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화 와호(Crouching Tiger)
“지금까지 이 나라 언론들이 강 회장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여 왔는지 혹시 기억들은 하십니까?”
윤 후보의 질문에 모두 흠칫 얼굴을 굳혔다.
“그야 뭐…… 무조건 강 회장에게 유리한 쪽으로…….”
“강 회장에 관해서는 찬사 일색이었지요.”
“그렇다기 보다는 마치 입안의 혀처럼 언론이 알아서 마사지를 해 줬다고 할까…….”
우물쭈물하며 내놓는 의원들의 대답에 윤 후보가 다시 묻는다.
“그렇죠? 언론들이 어떤 이유에서 그랬습니까? 다들 아시죠?”
“광고 때문 아닙니까? 솔직히 SS파트너스 관련 기업들에서 지출하는 광고비가 한국 1년 광고시장의 절반을 넘어가니까요.”
“그렇죠. 그런데 이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안면을 싹 바꾼다고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거야 워낙 상황이 그렇지 않습니까? 대통령도 문제점이 있으면 까고 보는 게 언론들인데.”
의원들은 아직도 윤 후보가 왜 이렇게 나오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죠. 언론이 정치인이야 막 비판을 해도 언제 대기업, 이를테면 제일이나 다산 그룹 총수를 겨냥해서 지금처럼 공격적으로 나온 적이 있던가요? 정치인이야 언론의 밥이지만, 재계는 언론의 밥줄 아닙니까?”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언론이 대세를 거스르지는 않지요. 지금 대세는 강 회장과 한국 경제가 거리를 두는 거 아니겠습니까?”
“대체 언론이 언제부터 대세를 따랐습니까? 언론은 대세를 따르는 게 아니라 그 대세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 아니에요? 지금의 상황도 오히려 언론이 그런 상황을 더욱 부추기고 있고요.”
“그렇다면 후보님은 어떤 음모라도 있다고 생각하신다는 말씀 같네요.”
윤 후보가 잠시 머릿속으로 말을 고르고는 천천히 대답했다.
“뭔가 흐름이 이상하다는 겁니다. 하필 이 시점에서 강 회장을 그렇게 공격한다? 지금까지의 이 나라 언론들이라면 절대 하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예요.”
“음모라면 음모겠지요. 여당에서 그렇게 강경하게 나서고, 검찰이 대대적으로 SS파트너스를 뒤집어엎고 있지 않습니까? 언론은 원래 여당 손을 들어 주었고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들 계신가요? 언론이 여당 눈치를 보고 강 회장을 공격하는 거라고?”
윤 후보의 거듭되는 질문에 야당 의원들이 조금씩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아진 경제일보 쪽은 위쪽에서 오더가 내려왔다고 하더군요. 강 회장에 대해 거침없이 비판해도 상관없다고요.”
야당 의원 중에는 언론계 출신 인사가 제법 많았고, 그쪽의 정보를 쉽게 접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제민신문도 마찬가지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왜 그러는 걸까요? 그냥 이번 선거를 여당 입에 떠먹여 주기 위해서? 나중 일은 생각도 않고요?”
“흠……. 그렇다면 후보님은 어떤 고견을 갖고 계시는 건가요?”
가장 강경하게 유진에 대한 비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던 중진 의원이 물었다.
“음모라고 해야 하나, 작전이라고 해야 하나. 여하튼 그런 게 존재하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 주체가 꼭 여당일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는 생각입니다.”
“그렇다면?”
“혹시 강 회장의 의중이 숨겨져 있다는?”
“그건 조금 너무 나간 거 아닌가요?”
“확실히 이상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강 회장이 일부러 언론을 사주해서 자기를 공격하라 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의원들도 이젠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사실 정상적인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벌써 그런 지적이 나왔어야 한다.
하지만 이제 대선을 겨우 두 주도 남겨 두지 않은 상황에서 느닷없이 벌어진 일이다.
대선을 손에 넣었다고 확신하던 의원들은 그저 불똥을 맞은 것처럼 이리저리 날뛸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평소보다 언론사와의 정보 교류도 잘 되어가지 않는 상황이고, 검찰이나 세무 쪽은 더더욱 그러하다.
원래부터가 야당은 그쪽과 거리가 멀었고, 야당 생활이 이미 10년도 넘어가는 마당에 제대로 된 정보가 넘어오기를 바라는 게 더 이상할 정도였다.
