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화 부동산 쇼핑
사실 예 주석으로부터는 이미 적절한 대가를 받아 내었다고 해도 좋을지 모른다.
유진이 탐을 내고 있던 미국 내 몇몇 부동산을 생각보다 헐한 가격으로 구매할 기회를 얻었으니까.
지난 2010년대 중후반까지 중국의 보험사와 대기업들은 한창 뉴욕을 비롯한 미국 전역에서 적지 않은 부동산을 사들였다.
플라자 호텔과 더불어 뉴욕의 대표적인 럭셔리 호텔로 꼽히는 맨해튼의 월도프 아스토리아 호텔을 비롯해 인터콘티넨탈 시카고, 포시즌스 워싱턴DC 등 미국 전역에 걸쳐 역사적인 건물들을 잔뜩 구입한 것도 이 시기이다.
하지만 미중 무역 분쟁이 점화되고 나자, 미국 정부와 중국 정부 모두 중국 기업들의 미국 내 부동산 매수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행정부로 들어서며 중국의 대기업들은 미국 내 대형 부동산 매수를 점차 줄여 갔고, 더 나아가 매수했던 부동산들까지 매각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여러 사태를 겪으며 중국 대기업들이 생각한 부동산 가격과 시장과의 괴리가 발생한 나머지 쉽게 팔리지 않는 상황이었는데, 그럼에도 중국 정부는 각 대기업들에게 압력을 가해 이런 부동산들을 빨리 처분할 것을 종용했다.
미국과의 무역 전쟁을 끝내고 화해 분위기로 돌아섰기 때문에 그전과는 상황이 달라졌지만, 중국 내 금융 시장의 개방 등으로 중국 기업들의 충분한 자본 확충이 필요하다는 것이 정부 측의 입장이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대거 매물로 나온 호텔을 비롯한 대형 빌딩 중 상당수를 매수하겠다고 나선 것이 유진이 운영하는 몇몇 부동산 관련 자산운용사(Real Estate Funds)들이다.
중국 정부의 매각 압박을 받고 있던 대기업들과 보험사들은 시장 가격보다 더 낮은 가격에 빠르게 부동산들을 넘겼다.
사실 여기까지 이어진 흐름은 전부 사전에 합의된 일이다.
이번 거래를 통해 유진은 미국 내 수십 개에 달하는 알짜배기 대형 부동산을 헐값에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비록 부동산의 하락기라고 하지만 정권의 압력이 없었다면 결코 쉽게 손에 넣을 수 없던 물건들이라 유진은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대개의 부동산 파이낸싱은 물건 가격의 아주 일부, 그러니까 대략 10%에서 20%만 갖고 나머지는 은행의 대출로 충당한다.
유진 정도의 신용이라면 겨우 백억 달러의 자금으로 천억대의 부동산을 취득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소리다.
지금처럼 저점에서 매수하고 잠깐의 침체기를 견뎌 내고 나면 금세 투자한 돈의 몇 배쯤 되는 수익을 올릴 수 있다.
물론 예 주석이 단순히 자신의 딸을 보살펴달라는 의미에서 그런 큰 이익을 보게 해 준 것은 아니다.
이를 통해 유진의 F0 펀드에 자신의 자금을 더욱 많이 운용해 달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장시웨이를 통해 유진이 운용 중인 중국 지도부의 비자금은 천억 달러를 상회하고 있다.
중국에서 유진이 빼먹을 수 있는 게 많은 만큼 F0 펀드의 규모도 커질 것이고, 그를 통해 비자금을 늘려 주니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기도 하다.
“여기 콘도에 묵으실 곳을 마련해 놓았어요. 고향에 있을 때보다야 못하겠지만, 누추하다고 생각 말고 당분간 편히 지내도록 해요.”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중국 최고 지도자의 영애를 위해 준비한 곳이 그리 허술할 리는 없다.
유진이 보유하고 있는 콘도 중에서도 제일 넓고 화려한 곳이다.
정말 화려한 장식만으로 따지자면 이제 겨우 발전을 시작하는 중국의 영빈관이 세계 경제의 수도인 뉴욕에서도 최고급으로 알려진 플라자 호텔의 인테리어를 따라올 수는 없다.
