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8화 반독점법
“반독점법? 확실히 무섭기는 하네.”
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미국에서 사업하는 대기업치고 반독점법에 대해 고민해 보지 않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20세기로 들어온 이후 미국에서는 경제사에 이름을 남길 위대한 기업들이 몇 번이나 만들어져 왔다.
최근의 사례인 아마존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IT 기업은 물론이고, 20세기 초반 세계 석유 시장을 장악했던 스탠더드 오일이나 철강 산업의 절대적 강자인 유에스 스틸 같은 기업은 현대의 어느 글로벌 기업에 못지않게 산업계에 커다란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그런 거대 기업들이 반독점법으로 인해 분해되어 버린 일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수십 년 동안이나 이 반독점법 소송에 시달리고 있고, 해체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애플에 투자해서 점유율을 낮추려 한 것이나, 월트 디즈니 컴퍼니가 21세기 폭스를 인수할 때 독점법에 걸리지 않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야 했던 것을 생각하면 더욱 와닿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반독점법이 단순히 미국에 한정된 문제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점점 더 많은 나라가 글로벌 기업의 인수, 합병 등에 대해 반독점법을 거론하며 다양한 요구를 해 오고 있다.
특히 반도체 산업같이 한 나라의 미래를 좌우하는 업종에서라면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 일본, 한국, 유럽연합 등 수많은 나라가 각각 제정해 놓은 반독점법에 위반되지 않게 미리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부흥 중인 로봇 셰프, 로봇 서버, 로봇 배송 등을 포함한 다양한 로봇 산업이 언제고 세계 시장을 점령할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리고 시장 성장의 기세로 본다면 겨우 스마트폰 시장에 비교될 수준을 훌쩍 넘어선다.
21세기로 들어서며 점점 더 가속되어 가는 로봇 분야의 발전은 공장에서의 제품 생산을 넘어 다양한 업장에서 인력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수준까지 넘보고 있다.
아직은 연간 수십만 대 수준이지만, 가격 경쟁력이 확보된다면 선진국에서만 매년 천만 단위의 로봇이 팔려 나갈 예정이다.
당연히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이나 중국에서도 한국의 상황에 유의 주시하고 있다.
이 새롭게 탄생한 거대한 시장을 한국에서 독점하는 것을 그저 손을 놓고 보고 있기에는 너무나도 군침이 흐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각 국가에서는 해당 산업을 육성하는 것만큼이나 비경쟁적 방법, 즉 반독점법이나 새로운 법률 제정 등을 통해 한국의 로봇 산업에 대해 견제에 나설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그 반독점법이라는 거, 형한테는 꼭 나쁠 거만은 없는 일이지 않아? 반독점법으로 기업이 분할되면 솔직히 사주로선 오히려 재산 증식의 기회가 되는 거 아닌가? 록펠러처럼 말이야.”
곰곰이 생각을 정리해 보던 유성이 물었다.
미국의 반독접법은 산업 분야를 지배하는 기업을 여러 개의 기업으로 해체하는 것이지, 결코 기업주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반독점법으로 인해 기업이 분해되면, 해당 분야에 비슷한 규모의 기업들이 여럿 새롭게 탄생하게 되고, 이런 새로운 기업들이 주식시장에 상장하면 적지 않은 투자가 유입된다.
일례로 록펠러가 만든 스탠더드 오일은 저지스탠더드오일(엑슨), 캘리포니아스탠더드오일(셰브런), 뉴욕스탠더드오일(모빌) 등 34개의 독립회사로 해체되었다.
이 과정에서 각 오일 기업들의 주가는 크게 상승해서, 록펠러는 오히려 전보다 더욱 큰 부자가 될 수 있었다.
