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314화 (314/363)

314화 송년회

“참 많은 일이 있던 한 해였네.”

유성이 CNN 뉴스에서 나오는 이번 한 해 동안의 이슈를 보며 말했다.

올해의 마지막 날, 유진의 저택에서는 가장 친한 사람들이 모여 만찬을 즐기고, 함께 거실에서 TV를 보며 지난 1년을 회상하고 있었다.

“그러네요. 참 많은 일이 있었죠. 한국과 러시아 대통령이 바뀐 것부터 중국에서도 많은 일이 있었고, 무엇보다 우리나라 대통령도 재선에 성공했고 말이지요.”

모니카도 이날은 평소와 달리 편하게 모두와 함께 맥주병을 비우며 이야기에 끼어 있었다.

적어도 한 해의 마지막 날은 유진의 수발을 드는 이가 아니라 친구로서 함께 작은 파티를 즐기는 것은 이미 오래된 전통이었다.

“역시 그중에서도 미국 사람들에게는 대통령의 재선이 가장 큰 이슈겠지요?”

셰넌이 물었다. 그녀도 이미 유진의 측근들과 친해졌기 때문에 여기서 시사에 가장 밝은 모니카에게 이런저런 문제를 서슴없이 묻고 있었다.

“대통령의 재선이야 처음부터 크게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니, 그보다는 러시아의 대통령이 쿠바로 망명한 일을 가장 큰 이슈로 꼽을 수 있을 거예요.”

모니카가 잠시 생각해 보고는 대답해 주었다.

“한국에서 벌어진 소동은 러시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네.”

유성이 끼어들며 한마디 했다. 물론 한국 사람들에게야 대통령이 건강상의 문제로 사임하고, 유진이 한국에 대한 투자를 철회한다는 소문이 돌며 경제가 흔들렸던 것.

그리고 새로운 대통령이 미국을 다녀오며 유진과 장시간 회동했다는 소식에 다시 주가가 회복된 일이 가장 큰 일이었겠지만, 세계적으로 보면 중국의 금융 시장 개방이나 러시아의 오랜 통치자가 물러났다는 것만큼의 파괴력을 지니지는 않았다.

“러시아 경제가 조만간 정상화될 수 있을까요?”

셰넌이 이번에는 유진에게 물었다. 이 자리에는 세계 제일의 경제 전문가라 불러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이 세 명이나 된다. 그리고 그중 유진이야말로 앞날을 가장 정확하게 내다볼 수 있는 사람이다.

“그건 누구도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지요.”

유진은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지난 삶에서 드미트리 알렉산드로비치는 소비에트 붕괴 이후 복잡해진 러시아의 재계와 행정부의 부패를 개혁하기 위해 적지 않은 힘을 쏟았고, 나름의 성과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소비에트 공산주의 시절부터 축적되어 혼탁하기 이를 데 없는 러시아의 부패를 완전히 몰아내는 것은 겨우 한두 사람의 의지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일이었다.

“하기는 보통 복잡한 문제가 아니니까요.”

딱히 대단한 대답을 듣기 원한 것은 아닌 듯, 셰넌은 유진의 말에 가볍게 수긍했다.

“적어도 유럽이나 미국과의 분쟁이 사그라든 것만으로도 러시아 앞날에 적지 않은 희망이 보이고 있어요.”

최근 들어 셰넌과 적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요안나가 대신 대답했다.

셰넌은 뉴욕대에서 공부하는 시간보다도 유진의 투자회사 운영진들과 보내는 시간이 훨씬 더 많았다. 사실 그쪽이 훨씬 더 배울 것이 많을 것이다.

뉴욕대에도 월스트리트의 쟁쟁한 전문가들이 교수진으로 실전적인 내용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하지만, 투자회사를 직접 운영하는 사람만 할 수는 없다.

요안나나 윌리엄, 데이비드 같은 경영진으로서도 셰넌과 친분을 쌓는 것은 나쁘지 않은 일이다.

