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327화 (327/363)

327화 남쪽으로

“와! 요트라는 게 엄청나게 호화스러운 거구나. 지금까지 우리가 머물던 고급 호텔보다 더 화려해.”

“그러니까 말이야. 배에 딸린 방이 우리 사는 아파트보다 크잖아?”

이제 막 스무 살이나 넘었을 만한 젊은 사내 여남은 명이 한눈에 보기에도 화려한 선실의 응접실에 둘러앉아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말처럼 요트에 마련된 객실은 고급 호텔의 스위트 룸 못지않은 규모였다.

어지간한 대형 아파트 거실에 비견될 정도로 넓은 응접실에, 방도 여러 개가 딸려 있다.

이 요트에는 이런 객실이 무려 수십 개나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게? 배에 탈 때 봤는데, 무슨 유조선? 그런 것처럼 말도 안 되게 크더라고. 여하튼 끝이 안 보였다니까.”

“요트가 아니라 무슨 항공모함 같네.”

젊은 사내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창호가 객실에서 내려다보이는 선체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지간한 경항모보다 커요. 항공모함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가 맞아요.”

일행 중 제일 어린 수창이 대답했다.

“경함모?”

“항공모함도 크기에 따라 등급이 있거든요. 보통 7만 톤 이하의 항공모함을 경함모라고 해요. 이 배의 전장은 312m니까 옛날 세계 최대의 전함이던 야마토보다도 50미터나 더 길어요.”

“역시 오타쿠답네.”

일행들은 아직 군대도 가지 않은 수창이 열렬한 밀리터리 오타쿠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이제 갓 스물을 넘은 수창은 앞으로 10년쯤 뒤에나 입대할 생각이지만, 여건만 주어진다면 해군에 들어가고 싶어 할 만큼 군함 같은 것에 대해 엄청난 관심을 두고 있었다.

“대체 이런 배는 얼마나 하는 거야?”

“제가 알기로는 건조 비용이 50억 달러라고 들었어요.”

자기가 좋아하는 주제에 대해서라면 아주 디테일한 것까지 찾아보는 것이 오타쿠의 기질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창은 오타쿠라는 평을 듣기에 조금의 모자람도 없었다.

“50억? 그게 한국 돈으로 얼마야…… 5조 원? 미친 거 아니야? 아, 아니. 강 회장님이 미쳤다는 게 아니라…….”

“솔직히 강 회장님만 아니라면 미쳤다는 말이 나올 만하지 뭐. 배 한 척이 어지간한 대기업 가격이잖아?”

물론 지금 시점에서 이렇게 엄청난 액수를 배 한 척 건조하는 비용으로 쓸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세상에서 유진 한 명뿐일 것이다.

“이 호프 호는 정말 조선 역사상 엄청난 위업이에요.”

수찬이 다시 신이 나서 말한다.

“이 배가 엄청난 위업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배에 우리가 탄 건 진짜 대단한 일은 맞는 거 같다.”

“진짜 그렇다니까. 한국에 아이돌 그룹이 몇 개인데, 아마 이 배에 탄 건 우리가 처음일걸?”

“그것도 맞아요. 호프 호가 건조되고 대양에 나간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그러니까 아이돌 그룹 중에 이 배에 탄 건 우리가 처음이죠. 흐흐흐.”

2026년 화창한 봄날, 유진의 두 번째 요트가 대서양 서쪽 아메리카 대륙의 연안을 따라 남하하고 있었다.

희망이라는 다소 소박한 이름이 붙여진 300미터에 달하는 초대형 요트에는 유진 자신은 물론이고, 미국의 저명한 사업가들과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왔던 예술인들까지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특히 최근 남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한 보이 그룹 멤버들도 운 좋게 배의 한쪽을 차지할 수 있었다.

“진짜 운이 좋았어요. 이렇게 거대한 요트는 아마 앞으로도 한동안 다시는 만들어지지 않을 거예요.”

배에 오르고 가장 신이 난 사람은 수창이었다. 다른 멤버들은 고된 미국 투어에서 지친 몸을 쉬일 수 있다는 정도로 이번 항해를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수창은 세계 제일의 부자이며,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배에 탈 수 있다는 사실이 훨씬 더 중요했다.

“어제 한 바퀴 돌아봤는데 저기 끝에서 끝까지 걸어가는 데에만 6분이 걸리더라. 진짜 무지하게 큰 배야.”

