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320화 (320/363)

320화 로봇세

“소득세 문제를 해결하기는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소득세 구조가 너무나도 기형적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겁니다. OECD 평균에 비해 소득세의 세수 비중이 너무 낮은 것을 지금이라도 해결하지 않는다면 점점 늘어나는 복지 비용을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할 겁니다.”

“으음…….”

“더군다나 강 회장님 덕분에 국민연금의 유예기간이 늘었다곤 해도, 점차 늘어만 가는 노령층을 생각하면 다음 정권에 다다랐을 땐 엄청난 후유증을 겪게 될 수도 있습니다.”

“사실 전체 소득자의 40% 가까운 사람들이 소득세를 내지 않는 면세 소득자인 것은 큰 문제가 있습니다. 바꾸기는 바꿔야겠지요.”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뿐 아니라 관료들 대부분은 이 소득세 문제와 국민연금 문제를 대대적으로 수술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두 가지 문제 모두 섣불리 손을 대었다가는 국민들의 심각한 저항에 마주하게 될 것 또한 너무나도 명확한 일이었다.

결국은 누가 물릴 각오를 하고 범의 목에 줄을 맬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차라리 로봇과 인공지능에 대한 세수를 신설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누군가가 또 한 가지 아주 민감한 문제를 거론했다.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인해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이 분명하니, 인공지능과 로봇에 대해 별도의 세금을 부과해 복지에 사용하자는 의견이 대두된 것은 벌써 오래된 이야기이다.

비단 한국뿐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이러한 논쟁은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는 수십 년 동안 세계 제일의 부자 자리를 지켰던 빌 게이츠부터 적지 않은 부호들과 경영자까지도 로봇세의 도입에 찬성하고 있을 정도다.

길게 본다면 서민들의 평균적인 삶의 수준까지 어느 정도 이상이 되어야 자사 제품을 팔 수 있다는 의미에서 그럴 것이고, 누군가는 인권을 보장하는 일이 자신의 부를 지키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여겨서일 수도 있다.

심지어 미국에서는 부자들 자신이 부자들에 대한 세금을 더욱 가혹하게 부과해야 한다는 소신을 밝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소득의 불균형이 점점 더 심해지며 부의 쏠림이 한도를 넘어서면 사회가 붕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대기업 경영자를 비롯한 소득 상위 계층이 발 벗고 나서서 부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각종 경제지를 통해 더 많은 감세를 요구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로봇이나 인공지능에 세금을 물리는 것은 아직은 너무 이른 문제입니다. 과도한 세금은 우리나라의 미래의 먹거리로 삼고 있는 로봇 산업에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게다가 로봇 산업의 선두주자인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로봇세를 도입하게 되면 다른 나라들에까지 영향을 주게 될 겁니다. 만일 우리나라를 따라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로봇세를 도입한다면 로봇을 사용할 요인이 줄어들게 될 터이고, 수출 전선에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여러 관료의 입에서 바로 반론이 나온 것은 그러한 산업 논리 때문만은 아니다.

로봇세의 도입으로 가장 큰 손해를 볼 곳이 바로 제일과 다산, 그리고 대주주인 SS파트너스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의 세금이 부과되던 로봇 매출에 부담이 될 것은 분명하고, 이 자리를 주최한 SS파트너스 앞에서 로봇세를 논의하자는 것은 싸우자는 말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사실 그 문제에 대해서 이제 우리 사회도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가 온 것 같군요.”

하지만 의외로 김환은 이 의견에 찬동하는 반응을 보였다.

“네? 괜찮겠습니까?”

“아니. 그래도…….”

“당장의 이득만이 아니라 미래를 생각한다면, 지금부터 고려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로봇을 임대하거나 구매해서 줄어드는 일자리로 인해 야기되는 각종 사회문제를 대비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이 정도면 단순하게 거론하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강력하게 주장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지금 막 일어나기 시작하는 로봇 산업의 기세를 꺾을 위험성이 있습니다. 국내야 그렇다 쳐도 만일 수출에까지 영향이 간다면 오히려 전체적인 세수는 줄어들게 될 겁니다. 그건 마치 빈대를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나 다름없습니다.”

하나 가장 큰 당사자가 될 김환의 찬성에도 의외로 반대 의견이 강하게 터져 나왔다.

그만큼 한국이 관련 산업의 선도적 위치를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보고 있다는 의미였다.

“로봇 산업은 세금을 부과한다고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지금의 발전 추세로 본다면 세금 문제는 겨우 몇 년 안에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지출이 될 겁니다. 그보다는 더 먼 곳을 봐야 합니다.”

“더 먼 곳이라면……?”

“우리나라뿐 아니라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로봇세가 신설된다면 로봇의 판매 비용에 해당 세금이 전가되는 효과가 있지요. 그렇다면 실질적으로 그 세금만큼 로봇이 비싸진다는 의미이고, 그 인상분을 감당할 만큼 충분히 저렴한 로봇이 아니라면 시중에 판매되기 어려울 겁니다.”

김환이 앞장서서 로봇세를 거론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음. 확실히 제일과 다산에서 생산하는 로봇의 가장 큰 경쟁력은 가격이지요.”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가 그 어려운 고시를 통과했거나, 적어도 그 이상의 능력을 입증한 사람들이다.

김환의 몇 마디만으로 그가 의도하는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어리석은 사람들이라면 애초에 이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중국산 로봇도 상당한 가격 경쟁력이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안정성이나 범용성에서 떨어진다고 들었습니다.”

미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로봇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놓고 있고 품질 또한 나쁘지 않다고 하지만, 제일과 다산에서 생산한 제품에 비하면 월등히 높은 가격 때문에 경쟁력이 떨어졌다.

