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293화 (293/363)

293화 조찬회(朝餐會)

“데이비드야말로 새로운 캐네디, 새로운 클린턴에 어울리는 사람이라 생각하니까요.”

“솔직히 저도 야심이 있는 것은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유진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만일 제게 야심이 없었다 해도 억지로라도 만들어 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제는 젊은 사람들이 다시 미국을 이끌어 갈 시간이 오고 있습니다. 미국의 유권자로서, 데이비드가 그런 자리에 서서 다른 젊은 경쟁자들과 함께 새로운 미국의 비전을 제시하는 모습을 꼭 지켜보고 싶군요.”

트럼프와 바이든 모두 일흔이 넘은 나이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 때문인지 한때 젊음을 상징하던 미국이 어느덧 훌쩍 나이를 먹은 느낌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미국은 다시 젊은 사람을 원하고 있다.

캐네디와 클린턴에게 기대했던 것처럼, 그리고 오바마에게 바랐던 것처럼 말이다.

민주주의의 가장 큰 장점은 그런 것이다. 개개의 선택은 때로 잘못될 수도 있지만, 유권자들은 언제든지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바로잡을 기회를 가진다.

이는 비민주 사회가 결코 얻어 내지 못할 멋진 점이다.

“앞으로도 종종 뵐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물론 불러 주시면 언제라도 찾아뵙겠습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유진은 데이비드 첼로니 의원의 정치적 성장에 최대한 도움을 주겠다고 격려해 주었다.

데이비드는 이 나라 최대의 정치 후원자에게 낙점받은 것에 크게 기뻐하며 행복한 얼굴로 돌아갔다.

그리고 유진이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누어야 할 사람은 아직 더 남아 있었다.

“오늘의 모임에 제가 참석한 이유가 뭘지 한참 고민해 봤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고 나서도 자리를 지키던 찰리 프로스트 플로리다주 주지사가 물었다.

“오늘 유진이 꺼낸 의제는 사실 나와는 한참 거리가 있는 사안이거든요. 그런데 굳이 이 자리에 날 불렀고, 그런 문제에 대한 논의에 참여하게 한 데에는 틀림없이 어떤 이유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굉장한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주지사님과 좀 더 돈독한 자리를 만들고 싶었을 뿐입니다. 적어도 전 주지사님이야말로 공화당의 미래를 만들어 가실 분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건가요? 이거 정말 영광입니다.”

찰리 프로스트 주지사가 한껏 웃으며 말했다.

이날의 조찬회에서 오간 이야기들이 전부 정책에 반영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러시아의 새로운 대통령으로 유진이 생각하고 있는 사람을 밀어주는 사안만큼은 백악관에서도 진지하게 고민하리라는 것엔 그다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단순히 유진과 끈끈한 유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지금의 크렘린을 가득 채운 KGB 출신이나 군부 출신 인사들보다 훨씬 나을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 이후로도 백악관에서 어떤 나라의 대선에 개입할 때 유진의 말처럼 해당 국가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지도자에게 힘을 실어 주리라는 기대를 하기는 어렵다.

어떤 파트너를 선택하는지는 철저하게 백악관의 주인이 판단을 내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의 대통령은,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유진을 바라보고 있는 플로리다주 주지사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다면 유진의 충고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전 유진이 민주당을 훨씬 좋아한다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어째서 그런 생각을 하셨는지 모르겠군요? 지금까지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거의 차별 없이 공정한 지지를 보내 드렸다고 생각했는데요?”

“아무래도 바이든을 지지했기 때문이겠지요?”

“흠. 지난번에는 트럼프의 손을 들어 주었는데요.”

“하지만 2020년에 마음이 바뀌지 않으셨던가요?”

쉽게 물러나지 않는 찰리 프로스트 주지사의 말에 유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생각보다 무서운 사람이더군요. 하하.”

“그렇기는 하죠. 솔직히 저도 공화당이지만, 도널드가 4년을 더 이끌었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졌을지 생각도 하기 싫을 정도입니다.”

“다행이로군요. 서로 마음이 맞아서.”

