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6화 새로운 먹거리
“그나마 한국이니까 이렇지. 다른 나라는 말도 못할 거야. 그 자동화 관련만 해도 우리나라가 제일 빠르게 바뀌고 있고, 관련 기술도 제일 많이 발전하고 있잖아?”
“그렇지. 우리 회사 자동화 사업부도 결국은 해외 진출에 목을 매고 있으니까.”
201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무인 편의점과 식당의 로봇 서버들, 그리고 로봇 주방장들은 지난 몇 년 동안 빠르게 발전해 이제 식당과 일반 점포에서 일자리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편의점에 지키는 사람이 없는 것은 당연할 정도이고, 식당에서도 자리에 앉아 메뉴를 주문하고 나면 주방에서 쉐프 로봇이 요리를 하고, 로봇 서버가 음식을 나른다.
식사가 끝나면 스마트폰으로 결제를 하고, 다시 로봇 서버가 식탁을 치우는 모습은 이젠 더 이상 신기한 구경거리가 아니다. 전부 인건비를 절감하기 위한 노력일 뿐이다.
편의점이라면 한 명의 직원만 쓴다 해도 한 달에 최하 800만 원에 가까운 인건비가 소요되지만, 무인 편의점은 하루 두어 시간 정도의 인력이 상품 배치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식당의 경우는 더욱 극명하다. 카운터에 한 명, 홀에 한 명, 그리고 주방장까지 세 명이 필요한 식당이 단 한 명의 매니저만으로 돌아가고 있다. 여기서 절약되는 인건비가 매달 수천만 원이다.
처음 시스템을 구축하는 비용이 적지 않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람을 고용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저렴한 것은 틀림없다.
더군다나 임대 형식이라면 인건비의 1/3에서 많게는 1/10 수준으로 운영이 가능하다.
인건비의 절감은 곧 판매 가격의 하락으로 이어진다. 로봇과 키오스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식당은 주변 경쟁 식당과 비교해 메뉴당 수천 원 저렴한 가격에 똑같은 음식을 제공할 수 있다.
아니, 항상 동일한 수준의 음식을 만들어 내는 로봇 쉐프는 심지어 미슐랭 스타 주방장의 솜씨까지 흉내 낼 수 있으니, 어지간한 식당보다 더욱 훌륭한 음식을 제공한다.
물론 모든 음식마다 정성을 다하는 인간 주방장에 비한다면 여전히 미흡한 점은 있지만, 대개의 식당 주방장이 그렇게까지 뛰어난 실력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면 로봇 쉐프의 비교 우위는 명확하다.
더군다나 사람을 상대하는 것에서 오는 피로를 격을 필요도 없기에, 종업원을 고용하는 것보다 로봇을 구매하거나 임대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장은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래도 한국으로선 잘된 일이지. 이 시장을 선점해서 수출도 많이 하잖아.”
“그래. 제일하고 다산이 다 먹고 있지.”
“다산이 제일 앞서가고 있기는 하지만, 중견 기업도 적지 않아. 생각보다 시장이 크다고. 앞으로 적어도 10년 동안은 지금의 자동차 시장 몇 배로 성장할 거라고 하더라.”
“다행이네. 최소한 10년 동안은 한국의 먹거리로 삼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러고 보면 강 회장님이 참 선견지명이 있어.”
기범이 불현듯 유진을 거론했다.
“뭐. 선견지명 때문인지, 필요에 따른 것이었는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그렇지. 백만 명이 넘게 해외로 빠져 주었으니 실업 문제가 그렇게 크게 거론되지 않는 거니까.”
“단순히 해외의 일자리를 만들어 준 것만 말하는 게 아냐. 너, 우리 회사 로보틱스 사업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아?”
“어떻게?”
“이것도 강 회장님이 추천한 거야.”
“어? 진짜?”
석찬은 눈을 빛내며 물었다. 드디어 뭔가 하나 나오려는 모양이다.
딱히 어떤 주제를 정해 친구를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요 며칠 쓸 만한 기삿거리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다가 제일 그룹에 다니는 친구라면 그래도 하나 쓸 만한 이야기를 해 주지 않을까 해서 찾아온 것이다.
그런데 강 회장에 관련된 이야기라면, 그것도 사람들이 잘 모르는 숨겨진 일화 같은 거라면 대박이다.
“어. 벌써 7년 전인가보다. 강 회장님께서 아주 적극적으로 권유하셨다더라. 미래 먹거리를 찾으려면 이쪽으로 투자를 해야 한다고.”
