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화 브라질의 대혼돈
그날 오후, 브라질 정부의 특사가 방문했다.
“이번 사건으로 무척이나 놀라셨을 줄 압니다.”
“예. 솔직히 상당히 놀랐습니다.”
세상을 두 번 살게 된 이래로 유진이 놀라는 일은 그다지 벌어지지 않았다. 미래를 알고 있다 보니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때로 자신의 감정을 몇 배쯤 과장해 말하는 쪽이 유리하다면 얼마든지 그럴 용의가 있었다.
“대통령께서 무척 걱정하고 계십니다. 그나마 다행히도 참사는 일어나지 않았군요.”
“배에 탑승한 손님 중에 아직까지 공포에 떨고 계신 분도 있습니다.”
사실 승객 대부분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사건이 끝난 뒤에나 알았다.
폭발음이 들려왔을 때 꽤 놀란 사람은 있었지만, 선장이 계속 그들을 안심시킨 덕분에 심한 공포까지 느낀 사람은 없다.
사태가 해결되고 나서야 이 배를 노린 공격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승객들의 동요가 조금 있었지만, 이미 안전이 확보된 뒤였기에 금세 가라앉았다.
“큰일이로군요. 브라질 정부는 이번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한 것에 대해 큰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불쾌하고 공포스러운 경험을 하신 분들께 최대의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만일 필요하신 것이 있으시다면 무엇이건 말씀해 주시면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브라질 정부의 특사는 이 배에 타고 있는 손님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지 잘 알고 있다.
그들 중 단 한 사람만 개별적으로 방문한다 해도 큰 화제가 될 사람들이다.
그런 대단한 VIP들이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브라질로서는 엄청난 타격을 입고 있다.
특히나 최근 몇 년 동안 관광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는 브라질로서는 그야말로 시련이라 해야 할 정도였다.
“이번 일로 배에 탑승 중인 정신건강과 의사가 무척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신과 의사들을 추가로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그건 괜찮습니다. 승객분들도 낯선 의사를 다시 접하는 게 편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선내 정신과 의사가 바빠졌다는 말은 사실이다. 월가의 거물들이나 할리우드의 스타들은 정신건강을 유지하는 것을 몸의 건강만큼이나 신경 쓰고 있기에, 무슨 일만 생기면 자신의 정신과 주치의나 심리 상담사를 찾아가는 것이 습관인 사람들이다.
이번 사태를 겪고 나서도 비슷했다. 상당수는 미국의 자신의 주치의들과 화상으로 혹은 전화 통화로 이번 사건에 관해 대화를 나누기도 했고, 또 직접 대화를 나누기 원하는 사람은 선내 정신과 의사를 찾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유진이 말하는 것처럼 공포 때문은 결코 아니었다.
탑승객 대개는 그들의 삶에 몇 번 찾아오지 않을 아주 놀라운 경험을 즐기고 있었다.
더군다나 미국 내 미디어들도 이번 사태를 아주 열심히 보도하고 있으니, 그 와중에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을 즐기는 이까지 있었다.
경제계의 거물이건, 연예계나 스포츠계의 스타이건 사람들의 이목을 모을 기회는 언제나 환영이었다.
“아! 그렇군요. 모쪼록 모든 분께 큰 트라우마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저도 그러기를 바라고 있습니다만, 솔직히 어젯밤 사건은 끔찍한 경험이었습니다. 자칫 잘못했다면 배가 침몰하고 수많은 사람이 수장될 뻔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참사가 생겼다면 모두 제 책임이겠지요.”
유진은 줄곧 침울한 표정을 풀지 않았다.
“앞으로 다시는 그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상파울루 해경은 물론이고 브라질 해군에서도 희망 호의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실제로 요트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브라질 해군이 보유한 네 척뿐인 프리깃함 중 한 척이 떠 있었다.
엑조세 대함 미사일과 보포스 대공포로 무장한 호위함이 지켜 주고 있으니 든든하다.
이제는 고속정 몇 척 정도로는 요트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할 것이다.
