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7화 유행과 규모의 경제
“알고 보니까 키엔스 쪽도 대주주이신 것 같더라.”
“SS파트너스가?”
“아니지. 강 회장님 말이야.”
“아! 그렇겠지.”
“최대주주는 아닌데, 경영에 참여하고,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경영자를 바꿀 수도 있을 정도라고 하더라. 근데 이건 확실한 건 아니니까 그런 줄만 알아.”
“어? 어어……. 그래서?”
괜히 뜨끔한 석찬이 말을 흐리며 다음 이야기를 재촉했다.
“뉴욕에서 키엔스로 뭔가 말이 갔던 모양이야. 우리 부장 말로는 계속 그런 식이라면 주주총회 열어서 대표부터 바꿔 버린다는 말도 있었던 것 같다네.”
“히야!”
“정확한 내용이야 알 수 없지만, 여하튼 그러고 나서는 태도가 확 바뀌었어. 우리 쪽 오더에 딴지 거는 일도 없고 말이야. 주문하면 하이! 하이! 그러고, 날짜 한 번 어기지 않는다더라.”
“와! 근데 이거 정말 기사로 실으면 안 돼?”
이거야말로 대박 기사 감이었기에, 석찬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물었다.
“미쳤어? 누굴 잡으려고?”
“어, 그래…… 이건 뺄게.”
“여하튼 키엔스뿐 아니고, 화낙이나 에비라나 그쪽 분야에 있는 기업들은 전부 회장님 손이 닿아 있나 보더라고.”
“화낙도? 에비라도?”
기범이 거론한 기업들은 하나 같이 일본 산업계의 근본이 되는 정밀 장비와 부품 따위를 생산하는 기업들이다.
유진은 이미 투자 초기부터 이런 일본의 부품, 정밀기계 제작업체들의 지분을 꾸준하게 매수해 왔다.
지난 10여 년 동안 경기의 부침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들이기만 해 왔던 덕분에 지금에 이르러서는 기범의 말처럼 경영권을 흔들 수 있을 만큼의 지분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뒤편에는 일본 정계의 떠오르는 신성으로 주목받고 있는 후지타 유아야 등 정계 인사들을 통해 일본의 금융권에 대한 압박을 넣어 어렵사리 손에 넣은 기업들도 존재했다.
그 누구도 모르는 사이 일본 산업계의 중추 기업들이 유진에게 넘어오고 만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강 회장님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거지.”
“흐음. 그 정도였구나.”
“우리 쪽 분석으로는 세계적인 기업 순위 100위권에 드는 기업 중에 강 회장님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어.”
“뭐? 정말이야?”
“어. 지금까지 그 어떤 단체나 정부도 그 정도로 큰 영향력을 지닌 적은 없다고 하더라.”
“그런 사람을 한국에서 꺼지라고 했던 거야?”
석찬은 지난해 말 한국을 휩쓸었던 그 기이한 열풍을 떠올렸다.
물론 갑작스럽게 다가온 선거에 의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미친 거지. 그 사람이 정말로 화를 내면 한국 경제는 그야말로 폭망했을걸? 한국이 문제야? 일본이나 중국이라고 해도 무사하기 어려울 정도인데. 대체 무슨 배짱으로 그런 말들을 서슴없이 했는지 모른다니까.”
“웃기는 일이지. 그래서 망해 나간 그룹이 좀 되잖아?”
선거가 끝나고 유진에게 거침없는 비난을 퍼부었던 몇몇 언론사와 그 배후에 있던 대기업 집단들이 무너졌다.
당장 검찰과 세무서에서 작정하고 달려들어 그룹과 언론사의 비리를 캐냈고, 사람들은 불매 운동을 벌였다.
기업집단 순위 10위권에 들어 있던 두 개의 그룹이 분해되었고, 하나는 반 토막이 나 버렸다.
가장 비판적이던 언론사 다섯 개는 포탈에서 퇴출, 이후 경영난을 견디지 못한 언론사 세 개는 부도를 냈고, 두 개는 다른 언론사에 흡수되어 버렸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부도난 세 개 언론사 출신 기자들은 다른 언론사로 이직도 어려운 듯했다.
선거 이후 겨우 1년도 지나지 않는 사이 벌어진 일이다.
“그걸로 끝난 걸 다행으로 알아야 해. 만약에 강 회장이 정말 한국을 버렸다면. 난 솔직히 생각하기도 끔찍하다.”