“그러니까요. 이렇게 엄청난 배를 만들 생각을 하다니, 역시 강 회장님은 남다르시네요.”

“그런데 그런 부자가 타는 배면 좀 위험하지 않나? 왜 그런 거 있잖아? 해적 같은 게 아직도 있다며?”

“해적은 아니라도 테러리스트라든지, 나쁜 나라 해군이 공격이라도 하면 어떻게 하지? 강 회장님을 노리는 사람이 없지는 않을 거 아니야?”

“맞아! 나도 카리브해에 해적이 아직도 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 있어. 그리고 여긴 마약 밀매하는 카르텔도 많잖아.”

멤버들의 이야기는 어느새 이 배가 항해하고 있는 카리브해에서 콜롬비아와 브라질에 이르기까지 남미의 대다수 국가에서 창궐하고 있는 범죄 조직에 관한 이야기로 흘러가고 있었다.

물론 그런 일은 없을 테지만, 아무래도 부자의 몸값을 노린 겁 없는 해적이나 범죄자가 전혀 없으리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어제 여기 승무원한테 들은 이야기인데요. 이 배가 미국 영해를 떠나면, 주변에 꼭 잠수함이 함께 간대요.”

막내가 다시 신이 나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잠수함? 호위로 잠수함이 있다는 거야? 그런데 호위라면 무장을 했다는 말인데?”

“당연히 무장했겠지. 세계 제일가는 부자인데. 이렇게 항공모함 같은 배도 있는데 잠수함이 대수인가?”

“그런 잠수함 말고요. 미국 대서양 함대의 진짜 잠수함 말이에요.”

“미국 해군?”

“네. 미국 해군은 전 세계 바다를 지배하고 있잖아요. 이 배가 어딜 가도 미 해군 잠수함이나 때로는 순양함 같은 게 같이 다니며 호위해 준대요.”

막내의 들뜬 설명에 다른 이들의 입이 벌어진다.

“그게 말이 돼? 아무리 그래도 해군이 민간인의 요트를 호위한다니?”

“그래서 보통은 원래 해군 함선이 항해 계획이 있을 때 함께 움직인다더라고요. 하지만 실제로는 해군에서 계획을 이 배 일정에 맞춰서 편의를 봐준다고 해요.”

“진짜 엄청나네. 아, 강 회장님이 대단하신 분이라는 건 당연히 잘 알지만……. 미 해군이라니.”

“이번에는 제4함대의 순양함과 핵잠수함이 근처에 있다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미국과 전쟁을 벌이고 싶은 나라 정도가 아니라면 이 배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못할 거예요.”

“그거…… 참 굉장하네.”

“그죠? 그죠?”

수창은 다른 멤버들이 조금 다른 의미로 굉장하다고 하는 것도 모르고 연신 신이 나 있었다.

“타이콘데로가급 순양함이라고 하더라고요. 세상에, 타이콘데로가급 순양함이라니. 그것도 꼭 한 번 가까이서 보고 싶은데 말이에요.”

“어, 그래……. 그런데 상파울로 공연부터는 꽤 힘들어지겠지?”

하지만 다른 멤버들은 수창이 떠들고 있는 무슨 전함이니 순양함이니 하는 것들에 관해서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기에, 그들은 수창을 빼놓고 다른 주제로 대화를 돌려 버렸다.

“아무래도 그렇죠. 남미 쪽 관객들이 워낙 열정적이니까요.”

“그것도 그거지만 호텔도 그다지 안전하지 못하다잖아. 지난번에 브라질 투어 다녀온 알파세븐의 기훈이 형이 그러는데, 호텔에서 쉬고 있는데 카르텔에서 왔다는 흑형들이 호텔 방 문을 두드리고 자기들이랑 어딜 가자고 그러더래. 허리에다 총까지 차고 있었다더라.”

“뭐? 총?”

“경찰에 전화해서 경찰들이 올 때까지 침대 밑에 숨어 있었는데, 무서워 죽는 줄 알았대. 공연하면서도 그 카르텔이 총이라도 쏠까 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더라.”

다른 멤버들이 놀라면서도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알파세븐 기훈이? 걔 원래 좀 허풍이 심하잖아?”

