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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325화 (325/363)

325화 원초적 욕망

“아직도 의약품 개발을 위해 무고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인체 실험을 하고 있다니 놀랍군요. 이 비열한 행위에 대해 북한의 정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할 겁니다.”

유진의 말을 듣고 난 로버트 쉬머 상원의원이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1세기 전에나 있었던 일이 지금까지도 벌어지고 있다니,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에요. 나치가 벌이던 행위와 하나도 다를 게 없군요. 미국은 이런 무참한 인권 침해를 용납할 수 없어요.”

뒤이어 멀로니 위원장도 동참했다.

사실 사람을 대상으로 인체 실험을 벌인 장본인이 유독 나치만은 아니다. 전쟁 당시의 일본도 그랬고, 전후 미국도 여전히 그러한 행위를 수십 년 동안이나 이어 왔다.

물론 유진은 그 사실을 이 자리에서 거론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그 연구원이 해당 행위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까?”

굿맨 비서실장이 신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습니다. 아주 일부분의 자료는 넘겨받았습니다. 하지만 더 명확한 증거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받아야 넘겨줄 수 있다고 합니다.”

“자신의 처남을 무척 아끼는 모양이로군요?”

유진이 존 브래넌에게 했던 것과 비슷한 질문이 돌아왔다.

“그렇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가깝게 지낸 사이였고, 무엇보다 부인에게 남겨진 유일한 가족이니 그런 듯합니다. 부인을 무척이나 사랑하는 모양이더군요.”

“멋진 사랑이로군요.”

연구원이 자신의 부인과 처남을 위해 감행하고 있는 행동이 무척 로맨틱해 보였던 모양인지, 세 권력자들은 그가 미국에 꽤 무리한 요구를 해 오고 있음에도 그다지 분노하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주고 싶군요.”

특히 멀로니 위원장이 가장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사실 이 세 노인이 그런 태도를 보이는 원인이 정말로 인권 침해 때문인지, 혹은 연구원이 지니고 있다는 라파마이신의 노화 방지 효과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도 그 두 가지 이유가 섞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중 어느 한쪽으로 추가 기울어져 있을 것이라는 예상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태평양 함대가 동해로 들어서려면 고려해야 할 것들이 꽤 많습니다.”

조셉 굿맨 비서실장이 우려를 드러냈다. 자리에 모인 세 인물 중 그가 가장 냉철한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그렇기는 하지요. 중국과 러시아 모두 긴장 태세로 들어갈 겁니다. 전쟁이 끝난 이후로 양국은 국경선은 물론이고 동해에서도 적지 않은 긴장을 유지하고 있으니까요.”

“태평양 함대가 동해로 들어가면 의회에서도 그에 관해 물어보지 않을 수 없어요.”

“일이 잘 풀린다면 다행이지만, 혹시라도 그렇게까지 했는데 실패한다면 백악관에 큰 부담이 될 겁니다.”

“저희 측 예상으로는 그렇게 힘든 일이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시간만 정확하게 지켜준다면 성공 확률이 70% 이상이라고 하더군요.”

존 브래넌의 계산으로는 그랬다.

“실패할 확률도 상당히 높다는 말이로군요.”

백악관의 책임 문제에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는 굿맨 비서실장의 얼굴이 가장 굳어져 있었다.

그에 비해 일이 잘못되더라도 의회에서 책임을 추궁하게 될 위치인 두 명의 정치인은 그다지 큰 부담이 없었다.

“그 연구원은 라파마이신뿐만 아니라 장수연구소에서 진행 중인 다양한 연구 자료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유진은 장수연구소가 중국의 의료 연구 기관을 통해 전해 받은 다양한 첨단 의학 연구 자료를 토대로 인체 실험을 통해 얻어 낸 성과가 상당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 대부분이 노화에 관련된 솔루션이라는 것도 말이다.

그럴 때마다 세 노인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욕망이 번뜩였다.

유진은 그 세 사람이 아주 훌륭한 인격자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건강과 장수에 대한 욕망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원초적인 욕구라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 연구 결과를 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었을지 상상하기조차 싫군요.”

“맞는 말이에요. 그 연구원의 말이 사실이라면 북한 정부는 이 사태에 대해 궁극적이고 무한한 책임을 져야 할 겁니다.”

그러나 유진은 북한이 그 사태에 대해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을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중동과는 다르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이라크와 이란까지 거침없이 무력적인 제재를 가하며 구렁텅이로 몰아넣었지만, 북한에 대해서는 경제제재 외에는 어떤 물리적인 타격도 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이 모여 있는 동북아시아의 상황이 중동과는 너무도 판이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 또한 마찬가지이다. 민간인이나 정치 사범을 대상으로 하는 인체 실험은 국제 사회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한 일이지만,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하면서까지 북한에 대해 무력 침공이나 여타 물리적인 타격을 감행할 리는 전혀 없다.

더군다나 장수연구소에서 얻어 낸 성과를 이 자리에 모인 권력자들과 또 다른 파워피플들이 향유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까지는 수면 아래에 남겨두어야 한다.

“그 연구원은 미국으로 망명하기를 원합니까?”

쉬머 의원이 중요한 문제를 물어 왔다.

“적어도 대한민국과 중국, 러시아, 미국, 일본은 피하고 싶다는군요. 하지만 북한과 관련이 없는 제3국이라면 어디라도 상관없다고 합니다.”

사실 이건 그 연구원의 요구라기보다는 유진이 그에게 제시한 조건이다.

북한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나라는 정치적으로 좋은 선택이 아니고, 미국은 더더욱 좋지 못하다.

유진이 연구원을 빼돌린 것은 연구 성과를 얻어 내기 위해서였지, 당장 인권 문제를 해결하려는 목적은 아니다.

