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298화 (298/363)

298화 불타오르는 한국

- 예. 접니다, 김환.

유진이 서울의 책임자로부터 전화를 받은 것은 언론인들과의 조찬회가 끝난 즈음이었다.

“그래. 그쪽 동향은 어때?”

- 뭐. 예상했던 그대로인 모양입니다.

“발악들을 하고 있겠지.”

- 당연하지요. 벌써 10년이 훨씬 넘게 잡고 있던 정권을 빼앗긴다 생각하면 뭐든 못하겠습니까?

“그래서, 뭘 하려는 것 같은가?”

유진의 물음에 전화 너머의 김환이 웃음기를 머금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 예측했던 것과 같습니다. 전부 다요. 흐흐. 아마 내일 오전에 검찰들이 본사로 들이닥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세무서도요.

“재미있네.”

- 그렇지요? 아무래도 며칠 동안 바빠지겠습니다.

“고생 좀 해.”

- 고생은요. 흐흐. 이 정도는 재미죠, 뭐.

“언론사들은 전부 준비해 놓았고?”

- 네. 일이 시작되면 바로 나라가 뒤집히겠네요.

여당 인사들이 어떻게 나설지는 이미 충분히 예상했다.

심지어 그들이 이런 생각을 하기도 전에, 그러니까 대통령의 하야설이 나오기도 전부터 준비해 놓았었다.

유진이 지금까지와 같이 여당의 손을 들어 주지 않는다면, 그들이 취할 만한 행동이라든지, 어떤 기관을 이용해 공격할지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그리고, 그에 대한 대응도 마련해 놓았다.

또한, 그런 여당 안에도 끝까지 유진에 대한 신의를 버리지 않는 의원들은 남아 있었다.

사실 한두 명이 아니다. 이미 어떤 식으로든 유진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의원들은 여당 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김환이나 다른 인사들을 통해 시시콜콜하게 보고하는 중이다.

그들로서는 대통령이 누가 되는가보다, 앞으로도 유진의 후원을 받아 낼 수 있는지가 훨씬 중요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번 선거에서 어떤 식을 써도 야당을 이길 수 없다면, 굳이 유진에게 밉보일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 이유에서 여당 내에서 꾸미고 있는 이런저런 음흉한 계획들을 앞을 다투어 고백해 오는 의원들의 숫자만 이미 두 자리를 넘어서고 있었다.

“어디 잠시 피해 있는 것은 어떤가?”

유진은 김환에게 미국으로 날아오는 게 어떻겠냐 물었다.

- 아마 처음부터 절 소환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기야 하겠지.”

- 뭐, 워낙 급하니까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지만요.

“상황이 그렇기는 하잖아? 나 같아도 뭔 짓이든 해 볼 거야.”

- 궁지에 몰리면 누구라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래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라는 것도 법이죠. 흐흐.

이날 따라 김환은 음흉한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어차피 판은 이쪽에서 깔아 놓고, 여당은 그 위에서 마음껏 날뛰고 있을 뿐이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우습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고생해 주게. 이번 일이 끝나고 나면 다들 보너스라도 두둑이 나눠 주고 말이야.”

- 알겠습니다. 그동안은 별 고생이랄 것도 없었으니, 한 번쯤 정신없이 보내 보는 것도 좋지요.

유진은 적당히 격려의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서울에서 벌어지는 일은 전부 예상 범위 안쪽이고, 충분한 대응을 해 놓았으니 걱정할 것은 없다.

물론 예상대로만 일이 흘러가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김환을 비롯한 직원들을 믿고 있기에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다음날 오전, 김환의 말대로 검찰들이 SS파트너스를 덮쳤다.

새벽에 발부받은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찾아왔을 땐 한 무리의 기자들도 함께였다.

SS파트너스의 불법을 세상에 널리 알리겠다는 의지로 가득한 검찰과 수사관들이 회사를 들쑤시고, 컴퓨터의 하드와 서류들을 잔뜩 실어가는 동안 직원들은 그다지 걱정하는 것도 없는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싱글거리며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다음은 당연한 수순처럼 언론전이 시작되었다.