“그렇다면 다음 대선에서 반드시 민주당을 지지하지는 않으시겠다는 말씀이신 거죠?”

주지사는 에둘러 말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어 왔다.

“물론이지요. 전 솔직히 어떤 분이 백악관에 들어가시든 철저하게 시민들이 결정해야 한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평범한 시민의 한 명으로서 투표권을 행사할 생각이고요.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에 대해서는 언제나처럼 공평한 지원을 할 겁니다.”

사실 선거의 와중에 유진이 거액의 자금을 쏟아 내는 것은 나름의 의미가 있는 일이기도 하다.

미국의 선거는 철저하게 거대한 후원금을 내놓는 몇몇 부호들에 의존하는 경향이 점점 커지고 있다.

미국 내 부의 분배가 점점 더 몇몇 초부자들에게 쏠리면서, 이제는 더 이상 평범한 다수의 후원은 그런 부자들이 크게 내놓는 후원금에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유진은 양당에 거의 공평하게 엄청난 액수를 지원함으로써 다른 부자들의 후원이 주는 영향력을 낮추고 있었다.

“물론 가능하다면 찰리가 다음번 백악관의 주인이 되는 모습을 보고 싶기는 하지만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벌써 힘이 나는군요.”

물론 이 시점에서 주지사는 유진이 정말로 다음 선거에서 자신을 밀어줄 것인지, 아니면 언제나처럼 인사말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이런 자리에 자신을 불러준 것은 분명 충분히 희망을 가질 만한 일이다.

이내 대화를 끝낸 플로리다주 주지사 또한 유진과 좋은 관계를 희망하며 행복한 얼굴로 돌아갔다.

그렇게 유진이 정치권에 깔아 놓은 포석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었다.

그날을 기점으로 플라자 호텔의 상층부에 위치한 유진의 펜트하우스에선 매일 같이 조찬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다니엘, 로라, 조나선, 패트릭 모두 참석하겠답니다.”

모니카가 다음날의 중요한 예정을 알려 주었다. 이번에 참석할 사람들은 이날처럼 정치적인 파워 피플들은 아니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들 이상으로 강력한 힘을 지닌 사람들이다.

그들은 바로 맨해튼에 거점을 둔 벌지 브래킷 은행의 회장들이었다.

세계의 수많은 투자은행 중에서도 가장 많은 자본과 글로벌 영업망을 지닌 대형 투자은행 9곳을 벌지 브래킷이라 칭하는데, 이중 골드만삭스, JP모건 체이스, 뱅크 오브 아메리카, 씨티그룹 네 곳이 미국 국적이다.

그리고 그 네 곳의 회장들은 세계 금융계는 물론이고 미국 산업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사실 그런 대형 투자은행의 회장들을 만나는 것은 유진에게는 일상적인 일이다.

거의 일주일에 서너 번은 이들 중 몇 명을 만나 함께 식사하거나, 짧은 티타임이라도 갖고는 했다.

“어제도 뵙고 또 뵙는군요. 이건 우리 집사람이 아침에 만든 푸딩입니다.”

조찬회에 가장 먼저 참석한 씨티그룹 패트릭 샤프가 가지고 온 봉투 하나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인사했다.

“마리엘에게 감사하다고 말씀드려 주세요.”

“천만에요. 지난번에 보내주신 코리안 액세서리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고, 꼭 보답하고 싶었다더군요.”

유진은 때때로 한국 특유의 문양이 들어 있는 장신구 따위를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하고는 했다.

자산이 10억 달러가 넘나드는 초부자들에게도 작은 선물은 언제나 대화를 매끄럽게 이끌어가는 촉진제 역할을 하기 마련이다.

특히 최근 들어 심하게 불고 있는 한류의 물결은 조금씩이나마 최상류층에까지 퍼져 나가고 있었다.

패트릭 샤프 회장의 부인에게 보내 준 봉황이 새겨진 은색 비녀는 한류 연예인들이 종종 하고 나와 그 이색적인 아름다움으로 뉴욕 상류층 여성들 사이에 제법 유행하는 듯했다.

