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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322화 (322/363)

322화 1945년의 전설

“아무래도 뉴욕에서 가장 많은 실직자가 생기게 될 테니까요.”

“그렇죠. 금융 쪽에서 요즘 사람을 너무 많이 해고했어요.”

“지난 10여 년 동안 금융계에서 사라진 일자리는 미국에서만 10만 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고요. 물론 새로운 일자리 또한 적지 않게 만들어지고 있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만은 틀림없는 일이에요.”

조셉 굿맨 대통령 비서실장이 말했다. 이번 법안 통과를 위해 가장 많이 노력하고 있는 사람인 만큼 가장 많은 통계를 머리에 넣고 있는 사람이다.

“뉴욕주에서만 최근 3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졌어요. 이게 겨우 시작이라는 걸 생각하면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게 맞지요.”

“그렇다고 해도 당장 로봇세를 도입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요.”

멀로니 위원장이 말했다.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반발이 심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오히려 자진해서 요청해 올 줄은 몰랐으니까요.”

쉬머 의원도 고개를 끄덕이며 멀로니의 말에 동의했다.

“전부 유진의 결단 덕분이 아니겠습니까?”

조셉 굿맨 비서실장이 말했다. 예정보다도 훨씬 더 빠른 로봇세의 도입은 인공지능 산업에서 가장 앞서가고 있는 두 거대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의 대주주인 유진이 두 기업의 창업주들을 설득한 결과였다.

원래였다면 유럽이나 다른 나라들에서 로봇세를 도입하고, 지난번의 디지털세처럼 한차례 홍역이 있고 나서야 도입될 문제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유진이 적극적으로 나서며 로봇세 논의가 훨씬 더 빠르게 이어지고 있었다.

물론 로봇이나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 속도도 유진의 지난번 삶에서보다 한 박자 빨랐다.

어느 기업이 인공지능에서 성공하게 될지 잘 알고 있는 유진으로서는 해당 기업의 주식을 손에 넣고, 누구도 하기 어려울 만큼 투자를 하는 것으로 더욱 큰 지분을 추가했다.

그러니까 빨라진 발전 속도는 유진이 인공지능 분야에서 더 큰 영향력을 손에 넣기 위해 강행한 투자의 부수적인 효과인 셈이다.

“쉽지 않은 결단이었을 텐데요.”

“그렇죠. 로봇세 도입으로 산업의 발전 속도가 몇 년은 늦어질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와 있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백악관과 민주당의 파워피플들은 유진이 강력하게 대통령에게 로봇세 도입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인공지능으로 수익을 올리는 것 못지않게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인한 사회 갈등을 미연에 봉합하려는 노력 또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점점 더 인공지능과 로봇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있어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일자리를 잃는 사람은 늘어만 갈 것이고요.”

“맞는 말씀입니다. 실업자가 늘어나면 고통받는 것은 단지 실업 당사자뿐이 아니지요. 사회가 불안해지면 치안에도 문제가 생기고, 경제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실업률을 일정 선 이하로 유지하거나, 실업자들이 좌절에 빠지지 않게 하는 쪽이 해당 기술을 판매하는 쪽에게도 나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유진의 말에 멜로니 위원장이 동의하며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그걸 선제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는 것에는 역시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신이 얻을 이익을 줄여서 사회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누구나 할 수 있지는 않죠.”

쉬머 상원의원이 웃으며 말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닌 정도가 아니지 않습니까? 기업가들 가운데 자신이 앞장서서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유진뿐일 겁니다.”

비서실장도 한목소리로 유진의 행동에 찬사를 보냈다.

이것이 바로 유진이 이번 로봇세 도입을 통해 얻어 낼 가장 중요한 대가이다.

미국을 이끄는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 그가 사익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다.

“사실 궁극적으로는 제가 가장 큰 이득을 보게 될 겁니다.”

“유진의 말처럼 일자리 문제를 비롯한 여러 문제에 미리 대비하면, 투자자로서 손실을 줄이는 길이기도 하겠군요. 하하.”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도 인공지능과 로봇이 필연적으로 유발할 사회적 갈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예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걸 직접 겪어 본 유진만큼은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미국이야말로 인공지능과 로봇 때문에 가장 큰 진통을 겪어야 했다.

고급 일자리가 가장 많이 있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의 평균 임금은 대략 60,000달러 수준으로, 대부분의 일자리가 로봇이나 인공지능으로 대체되기에 충분히 높은 액수이다.

더군다나 미국과 비슷한 수준의 소득을 받는 서유럽 몇몇 국가들은 노동 문제와 규제 때문에 로봇과 인공지능 도입이 그리 수월하지 않은 데 비해,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노동 유연성이 높은 나라이다.

일본도 노동 유연성이 무척 낮고 사회 구조는 보수적이며, 임금 수준은 4만 달러를 조금 넘는 정도로 미국에 비해서 낮은 편이라 로봇과 인공지능의 도입이 늦는 편이다.

그보다 못한 경제 수준의 나라들의 경우는 낮은 인건비 때문에 로봇과 인공지능 도입이 훨씬 더 늦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다양한 이유 탓에 결국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인해 가장 큰 사회 갈등을 겪게 되는 곳은 미국이 될 것이고, 유진은 그 사회 갈등이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펼쳐지게 되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물론 로봇세의 도입이 앞으로 일어날 모든 문제를 상쇄할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3%든 5%든 얼마의 세금이 더 생긴다 해도 없어져 버린 일자리를 다시 만들어 낼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유진에게는, 그리고 유진이 투자했고 이번 법안에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나선 인공지능의 선두 기업들에게 있어서는 최소한의 면죄부를 만들어 줄 것이다.

