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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294화 (294/363)

294화 경제 공동체

이날 유진이 주최한 조찬회에 모인 사람들은 어찌 보면 같은 시스템 아래 유기적으로 연결된 한집안 식구들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정상급 투자은행들이 서로 경쟁자의 위치이겠지만, 내부적으로는 서로 긴밀한 협력을 유지하며 각자가 최대한의 이윤을 확보하려는 반경쟁, 반협력이라는 아주 독특한 체제를 이루고 있었다.

맨해튼의 금융 투자자들 사이에는 이런 사교 행사가 온종일 쉬지 않고 일어난다.

막 은행에 입사한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 나름으로, 그리고 중역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이라면 그들끼리, 그리고 유진이나 이 자리에 모인 거대 은행의 회장들도 쉬지 않고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과 접촉하며 친교를 다지고, 정보를 교환한다.

그렇다. 이러한 모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가 지닌 정보를 교환하는 것이다.

“최근 몇 달 사이에 여러 통로를 거쳐서 상하이와 베이징에 2,000억 달러 수준의 투자를 확정지었습니다.”

유진이 먼저 중요한 정보를 내놓았다.

“어떤 시장인지 물어 봐도 되겠습니까?”

“채권에 약간, 그리고 사모펀드도 조금 건드렸습니다. 아! 부동산은 시기상조인 것 같습니다.”

“확실히 부동산은 아직 한참 거품이 꺼져야지요.”

“사모펀드 시장이 그래도 제일 재미를 볼 수 있을 것 같더군요.”

“당분간 중국 금융 시장의 규모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이 자리를 주관한 유진이 중국 금융 시장 진출의 선봉장 역할을 맡겠다는 것으로, 모두 전보다는 마음 편히 중국 시장을 집어삼키겠다는 야욕을 고스란히 드러내기 시작했다.

“예 주석의 동향은 어떤가요? 혹시라도 중국 측 입장이 바뀌면 곤란합니다.”

골드만삭스의 조나선 회장이 물었다. 유진이 중국의 최고 지도자와 개인적인 연락망이 있음을 알기에 할 수 있는 질문이다.

“당분간은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이제 겨우 시작이니 적어도 5년 동안은 마음을 놓아도 되지 않을까 싶군요.”

“다행이로군요. 하긴, 중국은 10년 단위였었지요?”

“생각해 보면 10년 정도는 자리를 유지해야 정책의 일관성도 보장될 수 있지요.”

자리에 모인 이들 모두 유진의 말에 크게 의심을 하지 않는다.

유진이 중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 지도자들의 자금을 운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월 스트리트에서는 이미 알려질 만큼 알려질 사안이었다.

사실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위대한 금융가들조차 유진의 FO 펀드에 각기 억 단위로 맡겨 놓은 상황이다.

근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매년 무서운 수익을 내고 있는 FO 펀드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각국의 지도자이거나 적어도 그와 비슷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4대 벌지 브래킷의 회장들은 충분히 그 정도의 영향력은 지니고 있다.

그들의 재산은 상당 부분 각기 재임하고 있는 은행의 지분에 묶여 있지만, 그 외에 가외로 굴리는 재산 또한 적지 않다.

그리고 돈에 대해서라면 세상 그 누구보다 명확한 이들은 그런 돈을 어디에 맡겨 놓으면 좋은지 잘 알고 있다.

결과적으로 4대 투자은행 회장들의 개인적인 자금은 대개 유진이 운영하는 펀드에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유진은 매년 그들에게 아주 놀라운 수익을 확인시켜 주며, 그들의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게 해 주는 중이다.

그런 이유에서 유진의 성공이 반드시 그들이 재임하는 은행의 수익에 연결이 되지는 않을지라도, 그들 개개인의 재산 증식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었다.

그렇게 유진을 시작으로 서로가 각자 나름의 가치가 있는 정보를 하나씩 꺼내 놓았다.

물론 이러한 정보의 교환은 단순히 상대에게 시혜를 입히기 위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고, 오히려 반대라 할 수 있다.

