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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329화 (329/363)

329화 공동통화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냐. 근데 그러겠냐? 강 회장님 보러 왔겠지.”

“그러게요. 히히.”

“실없는 소리들 하지 말고 내려가자. 아마 지금 내릴 사람은 우리뿐인 모양이다. 다른 사람들은 여기 호텔 이용 안 한다더라.”

리더의 말에 보이 그룹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는 이렇게 좋은 요트가 있는데, 뭐 하러 호텔에 가겠어요?”

“우리도 그냥 여기 있으면 안 되나?”

멤버들은 먼저 도착한 스태프들이 기다리는 호텔로 가야 한다는 게 너무나도 아쉬운 모양이었다.

“시끄러워. 빨리 내려가기나 하라고.”

일행은 천천히 요트를 내려섰다.

“와아아!”

그리고 일행은 그들을 향해 일제히 달려오는 엄청난 수의 군중에 압도되었다.

다행히 기다리고 있던 경찰들이 군중들과 아이돌 일행 사이를 갈라놓지 않았다면 상당한 고역을 치렀을 것이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그러니까 말이야!”

“빨리 이리로 와! 뭣들 하는 거야? 꾸물거리지 말고!”

그리고 다시 일행은 친숙한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바로 그들을 담당한 실장이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무슨 일은 무슨 일이야? 다 너희들 때문이지.”

“우리가 뭘요?”

“너희 인기가 이렇게까지 엄청날 줄은 나도 몰랐다야.”

“네? 저 사람들이 전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고요?”

“그래. 다 너희 팬들이다. 흐흐.”

실장은 일행들을 데리고 요령껏 군중을 빠져나가면서도 웃음을 내려놓지 못했다.

“진짜 무섭네.”

“와! 이번 공연 엄청나게 잘 될 모양이다.”

“지금 공연이 문제가 아니야. 너희 브라질에서 완전 최고라고.”

며칠 동안 배를 타고 오면서도 이런 일은 꿈도 꾸지 못한 그들은 아직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대로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 * *

“반갑습니다. 유진.”

브라질 역사상 첫 3선 대통령이자 브라질 국민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대통령은 유진을 만나기 위해 수도인 브라질리아에서 대서양의 항구 도시인 상파울루까지 날아왔다.

유진이 브라질에 대대적인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겠다는 의도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유진과의 만남을 통해 민심을 모으겠다는 정치적인 의도가 더 커 보였다.

유진으로서도 나쁠 것이 없는 만남이다. 브라질에 대한 투자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터이고, 브라질 정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듣던 대로 굉장한 배로군요.”

룰라 대통령이 압도적인 크기의 요트를 둘러보며 말했다.

몇 년 전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고 대서양에 침몰시켜 버린 브라질의 항공모함도 이보다는 작았으니, 그의 놀라움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것이다.

“드디어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대통령의 오랜 팬이었습니다.”

“오! 당신 같은 사람이 내 팬이라고 해 주니 이거 기쁘기 이를 데 없군요.”

“사실 한국에도 룰라의 팬은 굉장히 많습니다. 아니.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그렇지요. 대통령께선 세계 많은 사람에게 커다란 영감을 준 위대한 분입니다. 팬이 되는 것도 당연하지요.”

“하하. 정말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면 기쁘기 그지없겠어요. 그런데 브라질은 어떠십니까?”

룰라 대통령이 만면에 웃음을 띠며 물었다.

“사실 전 이번 브라질 방문이 처음은 아닙니다. 한국에서 무역 회사에 근무할 때 두어 번 와 봤었지요. 당시 브라질에서 건설 중이던 해양 플랜트 관련 업무 때문에 왔었습니다. 이렇게 10여 년 만에 상파울루를 다시 찾아왔는데, 당시 느꼈던 브라질만의 열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반갑습니다.”

“그렇군요. 거리에 사람들이야 가득하지만, 사실 예전만큼 활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브라질은 아직도 그 고약한 팬데믹의 후유증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남긴 상처는 생각보다 깊었다. 2020년대 중반까지도 아주 많은 나라가 그때 겪은 경제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그동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아나 중국의 시베리아 침공 등 여러 사태가 있었으니 꼭 코로나 때문이라고 말할 수야 없겠지만, 그 시발점을 코로나 사태라고 여기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브라질 국민들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못한 것에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괜찮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우리 국민들은 굉장히 낙천적이랍니다. 이보다 훨씬 더 어려운 시기도 잘 넘겨 왔지요. 하하.”

“그렇죠.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사실 제가 이번에 브라질에 투자하려는 것도 그 때문이고요. 약간의 도움만 있다면 브라질은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여건을 바탕으로 눈부시게 발전하리라 믿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당신의 탁월한 리더십이 함께한다면 말이지요.”

유진은 대화 상대에 대한 립서비스도 잊지 않는다.

“룰라 대통령의 수많은 업적이 지금의 브라질을 만들었고, 또 앞으로도 더욱 나은 브라질을 만들어 갈 거라고 믿습니다.”

사실 아주 많은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룰라 대통령의 정책으로 지난 10여 년 동안 브라질의 중산층이 대거 늘어났다는 사실만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룰라 대통령은 프로그라마 보우사 파밀리아 (Programa Bolsa Família), 한국말로 하면 가족 지원 프로그램 정도의 의미를 지닌 정책을 통해 당시까지 브라질 인구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던 빈민층이 가난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내었다.

