼프 시대에는 음모론으로 치부되었지만, 2020년 이후 미국 국가정보국(DNI)에서 해외의 세력들이 미국 연방 선거에 개입했음을 밝히며 이제는 누구나 알고 있는 정설이 되었다.

그 때문에 유진의 말에 누구도 반발하며 나서지 않았다. 만일 이 자리에 트럼프가 있었다면 당장에 역정을 내고 나섰을 것이다.

“사실 러시아뿐이 아니지요. 이란도 바이든을 당선시키기 위해 대대적인 공작을 펼친 것으로 드러났지요. 그러고 보면 바이든이야말로 이란이 당선시킨 셈이로군요. 하하.”

하지만 공화당의 유력 정치인이면서도 트럼프 계로는 분류되지 않는 찰리 프로스트 플로리다주 주지사는 유진의 말에 반박하는 대신 다른 예를 들었다.

“그렇습니다. 러시아나 이란뿐 아니라 아주 많은 나라가 미국의 대선에서 자기 입맛에 맞는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다양한 공작을 펼쳤지요. 그건 사실상 이 나라에 대한 공격으로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유진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미국의 대통령이 어떤 사람이 되는지에 따라 각 나라에 이익이 될 수도 있고, 또한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기에, 더욱 많은 나라에서 미국의 선거에 개입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는 더 이상 음모론 수준이 아니다.

이미 쿠바, 베네수엘라,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등 반미를 표방하는 나라들이 비슷한 행보를 보여 왔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미국의 다양한 정보부서에서는 이런 해외의 공작에 대응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비서실장이 나름 해명을 한다.

“그런데 언제까지 우리가 그런 외부의 공격을 받고만 있어야 할까요?”

유진이 다시 묻는다.

“음…….”

“하긴, 맞는 말이군요.”

“우리도 마땅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받은 만큼은 되돌려 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미국이 다른 국가로부터의 공격에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은 일은 역사상 단 한 번도 없다.

그리고 국내의 선거에 그런 식으로 개입한 것은 명백한 공격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유진의 주장에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적어도 미국이 러시아나 다른 적대 국가의 선거에 개입해야 하는 당위성만큼은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2000년 전 중국의 위대한 사상가인 손자는 싸우기 전에 이겨 놓고 싸우라고 말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전쟁을 피할 수 있는 길을 우선 생각하고, 꼭 전쟁이 필요하다면 반드시 이길 수 있는 상황을 만들고 나서 전쟁에 나서라는 말이었지요.”

분위기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듯하자, 유진은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Art of war에서 나온 말이로군요.”

가장 학벌이 높은 조셉 굿맨 대통령 비서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우리는 병법이라고 하지요.”

다행히 누군가 맞장구를 쳐 주니 말을 잇기 수월해졌다.

“그 말씀을 꺼낸 이유가 무언가요?”

찰리 프로스트 플로리다주 주지사가 물었다.

“페이스북과 다양한 SNS가 레거시 미디어를 대신해 여론을 선도하는 시대에서 선거는 이제 단순히 국내 문제가 아니라, 해외 여러 나라의 세력까지 마음대로 드나들며 잔적을 펼치는 전쟁터가 되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겁니다.”

“유진의 말대로라면 선거는 확실히 전쟁이라 불러도 무방하겠군요.”

엘리자베스 슐츠 부통령이 가장 먼저 유진에게 동감을 표시했다.

“그렇습니다. 전쟁입니다. 그리고 현시점에서 미국은 적대 국가들의 침략을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게다가 한편으로 이 보이지 않는 전쟁은 진짜 전쟁의 전초전이라 할 수도 있고요.”

“진짜 전쟁이라고요?”

“글자 그대로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여러 차례 전쟁에 참여해 왔습니다. 한국전쟁부터 이라크전까지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수많은 전쟁 중에서 명백하게 미국이 전략적으로 승리를 거둔 전쟁은 아마 걸프전이 유일할 겁니다. 물론 전쟁이라기에도 무색한 도미니카 공화국, 그레나다, 파나마 전쟁의 승리도 있습니다만, 미국의 체급에 맞는 전쟁 중에 유일한 승리는 그 한 번뿐이지요.”

유진의 말에 모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휴전으로 끝을 낸 한국전쟁이야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고 해도, 베트남 전쟁이나, 이라크 전쟁,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도 결과적으로 보면 패배했다 말해야 할 것이다.

“병법을 이해한다면 이 패배한 전쟁들은 대개 처음부터 시작할 필요가 없던 전쟁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다시 손자의 말로 돌아가 보면 먼저 전쟁을 피할 길을 찾지 않았고, 시작할 때에도 이길 방법을 찾아놓지 않고 시작했다는 것이죠.”

“하지만 당시의 상황을 보면…….”

애국자인 데이비드 첼로니 캘리포니아 하원의원이 뭔가 반박을 해 보려 한다. 그러나 유진의 말이 더 빨랐다.

“하지만 시야를 넓혀 생각해 보면 미국이 승리를 거둔 전쟁은 의외로 많습니다. 일본의 반도체 산업을 무너트리고 독일을 굴복시킨 플라자 합의라거나, 그 이전 브레튼 우즈에서의 완벽한 승리 따위 말이지요. 또는 환율조작국 지정이나 인터넷을 통한 자유로운 이념의 전파 따위도 포함할 수 있겠네요.”

“그것도 전쟁이라 말할 수 있다면, 명백하게 미국은 지난 100년 동안 수많은 전쟁에서 이겨 온 거겠군요.”

“요는 전쟁의 개념을 바꾸어야 한다는 겁니다.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미국에 적대하는 중동의 지도자들이 강행하는 예측 불가능한 선택에 뒤늦게 대응하는 방식은 이제 버려야 할 때가 왔습니다.”

