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9화 화무십일홍
“대체 그쪽에서 왜 아무런 반응도 없는 거야?”
“그러게 말이야? 하다 못 해 그 흔한 입장 발표 한번 없다는 게 이해가 안 되네?”
유진을 겨냥한 공세를 시작하고 이틀이 지날 무렵, 이 공작을 시작한 여당 의원들은 난감한 상황에 마주하고 있었다.
정부 여당과 검찰, 그리고 세무소를 비롯한 여론까지 동원된 공격에 SS파트너스는 그저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기자들의 취재 요청에도 잘못한 것이 밝혀지면 법적 처벌을 받겠다는 말이 전부였고, SS파트너스 경영진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오리무중일 뿐이다.
만일 검찰에서 소환한다면 검찰에 출두해 모든 조사에 성실히 응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받은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는 것은 한국에서만이 아니다.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SS파트너스에 대한 공세가 유진을 겨누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했기에, 사실상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고 있었다.
세계적인 대부호의 본진이라 할 수 있는 한국에서 유진을 궁지로 몰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기 때문에, 각국 언론들은 이 기막힌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백방으로 움직였다.
특히 뉴욕에 터를 잡은 대부분의 세계적 언론사들은 유진에게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 입장 발표를 요청해 오고 있었다.
그러나 뉴욕에서도 역시 원론적인 대답만이 있을 뿐이었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한국 내부의 사정이며, 뉴욕과 한국의 법인들은 완전히 독립적이기 때문에 그쪽 사정에 대해서는 이쪽에서도 자세하게 알 수 없다.
만일 한국 법인들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면 그쪽에서 처리할 것이고,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한국 법원을 통해 처리될 것이란 내용이었다.
유진의 개인적인 인터뷰에서도 관련된 사안은 철저하게 무반응으로 일관하는 중이기 때문에, 한국인은 물론이고 세계인들 모두가 흥미진진하게 바라보면서도 제대로 된 대답을 얻어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래서야 영 나가린데?”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어디까지나 협상을 하자는 거지, SS파트너스를 끝장내자는 게 아니잖아요?”
“솔직히 지금 SS파트너스가 무너지면 곤란한데 말이에요.”
그런 상황에서 오히려 당황한 것은 여당 측이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유진이 협상 테이블에 나와, 여당 후보에 대한 지지와 함께 한국 경제에 대해 새로운 투자를 발표하는 정도였다.
물론 그들의 공세가 무조건 성공하리라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협상의 자리에 서면 무언가 활로가 생기리라는 기대로 벌인 일이었다.
대선에서 승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치열한 접전 양상으로 들어서고 유진의 여당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할 수만 있다면 적어도 절반은 성공했다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해 초에 열린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미 과반의 의석을 차지한 여당이기에 최악의 경우 대선을 빼앗긴다고 해도 남은 4년 동안 대통령의 독주를 저지하고, 다음 대선과 국회의원 선거에서 상황을 반전시키겠다는 생각을 지닌 의원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지금처럼 유진이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아닙니다.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어요.”
SS파트너스와 유진의 대응이 나오지 않으니 슬슬 엉뚱한 생각을 하는 사람도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 돌아가는 형세가 SS파트너스나 강유진 그 사람이 죄를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이전까지는 꼬박꼬박 강 회장님이라 부르던 의원이 태도를 바꾸어 편하게 부르기도 한다.
“매일 검찰과 언론에서 불법, 뇌물, 독점 이런 말들을 하고 있으니까 여론이 조금씩 바뀌어 가는 게 보이네요.”
“음. 그렇기는 하더군요. 참 신기한 일이에요.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강 회장이 이 나라의 구국 인사라 하던 사람들이 일주일 만에 그를 범죄자로 생각하고 있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그렇죠? 생각보다 방송에서 매일 때려 대는 게 의미가 없지는 않아요.”
물론 모든 이들의 마음이 그렇게 하루아침에 바뀐 것은 아니다.