유진의 등장 이전까지 역사상 최고 부자의 위치를 고수하던 존 록펠러가 그런 부자가 될 수 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반독점법 덕분이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스탠더드 오일처럼 한국의 로봇 산업이 갈기갈기 분해되면 성장의 동력을 잃어버릴 수 있으니까. 석유 산업이야 여러 개로 나뉜다 해도 사업을 지속하는 데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 로봇 산업 같은 경우는 문제가 많지. 한국이 더 이상 선도적으로 산업을 이끌어가기 힘들 수도 있어.”
“꼭 한국에서 로봇 산업을 지속해야 할 필요가 있나?”
유성이 느끼기에도 로봇 산업의 규모는 너무나 컸다.
어떤 면에선 자동차 산업이 현대 사회에 끼친 영향 이상의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분야이다.
공장에서, 매장에서, 그리고 가정에까지 다양한 능력을 지닌 로봇이 침투할 시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적어도 10년 내로 세계 자동차 시장의 규모를 추월할 것이 예상되고 있고, 가정용 로봇까지 넓혀 생각한다면 언젠가 스마트폰 시장만큼 커질 잠재력도 충분하다.
“가전제품, 반도체, 스마트폰을 잇는 핵심 분야가 하나쯤은 필요하니까.”
유진은 미래 한국 경제를 지탱할 산업으로 이 로봇 산업을 정해 두었다.
원래였다면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과 중국 등 수많은 경쟁자 속에서 비슷한 속도로 발전해 나갈 분야였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 동안 유진은 과감한 투자를 이어 온 끝에 한국에서의 로봇 산업의 부흥을 몇 년이나 앞당겼다.
동시에 한국의 인력을 해외로 유출하는 데에 앞장서며 국내 인건비의 상승도 부추겼다.
코로나로 인해 노동시장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도 늘어나게 되면서 이제 한국의 인건비는 사람 대신 로봇으로 대체했을 때 충분히 이익을 남길 수준이 되었다.
결국은 인건비와 로봇의 임대 비용 사이의 균형이 로봇 시장의 확대에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뭔가 제대로 된 산업이 없다면 언제까지고 한국 경제가 지금처럼 순항하긴 어려울 거야.”
딱 한 가지 산업 분야만 잡고 있어도 충분하다.
지금까지 한국은 반도체와 스마트폰 등 전자제품으로 30여 년 동안을 지탱해 왔고, 미래에는 로봇 산업이 그 자리를 대체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한국이 이 새로운 산업 분야를 완전히 지배하는 것에는 아주 큰 문제가 있다. 다름 아닌 세계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미국의 질시다.
미국은 질투가 아주 많은 나라다. 그리고 언제나 공정함을 표방하면서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불공정을 전혀 꺼리지 않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니 미국의 눈 밖에 난다면 아무리 대단한 나라라 해도 단숨에 위태로워질 수 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일본이었다.
1990년 세계 반도체 기업 랭킹 1, 2, 3위가 모두 일본 기업일 정도였다.
반면에 막상 반도체를 발명하고, 산업을 선도한 미국의 유력 반도체 기업이라고는 인텔, 모토로라, 텍사스인스트루먼트 정도였다.
이에 자존심이 상한 미국은 일본으로부터 반도체 산업을 빼앗아 오기로 결정했고, 일본 경제가 무너지기 시작한 원인으로 거론되는 플라자 합의의 뒷면에는 그런 미국의 질투가 숨겨져 있다.
물론 그 합의를 통해 이득을 본 것은 미국 자신이 아니라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이었지만, 첫 번째 목표였던 일본 반도체 산업을 무너트리는 것은 너무나 훌륭하게 이루어 내었다.
최근에 들어와서는 중국 경제의 부흥을 꺼린 미국이 트럼프 시절부터 다양한 전술을 구사해 중국을 압박한 끝에 결국은 중국 시장을 개방시킨 일도 있다.
로봇 시장이 미래 경제에 중요한 산업의 축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명백한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미국인들의 질시를 살 정도는 아니지만, 반도체 산업 수준까지 규모가 커진다면 틀림없이 미국도 이 사장을 노리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미국이 원하는 것은 로봇 산업을 미국으로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독점을 무너트리는 것이 될 것이 틀림없다.
