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295화 (295/363)

295화 록펠러, 코크, 키신저와 폼페이오

유진의 조찬회는 날마다 계속되었다. 하루는 금융계 인사, 다음 하루는 정치계 인사, 다음날은 재계 인사, 그리고 그다음 날은 다시 언론계 유력자들과 만남이 이어진다.

일주일에 닷새가 모자랄 만큼 바쁜 시간이 이어지는 가운데, 조찬회는 단순한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정기적인 교류회로 굳어져 간다.

“아침마다 만나는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다 뉴스에 나올 만한 사람들뿐이네. 어떻게 보면 무섭기까지 해.”

아쉽게도 조찬회에 참석하지 못하는 유성은 만일 자기한테 참석하라 했어도 절대로 거절했을 거라며 지나치며 보아 온 사람들에 대한 소감을 말했다.

모임에 참석하는 인물들 하나하나가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의 경제와 금융, 그리고 국제 정세를 이끌어가는 파워 피플이기 때문에, 단순한 사교 모임이라 부를 수 없을 수준이 되어 가고 있었다.

“꼭 무슨 비밀스러운 조직이라도 만드는 거 같네. 왜 그런 거 있잖아. 영화나 만화 같은데 나오는.”

유성은 음모론에 흔히 등장하는 그림자 정부나 프리메이슨이니 일루미나티니 하는 조직을 떠올린 모양이다.

“세상에 그런 조직은 없더라.”

유진이 웃으며 말했다.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어떤 비밀의 결사체 같은 단체는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 음모론에 흔히 등장하는 것처럼 로스차일드 가문이나 록펠러 가문이 미국 정부의 뒤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치인들을 하인처럼 부리고 있지도 않다.

“물론 그거야 나도 아는데. 과거에는 물론 없었지만, 지금의 형을 보면 꼭 그런 생각이 난단 말이지.”

의외로 유성은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음모론에 등장하는 그런 비밀 결사체는 존재하지 않지만, 유진이 지금 획책하고 있는 모임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결사체의 의미에 상당 부분 부합하는 면이 있었다.

사실 로스차일드 가문이나 록펠러 가문은 음모론에 나오는 것처럼 세계를 지배하기에는 턱도 없는 부를 보유하고 있었고, 그만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그저 당시의 시대상으로 보았을 때 엄청난 부를 소유하고 있던 것뿐이다.

금융계의 거인들이 미국이나 세계의 정치계 인사들을 자기 마음대로 쥐고 흔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기에는 세계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또 음모론의 주체로 거론되는 사람들만큼의 영향력을 지닌 사람들이 그 외에도 많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엄청나게 큰 나라이고, 다양한 분야마다 괴물 같은 위인들로 가득하다. 한두 명의 인물이 한 나라 전체를 좌우하기에는 인물이 너무 많다.

로스차일드 가문이나 록펠러 가문에 이어 거론되고는 하는 존 피어몬트 모건의 모건 가문도 그저 철강이나 전기 등 몇 개의 산업 분야를 좌우 했을 뿐, 미국의 모든 산업 분야에 영향력을 지니고 있지는 못했다.

생각해 보면 그러기에는 그들이 보유했다는 부의 크기가 너무 작았다.

하지만 지금 유진이 보유하고 있는 부는 유성이 말하는 것 같은 세계를 지배하는 조직을 만들고, 그들의 뒷배가 되기에 충분할 정도이다.

“그런가? 그래도 비밀 조직은 없어.”

유진의 조찬회가 언뜻 유성이 말한 종류의 결사체 비슷하게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결정적으로 조찬회는 비밀도 아니고 조직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유진이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중요한 인물들과의 관계를 더욱 밀접하게 하려는 목적을 지니고 있을 따름이다.

“어? 그러네. 비밀은 아니구나.”

은밀한 지하실에 조용히 모여드는 복면을 한 사람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파워 피플들이 가볍게 아침 식사를 즐기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지만 원래 세상의 중요한 일들은 그렇게 이루어진다. 재계나 금융계의 유력 인사들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사적인 모임만큼 위험한 모임이 또 어디에 있을까?