미국으로 들어온다면 그가 지니고 온 연구 성과를 미 정부와 나누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온갖 윤리적 문제 때문에 그 연구 성과를 실질적으로 사용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소모될 것이다.

“그쪽이 나을 수도 있겠군요.”

이 자리에 모인 노인들은 금세 유진의 의도를 이해했다. 심지어 더 나아가 찬성하는 모습이었다.

“가능하다면 도움이 되고 싶군요.”

잠시 논의가 더 이어지고 나서 쉬머 상원의원이 결론을 지었다.

상원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쉬머 의원이 그렇게 나서 준다면 문제의 절반은 해결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백악관에서 이 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해 봐야겠습니다.”

쉬머 의원의 태도를 본 비서실장도 찬성의 뜻을 밝혔다.

“모쪼록 일이 잘 풀렸으면 좋겠군요. 이런 문제를 흐지부지 넘길 수는 없어요.”

멀로니 위원장은 마지막까지 그들의 결단이 인권 문제 때문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그래도 코리안 진생 역시 나쁘지는 않습니다. 세 분의 건강에 꽤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세 노인을 부른 목적을 달성한 유진이 웃으며 말했다.

“동양의 신비를 한 번쯤은 믿어보고 싶군요. 요즘은 전과 달라서 이렇게 하루를 꼬박 놀고 나면 피로가 몰려오거든요.”

멀로니 위원장은 유진이 건네준 건강식품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이 아니라 얼마 뒤에 받게 될 선물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나 미국 태평양 함대가 느닷없이 한국 해군과 함께 동해에서 긴급 훈련을 한다는 소식이 뉴스를 탔다.

언제나처럼 북한의 미사일 실험에 대비한다는 명분이었다.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과 러시아에서도 미국의 군사 행동에 대해 성토하며 나섰고, 한동안 동북아에서는 상당한 긴장감이 유지되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북한은 미 해군이 동해상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미사일 발사를 멈추었고, 태평양 함대는 무력시위라도 하듯 북한 영해 근처에서 다양한 훈련을 연출했다.

유진은 중국의 지도자와 러시아의 새로운 대통령을 상대로 미국의 군사 행동이 결코 중국이나 러시아를 대상으로 한 행동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고, 두 사람의 투자 계좌를 조금씩 늘려 주는 서비스도 잊지 않았다.

중국과 러시아의 새로운 지도자들은 지금도 충분히 부자 소리를 듣고도 남을 자산을 보유하고 있지만, 돈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던가?

두 사람 모두 유진의 선물에 무척 기꺼워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태평양 함대가 자국의 영해 가까이에서 그렇게 머무는 것을 반기지는 않았다.

“작전은 성공했습니다.”

그 며칠 뒤 존 브래넌이 보고해 오고 나서야 유진은 며칠 동안의 노고에 대한 보상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 처남은 무사한가요?”

“예. 그동안 상당히 고생한 모양인지 건강 상태가 좋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생명에 위협을 받을 정도는 아닙니다.”

“연구원 가족과의 상봉은 무사히 마쳤습니까?”

“그건 아닙니다. 연구원 가족은 지금 중국 남부에 있고, 처남은 러시아로 넘어갔습니다. 가족 상봉은 조금 뒤로 미루어야 할 듯합니다. 브라질에서 말입니다.”

이후 연구원 가족은 국경을 통해 베트남으로 넘어가 다시 몇 곳을 거쳐 브라질로 가는 아주 긴 여정을 거쳤다.

처남 역시도 러시아와 유럽 대륙을 횡단해 스페인에서 브라질까지 꽤 오랜 시간의 여정을 이어 가야 했다.

그렇게 서로 다른 루트를 이동한 끝에 마침내 브라질에 마련된 가족들을 위한 안락한 은신처에 도착하고 나서야, 연구원은 지니고 나온 자료들을 전부 넘겨주었다.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새로운 인삼 음료입니다.”

다시 몇 달이 지난 뒤, 유지은 세 노인을 다시 초대해 비슷한 만찬회를 열어 주었다.

그날처럼 세 노인과 같은 해에 만들어진 고가의 포도주를 준비했고, 지난번처럼 포커 게임에서 멋진 패배를 이어 갔다.

몇몇 현안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고, 만찬의 마지막은 세 사람을 위해 준비한 아주 멋진 선물 증정 시간이었다.

“지난번에 주신 건강식품은 상당히 효과가 좋더군요. 하루에 한 번씩은 꼭 마시고 집을 나서고 있지요.”

쉬머 의원은 몇 달 전에 비해 훨씬 더 늙어 보이는 얼굴로 말했다.

“갈수록 힘이 모자라고 있어요. 솔직히 이제는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슬슬 물러나는 걸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은데, 각하께서 놓아주시질 않는군요.”

여든의 굿맨 비서실장은 자신보다 몇 살이나 더 많은 상사가 의욕적으로 일하고 있는데 혼자만 사임하기 부담된다며 힘들게 웃어 보였다.

“사실 나도 마찬가지예요. 당내에서 이제 자리를 비켜 주었으면 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어요. 슬슬 그래야 할까 봐요.”

몇 달 동안 또 아주 많은 일이 있었다. 특히나 세계 최강대국의 수많은 현황에 책임을 지고 있는 세 노인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버거워 보였다.

아쉽게도 그 세 사람에게 현대 의학은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조금 특별한 걸 첨가했습니다. 브라질의 연구소에서 꽤 좋은 성분을 찾아 내었다고 하더군요. 아마존에는 아직 현대인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의 신비가 가득한 모양입니다.”

유진이 세 노인에게 선물을 전달하며 능청스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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