“그렇기는 해도 그 형 말고 휘찬이도 비슷한 말을 하더라고. 자기는 방문을 안 열어서 못 봤는데, 진짜로 한 시간도 넘게 방문을 두들겼대. 거기 5성급 호텔인데 말이야.”

“하아, 진짜. 왜 벌써 그런 소리를 하고 그래? 무섭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브라질의 카르텔은 멕시코처럼 그렇게 막 나가지는 않으니까.”

맏형인 창호가 그다지 위로가 되지 않을 소리로 멤버들을 다독였다.

“사장님이 그러셨는데, 이번 우리 투어에 브라질 경찰이 굉장히 협조적이래요. 공연장에 경찰이 상당히 투입될 예정이라고 하더라고요.”

둘째인 한빈이 그나마 나은 소리를 했다.

“근데 영화에서 보니까 브라질 경찰은 사실상 카르텔이랑 한패라고 하던데. 부패도 장난 아니고. 브라질 경찰이 워낙 난폭해서 매년 수천 명씩 사살하고 그런다는 소리도 들었어.”

그런데 막내가 다시 일행을 침울하게 만들 소리를 한다.

“하아, 넌 눈치가 어쩜 그렇게 없냐?”

참다못한 리더가 결국 구박을 하고야 말았다.

“아니. 그냥 그렇다고요. 진짜인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큰 문제는 없을 거야. 이번엔 강 회장님도 함께 가는 거잖아? 브라질 정부도 생각이 있다면 강 회장님이 계신 동안에 우리한테 문제가 생기게 손을 놓고 있지는 않겠지.”

그나마 눈치 빠른 둘째가 다시 수습하며 나섰다.

“그러겠지?”

리더가 둘째의 말에 반색하며 맞장구를 쳤다. 괜히 투어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멤버들이 겁을 먹으면 공연에 문제가 생길 것이 눈에 훤했다.

“그런데 우리만 이렇게 호화로운 요트로 가니 조금 미안하네.”

둘째가 재빠르게 다시 화제를 돌렸다.

“실장님이랑은 지금쯤 상파울로에 도착했으려나?”

“그러게. 전화 한번 해 볼까?”

이번 북미와 남미 공연에 동원된 스태프들은 무려 100여 명에 달한다.

스태프들은 비행기를 타고 현지로 날아갔으니 지금쯤 공연 준비에 한창일 것이다.

사실 아이돌 그룹의 남미 공연은 그렇게 크게 수익이 나는 것은 아니다.

투어를 위해 동원되는 인원은 많고 비용은 많이 드는 데 비해, 남미의 공연 수입은 북미나 유럽에 비하면 훨씬 적은 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굳이 남아메리카까지 찾아가는 것은 단순한 손익 계산보다 앞을 내다보고 더 많은 팬을 확보하려는 의미에서였다.

더군다나 최근 들어서는 국내 기업들이 이런 아이돌 그룹의 해외 공연에 점점 더 많은 협찬을 해 주고 있어, 이제는 제법 수익성을 고려할 만한 수준에 다다르고 있었다.

물론 그 스폰서를 해 주는 기업은 대개 제일 그룹이나 다산 그룹처럼 유진의 영향권 아래 있는 기업들이다.

이는 다분히 유진의 의도가 반영된 행보였다. 유진은 한국의 아이돌을 비롯한 예술가들이 세계 사람들의 더 많은 사랑을 받기를 원했다.

그들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한국을 향한 관심도 높아질 것이고, 더불어 한국 자체에 대한 호감도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궁극적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인 유진 자신에 대한 호의로 돌아올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악착같이 세계 금융 시장의 여윳돈을 긁어모으고 있는 유진으로서는 이렇게 아이돌이나 배우, 그리고 가수들의 해외 진출에 쓰는 비용이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그들의 통해 세계인들이 자신에게 갖는 호감을 아주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다면 매년 몇십억 달러의 지출은 오히려 기꺼울 뿐이다.

“그런데 이 배에 강 회장님 말고 다른 유명한 사람들도 꽤 많이 탄 것 같더라.”

리더의 구박을 받고 잠시 시무룩하던 막내가 다시 발랄하게 입을 열었다.

배에 타자마자 다른 멤버들과 달리 뽈뽈거리며 여기저기 돌아다닌 막내는 선내의 승무원들과 금세 친해졌고, 덕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잔뜩 들었다고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