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5화 위험한 순간
“굉장한 사람이네. 이런 곳에서까지 그렇게 할 수 있다니 대단한걸?”
빠올로라는 작가의 기행에 대해 들은 유성이 관심을 보였다. 사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렇게까지 하지는 못할 것이다.
“예술하는 사람답네.”
“예술하는 사람이라고 다 그런가.”
“뭐. 어쨌든 예술 계통에 있는 사람들은 다른 직업에 비해 훨씬 더 자유롭잖아?”
“그럴까? 세상에서 형보다 더 자유로운 사람도 있을까?”
“내가 자유롭다고 생각해?”
“아닌가? 뭐든 형이 생각하고 형이 결정을 내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잖아?”
“뭐. 그렇게 생각하려무나.”
유진은 여전히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움직이기에는 많은 걸림돌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걸 걷어 내기 위해 한 발 한 발 걸어가고 있을 뿐이다.
* * *
“빠올로는 어떻게 하고 있나?”
“무사히 배에 올랐다고 하더군요.”
상파울루 시에서 내륙으로 200km 들어간 지역에 위치한 캄피나스 시의 외곽에는 차로 수십 분을 달려도 끝이 나지 않을 만큼 광대한 농장이 있다.
그리고 그 농장 한쪽에 유럽풍으로 지어진 거대한 저택에서 한눈에도 부자로 보이는 중장년 사내들이 모여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곤살레스는?”
“지금쯤 배 근처에 접근했을 겁니다.”
“흐음…… 일이 잘 풀릴 것 같은가?”
“뭐. 어찌 될지야 누가 알겠습니까? 오직 신만이 아시겠지요.”
모여 있는 사내들 가운데 피부색이 짙은 사내가 슬쩍 웃으며 말했다.
“지금 적당한 말은 아닌 것 같네.”
저택의 주인이 상대의 경박한 태도에 인상을 쓰며 말한다.
“크게 상관없는 일이라는 거죠. 일이 성공하건 실패하건 말이지요.”
“곤살레스 쪽에서는 의뢰주가 누구인지 모르고 있겠지?”
“우리랑 연결시킬 방법은 하나도 없습니다. 철저하게 익명으로 접촉했으니까요.”
“너무 위험하지 않겠어요?”
조용히 듣고만 있던 가장 젊은 금발의 남자가 끼어들었다.
그의 얼굴에는 아까부터 불안한 기색이 떠나지 않고 있어, 이 계획에 그다지 찬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위험할 거 하나도 없다니까요.”
“정말로 그 배가 침몰하기라도 한다면 국제적인 문제가 될 겁니다. 미국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테고요.”
젊은 사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미국인 듯했다.
“아무리 미국이라고 해도 남의 나라에서 어쩔 건가? 더군다나 곤살레스는 파라과이 혁명군이야. 난리를 쳐도 파라과이에서 쳐야지.”
저택의 주인이 비웃듯 말했다.
“보통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 남자.”
“그래 봤자 그냥 돈푼이나 있는 아시안이지. 흥!”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상당히 곤란해질 거야. 천억 달러의 투자라니. 어처구니없는 소리지. 그렇지 않아도 룰라 때문에 임금이 얼마나 오르고 있는지 알아? 예전보다 두 배를 줘도 남아 있겠다는 사람이 없어. 공장이고 산업 단지고 생기면 지금보다도 사람 구하기가 더 어려워질 거라고.”
“우리 쪽도 마찬가지야. 그건 너도 마찬가지 아닌가? 루이스?”
“그렇기는 하지만…….”
모여 있던 남자들은 입을 모아 불안함을 표출하는 루이스를 공격했다.
“그만, 그만. 여하튼 너무 쓸데없는 걱정은 건강에 좋지 않아. 자유당 쪽에서는 다시 룰라에 대한 공격을 시작할 예정이라더군. 상파울루 시위도 격렬해질 예정이고.”
다시 저택의 주인이 이목을 집중시키고 나서야 사람들은 루이스라는 사내에게서 관심을 돌렸다.
