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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307화 (307/363)

307화 포석(布石)

“그러면 지금 형에게 반대하는 사람들 말처럼 형에게 의존하지 않는 쪽이 건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길이라는 거야?”

“건강한 나라가 뭔데?”

“응? 그거야…….”

유성이 듣고 보니 애매해졌던지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일개 대기업이나 한 사람의 경제력에 의존하는 나라는 건강하지 않은 건가?”

“확실히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그런 식이라면 유럽의 적지 않은 나라들이 포함되겠지.”

“그러니까. 애초에 그런 식으로 규정하면서 우기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 아니야?”

“그렇기는 하지. 그보단 어떤 식으로든 경제 규모를 키우고 조금이라도 탄탄한 국가를 만드는 쪽이 나을 테니까.”

“미래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니 당장 지금 순간에 가장 유리한 방법을 택하는 게 올바른 선택인 거지.”

물론 그 미래를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다. 적어도 한국을 위해서는 그 자신이 최선이라는 것을 유진은 확신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일로 한국 내부의 갈등은 오히려 커지게 생겼어.”

유성의 말처럼 그동안 수면 아래 숨어 있던 유진에 대한 반대 세력이 이번 일로 그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미래를 알 수 없다는 유진의 말처럼, 사람들은 앞날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그건 그 어떤 대단한 석학들이 나선다 해도, 그들이 경제학자이건 사회학자이건 불가능한 일이다.

미래는 아주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되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미지의 세계이다.

일부 사람들은 그러한 요소 중 자신이 원하는 일부만을 부각시켜 미래를 알고 있다고 주장할 뿐이다.

“오히려 잘된 일이야.”

“어째서?”

“어떤 사회건 갈등은 존재하지 않을 수 없지.”

유토피아가 아닌 이상에야 모든 사회는 여러 가지 사항에 따라 서로 다른 의견을 지닌 사람들이 치열하게 싸움을 벌이기 마련이다.

특히 종교나 지역, 민족, 혹은 부의 분배 같은 문제들은 반드시 갈등을 만들어 내기 마련이고, 그걸 억지로 누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갈등의 주제를 조절하는 것 정도는 가능할지도 모른다. 유진은 그 갈등의 주제를 자기 자신으로 만들고자 했다.

“그러니까 차라리 통제 가능한 갈등이 존재하는 게 나아.”

“통제 가능하다고? 아…… 그러네.”

순간적으로 되물었던 유성은 이내 곧바로 납득해 버리고 만다.

이번 사태로 유진은 오히려 전보다 한국 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훨씬 더 늘릴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의 정치권을 마음껏 쥐락펴락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

특히 지금까지 좋은 관계를 이어 왔던 여당을 자신에 반대하는 세력으로 만들면서까지 말이다.

물론 더 이상 그들이 여당이 될 수는 없겠지만…….

이제 유진에 대한 반감을 지닌 사람들은 아주 극렬한 야당의 지지자가 되어 역량을 집중할 것이다.

당연히 그런 저간의 사정을 전부 아는 것은 아니지만, 유성은 대충 흘러가는 모습에서 정치권이든 언론이든 유진의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은 여실히 느끼고 있었다.

“한 나라의 모든 여론이 한 가지로 모이는 것은 불가능해. 억지로 그렇게 보이는 것처럼 만드는 것도 그다지 현명하지는 않고.”

수많은 권위주의 국가들은 경찰과 군을 동원해 여론을 통제하고, 언론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마치 국민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인 것처럼 꾸며 낸다. 그리고 그런 방식은 대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차라리 그러한 사회적 갈등이 마음껏 표출되게 하고, 그 중심이 되는 양 축을 유진의 양쪽 손에 잡고 있는 편이 뜻대로 영향력을 펼치기에 수월하다는 생각이었다.

“뭔가 더 위험하다는 생각이 드네.”

그렇게 말하면서도 유성은 웃고 있었다. 유성은 이제 자신의 형의 멘탈이 여느 사람과는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완전히 깨닫고 있었다.