사실 음모론에 거론되고는 하는 단체들이 대개 외부에 공개된 단체 혹은 인물들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 음모론이 얼마나 허접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모임이나 사람에게 비밀 조직이라 칭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그런데 오늘 다녀간 베이조스는 조금 자리에 어울리지 않더라고. 언론인들 모임 아니었었나?”

“제프도 어엿한 언론인이야. 워싱턴 포스트의 사주이니까.”

이 자리에는 베이조스뿐 아니라 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 회장도 타임지의 사주로서 참석했다.

“아! 그랬구나. 그래서 그렇게 트럼프 욕을 잔뜩 하고 간 건가?”

“뭐. 언론인이라서가 아니라, 서로 싫어하는 게 맞으니 그렇지.”

“참 부럽네. 기업인이 대통령을 그렇게까지 욕할 수 있는 게 말이야. 한국 같으면 꿈도 못 꿀 텐데.”

한국이나 일본, 그리고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기업인들이 여러 원인으로 정치적인 언급을 극도로 꺼리는 것에 비해, 미국의 경제인들은 대체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숨기지 않는 편이다.

대기업의 회장이 정치인은 물론이고 대통령에 대해서도 원색적인 비난을 거리낌 없이 내뱉고 그게 미디어를 통해 널리 알려지는 일은 그리 드문 일도 아니고, 그걸 가지고 정치인이 보복에 나서는 일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론 개인적으로야 불쾌감을 표시할 수도 있고 국가 정책에서 해당 기업에 대한 불이익을 주려 노력할 수도 있겠지만, 정치인이 지닌 권력만큼이나 경제인이 다양한 통로를 통해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도 절대 적지는 않기 때문에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는 일은 드물다.

“미국은 사회적 정서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당연하게 드러내는 거니까.”

한국은 기업인은 물론이고 연예인도 정치적인 말을 할 때면 상당한 파장을 감수해야 한다.

물론 민주화 이후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거리낌 없이 드러낼 수 있게 되었지만, 어쩐 일인지 2020년대로 넘어오며 연예인이 정치적 견해를 표시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아쉬운 일이네. 형이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대통령 선거에 나섰을 텐데. 아마 대통령 두 번은 아무 문제도 없을 거야.”

“딱히 정치판에 나서고 싶은 생각 따위 없어. 거기에 나서봤자 무슨 대단한 이익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기는. 정치라는 게 결국 명예직 같은 거잖아? 딱히 돈이 되는 것도 아니니까.”

물론 대통령 자리를 통해 적지 않은 경제적 이익을 얻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퇴임 이후 강연이나 자서전 출판 같은 것을 통해 들어오는 돈이 만만치 않다는 모양이지만, 유진에게야 그저 푼돈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유진이야 그렇지만 그와 달리 기업인이 단순히 정치적 견해를 언급하는 수준을 넘어 보다 본격적으로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아예 정치계에 뛰어드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바로 몇 년 전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백악관을 차지했던 트럼프가 있을 것이고, 10년이 넘게 뉴욕 시장을 역임하며 9.11 테러 이후의 뉴욕을 재건시켰다는 평을 듣고 있는 마이클 블룸버그가 있다.

그 외에도 자수성가한 부자는 아니지만, 선대에서 일구어 온 엄청난 재산을 기반으로 정치계에 도전하는 경우는 꽤 있는 편이다.

우선은 미국의 젊은 정치가의 표상이라 할 수 있는 존 피츠제럴드 케네디가 있고, 전설적인 부자인 록펠러 가문의 넬슨 록펠러와 데이비드 록펠러 형제, 그리고 최근에는 코크 형제도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케네디 대통령의 부친은 금융과 증권 등을 통해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부자가 되었고 정치에도 큰 관심이 있었지만, 주가 조작이나 주류 밀매 등 투명하지 못한 재산 축적의 과정 때문에 정치인으로의 꿈을 접고 대신 제 아들들이 정치인으로 성공하도록 다방면의 지원을 해 주었다.

