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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323화 (323/363)

323화 건강식품

건강식품이라는 말에 세 노인의 눈이 살짝 빛났다.

미국인들도 한국 사람 못지않게 건강에 대한 욕망이 굉장히 강한 편이다.

전 세계에서 몸에 좋다고 이름난 것은 전부 수입해 팔아먹고 있다는 점에서, 어떤 면에서는 한국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다양한 건강식품을 접할 수 있는 곳이 미국이기도 하다.

하와이에서 온 노니라든지, 아보카도라든지, 아로니아라든지, 한국에서도 유행하는 다양한 건강식품의 원조가 바로 미국 아니던가?

물론 대부분은 그다지 의학적으로 큰 의미가 없는 평범한 식품에 불과하지만, 이런저런 전문가들의 논평을 곁들여 미디어를 통해 홍보하고 있는 이런 건강식품들에 가장 관심이 있는 것이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이들 같은 노년층이었다.

“건강식품이라니, 그게 뭔가요?”

더군다나 다른 사람도 아닌 유진의 입에서 나온 말인 만큼, 모두 조금이나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제가 투자하고 있는 연구소에서 한국의 특제 진생(인삼)을 원료로 노화에 매우 효과적인 제품을 만들었습니다. 한국에서 만든 제품이라 아직 미국에서는 시판하지 않지만, 효과만은 틀림없습니다.”

“진생이라…….”

이 자리에 모인 파워피플들은 인삼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이지는 않아 보였다.

미국에서도 인삼이 나고, 약용으로 사용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지만, 동양만큼 인기가 있지는 않다.

하지만 동양, 특히 중국에서 인기가 높은 덕분에 미국산 인삼은 매년 수백 톤씩 중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한국에서의 실험 결과로는 꾸준히 복용하면 적어도 십 년 정도는 젊게 살 수 있다고 하더군요.”

“호오! 정말입니까?”

“원래 건강식품이라는 것이 좋게 생각하고 먹으면 그만큼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 그건 그렇죠. 먹어서 10년이 아니라 20년쯤 젊어진다 생각하고 먹으면 그게 제일 좋겠군요.”

“뭐, 먹어서 딱히 나쁠 것만 없다면 말이에요.”

모임의 주최자가 보이는 호의를 굳이 곡해해서 받아들일 사람은 없었는지, 모두가 웃으며 유진이 안겨 주는 한 뭉치의 건강식품을 부담 없이 받아들였다.

“사실 조금 더 효과적인 제품들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세 분께 제공해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더 효과적인 제품이라? 그거 무척 관심이 가는군요.”

어느덧 80을 넘어서고 있는 세 노인은 유진의 말에 상당히 솔깃한 표정을 감추지 못한다.

미국의 대통령에 비해서는 아직 젊다고는 하지만, 사실 세 사람 모두 이제 은퇴를 하고도 남을 나이가 아니던가?

비단 대통령이나 이 자리에 모인 세 사람뿐이 아니다. 민주당 의원이며 하원의원장을 역임하고 있는 인물은 심지어 이들보다 다섯 살이나 많지만 여전히 현역이었다.

미국의 정치권에서 70이 넘는 이가 활동하는 건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일이고, 80을 넘는 이들도 종종 보일 정도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제가 투자한 바이오 관련 기업들이 꽤 있답니다. 그리고 그중에는 상당히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는 곳도 적지 않지요.”

“하기는 최근 의약 기술의 발전이 정말 눈부시기는 하지요.”

“맞습니다. 세놀리틱스만 해도 상당한 기대가 되고 있어요. 혹시 유진이 투자한 기업도 그쪽 분야인가요?”

“시르투인 활성화제도 유망하다고 하더군요.”

그저 운만 띄웠을 뿐인데도 노인들은 미국과 세계의 정세를 크게 뒤흔들 중대한 논의를 하고 있을 때보다 더 열정적으로 입을 열고 있었다.

