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7화 독점 방지와 언론 개혁
“이대로라면 정권을 빼앗기고 말 겁니다.”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아요.”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해요. 이제 겨우 20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대선 기간이 겨우 60일밖에 되지 않는데, 그나마도 40일이 지나갔다.
여당은 그동안 난립한 후보들 간의 치열한 접전 끝에 그나마 제법 경쟁력 있는 후보를 내놓았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여론 조사 결과를 보아도 정권을 바꾸겠다는 유권자가 절반을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이대로라면 대선 참패를 면치 못할 것이 명백해 보였다.
“무슨 대책이 있겠습니까? 적어도 국민들은 지금의 경제난을 대통령 때문이라 생각하고 있는데요?”
“경제 상황이 이렇게 힘든 것이 어디 우리 때문입니까? 세계 경제가 힘든 때문이 아닙니까? 미국이든 유럽이든 경제가 안 좋아 수입을 줄이고 있는데 우리라고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지난 1년 동안 대통령이 국정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것은 사실 아닌가요?”
“대통령이 무슨 국정을 살피지 못해요? 청와대고 당이고 할 수 있는 건 다 했지 않았습니까!”
아직도 대통령의 하야에 대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여당은 제대로 된 지도부의 역할을 하지 못하며 실질적으로 난맥에 빠져 있었다.
위기 상황에 대처하기는커녕 당 내부에서도 지도부의 잘못을 지적하는 쪽과 지금의 사태부터 해결하고 보자는 부류로 나뉘어 연일 정쟁으로 바빴다.
하지만 점점 결전의 날이 다가오면서 당장의 다툼보다, 이제 곧 빼앗기게 생긴 정권을 수호하기 위해 여당의 주요 인사들은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마련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여하튼 강 회장을 다시 우리 쪽으로 끌고 와야 합니다.”
“아니. 언제는 강 회장이 우리 쪽이었던 적이 있어요? 우리가 일방적으로 강 회장의 지지에 기대 온 거지?”
“험, 험! 그런 소리 할 때가 아니고, 사실 지금까지 강 회장과 우리가 거의 한 몸이나 다름없지 않았습니까? 한데 지금에 와서 이렇게 우리를 무시하고 있으니 그 양반의 지지를 이끌어 낼 무슨 방도를 마련해 보자는 게 아니오?”
“아무래도 우리가 너무 유약한 모습만을 보여 주었던 것 같습니다. 이젠 우리도 실력 발휘에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느 의원의 말에 일순간 술렁임이 지나갔다.
“실력 발휘라니?”
“솔직히 우리 당의 협력 없이는 그 강 회장도 한국에서 제대로 사업하기 어려운 게 사실 아닙니까?”
“그야 그렇지.”
“한국에서 사업 중인 강 회장의 계열사가 몇 개입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그 기업들 사정을 봐줘서 그렇지, 솔직히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물 먹일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건 그렇기는 하지.”
누군가가 물꼬를 트자, 뒤를 이어 의원들의 수긍이 이어졌다.
유진으로부터 지지를 얻기는 고사하고 면담 한 번도 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며, 여당 의원들은 최후의 수단을 생각해 내기에 이르렀다.
지금의 여당의 상황은 대선에서 승리가 거의 어렵다는 사실이 너무나 명백했지만, 지금이라도 유진이 여당 후보의 손을 들어 준다면 적지 않은 유동표가 쏠리리라는 기대는 충분히 있었다.
그리고 요지부동인 유진을 움직이기 위해서 우선 유진의 한국 내 계열사를 괴롭혀 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물론 나중에 가서야 피곤한 일이 생기기도 하겠지만, 당장은 선거에서 승리하는 게 우선이라는 주장이었다.
“제가 몇 가지 법안을 생각해 봤습니다. 여러분께서 동의해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의견을 내놓은 의원이 미리 준비해 놓은 서류를 돌렸다.
의원들은 대충 법안의 내용을 훑어 보고 각자 얼굴을 찌푸리거나, 입가에 미소를 짓는 등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이거 너무 나간 거 아니에요? 독점규제법 개정은 위험한데?”
“위험할 거 없습니다. 사실 강 회장 그 사람이 이 나라에서 가지고 있는 영향력 때문에 가만히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위험 수위라 볼 수 있습니다. 사업자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과 과도한 경제력의 집중을 방지한다는 기존 독점규제법의 의의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법안입니다.”