어떤 식으로든 미국의 경제는 중국의 경제 상황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으니, 중국 최상층부 권력자의 영애와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면 조금이나마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가스프롬의 주가가 전쟁 직후보다 두 배, 그리고 선거 직전과 비교하면 60%나 올랐어요. 러시아의 천연자원이 유럽에 문제없이 공급될 수 있게 되었다는 이유 때문이죠. 물론 앞으로 러시아 경제 재건을 위해서는 산더미처럼 많은 일이 쌓여 있지만, 우선 당장 급한 것은 역시 석유와 가스를 파는 거니까요.”

전쟁이 끝나고 새로운 대통령이 경제를 개혁한다 해서 러시아 경제의 천연자원에 대한 의존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국토와 가장 많은 천연자원, 세계 절반을 먹여 살릴 만큼 충분한 농경지가 있음에도 러시아 경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정체되어 왔다.

같은 기간 동안 중국은 수십 개의 글로벌 기업을 성장시켰고, 지금은 미국에 비견될 정도의 경제력을 자랑하게 된 것에 비한다면 러시아 경제는 지난 30여 년 동안 전혀 발전하지 못했다고 보아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오히려 소비에트 시절보다도 추락했다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1억이 훌쩍 넘어가는 인구를 지니고, 여전히 동유럽과 주변 수십 개 국가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러시아의 국력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다.

어쩌면 그러한 풍부한 자연환경 때문에 더더욱 제대로 된 발전이 이루어지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좀 더 파고들어 가면 공산주의 시절부터 관행적으로 내려온 부패가 가장 큰 원인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건, 러시아가 지닌 잠재력에 비해 현 상황은 그야말로 시궁창에 가깝다는 평을 내리기에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었고, 유진에겐 더할 나위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대체로 혼란기에는 돈이 있는 사람, 권력과 가까운 사람, 더불어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더 큰 이득을 얻게 되는 법이다. 유진은 그 세 가지 모두에 해당된다.

새로운 러시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유진은 직접 모스크바로 날아가 대통령과 대담 자리를 만들고, 10년 동안 2조 달러에 달하는 투자를 진행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왔다.

유진은 단순히 러시아 지하자원을 개발하는 부분이 아니라, 러시아 국민의 실질적인 생활에 도움이 될 다양한 기업에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당연히 러시아 국민들은 환호했다. 그동안 서방 세계와 좋지 못한 관계 탓에 고통스러운 삶을 이어 오던 서민들은 세계 제일의 자본가와 손을 잡은 러시아 대통령에게 환호성을 보냈다.

1억 5,000만의 거대한 시장이 활성화되면 10년 내로 경제 규모 5위 안에 들어서는 것도 그리 어렵지만은 않을 거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지만, 역시 가장 큰 문제는 러시아의 뿌리 깊은 부패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다.

물론 유진은 거기에는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 그러나 러시아 경제가 지금까지 보다는 훨씬 더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데에는 크게 이견이 없었다.

아마 약속한 10년이 지나기 전에 유진은 자신이 투자한 돈을 전부 뽑아낼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벌써 청신호가 나오고 있다. 유진의 방문 이후로 러시아 기업들의 주가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다.

유진으로서 가장 기꺼운 것은 스베르방크의 주가가 슬슬 정상화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러시아 최대의 상업 은행이며, 유럽에서 세 번째로 큰 스베르방크는 러시아 국민의 90% 가까이가 사용하고 있는 국영은행이다.

러시아 국민뿐 아니라 러시아의 기업들 대부분도 스베르방크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있어, 러시아 경제계에 있어 스베르방크의 영향력은 막대하다.

그런 만큼 러시아 모든 기업 중에서 에너지 부분의 가스프롬에 이어 두 번째 순위를 고수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지난 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서방 세계와 러시아 사이의 갈등 때문에 스베르방크의 주가는 무려 99%나 떨어져 버렸다.

