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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291화 (291/363)

291화 미국의 국익

“당연히 미국에 호의적이며, 미국의 주력 상품을 구매해 줄 만큼 경제적으로 충분한 국가이겠지요.”

유진이 기다렸다는 듯 즉각 대답했다.

“미국의 국익은 다름 아닌 미국의 물건을 많이 파는 데서 나오지 않겠습니까? 애플이 아이폰을 팔아 벌어들이는 돈이나, MS와 아마존이 서버를 운영해 벌어들이고 있는 천문학적인 액수가 지금의 미국의 근본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애플과 MS, 아마존의 최대 주주는 유진이라는 사실을 이 자리에 서 있는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지금 언급한 기업들뿐 아니라 미국의 주요한 글로벌 거대 기업들 지분 대부분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말이다.

유진은 지금 미국의 국익을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유진 자신의 이익을 논하는 것이다.

미국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그 거대 기업들의 지분 상당 부분을 손에 넣은 순간부터 미국의 국익과 유진 개인의 이익을 구별하는 것은 어려워졌다.

더불어 유진이 내는 엄청난 세금과 다양한 구호 활동, 그리고 정치권에 대한 호혜 때문에라도 정치권에서는 유진의 손익에 대해서 국가사업만큼이나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 또한 현실이었다.

그동안의 투자로 충분한 자본을 마련한 유진은 이제 글로벌 200대 기업의 지분을 충분히 매수한 상태이다.

그리고 앞으로 이 거대 기업들에 대한 지분은 크게 변동이 없을 것이다.

이미 유진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은 시장에 풀어놓기에는 너무나 큰 수준이다.

적어도 20%에서 많게는 30%가 넘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 한 기업의 지분 몇 %만 풀어도 주가가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앞으로도 경기는 계속 움직일 것이고, 때에 따라 주가가 오르내릴 것이다.

그럴 때는 보유하고 있는 지분을 파는 대신, 파생상품을 통해 위험을 헷지할 수 있다.

주가가 충분히 고점에 올랐다면 공매도나 선물매도, 풋 포지션 옵션 보유 등을 통해 지분을 유지한 채 충분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그런 다양한 파생 상품 덕분에 경기가 어떻게 흘러가든 유진의 수익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외부에서 보기에는 미국의 국익이 유진 개인의 이익과 동의어라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려웠다.

그 증거로 이 자그마한 모임에 참석한 미국의 파워 피플들이 유진의 말에 동의를 나타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타국의 동향으로 인한 미국의 국익 상승은 단순히 친미 정권이 들어서는 것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권보다는 해당 국가 국민들이 미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호감이 훨씬 더 중요할 겁니다. 미국의 상품을 사랑하고, 미국의 영화에 열광하고, 미국의 드라마를 보며 새로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까지의 미국 정보부 공작들은 참담한 실패라 불러도 무리가 없을 겁니다.”

자리에 모인 모두가 굳게 입을 닫은 채 유진의 말을 경청했다.

유진은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하나하나 살피며 말을 이어 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장기적으로 볼 때 미국에 도움이 되는가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석유 기업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이란의 모사데크 정권을 무너트리고, 팔라비 정권이 들어선 결과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철저한 친미 정권인 팔라비 황제는 결국 국민들의 미움을 받고 쫓겨났고, 호메이니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그 결과 가장 반미국가라 할 수 있는 지금의 이란이 성립되었지요.”

CIA 최대의 업적이 결과적으로는 미국에게 있어 가장 골칫거리를 만들고 말았다는 사실은 누구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진실이다.

“해당 국가의 국민감정을 무시하고 독재 정권을 지지하는 방법으로는 미국의 국익을 지킬 수 없다는 말이로군요?”

이 자리에서 가장 유진에게 호의를 지닌 사람은 엘리자베스 부통령이다.

다음 대통령 자리를 위해서는 유진의 지지를 얻어 내야 하니 당연한 일이다.

사실 대통령 비서실장도 현 정권의 다양한 정책에 재정적 도움을 위해서, 그리고 그 자신의 개인적인 장래를 위해서도 유진에게 호의적인 사람이다.

한편 정치적 야심이 큰 찰리 프로스트 플로리다주 주지사도 도널드 트럼프에 이어 바이든이 백악관을 차지하는 데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한 유진의 눈에 들기 위해서 엘리자베스와 함께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고 있었다.

사실 차기 대선의 유력한 주자로 손꼽히는 두 사람을 함께 부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반대로 해당 국가의 국민들이 미국을 좋아하면 미국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지요. 예를 들면 바로 한국이 있습니다.”

유진이 고국을 거론하자, 모두가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미국과 미국인에 대한 호감도가 가장 높은 나라는 다름 아닌 한국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아마도 세계에서 미국을 가장 사랑하는 나라일 겁니다. 어쩌면 미국인들 본인보다도 더 미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바로 한국인들이지요. 시위 현장에 자국 국기와 함께 성조기를 들고나와 열렬하게 흔드는 국민들을 볼 수 있는 곳은 아마 한국뿐일 겁니다.”

유진의 말에 모두가 웃음을 보였다. 약간의 호의와 약간의 어리둥절한 심정이 섞인 복잡미묘한 웃음이다.

“지난 2020년 세계인들이 미국에 대해 지닌 호감도는 겨우 30%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은 60% 선까지 회복했죠.”

이어지는 유진의 말에 다시 사람들의 표정이 묘하게 바뀐다.

지난 2020년은 트럼프 정권 시기를 말하는 것이고, 현재는 바이든 덕분에 미국에 대한 호감이 늘었다는 말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조사에 포함된 나라들은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한국같이 기본적으로 미국의 동맹국들뿐입니다. 그런 나라를 제외한 여타 국가들에서 미국은 그야말로 비호감의 표상이나 다름없는 거지요.”