“이대로는 브라질이 무너질 겁니다. 미국 자본에 브라질이 팔려 나가는 일을 두고 볼 수만은 없습니다.”
“맞는 말이야. 산업화라는 게 말은 좋지만, 결국 미국 놈들이 브라질 경제를 손에 넣고 마음대로 흔들겠다는 거잖아.”
다시 이야기는 배의 주인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다.
시간이 지나며 사내들의 말수는 점차 줄어들고, 아까의 루이스 비슷하게 얼굴에 긴장감이 돌기 시작한다.
얼마 남지 않은 거사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정체를 알 수 없는 배가 접근하고 있습니다. 소형 고속선 두 척입니다.”
사건이 일어난 것은 그날 늦은 오후였다. 이미 일과를 마치고 방으로 들어와 휴식을 취하고 있던 유진에게 선장으로부터의 보고가 올라왔다.
“무선을 보내고, 확성기로 소통을 해 보려 시도해도 상대가 대답하지 않습니다. 헬기를 띄우고, 우리 쪽도 고속선을 보냈습니다. 헬기에서 서치라이트를 키고 확성기로 경고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쪽을 향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야?”
선장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보고를 하는 사이, 모니카와 유성이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방으로 들어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배가 우리 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네.”
“대체 뭐 하는 놈들이지?”
“그거야 모르지.”
하지만 유진은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있었다. 무선과 경고에도 불구하고 다가오고 있다는 것은 결코 좋은 징조는 아니다.
“항구에서 떨어져 있는 게 더 위험한 건가?”
“글쎄? 항구에 정박해 있으면 오히려 더 위험할걸?”
요트는 연안에서 몇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바다에 나와 있었다.
항구에 정박해 있다면 외부의 공격을 받기 쉽다는 선장과 경호팀의 의견 때문이다.
워낙 큰 배라 아주 멀리에서도 공격 목표로 삼기 좋다는 것이 이유였다.
100년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여객선이었던 타이타닉보다 60미터나 길고 더 높은 높이를 지니고 있으니, 불순한 생각을 지닌 사람이나 단체가 있다면 배가 보이는 빌딩에서부터 공격을 감행할 수도 있다. 차라리 육지에서 떨어져 있는 편이 안전하다.
사실 미국이라면 몰라도, 남아메리카에 와 있는 이상 어느 정도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갖는 것은 필수적이다.
멕시코 아래로는 지난 100여 년 동안 아주 다양한 무장 세력이 다양한 이유에서 폭력을 목적을 이루기 위한 당연한 수단으로 여겨 왔다.
그나마 브라질은 안전한 편이라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주변 몇몇 나라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지, 이곳도 파헬라를 본거지로 삼은 무시무시한 범죄 조직이 경찰과의 대치를 두려워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화면이 굉장히 선명하고 안 떨리네?”
“제일 전자에서 생산한 카메라인 모양이야. 100배 줌으로 먼 곳을 찍어도 선명하고 흔들리지 않는다더군. 이 배 안에 저런 종류의 카메라가 수백 개도 넘게 설치되어 있어. 저렴하고 성능도 좋으니 아무리 잔뜩 박아 놓아도 부담이 없지.”
“굉장하네. 그럼 어제 파티에서의 모습도 다 찍혔으려나?”
유성이 살짝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위험한 상황인가?”
유진은 동생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선장에게 질문을 던져 본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300미터 근방까지 다가오면 강경하게 대응할 생각입니다.”
“그래도 괜찮겠어?”
대서양 서쪽을 항해하는 것은 그다지 안전하다 할 수는 없다.
특히 미국의 영해를 벗어나면서부터는 어디서 어떤 집단을 만날지 알 수 없기에, 민간 선박 또한 나름의 자위 수단을 갖추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유진이 타고 있는 요트 또한 마찬가지이지만, 그걸 사용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특히 특정 국가의 영해에 들어와 있을 때는 더욱 그러하다.
“지금 연안 경비대에 연락해 놓았습니다. 그쪽 경비선이 출발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쪽 무기 사용에 대해서도 승인을 받았습니다.”
