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303화 (303/363)

303화 서킷 브레이커

“아무래도 그 강 회장이 겁을 먹은 모양이지요?”

“그러니까 말이에요. 아무리 돈이 많아도 국가 권력과 싸우는 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여당 의원들의 모임은 웃음꽃이 넘쳐 나고 있었다.

이제 겨우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선거는 거의 결정이 난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렇게 쉬울 줄 누가 알았습니까?”

“그러게요. 강유진 그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았던 모양이에요.”

“싫어한다기보다 별생각 없는 사람들이 많은 거죠. 껄껄.”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특정 계층에서 비선호 응답이 많이 나오고 있더군요.”

“확실히 목표 계층을 정해 놓고 공략했던 게 잘 먹힌 거 같아요.”

다들 뒤질세라 자기가 한 역할을 자랑하고 나섰다.

사실 이 자리에 있던 누구도 이렇게까지 일이 잘 풀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사태가 스노우볼링처럼 새로운 사태를 일으키며 여당에게 가망 없던 승리를 가져오고 있었다. 다들 즐거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과연 그럴까요? 전 솔직히 아직도 걱정이 큽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강 회장이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남들이 다 위험하다는 선택을 하면서도 매번 엄청난 성공을 거둬오지 않았습니까? 절대 평범한 사람은 아니에요. 겁이라니요? 말도 되지 않습니다.”

“그쪽이 너무 조용하니까 외려 더 신경이 쓰이는 건 사실이에요.”

물론 여당이라고 지금의 상황이 무조건 자신들에게만 유리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여전히 경각심을 놓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또 누군가는 위기감을 느꼈는지 모임에 참석하지 않고 계속해서 SS파트너스와의 연결을 고대하고 있기도 했다.

외견상으로는 여당이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커 보였지만, 실상은 각자의 판단이 갈리고 있었다.

“어쨌든 선거가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와 그쪽에서 무슨 수를 쓰건 간에 이 여세를 놓치지 않는다면 무난하게 승리할 것 같습니다.”

“검찰 쪽은 어떤가요?”

“뭐. 사실 파고들어도 크게 나오는 건 없는 모양입니다. 선거가 끝나면 대충 봉합하도록 할 계획인 모양이지요.”

“지역별 상황은 어떻습니까?”

“잘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조직력 하나는 우리가 제일 아닙니까?”

“그렇죠. 전국 팔도 300개 사무소에서 아주 풀로 뛰고 있습니다.”

“공중전(미디어를 통한 전국적인 바람)도 잘해야 하지만, 결국은 필드에서 잘 뛰어 줘야 하는 거예요.”

여론 조사 결과의 호재 덕분에 여당 내에서는 내홍을 최대한 숨겨 가며 마지막 승리를 위해 쉴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뉴스 좀 틀어 봐요!”

그때, 누군가가 휴대폰을 통해 날아온 메시지를 보고는 회의실 한쪽의 TV를 켜라고 지시했다.

“뭡니까?”

“뉴욕에서 뭔가 메시지가 있다는 모양입니다.”

“뭐야?”

“뭐지?”

뉴욕이라는 한 마디에 모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말로는 별거 아니라고 하면서도, 사실은 모두 두려워하고 있었음이 드러나는 모습이었다.

“뉴욕의 관계자에 따르면, 강유진 회장은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에 아주 큰 상심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의 경제 발전을 위해 적지 않은 기여를 해 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국인들이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다수의 의사를 따라야 하는 것이 아닌지 고심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언론사에서 보내 온 정보를 받은 덕분에 뉴스의 첫 부분을 거의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다수의 의견이라면 어떤 걸 말하는 거죠?”

아나운서가 특파원에게 묻는다.

“한국 시장에서의 철수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동안 한국에 해 온 투자를 철수한다면 적지 않은 손해가 날 텐데요?”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의 대기업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분이 적지 않으니, 그걸 시장에 내놓는다면 주가가 형편없이 떨어질 테고, 그 많은 주식을 인수할 만한 주체도 없으니 더욱 큰 문제가 될 거란 분석입니다.”