그리고 중국산의 경우는 반대로 품질 문제로 고전하고 있다. 예전 반도체와 스마트폰에서 한국보다 몇 년 정도 떨어졌던 것처럼, 로봇 제품도 최하 3년 이상의 기술 격차가 나고 있다.

첨단 제품에 있어서 3년의 차이는 적어도 두 세대 정도의 격차를 의미한다.

아무리 가격이 싸다고 해도 안정성에 의문이 있고, 구형이라는 느낌을 준다면 시장에서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더불어 미국이 시작한 반도체 전쟁으로 인해 첨단 로봇에 필요한 반도체를 중국이 자체적으로 생산하지 못하는 것도 한몫했다.

한국은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세워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고 최첨단 반도체를 마음껏 생산해 로봇에 응용할 수 있지만, 중국은 대만과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 생산된 반도체 장비의 수입이 어려운 실정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벌어진 반도체 패권 전쟁의 소득을 한국이 어부지리로 얻고 있다 할 수 있었다.

여전히 미국은 중국의 최첨단 반도체 기술 축적을 최대한으로 막고 있으니, 이러한 어부지리는 적어도 몇 년 동안은 더 이어질 예정이다.

“일종의 방벽을 만들자는 것이로군요.”

“그것도 아주 좋은 전략이네요.”

이제야 사람들이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한다.

한국뿐 아니라 유럽과 미국에서도 로봇세를 도입한다면 가장 선두주자인 제일과 다산을 제외한 경쟁자들은 시장의 진입이 어려워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미국과 유럽에서 과연 이러한 로봇세 도입에 그렇게 발 빠르게 나설까요?”

“아마도 그럴 것 같습니다.”

김환이 거의 확신한다는 듯 대답했다. 물론 지금 이 자리에서 논의하는 것도, 그리고 미국과 유럽의 분위기에 대한 것도 전부 위에서 내려온 지시와 설명 덕분이다.

이미 미 국회는 물론이고 EU 집행위에서도 진지하게 로봇세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인 상황이다.

그리고 그리 놀랍지 않게 상당히 많은 의원이 로봇세에 대해 찬성의 의견을 보이고 있었다.

다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꽤 다양한 층위로 나뉘어 있는데, 사회주의적 당파에서는 진지하게 로봇으로 인해 발생하는 일자리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였고, 친기업 측에서는 한국산 로봇에 타격을 입히려는 목적에서였다.

당장 로봇세를 도입하면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은 시장에 가장 많은 로봇을 판매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이 될 것이다.

그로 인해 로봇세 때문에 로봇 시장의 활성화가 늦어지면 자국 기업들의 기술 수준을 높이고, 가격 경쟁력을 높일 시간을 벌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각자 이유는 달랐지만, 결과적으로 기업을 위하는 당파이든 서민들의 삶을 걱정하는 당파이든 한목소리로 로봇세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편 어디엔가는 유진의 사주를 받은 다소의 정치인들도 제 몫을 하고 있을 것이다.

유진은 진심으로 유럽과 미국에 로봇세의 도입을 바라고 있었다.

로봇 산업의 발전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명백한 현실이지만, 이렇게 시장 성립의 초기에서부터 세금을 비롯한 다양한 장애물이 생겨난다면 로봇 시장의 개척자들에게는 힘겨운 시간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힘겨운 시간이 오래 지속될수록 그걸 버티지 못하는 기업들은 쓰러지고 말 것이다.

고난의 시간을 버텨 내기 위해서는 막대한, 아주 막대한 자금이 추가로 필요했다.

지금 시점에 그런 막대한 자금을 아낌없이 내놓을 수 있는, 그러니까 몇백억 달러의 손해를 넘어 천억 단위의 손해조차도 웃으며 감수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유진 한 사람뿐일 터였다.

심지어 몇 년 동안 손해를 보면서도 더 많은 로봇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짓고, 더 많은 사람을 뽑을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나아가 그런 고난의 시기에 쓰러져 나갈 기업들을 인수하고, 개발 인력을 고용하고, 기업이 지닌 각종 특허와 노하우를 서운하지 않은 가격에 사들여 경쟁력을 더 높일 생각도 있다.

유진은 원래였다면 한국 기업을 대신해 미국이나 유럽에서 엄청난 성장을 거두었을 몇몇 기업들을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채 싹을 틔워 보기도 전에 세금과 규제의 압박에 쓰러지고 말 것이다.

막대한 자금으로 다른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진입장벽을 쌓고, 의회를 통해 다양한 규제를 신설하게 만드는 방법은 사실 유진이 창조해 낸 방법은 아니다.

20세기로 들어서며 기업 간의 합병을 통해 규모를 키운 다양한 대기업들이 그 몸집을 내세워 가격을 낮추고, 해외 기업에 대한 관세를 높여 왔다.

유진은 이 로봇 산업의 규모가 그리 머지않은 시일 내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커질 것을 알고 있기에, 초기에 얼마의 출혈이 나든 충분히 감수할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저희 부처에서도 로봇세의 도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겠습니다.”

“소득세를 올리고 중저위 소득 구간에서도 어느 정도 부담을 늘리는 방안도 고민해 봐야 하겠군요.”

이 자리는 정식적인 정책 회의가 아닌 간담회이다. 그 때문에 그 누구도 여기서 오간 다양한 의견을 무조건적으로 정책에 반영한다는 표현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이날 나온 이야기들이 실질적으로 한국을 이끌어가는 정책 회의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암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청와대에서 나온 비서관은 바로 돌아가 대통령에게 보고를 올릴 것이고, 각 부처에서는 장관들과 길고 긴 회의에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다시 시간이 지나면 청와대에 장관들이 모여 새로운 정책의 초안을 논의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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