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화 포커의 달인
- 이쪽은 예정대로 되어 가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로봇세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 늦어도 올해 안으로 로봇세를 신설할 예정입니다.
관료들과의 간담회가 끝나고 며칠 뒤, 김환은 뉴욕으로 전화를 걸어 진행 상황을 보고했다.
“정부 측에서 반발은 없고?”
- 물론입니다. 로봇세의 도입이 오히려 한국 로봇 산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납득하고 있습니다.
“수고했어.”
- 수고는요. 사실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니 우리 쪽에서 선제적으로 나서는 쪽이 현명한 거겠지요. 그런데 미국이나 유럽 쪽은 어떤가요? 그쪽에서도 우리처럼 기민하게 따라와 줄까요?
“아마 그럴 것 같아. 유럽이야 원래 미국이나 한국보다 첨단 기술 도입에 대해 보수적인 면이 있잖아. 이번에도 프랑스가 가장 열심인 듯하고. 유럽 의회에서 합의가 되지 않는다면 프랑스라도 독자적으로 도입하겠다는 모양이야.”
- 그건 그렇죠. 디지털 세금을 도입한 것도 프랑스가 먼저였지요?
프랑스는 2019년 구글과 같은 글로벌 대기업들이 해외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면서도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지적을 하며 디지털세를 신설하고, 바로 이듬해부터 이들 대기업이 프랑스에서 창출한 디지털 서비스 수익의 3%를 부과했다.
문제는 이런 글로벌 대기업에 해당하는 구글,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등이 전부 미국 기업이라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한때 미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무역 분쟁이 일어났고, 한참의 홍역을 치른 끝에 국제적으로 디지털세가 신설되기에 이르렀다.
전통적으로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가장 민감한 곳이 프랑스라는 것은 아주 잘 알려진 사실이고, 최근 대두된 인공지능과 로봇 산업에 대한 대응이 가장 빠른 곳도 프랑스가 될 것은 너무나도 당연할 터였다.
“프랑스 의회 측에서는 로봇을 통해 생산되는 부가가치의 10% 정도를 원하는 모양이야.”
- 와…… 적지 않은 액수로군요.
“그렇지. 사실 나조차도 무시무시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니까.”
로봇의 가격이 아니라 부가가치의 양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10%라는 세율은 로봇이나 인공지능에 관련된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기함하게 할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수준이다.
로봇을 몇 년 정도만 돌리면 로봇 구매 비용 이상의 세금이 부과되는 것이니, 분명 차라리 그걸 포기하고 사람을 고용하는 쪽이 낫다는 고용주가 나올 것이다. 물론 그게 프랑스 의회의 목적이기도 하다.
“다른 쪽에서는 3%에서 5%까지 말하는 모양이야. 독일이 가장 적은 세율을 원하고.”
로봇 산업은 초정밀 기술이 밀집된 산업이다. 당연하게도 독일과 일본이 로봇 산업의 가장 큰 수혜를 보고 있다.
사실 독일로서야 로봇세에 대해 그다지 마땅치 않은 태도이지만, 다른 유럽 국가들의 요구를 계속 거부할 수 없는 일이기에 최저치를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독일도 노조가 적지 않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고, 국민들의 삶에도 꽤 신경을 쓰는 나라이니 로봇 때문에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에 대해 전혀 무심할 수 없기도 하다.
- 미국은 어떤가요? 사실 미국이야말로 로봇세에 대해 가장 반대가 많지 않겠어요?
로봇 산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인공지능 분야에 있어 다른 나라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앞서가는 미국에서는 인공지능이나 로봇에 대해 새롭게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 산업의 발전에 저해가 된다는 의견이 높은 편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갈수록 사람들이 겁을 먹고 있어. 로봇 때문에 자기도 일자리를 잃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고 말이지.”
- 어디든 비슷한 모양이군요.
늘 가던 식당과 가게에서 종업원이 사라지고 키오스크와 앙증맞은 로봇이 뽈뽈거리며 음식을 나르는 모습을 처음 접할 때야 그저 신기할 뿐이지만, 점점 더 많은 식당에서 그런 모습이 보인다면 슬슬 걱정이 들기 시작하는 것이 당연했다.