어떤 정보는 자신만 알고 있는 것으로 이익을 독식할 수 있지만, 반대로 정보를 더 많은 이들과 공유할 때 그 가치가 커지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쓸 만한 투자 대상이 나왔다면, 그 대상을 널리 알리는 것으로 가치를 높이고 투자에 참여한 사람들끼리 이익을 공유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월스트리트에서는 자신이 먼저 시작한 투자를 정보라는 이름으로 알음알음 퍼트리는 것이다.

한동안 화기애애한 정보 교류가 이어지는 와중에, 유진은 슬며시 러시아의 대선을 주제로 올렸다.

바로 전날 정치계 인사에게 했던 것과 비슷한 종류의 말이다. 단지 목적이 러시아에 대한 투자 수익에 맞추어졌다는 사실 정도가 다를 것이다.

잠시 금융가들 사이에 논의가 오갔다. 대체로 유진이 거론한 드미트리 알렉산드로비치가 러시아의 차세대 지도자가 되는 쪽이 월스트리트에도 유리하겠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이 자리에서는 그를 당선시키기 위한 비밀 작전 같은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오늘의 주제는 어디까지나 경제와 투자이지 정치적으로 위험한 작전 따위를 거론하는 자리가 아니다.

하지만 이것으로 족하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각기 경제계뿐 아니라 정치계에도 아주 폭넓은 영향력을 지닌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는 전통적으로 워싱턴의 백악관과 재무부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고, JP모건은 공화당에 훌륭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와 씨티그룹 또한 각계에 다양한 사람들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이들이 유진의 의견에 동의한다면, 아마 각자가 나름대로 그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그런 영향력은 곧 여론을 형성하고, 결과적으로 정치계와 행정부에서 결정을 내리는 데 충분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다시 이야기는 러시아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 대해 미국이 어떤 정책을 수행해야 바람직한지에 관한 토론으로 이어졌고, 유진은 이번에도 전날과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헨리가 당신을 만난다면 무척 좋아하겠군요.”

한참 이야기가 오가던 도중, JP모건의 회장인 다니엘이 말했다.

다니엘이 누구를 말하고 있는 것인지는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가 키신저와 꽤 깊은 인연이 있다는 것은 꽤 유명한 일이다.

“저도 헨리 키신저를 무척 존경하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든 지금의 미국을 만든 위대한 인물 중 빼놓을 수 없는 분이지요.”

헨리 키신저는 미국의 외교를 대표하는 인물로, 지지부진하게 희생자만 내고 있던 베트남전을 종식시키고, 중국을 국제 무대에 나오도록 개방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한 그를 빼놓고 미국과 현시점의 세계정세를 거론할 수는 없을 것이다.

헨리 키신저는 철저하게 현실적인 외교를 지향했고, 무엇보다 전쟁의 발발을 막기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해 왔다.

물론 그의 모든 정책이 훌륭했다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통해 구렁텅이로 밀려 들어가기 전까지의 미국의 대외 외교는 키신저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다.

하나 네오콘들이 백악관을 장악하며 미국의 해외 정책은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고, 수많은 희생자만 양산하게 되었다.

지금은 이미 은퇴한 지 오래되었지만, 미국의 정치 현안에 대해서는 언론에 논평을 기고하는 등의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는 키신저는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는 중국과의 대결을 삼가라며 중국의 이익이 바로 미국의 이익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었고, 러시아와 미국 사이의 관계가 호전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해 오기도 하고 있다.

여러모로 유진의 말은 헨리 키신저와 비슷한 맥락에 있다 볼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미국의 미래는 단순히 미국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정세에 달려 있지요.”

“세계가 혼란스러워지면 미국의 국익에도 해가 되는 법입니다.”

월스트리트의 금융가들은 대체로 유진과 비슷한 견해를 지니고 있었다.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분쟁을 걱정하고, 그러한 나라들이 더욱 많은 시장을 개방하길 원하는 것이다.

