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2화 VPN과 SNS
이날의 조찬회에 모인 사람들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이끌어가는 유력 정치인들이다.
당연히 러시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드미트리 알렉산드로비치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달리 설명을 해 주지 않더라도 이미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고, 덕분에 이야기는 좀 더 빨라졌다.
“다들 제가 시베리아에서 발견한 유전에 대해서는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지금의 러시아 정권에서 그 유전을 탐내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개발권을 빼앗겼고, 그 뒤로 중국과의 전쟁이 벌어지며 유전 개발은 사실상 한없이 지연되는 상황이지요. 만일 러시아에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면 그 부분에 대해 다시 협상의 여지가 생기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유전을 넘기는 대가로 러시아 최대의 에너지 회사인 가스프롬 지분을 넉넉하게 넘겨받은 이야기는 굳이 말할 필요 없었다.
“확실히 러시아는 무도한 데가 있어요.”
쿠바 출신으로는 너무도 당연하게 클래식한 반공주의자이며 반러시아 인사로 널리 알려진 찰리 프로스트 플로리다주 주지사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유진뿐 아니라 러시아에 진출한 많은 미국 기업들이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때 쫓겨나듯 철수해야 했었죠.”
“확실히 지금의 러시아 정부는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데이비드 첼로니 하원의원도 러시아에 대해 그리 호감은 아닌 모양이다.
한편 주지사나 하원의원보다 훨씬 더 많은 사실을 알고 있는 대통령 비서실장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고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간 유진이 현 러시아 대통령의 자금을 관리해 주고 있었다거나, 또 그 덕분에 러시아에서 적지 않은 이익을 얻어 온 것 따위를 알고 있음에도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다.
사실 그들의 물주인 유진이 지금의 러시아 정권 때문에 큰 손실을 보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달리 무슨 말을 하겠는가?
“드미트리 알렉산드로비치라면 러시아 경제를 정상화하고, 미국의 기업들이 러시아에서 정상적인 경쟁에 나서게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그런 이유에서 드미트리 알렉산드로비치의 딸을 옆에 두고 계신 거로군요?”
엘리자베스 부통령이 다 알고 있다는 듯 물어 왔다. 하지만 그건 오히려 유진을 도와주려는 발언이다.
“드미트리 알렉산드로비치의 딸이라고요?”
그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는 듯 찰리 프로스트 주지사가 물었다. 데이비드 첼로니 하원의원 또한 흥미롭다는 눈으로 유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의 정권에서 드미트리 알렉산드로비치를 구속하려 할 때, 그의 딸 또한 위험하다는 사실을 듣고 미국으로 데려와 여기에서 머물게 했습니다. 지금은 맨해튼의 유력한 금융업체에 근무하고 있지요.”
조금도 숨길 것이 없다는 태도로 유진이 대답했다.
“흠. 그렇다면 유진은 말하자면 드미트리 알렉산드로비치의 딸을 도와준 은인인 셈이로군요.”
“은인까지는 아니지만, 약간의 도움은 주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드미트리 알렉산드로비치가 집권하게 되었을 때 시베리아 유전 개발에 유진이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말이겠군요?”
“그렇게 되겠지요?”
“유진에게는 확실히 나쁘지 않은 선택이로군요.”
캘리포니아 하원의원인 데이비드는 그런 거래에서 미국이나 민주당, 혹은 캘리포니아가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 묻고 싶은 모양이다.
정치적인 거래란 대개가 이런 것이다. 이곳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모두가 공통의 이익을 공유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서로 다른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니 모두를 만족시키려면 각자가 만족할 만한 것을 던져주어야 한다.
“러시아의 내부가 안정화되고, 다시 미국과의 교류가 정상화되면 앞으로 5년 이내에 적어도 5,000억 달러 상당의 경제적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보입니다.”
데이비드 첼로니 의원의 의미심장한 말에 원하는 먹이를 던져 주는 대신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대의를 강조했다. 이심전심으로 상대도 유진의 의미를 알아차렸을 것이다.
“코로나 사태가 지나간 이후 지난 몇 년 동안 세계의 경제 상황은 상당히 좋지 않았습니다. 과격한 인플레이션이 가장 큰 원인이었지요. 그리고 그 인플레이션에 박차를 가한 것이 러시아의 무모한 행동이었습니다. 이젠 슬슬 러시아도 안정이 되어야겠지요.”
백악관에서 온 노회한 행정가가 슬며시 유진의 편을 들어주었다.
“좋습니다. 드미트리 알렉산드로비치가 러시아 정국을 안정시키고, 경제를 회복할 수 있으며, 더군다나 유진과 좋은 유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미국이 그자를 밀어주지 않을 이유가 없겠군요. 중요한 건 방법론이네요. 유진이 말한 대로 군사적이거나 호전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후일을 생각하면 오히려 문제만 만들 뿐이고요.”
찰리 프로스트 주지사가 드미트리를 지지하며 더 이상 그를 러시아의 차세대 지도자로 올리자는 의견에 대한 반대는 없어졌다.
“러시아가 해 왔던 것을 그대로 돌려주면 됩니다.”
유진이 명쾌하게 대답했다.
“그대로라면?”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러시아는 자국이 원하는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가짜 뉴스를 올리고, SNS에 피드를 하는 등의 방법으로 말이지요. 사실 아주 효과적이고 저비용에,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굉장히 온건한 방법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SNS를 사용하고, 가짜 뉴스를 올리자는 말인가요?”
찰리의 말에 유진이 고개를 끄덕인다.
“예. 2010년대 중반 이후로 이런 SNS와 가짜 뉴스가 끼치는 영향력은 이미 레거시 미디어들에 필적할 만큼 커졌습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틱톡 같은 곳을 통해 퍼져나가는 소식들은 관영 혹은 민영 미디어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지요.”