[검찰은 오늘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에서 계열사에 대한 부당지원 혐의로 SS파트너스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행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수사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로 시작되었는데, 공정거래위원회는 SS파트너스가 계열사 간의 납품 단가를 공정 단가보다 월등한 가격으로 책정해 특정 계열사의 매출액을 올려 주고, 해당 기업의 주가를 부양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한국 경제에 커다란 해악을 끼쳐 왔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SS파트너스는 한국의 대기업들에 대한 막대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를 이용해 시장에 다양한 영향을 끼치고 있어 한국 기업들의 경제 구도 또한 왜곡되어 있다는 것이 공정거래위원회와 검찰의 입장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조용히 유진에게 반감을 지니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간 그들이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것은 이유가 있다.

한국 내에서 유진의 영향력은 상당한 수준이기에 단순히 경제계에서뿐 아니라 다양한 사회 분야에서 거대한 팬덤을 지니고 있었고, 유진 덕분에 한국 사회가 진일보해 가고 있다는 생각이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유진의 행보를 기꺼워했던 것은 아니다.

지난 몇 년 동안 한국 경제의 규모가 커져 온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한편으로 그러한 규모 확대의 혜택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갔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세상 모든 일에 양과 음이 있듯이, 경제 발전에 소외되거나, 혹은 반대로 손해를 본 사람 또한 틀림없이 있었다.

특히 경영계의 경우는 SS파트너스의 지원으로 성장한 기업들과 선택을 받지 못한 기업으로 나뉠 정도였고, 적지 않은 대기업들이 경제 성장의 드라이브에서 제외되었다.

더군다나 유진이 한국의 인력들이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으로 진출할 수 있게 도움을 주면서 적지 않은 젊은 층이 빠져나가며 인건비의 상승을 부추겨 왔기에, 인력난은 물론이고 임금 지급에 곤란을 겪던 기업들도 적지 않았다.

대개는 소위 인건비 따먹기로 영업을 유지하던 회사들이다.

당연한 결과로 그런 기업들은 회사를 유지하기 어려워졌고, 적지 않은 기업들과 자영업자들이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다.

물론 그런 기업인이 그렇게 많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자영업자들 사이에서 유진에 대해 가지는 반감은 생각보다 꽤 큰 편이었다.

무엇보다도 이상한 것은 언론사들이 검찰의 그런 행보에 대해 그다지 크게 반발하고 나서지 않았다는 점일 것이다.

물론 검찰이 충분한 증거를 확보했다는 언론전을 펼친 까닭도 있었지만, 그를 고려하더라도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그 때문인지 SS파트너스에 대해 비판적인 언론들이 더 큰 목소리를 내며 성토하고 나섰고, 다양한 커뮤니티에서도 유진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언론, 검찰, 세무서, 그리고 시민 단체들의 논평에 이어 국회에서도 새롭게 공격이 이어졌다.

[정부 여당은 오늘 독점 금지와 공정거래에 대한 법률안을 새롭게 발의했습니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산업 분야에 일정 부분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기업들의 지분을 보유할 경우 지분의 거래 상황을 지속적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보고해야 하며, 특정 분야의 경우 일정 지분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허가를 받아야 가능해질 전망입니다.]

[전문가들은 이는 한국 산업계에서 과도한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는 SS파트너스에 대한 법안으로 보이며, SS파트너스에 의한 독과점 현상이 계속 이어짐에 따라 SS파트너스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여당의 의지 표현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맞는 말이지. 자본주의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도 독점방지법으로 대기업을 분할시키고 하는데, 한국 경제는 독과점에 대해 너무 부실하게 대응하고 있었던 거잖아.”

다양한 분야에서 공격이 이어지자, 국민들 사이에서도 이에 동조하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언론들은 이제 겨우 보름 앞으로 다가온 대선보다, 여당과 SS파트너스 사이의 갈등에 대해 더욱 크게 보도하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대선의 향방보다도 더 중대한 결과를 몰고 올 수 있는 사안이기에 사람들의 이목도 이리로 몰리고 있었다.