“폴드.”

“폴드.”

“아무래도 이번 판도 쉬머 의원님께서 제일 좋은 패를 가지신 것 같군요.”

워싱턴의 파워피플들과의 포커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쉬머 의원이 연거푸 승리를 따내고, 카드를 섞고, 다른 사람들은 대화를 이어 간다.

“인공지능과 로봇은 새로운 거대한 시장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이번 정권이 마무리되기 전까지 세계적으로 적어도 1조 달러에 달하는 부가가치가 창출되리라 예상하고 있지요.”

정부와 재계는 2028년까지 전체 스마트폰 시장의 두 배에 달하는 엄청난 시장이 생겨날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가장 큰 이득을 볼 사람은 단연 유진이었다.

로봇 산업은 제일 그룹과 다산 그룹을 통해, 그리고 인공지능은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같은 빅테크 기업과 블랙볼트와 자스퍼, 스태빌리티 AI 같은 스타트업을 통해 창출되는 부가가치는 대부분 유진이 소유한 투자회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 가치의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다.

벌써 금융계에서는 인공지능 분야의 기업 가치를 2020년대 후반까지 4조 달러 이상으로, 로봇 분야는 2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 중이다.

그리고 2030년이 되면 현재 빅테크 기업들 전부를 합친 정도로 두 분야 선두 기업들의 주가가 형성되리라 전망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오라클만 한 기업들이 새롭게 탄생한다는 의미이다.

“실업자가 늘면 소득세를 비롯한 세수가 줄어드는 것도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죠. 지출 문제가 아니라 세수 부족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어요.”

패가 돌고 도는 사이에도 사람들의 말수는 줄지 않았다. 오히려 다가올 미래에 대한 더욱 진지한 논의가 줄을 이었다.

“결국은 어떤 식으로든 실업자들에 대한 지원을 대대적으로 개선해야 할 텐데 말입니다.”

“아직 기본 소득을 논의할 단계는 아닌 것 같습니다.”

“그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단지 진지하게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거지요.”

“이제 게임은 그만해야겠군요.”

포커에 가장 열심인 멜로니가 카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미 게임에 흥은 이미 사라져 버린 뒤였다.

“그럼 가볍게 와인이나 한 잔씩 하시지요. 마침 좋은 게 손에 들어와서 열어 보고 싶었던 참입니다.”

유진은 기다렸다는 듯 와인을 한 병 가져와 땄다.

“응? 그건 혹시?”

쉬머 의원이 유진이 들고 있던 와인 병을 보며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샤토 무통 로칠드 1945년산입니다. 마침 여기 모여 주신 세 분께서 태어나신 해이기도 하지요. 우연치고는 참 멋진 일 아닌가요?”

“우연이라기에는 너무 공교롭군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조셉 굿맨 비서실장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로칠드 1945년산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게 있었나요?”

멜로니 위원장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번 소더비에 네 병이 나왔기에 놓치지 않고 낙찰받았습니다. 워낙 명성 있는 와인이다 보니 가능하다면 이 와인에 어울리는 분들과 나누고 싶더군요. 그러고 보니 머리에 떠오르던 분들이 세 분이었습니다.”

“음. 과연 우연은 아니었군요.”

유진이 따라 준 와인잔을 들고 향을 음미하며 쉬머 의원이 말했다.

“오늘은 아주 멋진 자리가 되었네요. 세계에서 제일 돈이 많은 사람의 주머니를 털고, 우리가 태어난 해에 생산된 전설적인 와인도 마셔 볼 수 있다니.”

“우리한테 정치인들의 속내는 읽기 어렵다고 하더니, 당신도 보통은 아니에요.”

세 노인은 유진이 준비한 와인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생산된 샤토 무통 로칠드는 100년 이래 가장 작황이 좋았던 다섯 해에 해당하며, 한편으로 프랑스가 독일의 지배에서 벗어났던 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큰 와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해에 태어나 미국 정계의 정점에 서 있는 위대한 정치인 세 사람에게도 의미 있는 선물이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제게 세 병의 45년산이 더 남아 있습니다. 이걸 세 분께 선물로 드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윤리적으로 그러지는 못하겠고, 이 해에 세 번 더 세 분을 초대하고 싶군요.”

“역시 못 당하겠군요. 이렇게 멋진 와인을 비우기 위해서라도 초대에는 꼭 응해야겠는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아! 물론 유진의 초대라면 하렘의 허름한 바라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겠지만 말이에요.”

“유진과 좋은 만남을 계속하기 위해서라도 정계에서 은퇴는 못 할 것 같군요.”

모두의 호의적인 모습에 유진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은퇴라니요. 아직 멀으셨죠. 세 분 모두 저랑 큰 차이 없이 정정하시기만 한데요.”

“하하! 정정이라니요. 이제 80입니다. 사실 지금도 너무 늦었다고 봐야지요.”

“갈수록 워싱턴에 노인들만 바글바글하고 있어요. 우리부터라도 젊은 세대를 위해 자리를 비켜 줘야 하는데, 욕심이 뭐가 그리 많은지 모르겠네요.”

“참! 한국에서 온 아주 좋은 건강식품이 있습니다.”

유진의 선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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