“확실히…….”
“재미있는 것은 초기에는 젊은 사람들이 이런 SNS를 주로 사용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노년층들이 더더욱 SNS를 통해 얻는 소식을 전통적 미디어에서 일방적으로 내보내는 뉴스보다 더욱 신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유진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메타는 단순한 인터넷 서비스 기업이라기보다, 기존의 미디어 업계를 위협하는 새로운 미디어 그룹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건 유튜브를 운영하는 알파벳도 마찬가지였다.
“러시아의 경우는 미국의 SNS를 차단해 놓았으니, 대신 러시아 최대의 로컬 SNS인 VK를 사용하고, 좀 더 저렴하고 안전한 VPN 서비스를 무료로 서비스하는 방법 등이 있겠지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며 자국민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해외 SNS 사용을 금지했다.
그 때문에 러시아 사람들은 그런 SNS에 접속하기 위해 VPN이라는 가상 사설 통신망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아직도 해외 SNS 서비스를 차단하고 있는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사실 많은 권위주의 국가에서는 이런 SNS 서비스의 파급력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대개 해외 SNS를 막고 있다.
해당 국가의 국민들은 이를 우회하기 위해 VPN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지만, 질 좋은 VPN을 찾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고 한 달에 겨우 10달러에 불과한 서비스 비용도 해당 국가의 일반인들에게는 꽤 부담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 저렴하고 안전한 VPN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이런 권위주의 국가들에 대한 적절한 대책이 될 수 있다.
러시아, 중국, 그리고 이란을 포함한 아랍 제국들,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가 이런 해외의 SNS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를 시행하고 있으며, 이런 나라들에서는 VPN 서비스조차 수시로 막고 있다.
심지어 비밀리에 해외 사업자 명의로 된 VPN 서비스를 제공해서 그걸 이용하는 자국민의 정보를 입수해 탄압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기까지 하다.
결과적으로 해당 국가 국민들은 이제 VPN도 위험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거의 무료로 사용할 수 있고, 안정적이며, 공인된 VPN을 제공한다면 이런 나라들 국민들이 관영 통신망이 아닌 SNS나 다른 수단을 커뮤니케이션의 통로로 사용해 반체제적인 소식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당연히 그런 방법을 통해서라면 미국이 해당 국가 국민에게 원하는 정보를 마음껏 제공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과거 아날로그 시대에 삐라를 뿌렸던 것처럼, 지금은 SNS라는 수단으로 훨씬 더 효과적으로 진실, 혹은 거짓 정보를 마음껏 뿌릴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그다지 큰돈이 들어가는 일은 아니기에 유진 개인적으로라도 이런 서비스를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데에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유진으로서는 그런 권위주의 국가들의 지도자들을 고객으로 받고 있기에 먼저 나서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니 이런 문제는 국가에 넘기는 편이 속 편하다.
“그 정도로 되겠습니까?”
찰리 프로스트 주지사가 의문을 표했다.
“사실 그 외에도 여러 방법이 있을 겁니다. 언제나처럼 정보기관에서 러시아 내부의 주요 인사들을 매수한다거나 하는 것들 말입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정보 관련 분야에서 저는 그저 문외한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런 부분은 전문가들에게 맡겨야겠지요.”
이 자리에서 논의할 것은 그런 디테일한 방법이 아니었다는 것을 유진은 말하고 있었다.
정책이 정해지면 방법은 얼마든지 생각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백악관에서 지시가 내려가면 미국 내 수많은 정보기관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할 테니까.
“그런 각론에 앞서, 전 미국이 이런 SNS와 뉴스를 전담하는 어떤 통합적인 흐름이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도 여러 기관에서 그런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경쟁국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야 할 겁니다.”
이제 유진은 설득의 단계를 넘어 구체적인 주장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다면 다음 선거에서도, 그리고 앞으로도 미국은 적대국의 전략에 따라 엉뚱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주지사로, 그리고 하원의원으로 뽑게 될 겁니다.”
“확실히 불쾌하고 불공평한 일이지요.”
엘리자베스가 고개를 끄덕인 것은 이미 몇 번의 선거를 통해 그런 고약한 사태를 직접 목격해 왔기 때문이다.
“단지 러시아뿐이 아닙니다. 중국, 이란 같이 위험한 나라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단기적이 아니고 장기적으로, 이런 나라들에서 탄압받는 사람들에 도움이 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한두 사람의 위정자가 아닌 국민 전체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치인을 지원하고, 궁극적으로 그들이 정권을 잡게 도와야 합니다. 그런 나라들이 늘어날수록 미국의 안전과 세계에 대한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겁니다.”
궁극적으로는 그런 나라들의 경제 규모가 커지며, 유진의 부와 영향력이 늘어나게 될 것이란 사실이 내포된 말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날의 조찬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유진의 말에 큰 동의를 표했다.
과거처럼 정치 공작이나 쿠데타 지원이 아니라 평화적인 수단을 사용해 국민의 사랑을 받는 정치인을 지원해 주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미국의 국익에 더욱 도움이 될 거라는 방법론이 참신하기도 했지만, 그에 찬성하는 것으로 각자가 개인적으로 얻어 낼 이익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굳이 저를 이 자리에 부르신 이유가 무언지 아직도 궁금하군요.”
조찬회가 끝나고, 데이비드 첼로니 캘리포니아 하원의원이 슬쩍 물어 왔다.
다른 인물들과 달리 자신은 조금 무게가 떨어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제가 데이비드 의원의 개인적인 팬이기 때문이겠지요?”
유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사실은 다다음 대통령으로 그를 유력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벌써 꺼낼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