[여당은 이날 언론의 공정한 보도를 위한 새로운 법률안 또한 내놓았습니다. 법안을 발의한 김한수 의원에 따르면, 지금의 언론들은 대기업들의 광고와 협찬으로 언론사를 경영하며 기사와 광고를 구분하지 못하고 편향적인 기사를 자의적으로 내놓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에 따라 모든 언론사는 기사의 작성에 있어 해당 언론사가 기사에 관련된 기업들에게 어느 정도의 광고를 수주했는지, 혹은 다른 어떤 방식의 협찬을 받았는지, 그리고 언론사의 지배자와 관계가 있는지를 명시해야 한다고 합니다.]

[위법 행위에 대한 벌칙도 생각보다 강하게 명시했습니다. 기사와 관련된 광고나 협찬 등에 대해 명시하지 않았음이 밝혀질 경우 신문사 전면에 사과 기사를 싣고, 거액의 벌금 또는 3년 이하의 징역까지 가능하다고 합니다.]

SS파트너스에 대한 직접적 공격으로 보기에는 어렵다 싶은 법안이지만, SS파트너스가 엄청난 액수의 광고를 통해 한국의 언론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이 역시 SS파트너스의 영향력을 제한하려는 목적임이 분명해 보였다.

언론들은 일제히 이 법안에 대해 성토하고 나섰다.

[언론계에서는 해당 법안에 대한 반발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현재의 언론 구도가 광고와 기사 간의 관련성에 대해서 부정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기사에 광고에 대해 명시하는 것은 너무 나간 일이라는 것이 중론입니다.]

[만일 법안이 현재의 안대로 시행된다면 모든 언론인은 사소한 기사 하나조차 쉽게 작성하기 어렵다는 것이 언론인들 대부분의 의견입니다. 언론인이 기사를 작성하기 전에 우선 자기 회사에 광고하는 모든 회사에 대해 파악하고 있어야 하고, 또 혹시라도 모를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자기 검열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명백하게 악법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언론들로서는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과 다름없는 법안이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현대 사회는 너무나도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어떠한 기사든 틀림없이 그와 관련된 기업들이 있기 마련이며, 언론사에는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기사가 올라오고 있다.

몇몇 사소한 범죄, 사회 관련 기사를 제외하고는 연관된 기업들이 절대 적지 않을 것이니, 그걸 기자가 전부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언론사들의 논리였다.

그렇게 언론까지 가세하며 한국의 상황은 불덩어리로 떨어진 형국이 되어 버렸다.

한국 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SS파트너스에 대한 정부 여당의 공격으로 한국의 미래가 위태롭게 되었다는 사람들과, 이 기회에 대기업의 부당한 사회 지배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사람들로 여론이 팽팽히 나뉘었다.

당장 SS파트너스가 보유하고 있는 한국의 기업들에 대한 지분을 생각하면 여당이 너무 위험한 모험을 시작했다는 시각도 있었지만, 한편으로 SS파트너스가 보유한 지분이나 투자금을 당장에 거두어가기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었다.

“강유진이 무슨 자선 사업가라도 되는 줄 알아? 그동안 한국에 투자한 돈이 그저 한국 사람들 행복하라고 넣었을 거 같아? 전부 자기 재산 불리려고 하는 거지. 지금 상황에서 한국에 투자한 자금을 갑자기 회수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야. 대기업들마다 적어도 수십 퍼센트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데, 그걸 다 빼 버리면 주가가 얼마나 떨어지겠어? 그렇게 되면 투자한 돈은 전부 날리고 말 거라고.”

“지금 강유진 재산이 2조 달러로 추산되는데, 한국에서 가지고 있는 자산만 1조 달러는 될 거야. 그걸 포기한다는 게 말이 되나?”

냉정하게 보면 맞는 말이었다. 아무리 대기업이라고 해도 지분의 5%만 움직여도 주가는 폭락하거나 폭등하기 마련이다.

20%, 30%씩 보유한 지분을 빼 버린다는 것은 주가를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일이었고, 유진에게 있어서도 엄청난 손실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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