더군다나 화이트칼라 일자리 또한 점점 줄어든다는 보도가 계속 나오고 있으니 더욱 그러하다.
“그렇지 않아도 내일 저녁에는 백악관 사람들과 만나기로 했어. 이야기해 보고 필요한 게 있다면 전해 주지.”
- 알겠습니다.
해외의 로봇세 신설에 대한 움직임은 한국에서도 알고 있어야 했다.
그리고 미국이든 유럽이든 가장 빠르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유진 자신이었다.
* * *
“유진은 뭐든지 잘하는 분인 줄 알았는데, 포커 실력은 그저 그렇군요.”
조셉 굿맨 대통령 비서실장이 웃으며 말했다.
“저라고 뭐든지 잘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스포츠나 포커 같은 것은 그다지 자신이 없는 일이에요.”
유진은 손아귀에 들어온 카드 세 장과 바닥에 깔려 있는 세 장의 카드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포커를 하면서 그렇게까지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는 분도 참 드문데 말이지요.”
뉴욕주 상원의원인 로버트 쉬머도 웃고 있었다.
그의 말처럼 유진은 자기 패와 바닥 패만 신경쓸 뿐, 테이블을 둘러앉은 다른 플레이어들의 표정 따위에는 관심도 없어 보였다.
포커는 도박이라기보다는 심리 게임에 가까운 경기이기 때문에 상대의 반응을 보고 패를 예측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유진은 그걸 아예 포기한 것이다.
“솔직히 말해 정치인들과 패싸움을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 않겠어요? 대체 당신들 얼굴 뒤에 무슨 생각이 숨겨져 있는지 읽어 낼 도리가 없단 말입니다.”
사람들의 지적에 고개를 든 유진이 툴툴거리며 말했다.
“그냥 숫자 게임이라면 훨씬 나을 겁니다. 하지만 숫자를 예측하는 것보다 속임수를 파헤치는 게 훨씬 더 힘들어요.”
“이것도 하다 보면 요령이 늘기 마련이지요. 좀 더 신경을 써서 살펴보면 말이에요. 이를테면 쉬머 의원님은 좋은 패가 들어오면 늘 왼쪽 엄지손가락으로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두드리고는 한답니다.”
테이블 둘레에 모인 사람 중 가장 많은 칩을 자기 앞에 쌓아 두고 있는 조셉 굿맨 대통령 비서실장이 웃으며 카드를 덮어 테이블 위로 내려놓았다.
“내가 그런 버릇이 있던가요?”
쉬머 상원의원이 살짝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우리가 같이 포커를 한 지도 벌써 10년도 넘었는데, 그걸 이제야 알려준단 말입니까?”
“지금이라도 알려드리는 게 어딥니까? 앞으로 10년 동안은 포커판에서 잃을 일은 없지 않겠어요?”
민주당 하원 정책소통위원장인 캐서린 멀로니가 웃으며 비서실장을 거들었다.
“아…… 그렇다면 상원의원님의 패가 지금 상당히 좋다는 말이로군요. 나도 폴드 할게요.”
유진이 비서실장을 따라 카드를 내려놓았다.
“유진은 너무 솔직한 베팅만 하는 게 문제예요. 가끔은 블러핑도 필요한 법인데.”
“그런가요? 나름대로 필요할 때는 한다고 생각했는데요.”
“그렇다기에는 적어도 투 페어가 붙고 나서야 베팅을 올리지 않았어요?”
“음……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투자할 때는 1조 달러도 아끼지 않고 베팅하는 분이, 포커 테이블에서는 겨우 50달러짜리 블러핑도 보기 어려우니 재밌는 일이네요.”
“50달러가 적은 돈은 아니지 않습니까?”
유진이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지금 들고 있는 글라스에 차 있는 위스키가 50달러의 몇 배는 되지 않나요?”