이 때문에 유진은 제일로보틱스와 다산정공을 미국의 나스닥 시장에 상장시키려 하고 있었다.
로봇 산업의 핵심 기업 두 개가 유진 한 사람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면 반독점법에 걸릴 위험이 너무 크다.
두 기업을 나스닥에 상장시키고, 블랙록이나 뱅가드 같은 미국 내 자산운용사 ETF로 편입시키고, 미국의 다양한 기업에 하청을 주는 것을 통해 한국의 로봇 산업이 미국 경제에 커다란 이익이 될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물론 지금 유진은 미국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지니고 있지만, 그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하긴 아버지도 요즘 엄청나게 바쁘신 모양이더라. 다산하고 제일에서 밀려드는 납품 요청이 장난 아닌 모양이야.”
로봇을 생산하는 기업은 제일과 다산이지만, 그 두 기업은 한국 내 수많은 중소기업에서 다양한 부품을 납품받고 있다.
과거와 달리 제일이나 다산이나 이런 벤더 업체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모양이고, 2차 3차 벤더로 내려와도 임직원들이 절대 서운하지 않을 만큼의 임금을 받게 된 것은 꼭 유진 덕분만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 관련 기업들이 점점 더 많아지겠지. 거기다가 이번 정부는 지방에 산업 단지를 만들 때 더 많은 혜택을 주겠다고 하고 있으니까.”
현 대통령과는 꽤 코드가 잘 맞는다. 유진이 원하는 것이라면 어지간한 문제는 흔쾌히 들어준다.
뭐, 속까지 파고들면 코드의 문제가 아니라 유진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 좀 더 정확하겠지만 말이다.
“진짜 형은 굉장한 애국자네. 흐흐.”
유성도 이제는 형이 단순히 애정 때문에 한국의 산업과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완전히 인지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가 튼튼해야 해외에 나와 있는 한국 출신 사람들의 입지가 탄탄해진다. 그리고 거기에는 유진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
유진이 최근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많은 투자를 이어 가고 있는 분야라면 역시 한국에서는 로봇 산업이고, 미국에서라면 AI와 헬스, 그리고 그린에너지 분야이다.
유럽연합에서는 역시 미국과 마찬가지로 그린에너지와 제약업에 큰 투자를 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주로 소비재 생산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중이다. 사실 중국 정권에서는 유진에게 반도체 산업에 대한 투자를 요청해 오고 있지만, 그건 들어주기 어려운 요구이다.
여전히 미국은 중국이 반도체 개발 기술을 손에 넣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최근 10년 동안 미국의 첨단 기술을 열심히 따라온 중국이 반도체 산업까지 따라잡는다면 미국의 경제에 심각한 위기가 올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반도체는 경제 문제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국가의 핵심적인 경쟁력을 지탱하고 있다.
최첨단의 반도체를 보유한 국가가 군사적 우위를 차지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점점 늘어나고 있는 중국의 군사적 패권 야욕에 선을 긋기 위해서라도 반도체에 대한 규제는 필수적이었다.
미국의 이런 태도는 지난 몇 년 동안 중국을 자극해 왔다.
중국도 국운을 걸고 반도체 굴기를 위해 아주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미국의 규제를 넘어서지는 못하고 있다.
유진도 이러한 미국 정부의 태도를 핑계로 중국의 요청을 거절하고 있는 형편이다.
대신 중국의 금융과 소비재 산업의 부흥을 위해 적지 않은 투자를 이어 가고 있다.
이미 유진의 머릿속에는 어느 국가가 어떤 산업을 책임지게 될지 명확하게 그려져 있는 셈이다.
사실 각 산업에 핵심이 될 기업들을 꿰뚫고 있는 유진으로서는 그다지 어려울 것도 없다.
세계 각지의 벤처캐피탈에서 들어오는 자료를 보고 십 년 뒤 가장 선도적일 기업의 지분을 충분히 쟁여 놓는 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