“그거야 다들 비슷한 심정이지.”
2025년 상반기로 들어서며 주가는 다시 원상복구 되었다.
물론 그 와중에 유진이 다시 엄청난 수익을 올린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여하튼 그래서 지금은 일본에서 부품이나 기계 수입에 큰 문제가 없어.”
“정말 배 아프겠네.”
“당연하지. 정밀기계, 로봇 쪽은 그쪽이 꽉 잡고 있으니 새로운 시장이 커지면 자기들 먹거리도 커지는 건데, 그걸 눈앞에 두고 구경만 하는 형편 아니야.”
“그러게.”
“게다가 그쪽에서 구경만 하는 동안 우리는 이만큼 앞서가고 있지. 한국 시장에서 성공한 솔루션을 세계 시장에 내다 팔면 지금까지의 손해는 2년이면 회복한다고.”
“아직 크게 이익은 없다는 말이지?”
“당장의 이익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
8, 90년대까지 한국의 대기업들이 성장해 온 데에는 그렇게 소위 기업주의 과감한 배팅이 맞아 들어간 까닭도 있다.
몇 년 동안의 손해를 감수하고 시장의 규모를 키우는 데 집중해서 이후 거둬들이는 수익으로 손실을 만회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한국의 대기업 집단들이 마치 하나의 기업처럼 협력하고 경쟁하며 시장의 크기를 키우고 있었다. 그 배경에 유진이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성공이 중요해. 그리고 지금까지의 성적은 충분히 합격점을 줄 정도이고.”
몇 년 사이 한국의 요식업계에 불어닥친 로봇화 열풍으로, 십만 곳을 넘어가는 로봇 쉐프와 로봇 서버에 의해 운영되는 식당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중이다.
그 어떤 나라보다 유행에 민감한 한국인지라, 그런 식당들이 무척 인기를 끌고 있는 덕분이다.
만일 일본이나 유럽이었다면 처음부터 이 정도로 센 바람이 불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과 비슷하게 유행에 민감한 중국은 아직은 로봇의 운영비가 인건비를 대처할 만한 수준은 아니기에, 그저 눈요깃거리로 대도시에서 조금 유행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인건비는 충분히 높고, 새로운 기술 도입에 너그러운 한국이야말로 이 사업의 시작점으로 가장 적절하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초기 기업들의 수익은 아직 크게 신통치는 않았다.
새로운 신기술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이 천문학적이고, 시장 규모를 늘리기 위해 관련 기기의 값과 임대 비용을 상당히 낮추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십만여 개에 달하는 식당을 통해 얻어지는 다양한 피드백이야말로 가장 커다란 자산이라 할 수 있다.
십만여 명의 식당 주인들이 지니고 있던 요리 기술이 로봇에 매일같이 업데이트되며 쌓이고 있고, 하루에도 백만 건이 넘는 고객 접대 기록이 서버 로봇에 축적되고 있다.
이런 노하우들이 쌓여 결국은 후발 주자들이 결코 도달하기 어려운 경쟁력을 갖출 것이다.
“시장의 규모가 커질수록 로봇의 생산 단가는 저렴해질 거야.”
“그야 당연한 거 아니야?”
“지금은 서버 로봇의 경우 월 60만 원에서 90만 원 사이고, 쉐프 로봇은 여섯 배 정도야. 하지만 쉐프 로봇 한 대가 요리사 세 명 역할은 하니까 실질적으로는 서버 로봇의 두 배 정도 비용인 거지. 게다가 규모가 충분히 커지면 그 절반 이하로도 내려갈 수 있어.”
“서버 한 대에 30만 원? 엄청난데? 인건비에 비하면 1/10인가?”
“선진국이라면 그 이상이지.”
“그러면 아무리 반응이 느린 일본이나 유럽이라도 언제까지고 외면할 수는 없겠네.”
사람을 종업원으로 고용하는 것에 비해 1/3만 되어도 당장 도입할 곳이 많을 것이다.
하물며 1/5이나 그 이상이라면 사람의 노동력은 완전히 경쟁력을 잃는다.
“더군다나 계속되는 업데이트로 기능이 전보다 훨씬 더 충실해졌어. 이제는 서버 로봇이 음식을 테이블 앞으로 가져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직접 테이블 위에 서빙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비로소 진정한 서버가 된 셈이네.”