“물론 불량국가들에 대응하는 방법이 부실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나 지금까지의 대응 외에 어떠한 특별한 방법을 찾는 게 쉽지만은 않음을 잘 알고 있으실 텐데요?”

플로리다주 주지사가 말했다. 이 자리의 유일한 공화당계이니 그가 가장 많은 발언을 하려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렇지요. 결국은 불량국가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불량국가. 미국이 적대국을 가리키는 용어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냉전기에는 소비에트 연방을 ‘악의 제국(evil empire)’이라 불렀고, 이란·리비아·북한·쿠바·니카라과 등을 향해 ‘무법국가(outlaw states)’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그 뒤 9.11 테러 이후엔 북한, 이란, 이라크를 ‘악의 축(exis of evil)’이라 불렀고, ‘불량국가(rogue state)’라는 단어도 사용하고 있다.

이런 용어들은 대체적으로 자국민에 대한 인권 유린과 테러 지원, 대량살상무기 추구로 평화에 위협이 되는 나라를 의미한다.

그 외에도 트럼프 시기에는 중국을 ‘불량배(rogue actor)’라 불렀고, 바이든 행정부로 들어와서는 북한을 ‘불량정권(rogue regime)’이라 부르기도 했다.

최근으로 들어올수록 미국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나라들을 칭하는 명칭으로 불량배(rogue)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명칭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에 합류하지 않고, 반항하고 있다는 의미를 함의하고 있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불량국가들에 대해 지금까지 미국이 취해 온 정책은 항구적인 경제제재와 언제라도 군사력을 동원할 수 있다는 협박이었지요. 하지만 이런 방법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실질적인 소득은 거의 없었다 할 수 있을 겁니다. 경제난으로 고통받는 것은 늘 피지배 시민들뿐이고, 정권에서는 미국의 경제제재를 오히려 자신들의 정권을 강화시키는 용도로 사용해 왔지요. 결과적으로 소위 불량국가들은 오히려 내부 결속만을 강화해 왔을 뿐입니다.”

유진의 말에 모두의 고개가 끄덕여진다.

“서로가 적대적인 상황을 지속하다가 군대를 투입해 국토를 초토화시키고, 수많은 병사를 희생시키고, 해당 국가의 치안을 되살리겠다며 고군분투하다가 결국은 사상자를 감당하지 못한 채 물러나는 지금까지의 방식은 미국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전쟁의 양상을 바꾸어 해당 국가의 정치 상황을 최대한 미국에 유리하게 만드는 방식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은 그 뒤의 일이지요.”

유진의 말에 다들 잠시 대답이 없다. 모두가 생각해 볼 것들이 있는 모양이다.

“고대 중국의 전국 시대에는 7개의 나라가 수백 년 동안 쉴 새 없이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을 이어 왔습니다. 때문인지 조금 전 언급했던 손자 말고도 대단한 전략가와 사상가들이 나타나 전쟁에 승리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을 내놓았지요.”

유진이 다시 병법과 전략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 든다.

“지금의 세계정세와 비교해도 그리 단순하다 할 수 없을 만큼의 난맥상이 수백 년 동안이나 이어졌던 만큼,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혹은 전쟁을 회피하기 위해 참으로 많은 기발한 전략들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는 적대 국가의 군주를 아국에 유리한 사람으로 내세우기 위한 여러 책략도 포함되었고요. 어떤 의미에서 지금의 상황이 딱 그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미국이 그런 행동을 해 오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을 겁니다. 아니, 사실 그동안 미국이 쭉 해 오던 일이라 할 수 있지요.”

캘리포니아 하원의원이 말했다.

“맞습니다. 미국이 늘 해 오던 일이지요. 1950년대부터 행해진 CIA의 해외 공작은 그런 것들이었지요. 제가 알고 있는 것만도 대략 50여 개 국가에서 200여 차례의 비밀공작을 통해 미국은 여러 나라의 정권을 자신의 마음에 드는 자들로 바꾸기 위해 시도해 왔습니다. 그리고 상당수는 성공했고요.”

1953년 CIA는 이란의 모사데크 정권을 전복시키고, 팔라비 황제가 정권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CIA의 수십 년 역사 속에 가장 빛나는 업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외에도 과테말라나 칠레 등지에서도 미국에 우호적인 정권이 들어설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그런 정치 공작은 결과적으로 해당 국가의 국민들로 하여금 미국에 대한 반발심만 가지도록 만들었고, 장기적으로 미국의 후원을 받은 정권을 무너트리고 마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어떤 공작도 장기적으로 성공했다 말하긴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과거의 공작과 어떻게 다른 방법을 제안하려는 겁니까?”

데이비드 첼로니 의원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과거의 공작은 철저하게 미국의 이익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고, 주로 군부정권이나 소수의 쿠데타를 지원하는 방식이었지요. 여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무엇이 미국의 이익인지에 대한 관점의 문제이고, 또 한 가지는 소수에 의한 독재를 지지함으로써 정당성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이지요.”

“대체 무엇이 미국의 이익인지를 누가 정한다는 거지요?”

유진이 말한 두 가지 중, 후자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견이 없는 모양이다.

“그게 바로 문제 아니겠습니까? 이란의 쿠데타를 지지할 때에는 석유 메이저의 이익이 미국의 이권이라는 태도에서 접근한 것이고, 과테말라나 다른 남미 국가들의 경우에는 해당 국가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이 모든 경우 소수의 미국 기업에 돌아갈 이익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미국 전체의 이익이 오히려 훼손되는 결과를 낳았지요.”

“그렇다면 어떤 것이 미국 전체의 이익이 된다는 겁니까?”

대화는 주로 유진과 데이비드 첼로니 의원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대체로 나머지 사람들도 데이비드 첼로니와 비슷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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