최고 지도자의 영애가 아니라 일국의 국왕이나 여왕들조차 만족할 만큼 공을 들인 멋진 방이니 충분히 만족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말씀하셨던 것과는 전혀 다르던데요? 세상에, 그렇게 멋진 저택은 처음이에요. 어느 한 곳 정성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더군요. 혹시 제 취향을 알고 그렇게 꾸며 주신 건 아니시죠?”
아니나 다를까, 자기가 머물 집을 보고 난 셰넌은 그날 저녁 식사를 위해 찾아온 자리에서 한참을 집과 인테리어에 대해 떠들었다.
“앤티크하면서도 모던한 느낌을 그렇게 동시에 구현할 수 있다니, 정말 놀랍더군요.”
“현대 디자인계의 거장인 마르셀 반더스가 특별하게 신경을 쓴 곳이라 그럴 겁니다.”
“마르셀 반더스가 직접 설계했다고요? 고전적인 아름다움과 대담하면서도 실험적인 구상을 겸비한 것이 과연 대가라는 말이 나올 만하네요.”
그녀는 콘도가 꽤 마음에 든 모양이다. 유진은 어쩌면 암스테르담에 있는 마르셀의 디자인 스튜디오가 조만간 중국으로부터 쏟아지는 오더로 일감이 넘쳐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신경 써 주신 거 정말 감사드려요. 삼촌.”
자기 주장이 똑 부러지면서도 한편으로는 꽤 붙임성이 있는 여자이다.
“사실 그렇게 화려한 곳에 살아보는 것은 처음이에요. 사실 얼마 전까지 우리 부모님이 살던 집도 그렇게까지 크고 화려하지는 않았거든요.”
셰넌은 중국의 주석에 오른 부친이 최근까지도 정부에서 제공한 소박한 저택에서 평범한 공무원으로 살아 왔다며 어린 시절부터의 이야기를 한참 떠들었다.
예 주석이 근면 검소하다는 이야기는 유진도 잘 알고 있다. 물론 그의 야망 때문에 주변의 눈길을 의식해서이기도 하겠지만, 사치와는 꽤 거리를 둔 것은 사실인 모양이다.
“그래서 런던에서도 룸메이트와 함께 기숙사 생활을 했었지요. 이런 엄청난 저택에 혼자 살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때로는 사치스러운 삶을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을 겁니다.”
“맞는 말씀이세요. 세상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겠지요. 가진 게 많은 사람은 충분히 사치를 해 주어야 그만큼 문화도 발전할 수 있는 거고요. 그래야 마르셀 같은 거장도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겠죠.”
제법 말이 잘 통하는 여자였다. 그녀가 떠드는 이야기를 듣다 보니 식사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런 콘도는 대체 얼마나 하지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무척 현실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한창 가격이 나갈 때는 1억 달러 정도에 거래가 되었지요. 요즈음은 세계적인 부동산 불황이니 그 가격에 내놓으면 아마 몇 년 동안 거래가 되지 않을 겁니다.”
“그렇겠지요. 확실히 부동산 때문에 여기저기서 문제가 많아요.”
“지금이라면 40% 정도는 디스카운트를 해야 간신히 나갈 것 같아요. 그것도 마르셀의 인테리어가 있으니까 가능한 거고요.”
“아! 아쉽네요. 단순히 인테리어라 하기에는 차라리 예술에 가까운데 말이에요.”
한국 평수로 200평에 달하는 저택에 세계적인 거장이 1,000만 달러가 넘는 비용을 들여 만든 인테리어가 들어갔다는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헐값이지만, 그걸 누군가에게 팔 생각인 것도 아니니 상관없는 일이다.
플라자 호텔의 콘도에는 셰넌에게 제공한 집처럼 유진이 보유하고 있는 빈집이 꽤 된다.
관련 계열사들이 이제 제법 많다 보니 이런저런 이유에서 헤드쿼터인 맨해튼을 방문하는 계열사 임직원의 숫자도 적지 않다.
단기 체류라면 호텔에 묵게 하고, 장기 체류라면 비어 있는 콘도를 사용하게 하려는 이유에서이다.
최근에는 그걸로도 모자란 감이 있어 바로 옆 건물인 파크레인 호텔과 다시 그 뒤쪽의 센트럴파크 호텔까지 구입해 비슷한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끝난 뒤 이자율이 올라가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미국의 부동산 경기가 사그라들자 미국에서도 대표적인 이곳 맨해튼 빌딩들 또한 과거와 비교하면 상당히 낮은 가격으로 시장에 나왔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이지만 부동산, 특히 고가의 빌딩은 대개 가격의 대부분을 은행에 빌려 영위하는 사업이기에 이자에 크게 민감할 수밖에 없다.