단지 세상일에 크게 관심이 없던 사람들은 언론에서 내보내는 기사에 쉽게 마음을 바꾸었고, 유진이 잘 나가는 것을 질투하던 사람들이 그동안 숨기고 있던 속마음을 더는 감추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발생했을 뿐이다.
더군다나 코로나 이후로 불어닥친 세계적인 불황은 한국 경제에도 커다란 상처를 입혔고, 지난 몇 년 동안의 호황으로 마음 편히 지갑을 열던 사람들은 지금의 상황에 대해 비난할 누군가가 필요한 참이었다.
그런 와중에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를 뒤집어 놓을 정도로 요란스럽게 나선 검찰의 행동은 마치 그런 비난을 유진에게 돌리라는 것으로 보였다.
당연히 전체적으로 보면 아직도 여전히 유진을 한국 경제의 가장 큰 기둥으로 생각하고, 유진 덕분에 한국의 경제가 다른 나라들보다 덜 어려워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하나 여론의 흐름이란 것은 참 묘한 것인지, 한번 그렇게 유진에 대한 비난이 일어나기 시작하자 밑도 끝도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어쩌면 가능할지도 몰라요. 이 선거.”
“그렇죠?”
지난 10여 년 동안 여당은 한 번도 선거에서 패배하지 않고 한국 정치계를 꽉 쥐고 흔들어 왔다.
물론 그 배경에는 유진이라는 거인이 한국 경제를 뒷받침하고 있었기 때문이지만, 사실 그동안 여당이 닦아 놓은 정치적 기반은 야당에 비할 바가 아닌 것이 사실이다.
이번 대선에서는 경제 불황의 깊은 골이 한국의 유권자들에게 또 다른 선택의 여지를 주어 왔지만, 여당과 검찰, 그리고 언론이 세상을 흔들며 그런 여론이 다시 흔들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굳이 협상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군요.”
“SS파트너스 쪽에서 조용한 걸 보면, 아무래도 그쪽도 한국에서 철수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 모양입니다.”
“당연한 거 아니에요? 가지고 있는 한국 대기업들 지분의 평가 액수가 얼마인데, 여기서 쫓겨나면 대체 얼마를 손해 보는 거예요? 듣자 하니 가뜩이나 지난 몇 년 동안 제법 손해를 본 모양인데.”
“그 시베리아 유전 건이 컸지요. 세계 최대의 유전이랍시고 떠들더니 러시아 놈들한테 홀랑 빼앗기고, 전쟁이 일어나 핵폭탄까지 터지지 않았어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두 사람의 의견을 넘어 여당 내부의 중론도 변화를 보였다.
“듣자 하니 미중 무역 분쟁으로 중국 시장에서도 이미 철수했다는 모양입니다. 아마 지금까지 버텼다면 제법 이익을 보았을 텐데, 그때 손해를 보면서 빠져나간 모양이에요.”
“그 사람도 이젠 갔어요.”
“화무십일홍이라고, 그만큼 누렸으면 이제 무너질 때도 되었지.”
“아무래도 한국 시장까지 잃어버릴까 두려운 모양이지요?”
“그렇기도 하겠어. 러시아, 중국에 이어서 한국까지 빼앗기면 곤란한 사람은 자기지.”
이제는 유진이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는 것이 겁을 집어먹었기 때문이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었다.
그렇게 서로의 의견이 오가는 가운데, 차라리 공세를 더욱 강화해서 여당과 유진 사이의 문제를 더욱 키워 야당을 이슈에서 몰아내고 여론을 선도하면 대선 승리도 불가능하지만은 않겠다는 쪽으로 흐름이 넘어갔다.
강유진 한 사람의 독주로 인해 왜곡된 한국 경제를 바로잡는다는 것을 여당의 선거 대책으로 삼아 버린 것이다.
“SS파트너스 김환은 뭐라고 하던가?”
“조사할 게 있다면 부르랍니다.”
“협상에 응할 생각이 없다는 말이지?”
“그런 모양입니다.”
“웃기는 사람들이로군. 지금 여론이 완전히 뒤집히고 있어. 이대로라면 결코 좋은 결과는 보지 못할 텐데?”