“아니, 이 법안대로라면 강 회장뿐 아니라 기존 대기업들도 사정권 안에 들어간단 말이잖아요? 그건 좀 그렇지 않겠어요?”
“굳이 법안을 통과시키자는 것도 아닌데 뭐 어떻습니까? 이 법안이 통과되면 강 회장이 한국에서 사업하는 게 어려워질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사업을 제대로 하고 싶으면 우리 말도 좀 들어줘야 한다. 뭐 이런 의지 표명 아니겠어요?”
다시 말해 통과시킬 생각도 없는 법안을 올려 놓고, 유진을 협박하겠다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진짜로 법안이 시행되어 버리면 다른 대기업들의 사업에도 지장을 줄 수 있으니, 대충 유진과 협상에 오르고 나서 엎으면 그만이라는 계획이었다.
한데 이 법안을 가져온 의원의 표정은 내심 꼭 그렇지만은 않아 보였다.
가능하면 이대로 통과시켜 아예 유진을 잡고 싶다는 의지가 보였다. 만일 그게 가능해진다면, 여러 의미에서 그의 이름이 남게 될 것이다.
다른 의원들은 다들 그런 심사를 읽으면서도 무시했다. 어차피 법안의 통과란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법안이 본회의에 올라가고 입법 예고까지 가게 되면 그때부터가 진짜이니, 얼마든지 바뀔 수 있었다.
당장 중요한 것은 그런 일련의 행위를 통해 여당이 가지고 있는 힘을 보여 줄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남부지검 금융조사부 쪽에서 SS파트너스의 지난 몇 년 동안의 거래에 문제점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SS파트너스? 거기가 핵심은 핵심인데…….”
SS파트너스는 유진의 한국 내 거점으로서 이미 5,000억 달러에 달하는 투자를 집행하고, 그 외에도 다양한 투자를 통해 국내 산업계에 엄청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당연히 유진을 노린다면 SS파트너스를 최우선으로 노리는 것이 맞는 일이다.
“그건 좀 너무 나간 거 아니야? SS파트너스가 무너지면 한국 경제가 무너진다고.”
“위험해.”
“거긴 넘어갑시다.”
SS파트너스가 보유하고 있는 국내 대기업들에 대한 지분이라든지, 최근 10여 년 동안 급성장한 신생 기업 중 대부분을 손에 쥐고 있다든지 하는 부분을 차치하고서라도, SS파트너스가 매년 집행하는 예산 규모가 어지간한 국가 기관 이상이라는 사실 때문에라도 SS파트너스를 사정권에 넣는 것은 위험하다는 사실을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정말로 SS파트너스를 쓰러트리자는 것도 아니고, 그저 그 양반한테 협상 자리로 나와 달라는 거 아닙니까?”
누군가가 핵심을 말했다. 검찰을 동원해 SS파트너스를 쑤시면서 그걸 핑계로 유진과의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말에 그제야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래.”
“정권을 잃으면 전부 다 잃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물러설 수 없습니다.”
자리에 모인 모두 선거에 눈이 멀어 있었다.
10년 넘게 이끌어온 정권이다. 그만큼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이권도 많았다.
이번 선거에서 패배하면 얼마나 힘들어질지 말도 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리고 솔직히 언론사들이 전부 그 강 회장의 편을 들어주는 것도 아닙니다. 아직 강 회장에 비판적인 언론들도 충분히 있고, 적어도 공중파는 핸들링이 가능합니다.”
“남은 시간 동안 공중파에서 강유진 그 사람과 SS파트너스에 대한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하며 압박을 해 보도록 하지요.”
“공중파 말고도 강 회장에 비판적인 언론사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줄 겁니다. 이미 종편 두 곳과도 이야기를 끝냈습니다.”
여당이 달리 여당은 아니다. 내분으로 끊임없이 내홍을 겪으면서도 의원들은 나름 방안들을 마련하고 있었다.
그 방안들이라는 것이 기껏 유진을 압박하기 위한 것들이라는 것이 문제이지만, 정치 권력이 지닌 힘은 막강했다.
언론과 검찰을 움직이는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고, 가장 큰 힘, 그러니까 법안을 통해 기업의 행보를 막아서는 것까지 거침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언론 관련 법안도 준비했습니다.”