“오! 근데 그건 권유나 추천이 아니잖아? 강 회장님이 실질적으로 제일 그룹의 대주주 아니야?”
“뭐, 그런 셈이지. 여하튼 그래서 이쪽으로 투자를 엄청나게 했어. 그리고 한 5년 동안은 돈을 꼴아 박았지. 사실 2년 전만 해도 무인 식당이나 편의점이 그저 개념 수준이었지, 장사가 크게 되지는 않았잖아?”
기범도 왠지 신이 나서 자신이 알고 있는 비사를 열심히 꺼내 놓았다.
이미 분위기는 거의 인터뷰에 가깝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지.”
그리고 석찬은 기자의 본분에 맞게 적당하게 추임새를 넣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분야는 보통 스타트업에서 추진하고, 대기업은 뒤늦게 발을 들여놓는 게 일반적이야. 스타트업이야 잘 안 되면 해산하면 그만이지만, 대기업은 어디 그래? 손해가 쌓이면 누군가가 책임지고 옷을 벗어야 하는데. 게다가 위에서 결정한 거라고 하면 주주들이 반발하고.”
“대기업이 그렇지. 그런 거 치고 5년을 버틴 거면 잘한 거네.”
“그러니까 말이야. 그게 다 강 회장님이 뒷배가 되니 가능했던 거지. 필요한 비용은 전부 추가 투자를 해 주셨거든.”
“아하!”
석찬은 신이 났다. 이 정도라면 포털 사이트 메인에 걸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리고 다산 쪽도 마찬가지야.”
“그쪽은 원래 자동화에 투자를 많이 하지 않았어?”
“그렇긴 한데, 강 회장님이 좀 더 디테일한 지시를 내린 모양이더라고. 콕 집어서 식당이나 소매점에 관련된 분야에 투자하라고.”
“대체 그 사람은 어디까지 내다보고 있는 거야?”
유진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러니까 말이야. 우리 쪽 계산으로 이 분야를 선점하면 스마트폰이나 반도체만큼 쏠쏠한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거라더라.”
“굉장한데?”
“그렇지. 하나의 사업 분야가 적어도 10년 동안은 선도자가 수익을 독식하는 법이니까. 앞으로 10년 동안 한국이 이 분야에서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거야.”
“휘유! 그런 사람을 그렇게 매도해 대다니…….”
석찬은 지금도 유진에 대한 비난을 일삼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러게. 그 한 사람 덕분에 지금 얼마나 다행인 상황인데 말이야.”
“그러니까 하는 말이지.”
“너니까 하는 말인데, 진짜 할 말이 많아. 내가 이쪽에 종사하다 보니까 보고 듣는 게 많잖아.”
“그래? 또 뭐가 있어?”
이날 친구를 찾아온 것이 아주 좋은 선택이었음을 다시 한번 실감하며 석찬이 물었다.
“요즘 우리 쪽에서 수익을 올리는 사업 분야 상당수가 강 회장님의 권유…… 지시로 시작한 거고, 또 우리 제안 중에 강 회장님이 잘라 버린 건 또 기가 막히게 망해 나가더라고.”
“호오. 그러고 보면 강 회장님 전문이 그런 거 아니야? 유망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거 말이야. 그냥 주식이나 금융 투자보다 요즈음은 그쪽의 수익이 훨씬 좋다고 하던데.”
“이젠 우리 쪽에서 뭔가 새로운 기획이 있으면 우선 뉴욕으로 보내서 확인을 받는 게 절차라니까?”
“굉장하네.”
“앞으로 몇 년만 있으면 제일이든 다산이든 MAGA나 FAANG보다 못하다는 소리는 듣지 않을 거야.”
최고의 시가총액을 자랑하는 4대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 아마존닷컴을 가리키는 MAGA.
그리고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닷컴, 넷플릭스, 구글을 일컫는 FAANG은 십여 년 동안 세계 제일의 첨단 기업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사용되어 왔다.
기범은 그 자리에 제일 그룹과 다산 그룹이 나란히 할 것을 예언하고 있었다.
“그래. 나도 그런 날이 곧 올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
겨우 대리에 불과한 기범의 말이지만, 석찬이 그런 말을 결코 과장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그도 최근의 제일과 다산의 성장을 상세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일본 쪽 반응이야.”
기범은 내친김에 또 다른 화제를 꺼냈다.
“일본은 왜?”
“로봇 서버나 로봇 쉐프를 만드는 데 필요한 원천 기술 중 상당수가 일본에서 나왔잖아.”
“그렇지.”