멀로니 위원장이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언제나처럼 손님들을 대접하기 위해 유진이 내놓는 주류는 한 모금에 어지간한 사람들 주급을 훌쩍 넘어서는 것투성이였다.
그에 반해 테이블 위에 올려진 판돈이라고는 전부 합해도 이 방에 놓인 위스키 중 가장 저렴한 한 병의 가격도 되지 않을 것이다.
이날의 모임이 자택에서 거의 매일같이 이루어지는 조찬 모임도, 저녁이면 열리는 성대한 만찬회도 아닌 홀덤 포커 게임이 된 것은 게임에 가장 열중하고 있는 캐서린 멀로니가 제일 좋아하는 취미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민주당은 물론이고 워싱턴 사교계에서도 이름난 포커 플레이어였다.
물론 취미로 즐기는 것이기에 판돈은 주로 수십 달러 수준에, 많아야 수백 달러를 넘어가는 일도 드물었지만 만일 프로 플레이어로 전직한다 해도 의원 노릇을 하는 것보다 풍족하게 먹고살 거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멀로니 자신도 의원이 되지 않았다면, 아틀란타와 베가스를 오가며 돈을 쓸어모으고 있을 것이라는 소리를 게임이 끝날 때면 한 번씩 하고는 한다.
“여하튼 이번 판은 안 되겠네요. 당신이 이겼어요. 쉬머.”
유진에게 가르침을 내리던 멀로니도 카드를 덮으며 말했다.
“이런 젠장!”
승자가 된 쉬머의 얼굴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오랜만에 플러쉬가 나왔는데 겨우 32달러라니. 너무들 하는군요. 적어도 유진에게 내 손가락 이야기만 안 했어도 두 배는 먹었을 텐데 말이에요.”
“너무 유진만 벗겨 먹으면 미안하지 않아요?”
멀로니가 카드를 쉬머에게 던져 주며 말했다.
“미안하기는 뭐가 미안하다는 말입니까? 세상 돈을 유진이 전부 따 가고 있는데, 이런 자리에서라도 유진의 돈을 따는 게 건전한 그림 아니겠소?”
쉬머도 웃으며 멀로니의 말을 받았다.
“하기는 맞는 말이로군. 때로는 유진도 잃어 보는 경험을 해야 하지 않겠어요?”
굿맨 비서실장도 쉬머 상원의원의 말에 동의했다.
“아, 그래도 돈을 잃는 건 역시 기분이 좋질 않네요.”
“하하! 정말 오늘은 아주 귀한 경험을 하시겠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거 돈 주고도 못할 경험…… 아니, 진짜 돈 잃고 하는 경험이네요.”
유진도 자신의 패를 카드를 모으고 있는 쉬머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그런데 그 문제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이번 회기에 인공지능에 대한 세금 문제를 확정 지을 예정입니다.”
멀로니가 대답했다. 이 자리는 친목을 다지기 위한 카드 게임 모임이지만, 한편으로는 아주 중요한 일을 논의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공화당 측은 반발이 없나요?”
“물론 없지는 않지요. 그래도 지금은 남부 주와 러스트벨트를 그쪽에서 공략하고 있으니 유권자들의 의사를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이번에는 비서실장이 대답했다. 표결이 들어가기 전에 민주당과 공화당 양당 의원들을 설득해 백악관의 의사를 관철시키는 것은 비서실장의 역할이기도 하다.
“오히려 민주당 의원 중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이 문제예요.”
카드를 섞으며 쉬머 의원이 말했다.
“아무래도 부자들은 싫어할 테니까요.”
“맞아요. 특히 캘리포니아와 워싱턴주 쪽에서 반발이 심하다고 하더군요.”
IT 산업의 중심지인 실리콘밸리가 위치한 캘리포니아주와 그에 못지않게 발전하고 있는 서북부의 워싱턴주는 이번 법안으로 인해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산업에 타격이 갈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가장 많은 일자리가 생겨나는 곳이 바로 그 지역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 뉴욕주에서는 상하원 모두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어요.”
쉬머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카드를 돌리며 말을 이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