물론 유진이 부지런히 선물로 퍼트린 영향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유진 정도 되는 사람이 보내 준 선물이라면 예의상이라도 한 번씩은 착용하고 공식적인 자리에 나서기 마련이고, 그런 최상류층 여인들의 머리를 장식한 액세서리는 늘 화제를 몰고 오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어떤 사람들은 유진과 개인적인 선물을 주고받을 만큼 친밀하다는 사실을 자랑하기 위해서라도 매번 착용하고 나오는 일도 적지 않으니, 유진의 그런 선물이 한국을 알리는 마케팅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맨해튼의 최상류층 사교 모임뿐 아니라, 할리우드 여배우들 또한 비슷한 선물을 받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뉴스를 장식하기에 점점 한국풍 문물은 미국 사회에 깊숙하게 파고드는 중이다.

패트릭 회장에 이어 굴지의 투자은행 회장들이 하나씩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모두들 즐거운 얼굴로 유진에게 인사를 하고, 작은 선물이나마 하나씩 꺼내 놓는다.

다들 정치인들이 아니기에 그들에게 선물하는 것도, 또 선물을 받는 것도 부담이 없어 좋았다.

“이른 시간부터 모여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시간은 이제 겨우 오전 6시 반을 조금 넘어서고 있었다.

“아침을 먹기에는 딱 좋은 시간이지요.”

“평소보다 늦은 식사에요.”

각기 수천억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투자기관들을 선두에 서서 지휘하는 인물들이라 다들 이른 시간부터 활동하는 것에 익숙한 모습들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최대 주주인 유진의 초대라면 자다가라도 일어나 나와야지요. 하하.”

“사실 유진이 벌어다 주는 이자를 생각하면 매일 아침 여기로 출근하라 해도 그럴 각오라오.”

이제 장년을 넘어 노년으로 넘어가는 거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유진에게 아부 섞인 인사를 한다.

물론 그들과 유진 사이에 오고 가는 엄청난 액수를 생각해 본다면 사실 아부랄 것도 없다.

대형 투자은행들과 유진의 투자기관들 사이는 경쟁 관계로 볼 수도 있지만, 그보다 훨씬 더 끈끈한 유대 관계를 지니고 있다.

유진이 전 세계에 투자 중인 10조 달러를 넘어서는 엄청난 자금 대부분은 1차적으로 이런 투자은행들을 통해 조달하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유진은 이 투자은행들에 엄청난 이자 수익을 돌려주고 있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이자율도 올라 유진이 매년 지불해야 하는 이자 비용만 한 나라의 GDP를 훌쩍 넘어서고 있는 참이다.

시티그룹 같은 경우는 매년 4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이자 수익을 유진 한 사람에게 얻어 내고 있다. 시티그룹 연간 매출액의 40%에 달하는 무지막지한 금액이다.

방금 누군가가 말한 것처럼 매일같이 여기로 출근하라 해도 감사하다고 감지덕지해야 할 판국이다.

한편 유진이 소유한 전 세계의 투자기관들은 다시 이런 대형 투자은행의 지분을 상당 부분 소유하고 있기도 하다.

조금 더 명확하게 계산을 해 보면 유진은 이 투자은행들 모두의 최대 주주에 가까울 것이다.

이건 유진만의 특별한 행위로 볼 수는 없다. 맨해튼의 금융계가 대부분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투자에 있어 레버리지는 기본이기에 은행이나 다른 자산운용사를 통해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런 투자에는 이런 투자은행의 주식도 포함되어 있기 마련이다.

일례로 골드만삭스의 지분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은 유진이고, 그 뒤를 이어 자산운용사인 뱅가드 그룹이 8% 정도를, 그리고 역시 자산운용사인 SSGA와 블랙록이 6%에서 5% 정도를 가지고 있다.

그렇게 지분 관계를 따져 본다면, 결과적으로 맨해튼에 있는 금융사들 대부분과 투자사들은 서로의 지분을 소유하는 것을 통해 아주 복잡하게 얽힌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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