물론 그 기회를 놓칠 유진이 아니었고, 시장에 나오는 스베르방크의 주식은 최대한 매수하고 드미트리가 대통령이 된 이후로는 스베르방크에 거액을 투자하며 다시 적지 않은 지분을 가져왔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러시아 정부에 이어 스베르방크의 두 번째 주주가 될 수 있었다.

더군다나 드미트리와는 경제적 이익을 공유하고 있는 만큼 실질적으로는 스베르방크의 운영에 대해 전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위치이기도 하다.

그런 상황에서 러시아 경제가 부흥하기 시작해 스베르방크의 주가가 다시 원래의 주가에 근접해 가고 있다.

이 한 개의 은행에서 얻어 낸 수익만으로도 지금껏 유진이 드미트리에게 투자한 비용의 수십 배를 뽑고도 남을 정도이다.

물론 이제는 쿠바로 퇴장해 버린 옛 대통령에게 제공한 편의에 대한 비용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중국 경제는 순항 중인 모양이에요.”

부친의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고 며칠간 모스크바에 머물다가 누가 부르기라도 한 듯 냉큼 뉴욕으로 돌아온 옐리자베타 알렉산드로바는 러시아 대신 중국 쪽으로 포커스를 돌렸다.

러시아에 관한 이야기가 길어지면 왠지 부친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이 나올까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올 한 해 동안 외국인에 의한 직접 투자액이 8,500억 달러에 달한다고 하더군요. 사상 최고액이에요. 덕분에 중국 기업들의 주가가 다시 전고점을 돌파하고 있어요.”

“다행이로군요.”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에요. 중국 경제가 결국은 뉴욕의 금융가에 예속되고 말 거라는 주장도 적지 않으니까요.”

유진의 짧은 답변에 이어서 셰넌이 말을 보탰다. 그녀로서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주제일 것이다.

“확실히 그런 면은 있겠어요.”

“딱히 틀린 말도 아니고요. 그런 돈이 들어와 중국의 기업들 주가를 올리고 있으니, 일반 서민들이 보기에는 어쩐지 자국 기업을 빼앗기는 기분이 들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중국 경제를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활성화할 수 있지 않겠어요? 더군다나 뉴욕의 금융가라고 해도 그 자금의 원천이 전부 미국인 것도 아니고요. 사실 월스트리트에서 움직이는 자본의 상당수는 미국 이외에서 기인한 것이라고요. 지금 시대에 자본의 국적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에요.”

“그건 어디까지나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의 일이지요. 사람은 대부분 그렇게 이성적이지 못하다고요.”

셰넌은 조금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옐리자베타와 셰넌의 대화처럼 현대 사회에서 자국 기업, 자국 금융의 의미는 굉장히 퇴색되어 버렸다.

어느 나라이건 주식시장에 상장된 대형 기업의 지분은 상당 부분 외국계 금융기관이나 투자자의 몫이다. 한국이라고 다르지 않고, 일본이라고 다르지 않다.

그 때문에 기업이나 금융의 국적을 논하는 것보단 국내에 들어온 돈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살피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그렇지만 셰넌의 말처럼 사람들은 그렇게 이성적으로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중국 인민들 사이에서는 벌써 이러다가 중국인이 이룩한 위대한 기업들을 전부 미국인들에게 빼앗기는 것이 아니냐는 불만이 머리를 들고 있었다.

미국과의 무역 전쟁에서 원하는 것을 얻어 내지 못하고 결국 금융 시장을 개방해야 했던 현 주석은 그 문제로 인해 무척 골치가 아픈 듯했다.

중국은 틀림없이 일당 독재 국가이지만, 의외로 수뇌부 층은 저변 인민들의 민심에 적지 않은 눈치를 보고 있다.

공산당 내부적으로는 다양한 파벌이 존재하고, 그들이 다양한 통로를 통해 여론전을 벌이고 있기에 최대한 약점은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

그나마 현 주석의 집권 초반이라 아직 직접적인 공격은 없지만, 민심이 계속해서 부글거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셰넌의 불편한 표정은 그녀가 부친의 그런 상황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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