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6화 게릴라 또는 카르텔
“이 정도 배는 미사일 한두 대 맞는다고 큰 문제 생기지 않아.”
“그래도 수리하려면 돈은 꽤 들겠지.”
유진의 말에 유성이 엉뚱한 소리를 꺼내며 다시 모니카를 안심시키려 했다.
“배의 측면이 아니라 갑판 위로 날아왔다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아직 대피하지 못한 손님들도 있을 수 있고요.”
경호팀장의 말에 유성이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
“그보다 이 방을 향해 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 배를 노리고 오고 있다기보다는 이 배의 주인을 노리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모니카가 말했다.
“이 방 유리는 어지간한 폭발은 견딜 수 있습니다.”
경호팀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유진의 방에서 가장 바깥의 창문까지 무려 네 겹의 창과 격벽이 있기 때문이며, 그 정도면 몸을 피하기 충분한 시간을 벌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다른 한 척은 괜찮은 건가?”
“무슨 방법이 있겠지? 아!”
그때, 모니터에서는 지금까지보다 더욱 속도를 내며 요트를 향해 돌진하는 고속선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그쪽 갑판 위에는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자살 공격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그런 모양입니다.”
“대체 누가? 형한테 그렇게까지 원한이 있는 사람이 있어?”
“글쎄? 원한이라는 거야, 내가 모르는 사이에 질 수도 있는 거고.”
“막아야 할 텐데…….”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러는 사이에 고속정은 어느 사이엔가 요트에서 300미터 부근까지 다가오고 있었다.
“저런! 자살 공격은 아닌 모양이네!”
모니터에 나오는 배의 뒤쪽에서 세 명의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각자 귀를 잡고 바다로 뛰어드는 모습을 바라보며 유성이 말했다.
“그러네. 키를 고정시켜 두고 자기들은 살 생각이겠지.”
“살 수 있으려나? 해안까지는 꽤 먼 거리인데.”
“운이 좋으면 살 수 있겠지.”
유진과 유성 형제는 아마도 폭탄을 가득 실었을 배가 자신들이 탄 배를 향해 맹렬하게 다가오는데도 그다지 걱정하는 기색 없이 평안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경호팀장이 아직 아무 조치를 하지 않는 것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쾅! 콰광!
그리고 바로 거대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아까의 폭발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커다란 폭음이다.
배에 실린 폭탄의 양이 적지 않았던 듯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폭발음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배가 왜 저 거리에서 폭발한 걸까?”
유성이 갸웃거리며 말했다.
“아마 무슨 대응을 한 거겠지.”
유진은 딱히 물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배에 충분히 위협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선장이 결정을 내린 모양이다.
이 배에는 정말로 어지간한 해적으로부터는 충분히 자위권을 행사할 수단이 다수 실려 있다.
물론 상대가 해군이라면 전혀 다른 이야기이지만, 고속정 한두 대야 문제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유진은 조만간 정말 일국의 해군이라도 충분히 대응할 만한 수단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번이야 이렇게 쉽게 넘어갔지만, 언제까지고 범죄 조직이나 테러리스트의 공격만을 상정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물론 최선의 보호자는 미 해군이다. 그러니 제일 좋은 방법은 지금처럼 타국의 영해 안에 들어갈 때도 미 해군의 호위를 받는 것이겠다.
아무래도 돈이 들어갈 데가 계속 늘어날 것 같았다.
“이거 골치 아파지는 거 아닐까?”
“우리가?”
유성의 질문에 유진이 웃으며 되물었다.
“아! 그러네.”
생각해 보면 골치가 아파지는 쪽은 이쪽이 아니라 브라질 정부 쪽이 될 것이다.
이미 이쪽은 정체불명의 적들에게 공격을 받았다는 충분한 증거를 확보해 놓았다.
세계적인 부자와 유명인들로 가득한 배가 자국 영토에서 괴한들의 습격을 받았다는 사실에 브라질 정부가 어떤 반응을 하게 될 것인지 생각하니 오히려 즐거워질 정도다.
“해안 경비대가 도착했습니다. 고속정에서 탈출한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다시 선장의 보고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직 승객들은 객실에서 머물러 주십시오. 상황이 끝날 때까지는 모두 객실을 떠나시면 안 됩니다. 불편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이어 스피커에서 승객들을 위한 안내가 흘러나왔다.
“그나저나 진짜 누가 한 짓이지?”
“곧 알 수 있겠지요.”
유성의 혼잣말에 경호팀장이 대답한다.
“그래. 고속함에서 뛰어내린 범인들의 체포가 끝나면 확인할 수 있겠지.”
“그보다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뭔가요?”
“좀 더 확인되고 말씀드리려고 했었는데, 어제의 파티에 참석했던 사람들 가운데 조금 수상한 사람이 몇 명 있습니다.”
“수상하다니요?”
“파티 중 유달리 배의 구조에 대해 신경을 쓰고 다닌 사람들이 몇 명 있습니다. 그리고 어제 숙취로 이 배에 머물게 된 사람 중에도 포함되어 있고요.”
아무래도 파티에 참석해 술에 취해 배에서 잠을 자야 했던 사람은 한 명이 아닌 것 같았다.
배의 구석구석에는 적지 않은 수의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 경호팀이 24시간 내내 수상한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었고, 그들의 시선에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인물이 잡힌 듯했다.
“분석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확실해지면 다시 보고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이 정도의 일에도 유진은 그리 놀라지 않는다. 세상에는 아주 여러 가지 이유로 유진에게 위협적인 행동을 하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정도로 많은 돈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누군가의 원한을 사지 않으리라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어리석을 것이다.