“물론 그 두 가지 분야 모두 투자를 이어 가고 있습니다. 저 자신도 그렇지만, 사실 저도 부모님이 계시니 신경이 쓰이는 게 사실이지요. 조금 전 멜로니 위원장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세놀리틱스 관련 연구가 노화에 아주 효과적인 솔루션이 되리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과연 그렇군요.”

"“진이 그렇게 말한다면 한 번 기대해 봐도 좋겠군요.”

“맞아요. 포커는 잘 못 해도, 투자에서라면 세상 누구보다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닙니까?”

노인들은 벌써 기대감으로 가득해 보였다.

“아마도 조만간 여러분께 좋은 소식을 들려 드릴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마 얼마 뒤에는 여러분 모두가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젊어지실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 날이 과연 오기는 할까요?”

쉬머 의원이 조금 아쉽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류가 노화를 이겨 낼 수 있는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일이다.

특히 노화 방지 약물 분야는 눈부신 속도로 발전해 노화를 치유가 가능한 질병으로 새롭게 정의 내리며, 약물을 복용하는 것만으로 더 오랜 시간 젊음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인간에게 주고 있다.

그러나 당장 80이 넘는 세 사람에게 있어서 이런 의학 기술의 발전은 어떤 면에서는 조바심이 날 만큼 느리기만 할 뿐이다.

아무리 빠르게 기술이 발전한다 해도, 세 사람의 건강이 그때까지 버텨 줄 거라 확신하기에는 시간이 그리 녹록한 상대가 아닌 까닭이다.

“인공 지능 기술의 발전 덕분에 신약 개발에 필요한 시간이 엄청나게 줄어들었습니다. 10년 전 같으면 적어도 몇 년의 분석이 필요했을 일을 요즘에는 겨우 하루 만에 끝내 버리고는 하지요.”

“아, 확실히 그런 면이 있기는 하지요.”

“거기다 AI 알고리즘을 통해 대규모 화합물 라이브러리를 선별하고 어떤 화합물이 수명 연장과 노화 관련 질병 예방에 가장 효과적인지 계속해서 분석하고 있습니다. 노화 및 노화 관련 질병에 대한 예측 모델을 만드는 것도 인공지능이 하는 일이지요.”

“혹시 우리가 받은 이 건강식품도 그런 종류의 것인가요?”

조용히 대화를 듣고 있던 조셉 굿맨 비서실장이 물었다.

짐짓 점잖게 물어 오고 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어떤 기대감이 서려 있었다.

그리고 다른 두 사람 또한 열망이 그득한 눈빛으로 유진의 대답을 기다렸다. 유진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으리라는 심사였을 것이다.

“아쉽게도 이건 그저 건강식품에 불과하답니다.”

“아아. 그렇군요.”

굿맨 비서실장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는데, 실망을 드러낸 쪽은 멜로니 위원장이었다.

“조만간 좋은 소식이 들려오리라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 임상 실험 중이라서 말입니다. 특히 텔로머라제 활성화제는 지금 2상까지 가 있는데, 징후가 무척 좋습니다.”

“전부 끝나려면 아직 몇 년은 더 필요하겠군요.”

노인들에게 시간은 같은 편이 아니다. 젊은 사람들에게야 몇 년 정도야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는 시간이겠지만, 적어도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이들에게 몇 년이라는 시간은 어쩌면 이미 늦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유진이 선물한 건강식품이 최신 노화 방지, 치료 약물과 연관성이 없다는 사실에, 잔뜩 기대에 차 있던 세 노인의 얼굴에는 실망감이 드리워졌다. 이래서야 말을 꺼내지 않느니만 못할 것 같았다.

“FDA 승인을 받으려면 아직 한참 남아 있겠군요.”

“그런데 반드시 FDA 승인을 기다릴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유진의 이어지는 말에 세 노인은 다시 눈을 빛낸다.