사실상 국빈이나 다름없는 자격으로 와 있기에, 브라질 경찰 측에서도 문제가 생기는 것에 대해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이런. 위험한 것을 꺼냈습니다. 갑판에 무장한 인원들이 총기와 미사일로 보이는 것을 꺼내 들었습니다.”
이어진 보고에 선장의 목소리가 더욱 가라앉았다.
“대응하겠습니다.”
“알아서 하도록 하게.”
더 이상 선장은 보고하지 않는다. 유진에게 보고할 시간에 사태를 처리하는 것이 먼저라는 판단이다.
대신 유진은 방에 놓인 화면을 통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지켜볼 수 있었다.
헬기나 고속선에 부착된 카메라에 찍힌 영상은 실시간으로 선장실로 전송되고, 유진의 방에서도 그걸 고스란히 볼 수 있다.
화면에는 아마도 헬기에서 찍고 있는 듯한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속선 갑판 위 네다섯 명의 사내들이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은 아마도 미사일 발사기로 보이는 기다란 원통을 어깨에 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갑판 위의 사내들이 거의 동시에 귀를 잡고 쓰러지기 시작한다.
“무슨 일이야?”
함께 모니터를 지켜보던 유성이 물었다.
“LRAD입니다.”
경호팀장이 대답했다.
“LRAD?”
“장거리 음향 장치(Long-range acoustic device)입니다. 아무래도 물리적인 피해를 주는 무기를 사용하기는 어려우니까요.”
일종의 음파 무기라고 보면 되었다. 배에는 그 외에도 직접적인 살상의 능력을 지닌 무기가 있었지만, 타국 영해에 있는 상황에서 당장 그걸 사용하기에는 무리였다.
“생각보다 효과적이네?”
“그러네. 듣자마자 바로 쓰러져 버리네.”
유진 형제는 모니터 속 갑판 위의 사내들이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모습을 아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미군에서 사용하고 있는 종류의 것입니다. 시크릿 서비스도 보유하고 있지요. 직접 당하면 상당히 고통스럽습니다.”
경호팀장이 다시 설명을 덧붙였다.
“미군도 저런 걸 사용한다고요?”
“2000년도에 예멘 항에서 미군 함정이 알카에다의 자살 공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처럼 작은 고속정에 폭탄을 가득 싣고 돌진해 들어와 터져 버렸지요. 그때 수십 명에 달하는 희생자가 발생했고, 그 뒤로 해군에서 전격 채용하고 있습니다. 이 배에 설치된 LRAD는 최대 가청 범위가 5km에 달합니다. 물론 저 정도로 사람에게 고통을 주기 위해서는 훨씬 더 짧은 거리가 필요하지만요.”
“예멘 항에서 자살 공격이라고요? 그렇다면 저 배에도 폭탄이 실려 있을 가능성이 있나요?”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 배에 큰일이 벌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경호팀장이 자신 있게 말하니 잔뜩 긴장하고 있던 모니카가 얼굴을 풀며 그제야 조금 마음을 놓았다.
“이 배가 왜 그렇게 비싸겠어? 자폭 테러 같은 것에 위험할 정도면 안 되지.”
유진은 동생이 아니라 모니카의 근심을 덜어 주기 위해 일부러 그런 말을 꺼냈다.
“맞다. 그러고 보니 이지스함 수준의 레이다도 있다면서?”
유성도 눈치 빠르게 형의 말에 대구를 맞춰 준다.
쾅!
폭발음이 들려온 것은 바깥이었지만, 이 방에 있는 모두의 시선은 여전히 모니터에 가 있었다.
조금 전 미사일 패드를 들고 있던 마스크의 남자가 음파 공격으로 쓰러져 허둥대다가 미사일을 쏘아 버린 모양이다.
미사일은 그대로 배 안에서 폭발해 버렸고, 그 작은 함선은 곧 화염에 휩싸였다.
“무섭네요.”
모니카가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미사일이 이 배로 날아왔으면 어떤 참사가 벌어졌을지 상상조차 하기 싫은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