“아랍 국가들이 포함되지 않은 게 다행이로군.”

데이비드 첼로니가 씁쓸하게 덧붙였다. 그의 말처럼 조사 대상 국가에 아랍이 포함되어 있었다면, 지금과 달리 아주 진창이 된 결과를 보았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중국입니다. 지난 2000년대에만 해도 중국인들은 한국인들만큼이나 미국을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인들은 미국을 너무 싫어하지요. 아마도 아랍인들 다음일 겁니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국익에도 매우 나쁜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유진의 말은 그저 주장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정치인들 모두가 느끼고 있는 현실이었다.

“한두 개 기업의 단기적인 이익과 미국에 호의적인 국가 중 어느 쪽이 훨씬 미국의 국익에 부합되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겠죠.”

“그렇지만 이미 미국에 대한 증오로 물들어 버린 아랍 세계 국가들의 감정을 미국에게 호의적으로 돌릴 방법이란 게 존재하기는 할지 모르겠군요.”

아직은 대권과 가장 거리가 먼 데이비드 첼로니 캘리포니아 하원의원은 유진에게 도움을 받아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조금은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랍은 넘어갑시다.”

유진이 웃으며 말했다.

“거기에는 어떻게 손을 대도 나빠지기만 할 겁니다. 그 사람들을 미국식의 정의로 무언가 변화시켜 보려는 시도는 미국을 계속해서 시궁창으로 밀어 넣을 따름입니다.”

유진의 말에 모두가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지난 30년 동안 미국이 아랍 세계에서 벌인 모든 일은 점점 더 상황을 악화시켜왔을 뿐이다.

“솔직히 아랍에는 관여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지금도 희생되고 있는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그런 결정을 내릴 수도 없지요.”

엘리자베스가 휴머니즘에 가득 찬 말을 내뱉었다. 물론 진실과는 아주 거리가 먼 이야기이다.

어디까지나 석유 가격의 통제와 미국의 아킬레스건인 이스라엘의 국익, 그리고 유대인들의 로비 때문이라는 말은 절대 꺼낼 수 없다.

미국 정치계에서 이스라엘 문제는 너무나도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에 그 어떤 유력 정치인도 반 이스라엘적인 말을 쉽게 내뱉을 수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 유진으로서는 부럽기 짝이 없는 부분이다. 한국의 상황과는 정반대였으니.

미국의 정치인이 한국을 쉽게 거론하지 못하고, 한국의 국익에 반대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은 아직 너무도 멀리 있다.

“세계에는 아랍 세계 말고도 우리가 신경 써야 할 나라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러니 그런 나라들에 신경을 쓰고, 앞으로 아랍인들은 그들이 알아서 할 수 있도록 조금 떨어져 지켜봐 주는 게 좋지 않을까요?”

사실 많은 미국인이 느끼는 감정이 그런 것이다. 미국도 이미 할 만큼 했다.

아랍 문제는 아랍인들이 알아서 하도록 놓아두는 편이 최선이다.

결과적으로 2차 세계 대전 이후 근 80여 년에 걸친 미국의 아랍 세계에 대한 관여는 참담한 실패로 끝나가고 있다.

물론 그 와중에 석유 가격 통제 등의 이익이 없던 것은 아니지만, 더 많은 산유국이 등장하고, 미국이 점점 더 많은 석유를 뽑아내고, 대체에너지가 현실화되며 이미 OPEC의 영향력은 상당히 줄어들었다.

이제는 미국이 아랍 세계를 놓아줄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나라들이 있지 않습니까? 러시아나 중국, 그리고 아시아의 여러 국가들 말입니다.”

다시 주제는 러시아로 돌아왔다.

“러시아 정부에 들어설 최선의 지도자는 역시 무엇보다 러시아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사람이어야 할 겁니다. 사실 러시아뿐이 아니지요. 미국이 어떤 나라의 지도자 선출에 관여한다면, 그 나라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혹은 적어도 그 나라의 경제를 호전시킬 만한 지도자여야 할 겁니다.”

“러시아에 그럴 만한 사람이 있다는 겁니까?”

“있습니다. 지금 러시아 국민들은 새로운 지도자의 출현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국내 상황을 정리해 주고, 부패투성이인 경제와 관료들을 청산해 줄 사람을요. 얼마 전까지 베링 그룹의 회장이었지만, 현 지도부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반대하며 박해를 받아 온 드미트리 알렉산드로비치 같은 능력 있고 참신한 사람 말입니다.”

한참을 돌아 유진은 비로소 목적지에 도달했다.

“드미트리 알렉산드로비치가 지금 러시아에서 꽤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도 꽤 흠집이 많은 인물인데요?”

엘리자베스 부통령이 아직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의 러시아에서 흠 없는 인물을 찾는 것은 아마 불가능한 일일 겁니다. 그리고 드미트리 알렉산드로비치는 정치를 떠나 굉장히 매력적인 사람이기도 하지요.”

유진의 말에 엘리자베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철인처럼 강고한 여성 정치인이 살짝 미소를 지을 정도로 드미트리 알렉산드로비치의 남성적인 매력은 뛰어나다.

“드미트리 알렉산드로비치가 러시아의 정권을 잡는다면, 틀림없이 미국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캘리포니아 하원의원이 물었다.

“드미트리 알렉산드로비치는 경제인입니다. 적어도 러시아의 경제를 지금의 시궁창에서 구해 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시베리아 개발도 다시 재시작할 수 있을 거고요.”

유진은 자신의 야욕을 조금도 감추려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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