“최근 한국에서는 바이오 분야에 대한 투자가 아주 거세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투자에 발맞춰 정부에서도 노화 관련 분야에 대한 규제에 꽤 전향적인 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80이 넘으신 분들이 새로운 의약품의 임상시험에 좀 더 쉽게 참여할 수 있게 한 거지요.”

물론 거세게 일어나고 있는 투자는 전부 유진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고, 당연히 정부의 전향적인 정책이라는 것도 유진의 투자를 위한 것이다.

“오! 그거 괜찮군요.”

“솔직히 우리 나이쯤 되면 한 번쯤은 그런 도박에 눈이 가기 마련이지요.”

불치병 환자들에게 있어 아직 승인을 받지 못한 신약의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한 가닥의 구명줄과 비견될 만하다.

노화라는 치명적인 질병을 겪고 있는 노인들이 오히려 엄청난 큰돈을 내고서라도 노화 방지를 위한 시험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유진은 미국과 유럽의 몇몇 의약 벤처 기업에 큰 투자를 하고, 그 기업들의 협력 연구 센터를 한국에 세웠다.

유럽과 미국에서 진행 중인 연구 개발은 한국에서도 동시에 진행되며, 그중 몇 가지 약물은 한국에서 임상시험을 하도록 만든 것이다.

물론 그 몇 가지 약물이란 것은 지난 삶에서 유진이 흔히 접했던 노화 방지 약물 시장의 승자들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의약품이 노화 방지에 성공할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유진은 어떤 약품들이 인류의 건강과 노화 방지에 크게 기여할 것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세 분께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군요. 언제 한 번 시간을 내셔서 한국에 방문해 보시는 건 어떠실까요?”

“한국 방문이라…….”

“그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유진의 말에 세 노인은 금세 솔깃한 표정이 되었다.

아직 미국에서는 임상시험 중이지만, 한국에서라면 노화에 큰 효과가 있는 약물을 먼저 접할 수 있다는 말에 관심이 가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최근 한국 쪽 연구소에서 아주 특별한 일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특별한 일이라니요?”

유진이 이날 세 노인을 초대한 것은 그저 그네들에게 고가의 와인을 대접하고, 건강 보조 식품을 선물하려는 목적이 전부는 아니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리려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비밀을 지켜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물론이지요.”

세 노인이 접하는 정보들은 대개 외부에 섣불리 알려지기에는 너무나도 민감한 문제인 경우가 많았고, 그 때문에 유진이 그런 말을 꺼냈을 때도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다.

“북한에 장수 연구소라는 기관이 있습니다.”

“장수 연구소라고요?”

세 노인 모두 처음 듣는다는 표정이다. 한국에 있어서야 북한 문제가 무척 중요한 일이지만, 미국의 파워피플들에게 있어서는 그 중요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북한 지도자의 수명 연장을 위해 설립된 곳입니다. 서방의 최신 의료 기술을 도입하고 민주주의 세계에서는 감히 꿈도 꾸기 어려울 인체 실험을 거듭해 꽤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하더군요.”

유진은 이날 이 노인들을 모은 이유이자 가장 중요한 주제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 *

“장수 연구소 책임 연구원이 지금 칭다오에 있습니다.”

얼마 전, 아메리카 비즈니스 센터의 존 오웬 브레넌이 희소식을 알려 왔다.

“칭다오에 있는 중국 의약 기업에 몇 가지 실험을 의뢰하기 위해 와 있다는군요. 우리 쪽 사람들과는 이미 접촉을 끝냈습니다. 그쪽에서도 우리의 제안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브래넌에게 임무를 맡긴 뒤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던 일인데, 존 브래넌은 생각보다 빠르게 유진의 요구에 대한 답을 가지고 왔다.

“상당한 관심이라면, 망명할 의사가 있다는 건가요?”

“요구 조건을 들어준다면 당장이라도 넘어올 것 같습니다.”

그리고 브래넌의 일 처리는 빠른 속도만큼이나 그 성과도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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