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혼보다 파혼이 낫더라-332화 (332/363)

332화 합종연횡

“남아메리카의 다른 국가들 정부와도 협상 중입니다. 곧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을 겁니다.”

“그거 무척 좋은 소식이로군요.”

이어지는 유진의 말에 데이비드가 반기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멕시코 아래로 이어지는 중남미 대부분의 국민들은 고질적인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자국 통화에 대한 신뢰를 갖지 못하고 있다.

그 때문에 달러에 대한 선호가 높고, 월급을 받을 때마다 바로 모든 돈을 써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은행에 저축해 두면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하락하는 경우가 많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경제 규모가 큰 브라질도 연 10%의 인플레이션쯤은 보통이고, 벌써 몇 번이나 디폴트를 선언한 아르헨티나는 60% 수준이면 선방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하루라도 빨리 필요한 물건을 구매해 버리는 것이 이득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일 수밖에 없는 환경인 것이다.

하지만 달러로 패깅된 암호화폐를 은행에 예치해 놓고 상거래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그런 걱정 없이 편하게 저축을 하고, 금융 상품을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암호화폐 기반의 보험이나 금융 상품을 개발해야겠군요.”

남아메리카 최대의 온라인 은행을 창업한 사람답게, 데이비드는 바로 필요한 것을 생각해 내었다.

“맞습니다. 다양한 상품 개발에 들어가야 할 겁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진 모르겠지만 남아메리카 국제 통화에 대한 대책도 세워야 할 겁니다.”

유진의 계획은 룰라 대통령과 나누었던 공동통화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도 이야기가 된 겁니까?”

“네. 이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으니, 시간문제입니다.”

“좋군요. 당장 프로젝트를 시작해야겠습니다.”

유럽 연합의 유로화처럼 남아메리카 여러 나라에 공통적으로 통용되는 암호화폐가 생기면 일어날 일들이 아주 많다.

그렇게 되면 남아메리카 최대의 온라인 은행인 누뱅크는 적지 않은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금융 상품의 개발도 필요하겠군요. 환율이라든지, 채권 관련 업무도 늘어날 테고…… 당장 필요한 자금이 적지 않을 겁니다.”

데이비드는 누뱅크 최대의 물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세계 제일의 부자인 그는 이번에도 데이비드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자금은 걱정하지 말고 최대한 몸집을 키우는 데 주력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지금까지 상장을 늦춰 오신 이유를 이제 알겠네요.”

남아메리카의 GDP 규모는 대략 6조 달러 수준으로, 일본의 두 배 정도에 달한다.

미국과 중국, 그리고 유럽 연합의 뒤를 잇는 수준이다.

남아메리카 전체를 손아귀에 넣을 수 있다면, 누뱅크의 가치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가 될 것이다.

계속해서 상장이 미뤄지는 동안 몸이 달을 대로 달았던 데이비드이지만, 직접 유진과 만나 설명을 듣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었다.

“예정대로 올해 안에 상장은 이루어질 겁니다.”

물론 그때 즈음이면 남아메리카 공통 화폐라거나, 암호화폐의 활성화에 관한 이야기도 충분히 돌고 있을 터다.

시장은 절대 어리석지 않다. 수많은 분석가가 그런 상황에서 누뱅크가 어느 정도 성장하게 될지 예상을 내놓을 것이고, 누뱅크의 상장 가치는 지금 시장에서 평가하고 있는 것의 몇 배 수준에 이를 것이다.

상장한다고 해서 당장 엄청난 주식이 풀리는 것도 아니다. 주식 대부분은 여전히 유진이 손에 쥐고 있을 예정이고, 그때 즈음 남아메리카 각국 지도자들 또한 각기 적절한 수준의 누뱅크 지분을 들고 있을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 같은 투명한 선진국이 아니라면, 모든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권력자들이 떡고물을 챙기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특히 남아메리카나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같은 곳에서야 더 말할 필요도 없으니, 이번에도 비슷하게 흘러가게 될 것이다.

“이번에 저커버그와 함께 방문했습니다. 조금 있다가 저커버그와도 한번 만나 보도록 하시지요.”

“아! 굉장한 분이 오셨군요. 역시 페이스북 코인 때문이겠지요?”

“맞습니다. 페이스북 코인 활성화의 시작은 이곳 브라질에서부터 시작될 겁니다.”

“우리 아이도 인스타그램에 아주 열정적이랍니다.”

저커버그는 이미 10년도 전부터 페이스북을 통해 유통되는 화폐에 아주 큰 관심을 지니고 있었다.

각국의 화폐와 상관없이 오직 페이스북을 기반으로 유통되는 통화가 있다면 거기서 창출되는 수익이 얼마나 클지는 가늠이 안 될 정도이다.

현재 페이스북의 월간 활성 유저 숫자는 20억 명을 넘어서고, 인스타그램 또한 비슷한 수준이었다.

말하자면 저커버그는 세상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보유한 생태계의 지도자라 볼 수 있다.

이 20억 명에 달하는 유저들이 페이스북 기반의 화폐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엄청난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처음에야 그저 페이스북 기반 활동. 그러니까 게임이나 도네이션 따위에 사용하겠지만, 점차 활용도를 높여 온라인에서 상품을 구매하거나 광고비를 지불하고, 나아가 오프라인에서 결제를 하고 교통비를 낼 때도 사용한다면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페이스북 화폐가 제대로 안착한다면, 급여도 페이스북 코인으로 지급하고, 저축도 페이스북 내에 마련한 금융 센터에서 하는 식의 확장까지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페이스북 유저가 많은 국가에서는 페이스북 코인이 그 나라의 화폐 자체를 대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 그러한 페이스북 코인의 유통은 다시 페이스북 유저를 늘어나게 하고, 페이스북 코인의 유통량을 늘리는 선순환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마침내는 지구 인류 대부분이 페이스북에 가입해 페이스북 코인을 사용하는 기축 통화의 위치까지 바라볼 수도 있다.