물론 국익이라는 표현이 늘 그들 사이를 떠돌고 있었지만, 사실은 이 자리에 모인 금융가들, 그리고 넓게 보아서는 맨해튼에 자리 잡은 투기적 금융 자본가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음은 서로 표현할 필요도 없었다.

지금의 정부가 트럼프의 기조를 내려받아 중국과 대결 구도에 나선 것은 비판하지만, 결과적으로 중국을 압박해 금융 시장을 개방한 것에는 모두 크게 만족하고 있었다.

“좋은 자리였습니다.”

이날의 조찬회는 전날보다 빨리 끝났다. 다들 각자의 회사로 출근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앞으로도 종종 여러분과 좋은 이야기를 나눌 자리를 마련하고 싶군요.”

“좋은 생각입니다. 아예 정기적으로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지요.”

다들 유진과 좋은 관계를 이어 가길 원하고 있기에, 목적을 이루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적어도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이 자리에서 이런 만남을 가지기로 결정되었다.

맨해튼의 가장 중요한 파워 피플들과 함께 하는 무시무시한 조찬회가 결성된 것이다.

그리고 유진의 조찬회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투자은행의 회장들과의 조찬회 다음날은 블랙록, 뱅가드 등 자산관리회사의 대표들과의 자리가 이어졌다.

이 시점에서 블랙록의 관리 자산은 11조 달러를 넘어섰고, 뱅가드그룹은 그 바로 뒤를 잇는 10조 달러, 그리고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 스테이트 스트리트 글로벌 어드바이저즈(SSGA)가 5조 달러로 이날 모인 네 사람이 운용하는 자산만 모두 30조 달러를 훌쩍 넘어선다.

아직 유진도 그 정도의 자산을 굴리고 있지는 않으니, 어떤 의미에선 이 네 사람이 세계에서 가장 큰 자산을 움직이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JP모건이 4조 달러, 골드만삭스와 뱅크오브아메리카가 3조 달러 대의 자산을 운용하는 것에 비하면 이쪽이 더 거대한 금융 기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자산운용사들의 대표적인 상품은 대개가 ETF와 저비용 뮤추얼 펀드 등으로, 운용하는 자산의 규모에 비해서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지는 못하고 그 영향력도 벌지 브래킷 투자은행에 비해서는 적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이들 자산운용사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이 네 개의 자산운용사가 ETF 등을 통해 전 세계 글로벌 기업들 주식의 상당 부분을 점유하고 있기에, 보유한 지분을 통해 각 기업에 더욱 적극적으로 압력을 행사하겠다며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환경·사회·지배구조(ESG)에 중점을 두겠다고 선언하고, 그들이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들이 윤리적인 경영에 신경 써 주기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남기기도 할 정도이다.

특히 기후 리스크에 관해서 많은 신경을 쓰고 있어, 글로벌 기업들은 주가를 적정선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기후 관련 문제에 더욱 예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들 자산운용사가 보유한 막대한 지분 때문에라도, 유진은 이 회사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생각이었다.

이날의 조찬회에서는 전날과 달리 러시아나 중국 문제는 그다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그보다는 경제 현안과 기후 대책 등에 대해 주요 주주로서의 행동 방향에 관한 이야기가 주로 오갔다.

유진까지 포함하면 여기 모인 사람들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글로벌 200대 기업의 지분은 당장이라도 해당 기업의 대표를 바꿀 수 있을 정도이다.

조찬이 끝나고 나서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이들과도 정기적인 모임을 하기로 했다.

벌지 브래킷 은행들의 회장들과 마찬가지로, 이날의 참석자들 역시 유진의 FO 펀드 고객분들이기도 하다. 유진이 만들어 놓은 경제 공동체의 일원인 것이다.

당연하게도 이들 또한 조찬회에 빠짐없이 참석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과거로 돌아와 대략 10여 년이 지났다. 그동안 유진이 쌓아 올린 경제적 성과는 이제 미국 주류 사회에서 인사이더로 자리 잡는 것을 넘어, 여론을 만들어 내는 최상위 계층을 리드할 수 있게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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