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화 삼인성호(三人成虎)
“그러니까 교수님 말씀은 한국에 투자한 돈이 사실은 투기성 베팅의 보증금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말씀이시지요?”
“네.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도박을 매번 이길 수 있어요?”
“아무래도 쉽지는 않겠지요.”
“쉽지 않은 게 아니라 불가능해요. 불가능. 언제고 한 번 크게 터질 겁니다. 그렇게 되면 어찌 되겠어요? 판돈을 빼앗기죠? 그 판돈이 뭡니까? 전부 이 나라 경제계에 들어와 있는 그 돈이에요. 지금 이 나라 상황은 정상이 아니란 말이에요.”
“교수님의 말씀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으로, 저희 방송국과는 상관없음을 다시 한번 알려 드립니다.”
교수의 말이 과격해지면서 사회자는 짐짓 선을 그었다.
하지만 굳이 그런 사람을 섭외했다는 점에서 이미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말은 눈 가리고 아웅에 불과했다.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라는 회사가 있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쯤이지요. 당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대단한 천재가 운영하던 투자회사였는데, 마치 지금의 강유진 그 사람처럼 계속해서 승승장구했었죠. 그러다 보니 점점 더 많은 돈을 굴리게 되었는데, 98년쯤에는 1,000억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를 운용하게 되었습니다.”
“그 시절에 1,000억 달러라면 정말 대단하네요.”
“당시 우리나라 GDP가 3,000억 달러가 조금 안 되었나 그랬으니 일개 회사가 굴리는 돈으로는 참 무지하게 큰돈이었죠. 그런데 알고 보면 전부 다 빚이었어요. 자기 자본은 아마 5%도 안 되고 그 20배쯤 되는 부채로 투자를 하는 거였거든요. 그렇게 위험한 투자가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교수가 마치 시청자들에게 질문이라도 하듯 말했다.
“그렇죠. 큰일이 나겠죠. 레버리지를 두 배, 세 배만 써도 위험도는 몇 배, 몇십 배가 커지는 게 투자의 상식이거든요. 그런데 무려 스무 배의 레버리지를 썼단 말이에요. 그게 잘 될 때야 가진 자본에 비해 큰돈을 벌겠지만, 한 번이라도 삐끗하면 그냥 줄줄이 무너지는 거예요.”
“이른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이라는 거네요.”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도 결국 딱 한 번 실수로 무너져 버렸어요. 그런데 자본이 겨우 5%라고 했잖아요? 그럼 나머지는 다 누군가에게 빌린 부채라고요. 그 회사뿐 아니라 돈을 빌려준 은행들도 전부 도산하게 생겼단 말이지요. 월가는 물론이고 미국 경제에까지 아주 큰 영향을 일으킬 만한 사태였어요. 결국엔 미국 연방은행이 직접 나서서 망하지 않게 도와준 뒤에야 사태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교수는 그렇게 25년 전 월스트리트를 뒤흔들었던 전설적인 투자회사의 일화를 이야기하고 뿌듯한 표정으로 글라스에 담긴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이처럼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사람도 한 번의 실패로 무너지는 게 현실이에요. 그러니 투자라는 게 얼마나 위험한 겁니까? 대체 어느 누가 강유진 회장이 절대 투자에 실패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어요?”
교수의 열변이 통했던 것인지, 패널들 섭외를 잘했던 것인지, 교수의 말이 끝나자 모두 고개를 끄덕거렸다.
“더군다나 롱텀캐피털은 미국의 연방은행이 뒤를 봐 줬지만, 강유진은 뒤에 누가 있어요? 한국 아니에요? 한국! 한국 경제를 볼모로 삼아서 1조 달러가 넘는 투기를 하고 있는 사람이에요. 이거 보통 위험한 게 아니에요. 그 사람이 한 번만 실수해도 우리나라 경제가 무너져요. 한국은행에서 그 1조 달러를 책임질 수 있나요?”
아주 많은 것들이 생략된 주장이었다. 그렇지만 그가 가진 국내 유수의 대학 경제학 교수라는 직함과 투자 상품의 복잡성은 일반인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실 때문에, 패널들은 뭔지 몰라도 유진이 위험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동의하고 있었다.
한편 교수가 그런 주장을 하고 있던 날, 뉴욕의 월스트리트 포스트라는 언론사에서 유진에 관한 기사를 올렸다.