“딱히 위험할 것까지야.”

사실은 유진도 잘 알고 있다. 그렇게 한 사회를 위에서 아래까지 통제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사실을.

하지만 한번 시도해 볼 만한 일이다. 이건 그의 로드맵에 시작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은 유진이 그리고 있는 큰 그림의 일부이며, 전체를 대상으로 하기 전의 시험대와 같다.

“그렇게 말을 하는 건 나름 한국 사회에 애정이 있다는 말인가?”

“글쎄?”

딱히 애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에는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보다는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포석 작업과 같다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 대통령은 언제 만날 생각이야? 언론에서 어지간히 채근하고 있는 모양이던데. 빠른 시일 내에 만나 주지 않으면 그 사람 꽤 피곤해지겠어.”

“뭐. 그쪽도 내부적으로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니까.”

“아무래도 그렇기는 하겠지? 오랜 시간 야당이다가 권력을 잡은 거니까.”

“원래 집권 초기가 가장 힘이 세잖아? 그러니까 지금 부지런히 움직여야지. 해야 할 일이 무척 많을 거야.”

물론 단순히 대통령에게 시간을 주기 위해 만남을 지연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 내에서 유진에게 애달픈 구애를 보내는 시간을 어느 정도 길게 유지하기 위해서라는 쪽이 훨씬 더 크다.

이번 대선의 주제가 유진에 대한 논란으로 번진 것이 대략 한 달 정도이다.

그러니 선거가 끝나고 나서 다시 한 달 정도 한국 사회가 그 논란에 휩싸이기를 바랬다.

그리고 그동안 처리해야 할 일들도 있다.

이번 기회에 유진에 대해 가장 적극적인 비난을 퍼부었던 언론사 한두 곳과 그 뒷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던 대기업 두 곳을 퇴출시키는 일이다.

유진은 자신이 한국 사회에서 논란의 중심이 되는 것에 대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한국 국민의 30% 정도가 그를 싫어하거나 혹은 증오하게 되는 것도 마다할 생각은 없다.

하나 그렇다고 해서 무책임한 비난 공세를 퍼부어 온 언론들을 그냥 놓아둘 생각도 없다.

물론 어느 정도는 자신이 유도한 것이지만, 이렇게 수면 위로 드러나 버린 적대적 언론과 대기업을 누름으로써 자신의 힘을 제대로 보여 줄 생각이다.

누군가는 유진을 사랑하고, 또 누군가는 유진을 증오한다. 그리고 이제 많은 사람이 유진을 두려워할 것이다.

“비행기가 도착했습니다.”

그렇게 유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모니카가 중국에서 귀한 손님이 도착했다고 알려 주었다.

미리 준비해 놓은 덕분에 라과디아 공항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다리던 손님이 플라자 호텔에 도착했다.

“반갑습니다. 셰넌 리입니다.”

중국의 최고 지도자의 자제분이니 과거로 치면 황제의 딸, 그러니까 황녀 정도 되는 귀한 분이 오셨다.

“반갑습니다. 오시는 길이 지루하지는 않으셨는지요?”

“정말 편하게, 그리고 즐겁게 왔어요. 보내주신 비행기가 굉장히 호사스럽더군요.”

유진은 그 귀한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자신의 전용기를 베이징으로 보냈다.

중국 최고 지도자의 자식이 미국으로 유학 가는 것은 철저한 비밀에 싸인 일이라고 들었다.

그러려면 정부의 비행기나 민항기를 이용하는 것보다 유진의 전용기를 이용하는 쪽이 나아 보였기에 유진이 먼저 제안한 것을 상대가 받아들였다.

서로 좋은 관계에 있는 사람끼리 호의를 베풀고, 그걸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꽌시의 올바른 모습이 아니던가?

더군다나 유진은 이미 현 주석이 아직 정권의 중추에 나서기 전부터 여러모로 그의 편의를 봐줘 왔기에 주석과 서로 슝띠(兄弟)라 칭할 정도가 되었다.