원래였다면 이성적으로 대처해 보려 했겠지만, 조급함과 정보의 부족이 초래한 어처구니없는 사태였다.
“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지금 상황이 아주 심상치 않은 것만은 사실입니다. 우리가 지금 섣부르게 강 회장을 비난하고 나선다면 천려일실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는 해요. 사실 우리가 강 회장과 선을 그어 버린다고 크게 도움이 되지도 않고요.”
그날 윤 후보는 유진에 대해 비판을 하고 나서자는 야당 중진들의 움직임을 일단 막아설 수 있었다.
“무슨 병신들만 모여 있나? 금융 투자가 전부 도박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러니까 말이지. 아니 그럼 주식시장은 왜 열어? 다 폐쇄하지?”
“어이가 없네.”
여론이 여당에게 유리하게 흘러가고, 유진에 대한 비난이 거세게 일고 있다 해서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유진에게 호의적인 사람들의 수도 절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여론 조사는 그 조사를 시행하는 기관의 의중에 따라 편향적인 결과를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리고 딱히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은 쉽게 언론의 보도에 마음을 돌려 버리고는 한다.
TV를 통해 온종일 유진이 엄청나게 위험한 도박을 하고 있고, 또 그 파장으로 한국 경제가 침몰할 수 있다는 보도를 내보내고 있으니, 세상일에 관심 없던 사람들은 그렇지 않던 사람들보다 훨씬 더 쉽게 두려움을 느끼고 마는 것이다.
그렇게 흔들리는 사람들이 여론 조사의 결과에 반영이 되고, 여론 조사 결과가 발표되며 다시 여론을 이끈다.
어떠한 사항이든 양쪽 진영을 지지하는 기저층 30%에서 40%가량은 좀처럼 흔들리는 일이 없지만, 중간에 있는 20%에서 최대 40%가량의 무관심층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여론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는 와중에 뉴스에서 또다시 여론 조사 결과를 두고 소위 전문가들의 분석을 내어놓으며 불안감을 조장한다.
이제 한국인 중 상당수는 유진의 잘못된 베팅 한 번으로 한국이 당장이라도 쓰러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빠져 버렸다.
시간이 흐르면서 유진에 대한 여론은 더욱 나빠지고 있었다.
언론사 기사의 댓글과 각 커뮤니티에는 유진에 대한 비난의 글이 쉴 새 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물론 유진을 지지하는 사람도 만만치 않게 게시글을 올리고 있었지만, 수적으로 부족하고 상대가 막무가내라는 점 때문에 그러한 비난 글들을 당해 낼 수 없었다.
정상적인 토론과 달리, 뉴스 댓글과 커뮤니티의 글들은 글의 논리성과 적합성보다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얼마나 많이 세를 몰아 올리는지가 승패를 좌우하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이 시점에선 비난파의 우세가 확연했다.
적어도 포털 서비스 뉴스에 올라온 댓글만 읽어 본다면 유진은 세상에 둘도 없는 나쁜 놈이고, 한국 경제를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도박 중독자이며, 국가를 배신하고 국적을 바꾼 매국노였다.
사실 뉴스 댓글란은 결코 토론의 자리가 아니었었고, 대개는 세력 간의 치열한 투쟁의 장소로 변해 버린지 오래다.
그리고 그런 댓글의 상당수는 일반인이 아닌 특정 정당의 지지자 혹은 관련자들이 몰려다니며 작업을 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이제 평범한 상식인들은 더 이상 그런 댓글을 통해 토론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번 사태에서도 그러한 성향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야당 측에서 유진에 대한 대응을 결정 짓지 않았으니, 유독 여당의 지지자들만이 신이 나서 댓글을 올리고 있을 뿐이다.
* * *
[검찰은 이날 SS파트너스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에 들어간다고 밝혔습니다. SS파트너스의 범죄를 입증하기 위한 핵심 증거를 관련자들이 파괴하거나 모종의 장소에 은닉한 것으로 확인되며, 이에 따라 좀 더 면밀한 자료 수집이 필요하다는 이유입니다.]
[한편 검찰은 SS파트너스 재무 관련 인사에 대한 구속 영장도 신청한 상태로 알려져 있습니다. 법원의 구속 영장 발부가 나오는 대로 관련 직원들의 구속이 이행될 것으로 보입니다.]