[월스트리트의 유명 투자자인 유진 캉의 투자에 대한 분석.
유진 캉은 주식시장은 물론이고 파생 상품 등에 적게는 5조 달러에서 최대 8조 달러가량을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ETF 등 안전 자산에 주로 투자하는 블랙록 등의 자산운용사를 제외한 고위험 고수익을 추구하는 헤지펀드로는 최대 규모에 해당한다.
이런 헤지펀드들은 대부분 레버리지 비율을 극대화해서 큰 수익을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유진 캉의 자산관리 회사들이 모두 개인 기업이기 때문에 자세한 투자 현황과 내용을 전부 파악할 수는 없지만, 관계자에 따르면 적어도 6배에서 많으면 10배가량의 레버리지를 사용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그러니까 유진 캉은 월스트리트의 은행 등을 통해 적으면 4조 달러, 많게는 7조 달러가 넘는 부채를 이용한 투자를 하고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 포스트는 발행 부수가 겨우 1만 부도 되지 않는 소규모 언론사이다.
월스트리트라는 이름을 붙이고는 있지만, 그다지 금융, 투자 전문의 언론도 아니고 그저 맨해튼을 근거로 하는 지역 신문 중 하나에 불과했다.
하지만 어떻게 그 기사를 발견한 한국의 언론들은 마치 대단한 금융 경제 전문지의 분석이라도 되는 듯 크게 화제로 만들며 인용하기 시작했다.
- 강유진, 사실은 8조 달러의 부채 펀드 운용.
- 8조 달러의 빚을 어떻게 감당하나.
- 강유진의 개인 빚 때문에 한국 경제가 위험해질 수도.
처음에는 한두 개의 언론에서 옮겨 실었지만, 곧 대다수 언론이 월스트리트 포스트라는 정론지(?)의 기사를 바쁘게 옮겨 실었고, 그러자 대한민국 GDP의 여섯 배에 달하는 금액을 위험한 시장에 베팅하고 있는 유진과 함께 대한민국이 침몰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한국을 덮치기 시작했다.
아무도 그 월스트리트 포스트라는 타블로이드 신문이 평소에는 지역 소식 혹은 연예인 가십 기사나 올리는 신문이라는 사실에는 주목하지 않았다.
사실 8조 달러라는 엄청난 액수는 누구라도 깜짝 놀라게 만들 만한 금액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커다란 경제 규모를 지닌 중국의 GDP와 비교해도 절반이나 되는 막대한 금액인 것이 사실이었고, 또 기사나 여러 전문가의 주장처럼 6배에서 10배의 레버리지라면 주가가 겨우 10%만 떨어져도 위험한 초고위험 투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아무리 월스트리트라고 해도 그렇게 10배 이상의 고레버리지 상품은 대개 국채나 환율 같은 안정적인 상품에 적용되고, 주식의 경우처럼 움직임이 큰 상품에서는 일반적이지 않다는 사실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수백억 달러가 넘어서는 경우라면 그런 레버리지 또한 더욱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구조적인 문제점 또한 거론되지 않고 있다.
주식시장이라면 백억 달러를 넘어서면서부턴 많아야 세 배 정도도 위험하게 취급되기 때문에, 만일 기사의 발표대로였다면 유진이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들의 보유 자산이 적어도 3조 달러가 넘어서야 한다는 것 또한 기사화되지 않았다.
일반인들이 알기에는 너무나 전문적인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반응이 폭발적입니다. 벌써 강유진이에 대해 안 좋은 소리가 대부분이에요.”
이번 사태를 기획한 여당의 의원이 대선 후보를 독대한 자리에서 자신이 꾸민 일 덕분에 여당 지지율이 얼마나 오르고 있는지 침을 튀겨 가며 설명하고 있었다.
“미리부터 강유진이와 선을 그은 게 절묘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우리 여당이 법안을 내고 검찰이 수사에 들어가서 강유진과 확실하게 적대적이라는 모습을 보여 주었으니, 강유진 인기가 떨어질수록 후보님의 지지도는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대단하군요. 그래도 겨우 한 달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여론이 이렇게까지 바뀔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말이에요.”
“다들 놀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검찰과 언론이 함께 움직이면 세상에 뒤집지 못할 게 어디 있겠습니까?”