“검찰과 공중파에서 연일 SS파트너스를 때리고 있으니, 사람들도 정말 뭐가 있는 거 아니냐는 반응입니다.”
“휴우…… 대체 일이 어떻게 되려는 거야?”
대선을 겨우 보름 앞둔 상황에서 여당과 검찰, 그리고 여론의 공세에 굳건하다 믿어 왔던 대선 승리의 모양새가 흔들리기 시작하자, 난데없이 찬물을 맞게 된 야당에서 비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쩐 일인지 지금까지 유진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신줏단지처럼 받들어 모시던 언론들이 갑자기 안면을 바꾸어서는 유진을 비난하는 기조가 섞인 기사들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 시발점이었다.
검찰에서는 연일 SS파트너스가 국내법을 위반했다면서 새로운 혐의를 발표하고 있었고, 공중파를 비롯한 언론들은 검찰의 그런 발표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자세히 싣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 되면 그런 공격에 대해 어떠한 논리로든 해명을 하는 것이 정상일 터인데, SS파트너스 쪽에서는 마치 자신들에게 죄가 있다는 듯이 조용하게 몸을 수그리고만 있었다.
한편 검찰의 그런 혐의 발표와 함께 정부 여당은 한국의 경제가 단 한 사람에게 의존하는 지금의 상황이 결코 정상이 아니며, 단기적으로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그 한 사람에 의해 국가 전체가 휘둘리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런 상황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단기적으로는 경제에 타격을 입을 수 있겠지만,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물론 정치권에서만 이런 주장이 나온 것은 아니다. 뒤를 이어 다양한 경제 전문가들 비슷한 논지로 여당의 주장을 옹호하고 나섰다.
뉴욕에서 위험한 투자 행위를 업으로 삼고 있는 강유진의 투자 실패가 한국 경제의 침몰이라는 끔찍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강유진은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매년 적어도 1조 달러 이상의 도박성 투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건 한 번의 실패가 1조 달러, 혹은 그 이상의 손해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엄청난 액수네요.”
“다들 아시다시피 뉴욕의 금융계는 세계적으로 천재적인 투자자들이 잔뜩 모여 있는 곳이에요. 그런데 그런 투자자들도 투자를 늘 성공시키지는 못하거든요. 조지 소로스라던지, 롱텀 캐피탈처럼 진짜 천재라는 사람들도 승승장구하다가 결과적으로는 엄청난 손해를 보고 말았어요.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늘 성공해 온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교수님께서는 강유진 회장도 언젠가는 그런 투자에 실패할 때가 온다는 말씀이로군요.”
방송에 나온 한 경제학자가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옵니다. 반드시 옵니다. 시장에서 한 번도 실패하지 않는 투자자는 없어요. 오마하의 현인이라는 버핏도 지금까지 두 번 큰 실패를 했었죠. 그나마 버핏은 가장 안정적인 기업에 대한 투자만으로 일관해 온 덕분에 그러한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었어요. 하지만 강유진 그 사람은 달라요. 자기가 가진 돈의 네 배, 다섯 배의 레버리지 뻥튀기로 도박판에 서 있는 거라고요.”
“네다섯 배라고요?”
“예. 백억 원이 있으면 그걸 보증으로 오백억 원을 빌려서 판에다 몽땅 쓸어 넣는 거예요. 그게 도박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종편에 불려 나온 경제학자는 한껏 힘을 주어 유진의 투자를 도박이라 강조했다.
“강유진은 그런 위험천만한 도박을 지금까지 계속해 오고 있어요. 그것도 백억 원, 천억 원 수준이 아니라 천조, 이천조 이런 어마어마한 금액으로 말이지요. 한국의 GDP를 넘는 도박을 일삼는 사람입니다.”
“예. 듣고 보니 무시무시하군요.”
“그런데 그 도박에 쓸 판돈이 다 어디서 나겠어요? 한국에 투자했다는 그 돈도 결국은 전부 도로 도박에 쓰기 위한 종잣돈이라고 봐야 해요.”
유진을 향한 온갖 자극적인 말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