가입자 20억 명이 지닌 힘은 그렇게 큰 것이다.

그런 저커버그의 계획이 가져올 파급력이 너무나도 무시무시하기 때문에, 대부분 국가에서는 페이스북이 자체적인 화폐를 유통하는 것에 부정적인 태도를 확실히 했다.

만일 페이스북이 그 계획을 계속 밀어붙인다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금지되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저커버그는 그 장대한 계획을 지니고서도 현실이라는 거대한 벽에 부딪혀 꿈을 접어야 했다.

그가 대신 선택한 미래의 먹거리는 메타버스였고, 지난 몇 년 동안 메타버스 계획에서 말아먹은 천억 달러에 달하는 손실 때문에 상당히 궁지에 몰려있는 상황이다.

만일 유진이 메타의 대주주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저커버그도 진퇴를 놓고 상당히 고심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유진은 언제나처럼 저커버그에게 변치 않는 지지를 보내 왔고, 얼마나 큰 투자를 하건 조금도 브레이크를 걸지 않았다.

그건 저커버그의 유진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려는 이유도 있지만, 그의 계획이 큰 틀에서는 그리 틀리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페이스북 생태계는 여전히 무시무시한 규모입니다.”

“저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요 몇 년 동안 틱톡이나 다른 경쟁자들도 꽤 선전하고 있습니다만, 페이스북만큼 확장성이 높은 SNS도 없지요.”

10대를 중심으로 매년 새롭게 다양한 종류의 SNS가 나오고 있으나, 대개는 동영상 기반의 플랫폼이라는 한계로 확장성에 어느 정도 제한이 있다.

반면 페이스북은 확장성 면에선 유리할 수 있지만, 무척 오랜 시간 운영해 왔기에 중년 이상의 유저들이 사용한다는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지울 수 없다.

하나 생각해 보면 충분한 경제력을 지닌 이들은 대개 청소년이나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대가 아니라 30대 이상의 이용자들이다.

사용자의 대부분이 30대 이상인 것은 어떤 면에서는 페이스북에게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페이스북 코인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화폐를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실제적인 구매력이 높은 유저 층을 폭넓게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다.

“페이스북 코인이 남미에서 유통되기 시작하면, 그걸 책임지는 것은 누뱅크가 맡아야 할 겁니다.”

얼마 후, 저커버그와 데이비드를 함께 모은 자리에서 유진이 선언하듯 말했다. 두 거대 기업의 가장 큰 물주인 만큼 이 정도의 결정은 내릴 수 있다.

“누뱅크라면 신뢰할 수 있습니다.”

저커버그는 배에 오를 때와는 한껏 달라진 흥겨운 태도로 협상에 임했다.

그가 오랜 시간 꿈꿔 오던 페이스북 코인이 비로소 시작할 수 있다는 말에 기운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누뱅크도 페이스북 코인의 유통을 맡게 되서 무척 기쁘군요.”

데이비드도 기꺼운 표정이다. 유진을 만나 받은 선물이 너무나 많다.

“페이스북 코인의 오프라인 결제 시스템에 적지 않은 인력과 자금이 필요할 겁니다.”

페이스북이 가지고 있는 힘은 20억이라는 거대한 유저 수이다.

남아메리카에서 오프라인 암호화폐의 유통이 시작되면 페이스북 코인이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을 거라는 예측은 충분히 신뢰할 수 있다.

“남아메리카 전역에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큰 비용이 들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메타에서도 일정 부분은 수용해야 할 겁니다.”

누뱅크가 가진 무기는 멕시코 이남 중남미에서 가장 큰 영업망을 지닌 금융기관이라는 사실이다. 이미 1억 명 이상의 남미 사람들이 누뱅크의 계좌를 보유하고 있다.

남아메리카 어느 은행도 누뱅크만큼 넓은 지역을 통괄할 능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그러니까 이 새로운 시장에서 페이스북과 누뱅크는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이다. 그런 만큼 협상은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브라질에서 먹는 망고는 역시 맛있군요.”

반면에 두 세계적인 경영자들의 치열한 협상을 지켜보는 유진은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어차피 두 기업 모두 유진이 충분한 지분을 보유한 회사들이다.

페이스북이 더 큰 이익을 보건, 누뱅크가 더 큰 이익을 보건 유진으로서야 상관없는 일이다.

“브라질의 망고는 세계 제일이지요.”

데이비드가 웃으며 자신도 접시에 놓인 망고 한 조각을 들어 입에 넣었다.

“누뱅크가 얻게 될 이익은 남아메리카 5억 명뿐이 아닙니다.”

하지만 주커버그는 조금 더 여유가 없어 보인다. 아마 그가 처한 환경 때문이리라.

“맞습니다. 남아메리카에서 성공하면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로 차례차례 진출해야지요.”

페이스북이 지닌 장점이 여기에서 다시 한번 빛이 난다. 페이스북의 유저는 남아메리카보다 다른 대륙에 훨씬 더 많다.

남아메리카에서의 성공이 증명되면 다시 다른 대륙에서도 비슷한 사업이 이어질 것이고, 그때 페이스북의 몸값은 지금과 많이 다를 것이다.

“온라인 뱅킹에서 누뱅크 이상의 노하우를 지닌 기업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번 암호화폐 유통 사업에서 얻게 될 새로운 노하우 또한 말이지요.”

데이비드도 지지 않는다. 이번 사업이 성공한다면 누뱅크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은행의 자리를 노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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