세 사람만 우기면 없던 호랑이도 만들 수 있다는데, 한국의 여론을 주도하는 언론들과 이슈 메이커인 검찰이 동시에 움직이면 누구라도 역적으로 만들 수 있었다.
“하하! 아주 좋습니다. 그런데 야당 쪽은 어떤가?”
후보는 기분 좋은 얼굴로 선거 대책 위원에게 물었다.
“그쪽은 갈팡질팡하는 중입니다. 이제 와 선을 그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뒤늦게 강유진을 비판하며 나서기도 그런 모양이지요.”
“그렇지? 역시 선거는 타이밍이야. 흐흐.”
“사실 그쪽으로서는 계속 어리석은 선택을 해 온 거지요. 하하하.”
그렇게 여당 측은 날마다 솟구치는 지지도에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강유진에 대해 비판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야당의 대선 후보인 윤형준은 그렇게 압박을 해 오는 당의 중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되물었다.
“지금 여론이 어떤지 아십니까? 강유진이 그 사람, 세상에 상종 못 할 위인이 되어 버렸어요. 세상에 8조 달러라니. 한화로 1경 원입니다. 1경 원! 세상 어디에 1경 원을 가지고 도박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가요?”
“네! 그것도 빚으로 말이에요!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놀라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그 사람 도박 한판에 한국이 무너지고…… 아니, 그 정도 규모라면 한국이 아니라 일본을 팔아도 모자란답니다.”
“그런 말들이 다 근거는 있답니까?”
흥분하는 당 의원과 달리 윤형준은 시종일관 담담히 질문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월스트리트 쪽으로 확인해 봤습니다. 알려지기로 주식에만 적어도 6조 달러를 투자한 것은 틀림없다는 모양입니다. 주식 투자는 개인 기업이라도 공시를 해야 한다는데, 그를 보면 알 수 있답니다.”
“그게 전부 빚이고요?”
“그건 확인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쪽 말로는 헤지펀드는 레버리지가 기본이랍니다. 안전 자산에 주로 투자하는 자산운용사도 3배, 5배짜리 ETF를 발행한다고 합니다.”
“혹시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아십니까?”
열정적으로 성토를 이어가던 의원이 순간 당황한다.
“네?”
“아. 아니에요. 여하튼 강유진 회장에 대해 내가 비난을 하고 나서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기껏 손안에 들어온 대선을 놓치고 말 겁니다. 원래 여당 지지가 안정 회귀 경향이 높지 않습니까? 그런데 강유진이 그런 위험한 도박에 나선 것을 단죄하겠다고 나서니 여당에 힘이 쏠릴 수밖에요.”
“그렇다면 내가 강유진 회장을 비난하면 그 지지가 나한테로 돌아선다는 말입니까?”
“아니. 그건……. 원래 강유진하고 가까운 건 그 여당 아닙니까? 둘이 그렇게 붙어먹다가 이제 와서 서로 싸우는데, 왜 우리가 독박을 쓰는 겁니까?”
야당 의원들은 억울했다. 강유진이 한국 경제에 해 온 투자의 이익은 지금껏 여당이 가져갔다. 그래 놓고 다시 강유진을 몰아내자며 이익을 얻는 것도 여당이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의원님들 생각으로는 그 강 회장이 그렇게 우스운 사람 같습니까? 그리고 백악관은 무슨 호구 소굴 같으세요?”
한참 동안 의원들의 성토를 듣던 윤 후보가 넌지시 본의를 드러냈다.
“네?”
“그게 무슨?”
“강 회장이 지금까지 단 한 번이라도 틀린 선택을 한 적이 있던가요? 역사상 가장 뛰어난 투자자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그 전설적인 사람이 말이에요.”
“네? 아니, 누구라도 한 번은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강 회장도 곧 나무에서 떨어진다? 그래서 한국이 엄청난 피해를 볼 거다? 그런 말씀들이지요?”
“예! 맞아요! 그러니 지금이라도 우리도 선을 그어야 한다는 거 아닙니까?”
“하……. 그러면 국민들이 역시 윤형준이라고 환영하며 저를 지지하겠습니까? 아니면 강 회장과의 긴장 관계를 만들어 낸 여당을 지지하겠습니까?”
말이 돌기 시작한다. 야당 의원들은 마치 궁지에 몰린 패잔병들처럼 당장 숨을 곳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윤 후보는 조금 다른 눈으로 이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