아들인 존 F. 케네디가 아직 20대의 나이로 하원의원에 당선된 배경에 부친의 막대한 재산이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한때 세계 정유 시장의 90%를 독점하고, 지금까지도 역사상 최대의 부자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록펠러 가문의 넬슨 록펠러는 뉴욕주지사를 거쳐 부통령 자리까지 올랐다.

그리고 그의 동생인 데이비드 록펠러는 직접 정치계에 몸을 담지는 않았지만, 후일 JP모건 은행의 모체 중 하나가 되는 체이스맨해튼 은행을 경영하며, 빌더버그 회의나 삼극위원회 같은 단체를 조직하고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더불어 키신저 같은 정계의 유력 인사를 후원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한편 코크 형제도 역시 동생인 데이비드 코크가 자유당 부통령 후보로 출마한 일도 있지만, 그보다는 정계 인사들에게 돈을 뿌려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관철하려 한 것이 더 유명했다.

트럼프 시대에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나, CIA 국장을 걸쳐 국무장관을 역임한 마이크 폼페이오 같은 사람들이 코크 형제의 후원을 받은 것은 상당히 유명한 일이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마이크 폼페이오나, 마이크 펜스 두 사람 모두 유진이 후원하고 있는 SF재단(지속 가능한 미래 재단)에 소속되어 그다지 하는 일도 없이 매년 수십만 달러에 달하는 지원금을 꼬박꼬박 받아 챙기고 있다.

그들뿐 아니라 적지 않은 트럼프 행정부 출신 실직자들이 SF재단의 연구원으로 등록해서, 어디에 쓰일지도 모를 논문이나 연구서 따위를 작성한다는 핑계로 적지 않은 연구비를 타 가고 있다.

바이든에 이어 다음 정부에 공화당 행정부가 들어서게 되면, 이들은 다시 요직에 임명되어 미국을 이끌어 가게 될 것이다.

물론 그때가 되면 유진이 원하는 정책을 백악관에서 충실하게 수행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말이다.

생각해 보면, 기업인이 정치계에 직접 참여하는 것보다, 데이비드 록펠러나 코크 형제처럼 정치권 인사들을 후원하는 것이 오히려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지금의 유진이 하는 일들이 외부에서 본다면 그런 선례와 비슷하게 보일 것이다.

그러니 유진의 행위는 미국의 정치계와 경제, 그리고 금융계에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황당한 일이라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미국에서 금권을 지닌 사람들이라면 흔히 선택하는 정치적 입장을 관철하기 위한 평범한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모아 사적인 모임을 가지며, 정보를 교환하고, 정치계에 자신의 사람들을 진출시키고, 선거에 거액의 후원금을 지원하는 것으로 영향력을 늘리는 것.

그야말로 자본주의의 끝판이라 할 수 있는 미국 사회에서는 이미 백 년도 더 오래된 당연한 전통이라 할 수 있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유진은 지금까지의 그 어떤 인사보다 더 많은 돈을, 그 누구보다도 훨씬 더 광범위하게 뿌리고 있다는 정도가 다르다고 할 것이다.

당대 세계 제일의 부자였던 록펠러가 보유하던 재산을 현시점으로 환산하면 대략 4,000억 달러 수준이 된다고 한다.

유진이 매년 자신의 영향력을 늘이기 위해 지불하는 돈과 미국 국세청에 내는 세금이 그 정도에 가깝다.

이미 유진은 역사상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거대한 부를 일구어 놓았다.

그리고 그 부를 자신의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사용하는 것에 조금도 아끼지 않고 있었다.

‘어차피 무덤으로 가지고 갈 것도 아니고.’

유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자산의 규모를 늘리는 것은 유진에게는 어려울 것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늘어나는 자산으로 과연 무얼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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