연 3% 수준이었던 이자가 7, 8%로 올라가면 수익율은 곤두박질치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경기가 나빠지면 공실률 또한 늘어나기 마련이니, 몇 년을 기다려 다시 가격이 오르기를 기다리기보다 한시라도 빨리 처분해 손실을 줄이려는 기업들이 속출했다.
이때를 기다리던 유진은 거느리고 있던 부동산 운영사를 통해 적절한 가격이다 싶으면 하나씩 사들였고, 뉴욕뿐 아니라 미국의 대도시 전역에서 마치 할인 매장을 휩쓰는 것처럼 아주 훌륭한 가격으로 수십억 달러짜리 빌딩들을 거두어들였다.
그중에는 지난 3년 전 고점에 팔았던 빌딩들을 다시 수십 퍼센트 낮아진 가격으로 매입한 것도 적지 않다.
뭐, 모든 투자가 그런 것이다. 누군가는 저점에서 매수해 고점에 팔고, 누군가는 반대의 길을 간다.
22년부터 시작된 고이율 랠리도 이제 끝나 가고 있었고, 다시 경기가 회복되기 시작하면 수익이 쌓일 것이다. 그리고 정점에 가까워지면 다시 재빠르게 팔아치울 계획이다.
다른 경제 분야와 마찬가지로 부동산 시장 또한 일정한 사이클을 가지고 있어 저점에 매수해 고점에 매도할 수만 있다면 엄청난 이익을 거둘 수 있다.
물론 그 저점과 고점이 어디쯤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는 맹점이 있기에 결코 쉽다고 할 수는 없다.
“중국도 부동산 문제로 아주 골치가 아파요. 이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 경제 성장에 꽤 걸림돌이 될 것 같아요.”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이지요. 부동산의 호황이 경제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도를 지나치면 엄청난 문제를 유발하고 말지요.”
“맞아요. 미국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에요. 지난 2008년 모기지 사태만 봐도 엄청났잖아요?”
“하마터면 미국 경제가 무너질 뻔했었죠.”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사실 그대로이다. 그리고 미국 경제의 문제는 세계 전체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친다.
“그런 면에서 중국 출신 부자들이 해외에서 부동산 쇼핑을 하고 다닌 것은 어느 정도 규제가 필요했다고 생각해요.”
자국 정부나 국민들의 실수를 거론하는 것에 조금도 주저함이 없는 것을 보면, 외국에서 오래 공부한 것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그렇죠. 2010년대 중국 사람들의 부동산 투자 열기가 대단하기는 했었죠.”
중국의 대기업들이 미국의 대형 빌딩들을 쇼핑하는 동안, 일반 국민들은 미국의 주택 시장을 흔들어 놓기 바빴다.
사실 미국뿐 아니라 캐나다나 호주, 그리고 더 나아가 한국이나 유럽의 어지간한 대도시는 물론이고 시골 지역까지 중국 부호들의 부동산 싹쓸이 덕분에 전 세계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었다.
중국인들의 땅에 대한 사랑은 자국의 아파트에 만족하지 못하고, 저 멀리 캐나다의 밴쿠버, 스웨덴의 코펜하겐에 이르기까지 부동산 버블을 만들어 놓았다.
물론 이를 전부 중국인 탓으로 돌리는 것은 억울할지도 모른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제적인 초저금리 기조였으니까.
중국인들은 어차피 생겨날 부동산 폭등세에 일부 기여했을 뿐이다.
그리고 초저금리가 초고금리로 바뀌면서 부동산에 투자한 사람들은 모두 비명을 지르는 중이다.
“그렇게 세계 각국에서 부동산 가격을 올려 놓고, 지금에 와서는 부동산 시장의 하락으로 손해를 보고 매물을 내놓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에요. 이번에는 다들 교훈을 얻었으면 좋겠어요.”
셰넌은 그렇게 밝은 면을 억지로 찾아 말하고 있지만, 그녀의 말처럼 과거의 실패로부터 제대로 된 교훈을 얻는 사람은 극히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2008년 모기지 사태를 경험하고도 사람들이 겨우 10년 만에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