물론 진짜 형제와 같은 의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중국에서 의형제는 서로에게 둘도 없이 중요한 이익 공동체를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지난번에 쥔산이에게 큰 도움을 주셨다고 들었어요. 이번에는 저까지 폐를 끼치게 되었네요.”

“폐라니요. 천만의 말씀을. 부친과는 형제와 같이 지내는 사이이니, 셰넌 양도 편하게 대해 주면 고맙겠군요.”

“그럼 수수(叔叔)라고 불러도 될까요?”

“물론이지요. 나도 셰넌 양처럼 좋은 조카를 갖게 되어 기쁘군요. 그런데 스턴대를 택한 이유가 달리 있는 건가요?”

중국 권력의 정점에 오른 예 주석의 차녀는 지금까지는 런던의 정경대학에서 정치 경제를 전공했다고 한다.

예 주석의 여러 자식 가운데 가장 똑똑하다고 하며, 제법 큰 야망도 지니고 있다는 듯하다.

유진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앞으로 수십 년 내로 그렇게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지는 못한 것으로 보이지만, 어쩌면 이번에는 조금 다를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뉴욕이 경제의 중심지이고, 제대로 된 금융을 배우려면 뉴욕으로 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더군다나 바로 옆에서 보고 배울 수 있는 너무나 굉장한 분도 계시고요.”

셰넌, 그러니까 중국인 예샤오밍은 처음 인사를 나누고 단 한 번도 유진의 눈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확실히 중국의 여성들은 일본이나 한국 여성과는 결이 다르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같은 동양 사람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미국이나 서양 여성들과 비슷한 기질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도전적이며, 결코 남성보다 스스로가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셰넌의 경우 오랜 시간 권력의 중심부에 서 있던 부친을 두고 있으니 더욱 그런 면이 두드러질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흔히 권력자들의 자식들이 그러하듯 천둥벌거숭이로 주변 사람들을 가볍게 보는 타입은 아닌 듯했는데, 그건 지금 유진과 함께 있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유진은 이미 존 브래넌을 통해 셰넌의 성격이라든지, 태도, 그리고 주변 평판 같은 많은 것을 알아 두었다.

생각보다 셰넌은 제법 양식이 있는 사람으로, 그리 나쁜 평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다.

그녀가 유학 중이던 영국에서뿐 아니라, 중국 내에 있을 때도 비슷했다고 한다.

“금융에 관심이 많은 모양이군요?”

“네. 앞으로 중국의 미래는 금융에 달렸다고 확신하고 있으니까요. 지금까지는 우선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고, 더 많은 소비재를 생산하는 것이 가장 우선순위였어요. 하지만 이제 중국 사회와 경제가 고도화되면서 그 무게 중심은 금융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지요.”

셰넌 리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중국의 미래에 대한 평을 말했다.

고도화된 국가의 중심이 금융으로 넘어가는 거야 늘 있어 왔던 일이다.

영국이 그랬고, 미국이 그랬고, 일본이 그랬다. 과거에 세계적인 영향력을 지닌 국가 대부분이 그러하다.

아직 한국의 금융 산업이 그러한 수준에 다다르지 못하는 것은, 한국의 국제적 위치가 거기에 미치지 못함을 의미한다.

“확실히 그렇지요. 다행이로군요. 중국에 셰넌 같은 총명한 인재들이 그렇게 미래를 대비하고 있어서.”

“네. 지금도 수많은 인재가 미국과 영국에서 좋은 배움을 얻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전 절대 그들에게 뒤처지고 싶지 않고요.”

상당히 열성적인 사람이다. 자신의 생각이 명확하고, 자만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진은 합격점을 주고 싶었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요청해요. 가능하다면 최선을 다해 도움을 드리지요.”

물론 도움에 공짜는 없다. 셰넌을 도와주는 대가는 중국으로부터 직접 받아 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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