“그렇지. 기술의 발전에 따른 실업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야.”
“또 그렇게 말하니까 무섭네. 한국이야 이 산업으로 발전한다 해도, 다른 나라들은 엄청난 실업률을 감수해야 하는 거 아니야?”
오래전부터 예견되어 온 일이지만, 이렇게 구체적인 현실로 마주하고 나니 또 느낌이 달랐다.
“그렇지. 배송 쪽도 마찬가지고…… 사실 이 분야에 속해 있다 보니까 인간의 설 자리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는 게 눈으로 보여.”
“미국 같은 나라는 특히나 서민들 살기가 힘들어지겠네.”
“미국은 서비스업 비중이 70%를 넘어가는 곳이니까…… 식당이나 커피숍은 물론이고 소매시장 대부분에서 인력 감축이 일어나겠지.”
한국이 이쪽 분야를 선점해 미래에 대한 활력을 차지한 것에 비해, 다른 나라들로서는 오히려 암울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하튼 오늘은 이야기 잘 들었다.”
기대했던 이상의 성과를 올린 석찬은 고마움을 표시했다.
“기사 쓸 때 일본 관련 이야기는 빼고 하는 거 잊지 말고.”
기범도 친구를 돕게 된 것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리고 기사가 올라가면 도움이 되는 쪽은 오히려 자신이다.
친구가 좋은 기사 하나 올려 주면 기범의 고과에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 * *
“로봇 서버와 로봇 셰프가 미래를 바꾼다…….”
유성은 언제나처럼 한국의 포털 사이트에서 기사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여기도 형 이야기가 나오네. 제일 로보틱스가 요즘 잘나가는 모양이야.”
“그렇다고 들었어. 최근에 영국과 프랑스에 진출해서 제법 성과를 올리고 있는 것 같더라.”
“내년 목표가 100만 대래. 와! 굉장한데? 한 대에 1억이 넘는다면서?”
“셰프 로봇은 그 정도 할 거야. 그러니까 식당에서 그걸 채용하려면 할부나 리스를 이용해야 해. 그러면 한 달에 수천 달러 정도 되겠지.”
“1억 원짜리가 100만 대면 얼마야? 휘유!”
이제는 큰 금액에 익숙해진 유성이지만, 그럼에도 엄청난 액수인 것은 틀림없었다.
“로봇 서버는 그거보다 훨씬 싸. 그러니까 대략 300억 달러 정도 되겠네.”
“이제 사업을 시작하는 기업에서 매출이 300억 달러라면 엄청난 거 아니야?”
“그렇기는 하지.”
“여기 내년에 상장할 예정이라는데? 대체 얼마나 몰릴까?”
“글쎄? 가볍게 천억 달러는 넘고 시작하겠네.”
유진이 태연한 어투로 대답했다.
“역대급 아니야?”
“그러겠지. 지금 내부적으로는 사상 최대의 IPO를 노리는 모양이더라고.”
“그런데 거기 형 지분이 대부분 아니야? 굳이 공개할 필요가 있어?”
“어. 기업 공개를 하는 쪽이 훨씬 더 이익이니까.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도 있고, 이익을 공유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 그리고 무엇보다 제일과 다산 두 기업이 이 시장을 독점하게 되면 생기게 될 문제도 예방해야 하니까.”
유진은 자신이 투자한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어느 정도 규모가 되면 주식공개를 하고, 일정 지분 이상은 시장에 팔아 버렸다.
대략 30% 정도만 남겨 두면 창업주와 함께 50%의 절대 지분을 유지할 수 있다.
워낙 다양한 기업에 투자를 이어 가는 만큼, 한 기업을 완전히 독점하는 일을 피하려고 하는 것이다.
사실 이건 존 피어몬트 모건의 예를 반면교사로 삼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 경제의 중흥기를 주름잡던 모건은 US스틸을 통해 미국의 철강 산업을 독점했고, 노던 시큐리티스를 통해 철도 시장을 독점했다.
그런 독점은 국민들의 불만을 불러 왔고, 결과적으로 노던 시큐리티스가 반독점법에 의해 해체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국에서는 반독점법이 그다지 큰 의미를 지니지 않지만,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두 개의 기업이 산업 전체를 독점하는 것은 공공의 이익에 반한다는 사고가 뿌리 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유진은 어떤 분야이건 독점이 되는 일은 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