“만일 강 회장이 한국 기업들에 대한 보유 지분을 시장에 내놓으면 주가 폭락은 불을 보듯 뻔하겠군요. 그렇지 않아도 위기인 한국 경제에 적잖은 파장이 미칠 것 같은데요?”

특파원이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을 이어 갔다.

“그렇습니다. SS파트너스를 비롯한 강 회장 관련 기업들이 들고 있는 한국 대기업 주식이 각 기업의 적어도 10%는 넘어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막대한 물량이 시장에 나온다면 엄청난 패닉이 올 겁니다. 문제는 지금 한국 경제 상황이 그리 만만한 상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강 회장 또한 상당한 손해를 보게 될 텐데, 투자자로서 그런 큰 손실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강 회장이 보유한 자산은 아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으리라 여겨집니다. 월스트리트 추산으로는 최하 2조 달러에서 많게는 5조 달러까지라고 합니다.”

“일개 개인이 그렇게 큰 자산을 가지고 있는 게 가능한가요?”

“지난 10여 년 동안 강 회장은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엄청난 투자를 매번 성공시켜 왔습니다. 이미 역사상 최고 부자의 타이틀은 이미 5년 전에 이루었으니 다시 5년이 지난 지금 과연 얼마나 큰 자산을 형성했는지는 상상의 범위이지만, 월스트리트의 추산이 그저 억측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뭐야? 그 강 회장이 입을 연 건 아니잖아?”

“그러게 말입니다. 누군지도 모를 관계자의 말이 무슨 소용 있어요.”

보도를 접한 여당 의원들은 처음엔 아무것도 아니라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지금 별것 아닌 게 아니잖아요? 우리랑 싸우자는 거지 않습니까?”

하지만 곧 사태를 이해한 사람들이 나타났다.

“맞습니다. 관계자라는 표현을 빌려서 한국에서 철수하겠다고 블러핑하는 겁니다.”

“뭐야?”

“그러네.”

“어어! 이럼 완전히 나가린데…….”

너무나도 당황한 나머지 속된말이 필터 없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 조금씩 반응이 늦는 사람도 있었지만, 복마전보다 더한 정치판에서 수십 년씩 살아온 사람들답게 이 뉴스의 파급력을 금세 깨달은 사람도 적지 않았다.

“막아야 합니다!”

“이거 위험해요!”

“주식시장이 흔들리면 몇 프로가 떨어질지 몰라요!”

“이건 블러핑입니다. 강유진 그 인간이 한국 시장에서 철수하는 일 따윈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그걸 누가 몰라요! 지금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가 중요합니까? 그 가능성만으로도 시장에 충격이 있을 거라고요!”

상황은 몇몇 눈치 빠른 사람의 예상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저 뉴스 한 꼭지 정도에 불과했지만, 시장은 바로 반응했다.

유진이 한국 시장에서 철수할지 모른다는 공포가 몰아치며 사람들은 너도나도 주식을 던지기 시작했다.

“패닉입니다. 지금 주식시장에는 일말의 이성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서로 주식을 팔아치우기 바쁩니다.”

“국인과 기관도 이런 투매에 한몫하고 있습니다. 손해를 최소한으로 줄이려면 지금이라도 쥐고 있던 주식을 털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듯합니다. 매도는 쏟아져나오는데, 정작 체결되는 물량은 거의 없어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한국 주식시장은 그야말로 아비규환과도 같았다. 유진이 철수할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았을 뿐인데, 주주들은 아우성을 지르고 있었다.

그도 그럴 만했다. 외부에는 유진이 적어도 수백조 원에 달하는 한국 기업들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한국 주식시장 주가 총액이 2,500조 원을 살짝 넘어서고 있으니, 최하 10%에 달하는 엄청난 비중이다. 이미 연기금을 넘어서는 슈퍼 보유자가 주식을 내놓는다면 한시라도 빨리 탈출하는 것이 상책이다.

물론 이 시점에서도 유진의 공식적인 언급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 나 같아도 더러워서 철수한다.