“브라질 정부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천만에요. 브라질을 방문해 주신 손님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이것도 모자라지요.”
“그런데 아무래도 일정을 조율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아!”
특사의 얼굴에 불안감이 스쳐 지나간다.
“손님들뿐 아니라 저도 언제까지 폐를 끼쳐드리면서 이곳 상파울루 앞바다에 머물러야 하는지 모르겠군요.”
“전혀 폐는 아닙니다. 오히려 더 빨리 해군함을 배치하지 못한 것에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도 뉴욕에 돌아가 머리를 쉬고 싶기도 하고요.”
특사의 방문은 유진이 약속한 경제 협력에 차질이 없도록 하려는 의도였다.
유진이 브라질에 하기로 한 엄청난 투자는 룰라 대통령은 물론이고 여권 정치인들 모두에게 정치적 입지를 굳건히 만들어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데 유진이 이대로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돌아가 버린다면, 반대로 그들은 모두 끔찍한 비난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비록 이 사건의 원흉이 그들의 반대편에서 꾸민 음모일지라도, 국정의 책임자는 대통령이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아무래도 일어나 봐야겠군요. 의사와 약속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의사분들이 너무 바쁘다 보니 조금만 늦어도 예약이 취소되어 버리거든요.”
잠시 대화를 이어 가던 유진이 특사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룰라 대통령의 심복으로 알려진 그 유능한 정치인은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하고, 오히려 암울한 소식만을 지닌 채 배를 떠났다.
그리고 특사가 떠난 뒤 유진은 자신이 말한 대로 의사를 만나는 대신 모니카와 유성을 불러 만찬을 즐겼다.
아직 누가 벌인 일인지는 모르지만, 유진에게는 오히려 큰 도움이 될 한바탕의 소동극은 끝나지 않고 있었다.
브라질은 혼란에 빠져 있었다.
야당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대통령과 행정부, 그리고 여당의 책임을 물어 왔다.
전부터 대통령과 척을 지고 있던 검찰에서는 이번 테러를 제대로 막지 못한 것이 행정부와 경찰의 무능함으로 인해 초래된 일인지 철저한 조사를 하겠다고 나섰다.
물론 화룡점정은 언론이다.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룰라 대통령이 물러나야 한다는 사설은 물론이고,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다소 어처구니없는 의견까지 무차별적으로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오후엔 어느새 사람을 모았는지 일련의 시위대가 브라질리아 대통령 궁 앞에 잔뜩 모여 대통령 탄핵을 외치고 있었다.
이미 몇 년 전 룰라 대통령 당선 당시 대선에 불복하며 브라질 연방 의회와 대통령궁, 대법원에 난입했던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대선 결과를 뒤집기 위해 군이 쿠데타에 나설 것 등을 주장하며 난동을 부렸던 이들은 단순한 시위 이상의 과격한 모습을 보였었다.
육군 본부 근처에 천막을 치고 군의 개입을 촉구하며 농성하는 한편 의회와 대통령궁, 대법원에 난입해 기물을 파괴하기도 했고, 심지어 도로를 막고 정유 시설에 대한 접근을 저지하려는 이들도 나타났다.
무기를 들지 않았다뿐이지 실질적으로 민주화를 부정하며 폭력과 쿠데타로 자신들의 주장을 실현하려는 무뢰배나 다름없었다.
그들의 모습은 묘하게도 그 바로 2년 전 미국에서 벌어졌던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사당 난입 사태를 닮아 있었다.
폭력적인 것도 그렇고, 혐오 발언과 편견을 조장하고 정치적 무기로 삼는 인물에 대한 열광적이면서도 비이성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보우소나루는 브라질의 트럼프이다. 여성 혐오와 인종 차별을 일삼고 기후변화에 부정적이며, 환경보호에 반대한다는 점에서 얼굴만 다른 쌍둥이 정치인으로 보일 정도이다.