룰라의 집권 이전 브라질은 전체 인구의 절반이 절대 빈곤선 아래에 있었지만, 프로그라마 보우사 파밀리아라는 지원 대책이 시행된 이래로 무려 3,000만 명이 절대빈곤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3,000만 명에 달하는 중산층이 새롭게 편입되었다.

이러한 성과로 브라질의 경제는 전보다 한층 탄탄해졌고, 마침내 세계 10대 경제 대국에 당당히 진입할 수 있었다.

“보우사 파밀리아는 다른 빈민 정책과 달리 혜택을 받는 사람이 능동적으로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봅니다. 여전히 세계의 수많은 나라의 국민들이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당신의 이런 정책이 조금 더 널리 활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저의 보우사 파밀리아는 어떤 특허 같은 것도 없으니 필요한 정부가 있다면 얼마든지 가져다 사용해 주면 좋겠군요.”

쉬지 않고 찬사를 내놓은 덕분인지, 룰라의 얼굴이 무척이나 밝아졌다.

“그래서 전 마음 놓고 브라질에 큰 투자를 해 나갈 생각입니다. 적어도 올해 안에 300억 달러를, 그리고 앞으로 10년 동안 비슷한 수준이나 그 이상의 투자를 할 생각이지요.”

이미 유진은 이곳 상파울루 근방에 첨단 의학 단지를 조성하며 100억 달러가 넘는 자금을 투자했다.

그것만으로도 상파울루 정부는 물론이고 연방 정부까지 유진에게 큰 호의를 보내는 중이다.

무엇보다도 다른 대기업들과 달리 브라질의 자원을 노린 것이 아니라 첨단 산업에 대한 투자이기에 더욱 환영받고 있었다.

“참. 이번에 아르헨티나와 논의 중인 문제에 대해 잠깐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유진이 조심스럽게 새로운 용건을 꺼냈다.

“아르헨티나라면 새로운 통화를 말씀하는 거로군요?”

“네. 맞습니다.”

남아메리카의 양대 강대국인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과 아르헨티나의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양국 간의 금융과 상업 거래에 사용할 수 있는 남아메리카 공동통화에 대대 논의하는 중이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기다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만큼 서로 간의 교역 규모 또한 상당한 편이고 상호 무역 액수도 적지 않은 편인데, 당연히 이러한 무역에 있어 기준이 되는 통화로는 달러를 사용하고 있다.

룰라와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교역에서 달러 대신 새로운 통화를 사용할 것을 고민하고 있었다.

두 나라는 이미 오랜 기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서 브라질은 아르헨티나의 최대 교역 국가이고, 아르헨티나는 브라질에게 세 번째로 중요한 교역 국가이다.

두 나라 사이에 매년 오가는 교역 규모가 적지 않은 만큼, 무역에 필요한 달러 또한 막대하다.

만일 새로운 화폐를 발행하게 된다면 두 나라 사이의 교역을 위해 매년 적지 않은 금액에 달하는 달러로 환전하는 비용과 환차손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두 나라, 특히 아르헨티나의 경제가 고질적인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며 아르헨티나 페소의 가치가 매년 수십 퍼센트씩 떨어지는 것을 생각하면, 이 공동 화폐는 아르헨티나에게 있어 너무나도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 공동통화 시도는 단순히 달러에 대한 의존을 낮추는 것뿐 아니라 이 화폐를 통해 양국 사이의 경제 협력과 통합을 촉진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더 나아가서는 아르헨티나와 브라질뿐 아니라 남아메리카 모든 국가가 해당 화폐를 사용해, 남미 전체가 하나의 경제 공동체를 이룩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는 것이다.

만일 그들의 꿈이 이루어진다면 유로화로 통일된 유럽권처럼 세계 경제의 5%에 달하는 거대한 경제권이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렇게 남아메리카 여러 나라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폐에 대한 논의가 이번이 처음인 것은 아니다.

이미 80년대부터 공동 결제 수단에 대해 두 나라는 몇 번이나 협의에 들어갔지만, 아직도 마땅한 해법은 나오지 않고 있다.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경제 규모에 너무나도 커다란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브라질은 이제 세계 10대 경제 대국에 들어갈 정도의 거대한 무역 국가이지만 아르헨티나는 그 20%에도 미치지 못하는 규모이고, 더군다나 수십%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이 더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속내는 이 새로운 통화를 통해 국내의 인플레이션을 잡아 보려는 생각이고 브라질은 두 나라 사이의 교역 장벽을 없앨 요량이라 서로가 비슷한 생각을 지니고 있지만, 두 나라의 경제 규모 때문에 재정·통화 정책 협의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더군다나 두 대통령의 포부처럼 남아메리카 전역에 사용되려면 다른 십여 개 나라들의 경제 상황까지 고려해야 하니 넘어야 할 산은 너무도 많았다.

“그건 아직 구체적인 계획까지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 계획에 저희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지요.”

“도움이라면?”

“현재의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경제력만으로 그러한 거창한 계획을 현실화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을 겁니다.”

“솔직히 그렇기는 합니다. 그렇다고 외국 금융 기관의 도움을 받는 것도 답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룰라는 좌파 성향의 정치인치고는 꽤 시장 개방에 관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뉴욕을 비롯한 금융 자본에 대한 경각심을 놓지는 않고 있었다. 특히 유진처럼 투기 자본이라면 더욱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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