- 그러니까 말이야. 한국에 퍼부은 돈이 얼마인데, 아주 매국노를 만들어 놨잖아? 그 꼴을 보면서 뭐 하러 여기 남아 있겠어?

- 나라 꼴 잘 돌아 간다.

순식간에 각 게시판의 여론이 뒤집혔다. 사람들은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은 여당을 욕하기 시작했다.

- 강유진 아주 나쁜 사람이네요. 한국 경제를 완전히 망쳐 버리려고 작정한 거 아니에요?

- 맞아요.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지저분하게 나올 리 없지요.

- 매국노가 따로 없다니까.

- 돈만 밝히는 투기꾼이 다 그렇지.

- 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야? 지들이 나가라고 욕해 놓고, 이젠 나간다니까 지랄이냐?

- 별 미친놈들 때문에 내 주식 다 녹는다!

물론 지금까지 여론을 이끌어 오던 세력의 저항도 거셌지만, 당장 들고 있는 주가가 폭락하며 손해를 보고 있는 주주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금세 제압되어 버린다.

- 아!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 끝나고 30% 떨어졌다가 간신히 회복하나 싶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야!

- 미친놈들 때문에 주식시장 무너지고, 기업 망하면 나라 경제가 어떻게 되는 거냐고!

여전히 유진은 공식적인 언급 한마디 없었지만, 시장은 이미 충분히 그가 한국에서 물러날 수 있다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 영국 수상이 그랬다더라. 한국에서 철수할 거면 영국으로 오라고. 영국은 강 회장님의 투자를 두 팔 벌려 환영하겠단다.

- 뭔 소리야? 누가 그런 헛소문을 퍼트리는데?

- 진짜야. 방금 타임지 인터뷰 떴어.

- 어? 진짜네? 금융 규제, 불합리한 몰이 수사 없는 건전한 자본주의가 살아 있는 영국으로 오세요? 미친다.

-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도 인터뷰 떴다. 미래는 사우디와 함께하잔다. 이게 진짜 무슨 일이냐?

- 사우디 왕세자는 자국에 투자하면 각종 세제 혜택도 주겠단다.

- 아! 이것도 진짜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 당연한 거 아니야? 한국에 투자한 돈만 5천억 달러가 넘는데 그걸 누가 탐내지 않겠어? 단기적인 투기 자금도 아니고, 몇 년 동안 꾸준하게 투자해서 장기적으로 발전시켜 서로 이익을 보자는 거였는데, 우리나라에서 먼저 내팽개친 거 아냐?

- 맞는 말이지. 솔직히 그런 식이라면 누가 이 나라에 투자하냐?

영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그리고 다시 뒤를 이어 몇 나라의 정상급 지도자들이 유진의 투자를 유치하고 싶다는 의사를 언론에 흘렸다.

물론 그들이 모두 유진의 개인적인 고객들이라는 사실은 외부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특별한 비밀이었다.

각국 언론을 통해 보도된 기사는 실시간으로 한국에서도 기사화되며 큰 파장을 일으켰고, 그게 신호라도 되는 양, 주식시장의 폭락은 더욱 거세졌다.

- 미쳤다! 서킷 브레이커 떴다!

- 실화냐?

- 어쩌냐? 오늘부로 한국 주식은 완전히 뻗어 버렸다.

- 주식이 문제냐? 이제부터 세계 시장이 한국을 어떻게 보겠냐? 자본주의고 시장 논리고 제대로 통하는 게 없는 나라 아니냐? 이게?

- 이게 나라냐?

- 하! 나도 이제 한국을 뜨련다.

게시판과 댓글은 점점 더 과격해져 갔다.

- 대체 정치인들 때문에 이게 무슨 꼴이냐?

- 무슨 정치인들이야? 전부 여당 잘못 아니야?

- 여당이나 야당이나 그놈이 그놈이지.

- 이게 물타기 한다고 될 일이야? 강 회장님한테 모질게 군 건 다 여당인데 왜 야당은 끌어들이냐고!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난 거센 물결이 한국을 휩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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