어떤 면에선 보우소나루가 트럼프를 아주 적절하게 벤치마킹했다는 평이 그다지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보우소나루의 지지자들이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인과 마찬가지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보수적이고, 종교적인 열망으로 가득한 지지자들은 이번에도 모든 문제의 책임을 룰라 대통령에게 돌리고, 대통령 궁을 향해 돌멩이를 던지고 있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들이 들고 있는 커다란 플래카드에는 유진의 안전에 감사드린다는 글이 적혀 있는데, 브라질의 경제를 침략하기 위해 뉴욕에서 찾아온 악마를 당장 상파울루 바다 앞에서 쫓아내야 한다는 주장이 적혀진 팻말을 힘차게 흔들어 대는 시위자가 바로 곁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시위대에게 유진의 안위나 지난밤에 벌어진 테러의 범인 따위는 조금도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어떤 핑계가 필요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에 질 새라 대통령 지지자들도 모여들어 룰라 대통령을 지키겠다며 시위를 시작했다.
두 시위대의 충돌이 이어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돌멩이와 각목이 날아다니고, 불붙은 플래카드가 바람에 휘날리는 모습이 전 세계의 뉴스를 탔다.
“재미있는 나라네.”
TV 화면을 통해 대통령 궁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난투극을 지켜보던 유성이 말했다.
“다들 형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는 것 같은데?”
단지 시위대를 보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온종일 브라질 뉴스를 지켜본 감상이었다.
브라질의 언론 대부분에서 주로 언급하는 것은 룰라 대통령이었다.
그가 브라질 경제에 얼마나 위험한 행위를 하고 있는지, 그리고 외국에서 손님을 불러 놓고 위험에 처하게 한 것이 얼마나 무책임한 일인지를 열정적으로 보도하고 있었다.
대체로 브라질 언론들은 유진이 거액의 투자를 하는 것을 크게 반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지. 어떻게 하든 현 대통령에게 흠집을 내고 싶어 하는 이들과 그를 지키려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니까.”
“그런데 여기 언론들은 확실히 다르기는 하네. 천억 달러의 투자라면 어느 나라라도 환영할 텐데, 여기서는 꽤 반대가 많아.”
“경제가 발전한다고 해서 모두에게 혜택이 가는 것은 아니니까. 오히려 다들 잘살게 되어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권이 없어지는 것이 훨씬 더 두려운 사람들도 있는 법이지.”
“그거야 알 것도 같지만, 그래도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소수 아니야? 어째서 저 사람들이 그런 정치인이나 언론인들을 지지한다는 거지?”
시위에 나선 사람들은 결코 특권층으로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중산층이나 서민에 가까워 보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룰라 대통령의 경제 개혁 덕분에 브라질의 중산층은 수천만 명이나 늘어났었다. 그리고 보우소나루의 집권기에 그 중산층들이 다시 취약 계층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증오가 지닌 힘은 그렇게 강한 법이지.”
“그런 건가?”
정치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증오라는 먹잇감이다.
미국이든 브라질이든, 그리고 그 어떤 나라이든 이 증오를 외치는 사람들은 언제나 손쉽게 지지자들을 모을 수 있는 법이다.
보우소나루의 경우는 브라질에 만연한 범죄자의 척결을 부르짖었다.
범죄자에 대해서는 현장에서 모두 처형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은 유권자의 호응을 얻어 낼 수 있었다.
“하기는 브라질의 치안이 워낙 유명하기는 하지.”
“사람들이 늘 불안에 떨고 있으니까. 뭐, 전에는 필리핀도 비슷했잖아.”
“아! 생각해 보니 수십 년 전에는 한국에서도 그랬었지?”
아무런 재판도 없이 사람들을 잡아가 무슨 무슨 교육대에 가두어 놓고 불구로 만들던 시기가 한국에도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런 행동이 정당하다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어느 나라이건 폭력적인 정치가들이 범죄자들에 대한 강한 처벌을 주장하며 지지를 모으고는 한다.
하지만 그렇게 정당한 재판 과정도 없이 범죄자를 잡아 가두고 처형하는 행위가 얼마나 끔찍한 행동인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비난을 받기 일쑤였다.