“그런데 그쪽은 한국에 비해서 이런 소비자 대상의 무인화에 늦는 편이거든.”
“하긴, 거기는 신용 카드도 전부 보급이 안 되었으니까.”
석찬이 한국과 비교하면 놀라울 정도로 기존 방식을 고수하는 일본의 문화를 떠올리며 말했다.
“덕분에 관련 시장 형성이 늦어지고 있어서 기술도 그렇게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 못하는 모양이야.”
“아무래도 산업이란 게 시장이 뒷받침되어야 하니까.”
“다들 이쪽 분야가 앞으로 유망하다는 것은 알고 있는데, 내수가 받쳐 주질 않으니 투자를 하기 어려운 점이 많아. 일본 기업들도 빨리 뛰어들고 싶지만, 위험성이 너무 높잖아.”
“그런 걸 생각하면 한국은 그나마 다행이라는 건가?”
“그런 셈이지. 네 말대로 빠르게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지만, 기술 발전 덕분에 생겨난 관련 시장의 매출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어. 근데 그런 원천 기술을 지니고도 활용을 못 하고 있는 일본에선 어떻겠어?”
그야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답이 나오는 문제였다.
“질투 나겠네. 엄청나게.”
“당연하지. 우리 쪽에서도 키엔스에서 정밀부품을 수입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많이 팔아 준다고 좋아하더니, 최근 한두 해 동안은 꽤 골치 아프게 굴더래.”
“그래? 팔아 주는데도?”
“어. 괜히 이런저런 핑계를 대서 납기 일정을 연장하고, 오더 수량 많다고 안 받아 준다고 뻗대고 말이야. 딱 보니까 한국에서 이쪽으로 발전해서 시장을 먹는 게 눈에 보여서 그러는 거 같더래. 그렇게라도 뭔가 좀 브레이크를 걸려는 모양이야. 그동안 자기들도 준비해서 시장 점유율을 높이겠다고.”
“그거 좀 웃기지 않아? 장사를 그렇게 하는 법이 어디 있어?”
어찌 보면 유치한 대응이었기에 헛웃음이 나왔다.
“원래 이 분야는 걔네가 갑이야. 키엔스나 화낙 같은 일본 정밀 공업 업체들은 물건을 팔면서도 갑질을 한다니까. 사실 그쪽이 아니면 대안이 없기도 하고.”
“나 참. 그렇게 대단한가?”
“어. 공장 자동화 같은 분야는 화낙 없으면 안 돌아가고, 정밀 제어, 계측은 키엔스가 탑이니까. 그렇다고 저렴한 중국산을 쓸 수도 없고, 한국은 그쪽으로는 많이 모자라고. 다들 울며 겨자 먹기로 비위 맞춰 가며 사다 쓰는 거지.”
“그래서야 결국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다 일본이 버는 거 아니야? 그 스마트폰이나 반도체도 그랬잖아.”
“그래도 이쪽 분야는 훨씬 나아. 산업의 처음부터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게 많으니까. 정밀 계측이나 부품은 어쩔 수 없지만.”
기범이 그나마 긍정적인 점을 말해 주었지만, 석찬이 보기엔 사실 별다를 것 없어 보였다.
“그게 핵심인 거잖아.”
“그렇긴 한데, 일이 또 요상하게 흘러가더라고.”
“요상하게?”
“어. 그걸로 열 받은 우리 팀장님이 참다못해 SS파트너스에 일러바쳤나 봐.”
“SS파트너스에는 왜? 그쪽이 상사도 아니고.”
“상사가 아닌데. 뭐, 이리저리 얽힌 게 많다 보니 비슷하게 역할을 하는 부분도 있어.”
“하기는. 그쪽도 대주주니까.”
석찬도 사회인으로서 이해 못 하는 바가 아니었기에 금세 이해하고 넘어갔다.
“그렇지. 물주에다 대주주고, 강 회장님의 대리인이기도 하고 말이야. 여하튼 그쪽을 통해 키엔스에 압력이라도 넣어 줄 수 있느냐는 거였지.”
“그게 되나? 강 회장님이 대단하기는 해도, 키엔스는 일본 기업인데.”
“근데 그게 되더라고.”
“그게 돼? 어떻게?”
“이건 비밀인데…… 음. 이건 기사에 쓰지 마라.”
기범도 이미 친구가 자신에게 계속 물어 오는 모습에서 뭔가 기삿거리로 삼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어? 어. 흐흐. 알았어.”
석찬은 조금 쑥스럽게 대답했다. 어차피 내심을 들켰으니 부정하기보다 오히려 이대로 밀고 나가기로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