조금 전 독점 금지 관련 법안을 내놓은 의원이 새로운 서류를 동료 의원들에게 돌렸다.
“흠…… 이건…… 진짜 위험한데?”
“그러네요. 언론사들이 보면 아주 깜짝 놀라겠어.”
“광고를 받지 말라는 이야기잖아?”
아까보다 훨씬 더 반응이 좋지 않다.
“모든 기사에 어떤 기업으로부터 광고를 받았는지 명시하게 하자는 겁니까?”
“맞습니다. 기사에 관련된 기업에 대해 빠짐없이 명시해서 언론사들의 기사가 단순한 기사인지, 아니면 사실상의 광고인지 밝히라는 겁니다. 이미 그런 예가 없지도 않고요. ‘추천·보증 등에 관한 표시·광고 심사지침’을 통해 유튜브나 SNS 같은 매체에 뒷광고를 하지 못하도록 하지 않았습니까?”
그가 말한 대로, 해당 매체들은 부당 광고를 할 경우 관련 매출액이나 5억 원 이하의 과징금이 부과되고, 검찰 고발 조치까지 이뤄지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5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부과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언론이라고 아무런 제재도 없는 게 더 이상한 거 아닙니까? 이 법안을 통해 언론사들이 광고를 통해 대가를 받고 광고주에 유리한 기사를 실어 오던 관행에 제동을 걸 수 있습니다.”
“아니. 그건 알겠는데 말이지요. 모든 기사마다 해당 기사에 관련된 기업으로부터 수주한 광고 혹은 협찬에 대해 명시적으로 표시해야 한다면…… 언론사들이 어디 광고를 받을 수나 있겠냐는 말이지요. 더군다나 지분 관계까지 명시한다니…….”
한국 언론사들의 상당 부분은 대기업, 특히 건설 기업들에 의해 지배받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이유로 건설 분야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사주의 시선에서 기사를 싣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해당 법안은 기사와 사주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명시할 것을 강조하고 있었다.
만일 해당 언론사의 지배주주가 건설 회사인 언론사가 건설 경기에 대한 예측을 싣는다면, 그 지배 관계를 기사에 명시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다른 업계인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제일 그룹과 관련 있는 언론사라면 거의 모든 산업 관련 기사에 제일 그룹의 언론사 지분이 얼마나 되는지를 실어야 한다.
이 역시 결과적으로 SS파트너스를 노렸다고밖에는 볼 수 없는 법안이다.
하지만 SS파트너스와 관계없는 언론사도 작지 않은 파장을 받게 될 것이 명백했다.
이건 언론사들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생사가 걸린 문제나 다름없다.
지금까지는 기사나 방송 보도에 그런 협찬이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고 보던 사람들도 앞으로는 정말 공정한 기사인지 고민할 수밖에 없게 만들 것이다.
“뭐. 이것도 통과되기 나름 아니겠습니까?”
“그러게 말이에요.”
반발이 나오기는 했지만, 의원들은 곧 그런 법안을 통과시킬 생각이 없음을 명확히 하면서, 우선은 상정하자는 데에 의견을 모았다.
“그럼 하나하나 대응을 해 봅시다. 과연 강 회장 그 사람이 얼마나 버티는지 보자고요.”
“그래요. 어디 두고 봅시다.”
의원들은 이날의 결정에 나름 흡족해하고 있었다. 그들이 내린 결단은 그야말로 생즉사, 사즉생의 칼부림이나 다름없었다.
SS파트너스를 통해 유진을 직접 겨누는 다방면의 행동을 시작하겠다는 것.
이는 곧 유진이 협상에 나서 여당 후보의 손을 들어 주면 전부 없던 것으로 하고, 만일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나서겠다는 최후의 발악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에게는 나름대로 독점 방지와 언론 개혁이라는 명분도 있었다. 물론 그 결과가 어찌 될지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일이다.
“예. 그때 말씀드린 대로 처리했습니다.”
모임이 끝나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 이날 가장 열심히 법안을 내놓은 의원이 누군가에게 보고를 올렸다.
“물론이지요. 다들 별다른 반발은 없었습니다. 그럼요. 당장 내일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 보고되고 입법 예고가 나갈 겁니다. 알겠습니다. 고생은요, 전부 회장님 덕분인데요. 하하!”
명백하게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행위였음을 감추지 않으며, 의원은 밝게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