어느 정도 자산이 생긴 뒤부터 유진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그 자신의 안전이었다.
그가 매년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경호 비용을 아끼지 않는 것도 전부 그 때문이다.
유진이 사용하는 경호 관련 비용은 아마도 미국 대통령의 경호 비용에 못지않을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상파울루 시의 해안경비대는 고속정에서 탈출한 몇 명의 범인들을 찾아 검거할 수 있었다.
물론 이 배와 헬기에서 그들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있던 아주 많은 카메라 덕분이다.
하나 유진 일행은 당장 그들에 대한 정보를 들을 수는 없었다. 어디까지나 그들은 남의 나라에 와 있는 민간인의 신분일 뿐이다.
다음날이 되어서야 상파울루 경찰 측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고, 경호팀장이 그쪽 경찰과 연락을 통해 조금 더 자세한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파라과이 또는 콜롬비아에서 넘어온 무장 세력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상파울루 경찰은 범죄자들이 자국민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파라과이나 콜롬비아라면 남아메리카 대륙의 북서부와 중남부 아니야? 엄청나게 먼 나라들일 텐데?”
유성이 조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브라질이 워낙 커다란 나라이기 때문에 두 나라 모두 국경을 접하고 있으니까요.”
경호팀장이 말했다. 남아메리카 대륙에 속한 열 남짓한 나라 중 에콰도르와 칠레를 제외한 모든 나라가 브라질과 국경을 접할 정도로 큰 나라이니 이해할 수는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보다 콜롬비아나 파라과이라고 특정하는 이유가 어제 그 범인들이 그쪽 출신이라는 거죠?”
“맞습니다. 두 명이 파라과이의 무장 게릴라 조직인 파라과이국민군(EPP) 출신이고, 한 명은 콜롬비아 조직에 속해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범죄자인가요? 게릴라 반군인가요?”
“사실상 남미에서 두 종류를 구별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지요. 범죄자들이 자신들을 정부에 대항하는 반군이라 자칭하기도 하고, 반군들의 행위가 여느 범죄자들과 다르지 않기도 하고요.”
경호팀장은 조금 복잡하게 되었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마약이나 납치, 은행 강도, 여하튼 게릴라라고는 하지만 사실상은 갱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행동이 어떤 혁명을 위해서라기보다 전적으로 돈 때문인 경우도 많고요.”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인가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경찰이 취조 중이라고 하니 조만간 설명을 들을 수 있을 겁니다.”
“룰라 대통령이 심심한 사과의 말을 전해 왔습니다.”
모니카가 전화를 받고 와서 말해 준다.
“보스는 지금 안정 중이라 당장은 통화가 어렵다고 말해 두었습니다.”
“수고했어.”
“그리고 상파울루 시장이나 자유당 쪽에서도 연락이 오고 있습니다. 브라질 모든 정치 세력들이 보스에게 연락하고 싶어 하는 모양입니다.”
유진에게는 그저 이벤트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 사건은 이미 세계적으로 아주 커다란 이슈가 되어 있었다.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을 비롯한 서구 세계 대부분의 미디어에서 지난밤 유진이 탄 배가 무장 범죄 세력의 자살 공격에 위협받았다는 소식을 톱 뉴스로 쉬지 않고 내보내고 있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역사상 유진만큼 큰 자산을 보유했던 개인은 없었고, 유진만큼 큰 영향력을 지닌 자본가도 없다.
더군다나 남아메리카 대륙에 엄청나게 큰 투자를 하기 위해 방문한 브라질에서 발생한 사건이니만큼, 세계 사람들은 이 사건의 파장이 미칠 영향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브라질 주식 시장이 큰 폭으로 하락했습니다. 지난 코로나 사태 이후로 가장 큰 낙폭입니다.”
이 시간 가장 바빠진 사람은 모니카였다. 밤에 벌어진 사건으로 인해 무수히 많은 일이 벌어졌고, 그걸 전부 정리해서 보고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럴 만도 하네. 브라질이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잖아?”
“현지 언론들은 당장 투자를 철회할 수도 있다는 논조로 기사를 내보내고 있는 모양입니다.”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말이지?”
유진이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이쪽 언론 중에는 룰라에 대해 비판적인 곳이 많으니까요.”
모니카도 작게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브라질의 정치권은 물론이고, 언론이나 사법계 또한 좌익 출신인 룰라를 상당히 고깝게 보고 있었다.
지난 2003년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그때까지 빚더미에 있던 브라질 경제를 살려내 한때 브라질의 영웅이라 불리던 룰라이지만, 기득권층에서는 영 마땅치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심지어 룰라가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간 뒤로는 그의 후임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그다지 명확하지 않은 뇌물죄로 룰라를 구속시키기도 했다.
그때에도 큰 역할을 한 것이 브라질의 뉴스 매체들이다. 미국과 달리 브라질의 언론사들은 대개는 지주들이나 기업의 소유이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지금에 와서는 유진의 투자가 룰라 대통령에 대한 업적으로 돌아갈 것으로 여기고 있는 브라질 미디어들이 이때다 싶어 신이 나서 유진의 투자가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뉴스를 내보내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우선은 인터뷰에 응하기 어렵다고 해 놓았습니다.”
“괜찮아. 당장 급할 거야 없으니까.”
물론 유진으로서는 이 정도 사태로 브라질에 대한 투자를 접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사실 유진이 투자를 철회하게끔 만드는 것이 아마도 그들이 노린 가장 큰 목적일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고 해서 바로 입장을 표명할 생각도 없다. 오히려 이건 유진에게 도움이 되는 기회이다.
그러니 당분간은 조용히 누구도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게 놓아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