검찰과 언론의 콜라보레이션은 환상적이었다.
검찰은 연일 SS파트너스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고, 언론은 검찰의 발표를 대서특필하며 월스트리트 투자 금융의 위험성을 부르짖었다.
그렇게 다시 며칠이 흘러 이제 대선은 열흘 앞으로 다가왔고, 한때 명백한 야당의 우세로 굳혀져 가는 듯 보이던 여론은 이제 박빙 혹은 여당의 근소한 우세로 바뀌고 있었다.
추세로 보아 남은 열흘 동안에도 뚜렷한 전환점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여당 후보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된다는 것이 언론의 일반적인 분석이었다.
“그런데 형은 괜찮아?”
한국에서 일련의 사태가 벌어진 이후로 종일 한국 TV만 틀어 놓고 지켜보던 유성이 물었다.
“뭐가?”
“지금 벌어지는 일들 말이야. 너무하잖아?”
“그런가?”
“안 그래? 솔직히 지금까지 형이 한국에 투자한 돈이 얼마고, 또 투자만 했어? 다양한 분야에 기부한 게 얼마나 되는데? 솔직히 지금까지 형이 한 기부금이 대한민국 생기고 다른 기업들 한 거 다 합쳐도 모자랄걸?”
“그래?”
별걸 다 안다는 듯한 유진의 표정에, 유성이 멋쩍게 대답했다.
“어. 어디서 봤는데 어떤 패널이 그러더라.”
“하하…….”
“웃고 있을 때야? 지금?”
“솔직히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니까.”
“뭐가 아예 틀리지는 않아?”
유진이 어깨를 살짝 으쓱해 보인다.
“내가 하는 투자가 잘못되어 파산이라도 하면,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이 간다는 거 말이야.”
“그……래?”
“어. 투자라는 게 결국 이리저리 얽혀 있어서 한쪽에서 무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기 마련이지. 그렇게 되면 한국에 투자한 돈도 빼내야 하고, 그러면 한국 경제가 흔들리는 걸 넘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는 건 맞아.”
“그렇게 위험해?”
“어디까지나 내가 파산할 만큼 큰 실패를 했을 때를 가정하는 거지. 그런 일이 벌어지면 한국이 아니라 미국 경제가 흔들릴걸?”
유진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유성은 내심 불안해지고 있었다.
“어? 그렇구나…….”
“지난번 금융 위기나, 닷컴버블 같은 사태가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지.”
“무시무시하네.”
“어디까지나 내가 실패를 한다면 말이지. 그렇게 따지면 여기 뉴욕의 다른 대형 금융 기관이 무너져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테고 말이야.”
“그러니까 금융 기관의 영향력이 커지면 그냥 어디서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거네?”
유성은 그제야 뭔가 이해가 되는 듯했다.
“어, 맞아. 그리고 한국은 아직 그 의미를 제대로 모르고 있고. 지금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서로 긴밀하게 얽혀 있어서 한쪽에서 벌어진 일이 다른 나라에 전가되는 것도 순식간에 벌어지지.”
“대체 걱정을 해야 한다는 거야? 아니면 별거 아니라는 거야?”
“현대 사회는 금융 투자의 위기와 함께 살아가는 거라는 의미야. 마치 과거 인류가 자연재해와 함께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지.”
“뭔가 스케일이…… 형이 자연재해나 마찬가지라는 것 같잖아?”
“비슷해. 자연의 혜택을 받으면서도 늘 자연의 분노를 두려워하는 것 같이.”
유진이 지금 운용하는 자산은 그렇게 과신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커져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말처럼 다른 대형 투자 기관, 블랙록이나 뱅가드 같은 금융 기관이 무너진다 해도 세계 경제가 흔들리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다만 그런 초대형 기관들보다 유진이 훨씬 더 위험한 투자를 이어 가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여러 가지 과장이 있기는 하지만, 한국의 시사 프로그램이나 뉴스에서 말하는 말들이 영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어떤 투자자라도 실패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세상 그 누구도 유진이 미래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점만 빼놓는다면 말이다.
유진은 결코 자신이 세계의 미래를 잘 알고 있고, 그걸 기반으로 아주 커다란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다.
그 때문에 어떠한 비난에 대해서는 묵묵히 입을 다물어야 할 때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